청명한 가을이다, 매일 아침마다 교회에 출근해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은 따뜻한 커피 한잔을 타서 천천히 음미하는 것이다. 그렇게 커피 한잔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그렇다고 내가 로스팅한 좋은 커피를 핸드드립하여 마시는 것은 아니다. 그저 달달한 맥심커피 한 잔이다.

내 주위 목사님들 중에는 커피에 일가견이 있는 분들이 많다. 만나서 대화를 시작하면 어느새 커피이야기로 주제가 전환된다. 듣다보면 커피에 대한 많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온다. 몇 년 전에 그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수동식 그라인더로 커피를 갈아서 내려 마신 적도 있지만 지금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촌스럽다고 할지 모르지만 여전히 나는 인스턴트 커피가 좋다.

커피는 6세기경 아프리카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에티오피아 지역에 살던 ‘칼디’라는 양치기는 가뭄이 계속되자 평소 가지 않던 먼 곳까지 염소 떼를 몰고 갔다. 그런데 얼마 후 칼디는 한 무리의 염소들이 평소와는 달리 비정상적으로 흥분하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그 염소들을 자세히 관찰한 결과, 입 속에 빨간색 열매를 넣고 아작아작 씹는 것이 아닌가? 궁금해진 칼디가 염소들이 먹는 열매를 직접 따먹어 보았더니 자신 또한 가슴이 뛰고 흥분되어 피곤함이 사라짐을 느끼고 정신 또한 맑아지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커피는 아랍으로 전파되면서 본격적인 음료로 개발됐다. 아랍에서 처음으로 커피를 먹기 시작한 사람은 이슬람교의 신비주의자인 수피교도들이었다. 그들은 긴 밤 기도 시간 동안 졸지 않기 위해 커피를 마셨다. 이후 커피는 십자군전쟁을 통해 유럽으로 전파되었는데 특히 르네상스시대 유럽의 지식인과 예술가들은 커피의 효과에 열광했다고 전해진다.

내게는 커피에 대한 특별한 기억이 있다. 큰 교회에서 부목사생활을 할 때였다. 단체로 교역자들이 제주도로 수양회를 가서 한라산 등반을 했다. 그날따라 쌀쌀한 날씨에 부슬부슬 비도 내렸다. 정상으로 올라갈수록 처음과는 달리 눈보라와 비바람이 휘몰아쳤다. 얼굴은 추웠지만 온 몸에 땀이 가득하고 숨은 가빠졌다. 목은 마르고 발은 아팠다. 간신히 정상에 도착한 후 다시 산을 내려온 지 약 20분 즈음, 저 앞에 아는 목사님 두 분과 한 심방전도사님이 앉아서 쉬고 있었다. 나도 그 무리에 합류하였는데, 그 중에 홍일점이셨던 50대 초반의 한 여자심방전도사님께서 배낭에서 보온병을 꺼내신다. 그리고 종이컵을 나눠주시더니 따뜻한 커피를 한잔씩 나눠주시는 것이 아닌가? 자기 몸 하나 이끌고 산에 오르기도 힘든데 키도 작고 아담하신 그 분께서 무게가 꽤 나가는 보온병에 커피를 담아 가지고 정상까지 오른 것이다.

따뜻하고 달콤한 커피를 입안에 머금은 순간 행복감과 고마움, 그리고 감동이 느껴졌다. 이전까지 커피 한잔이 그렇게 좋은 감정을 가져다 준 적은 없었다. 평소에 사무실에서 마셨던 커피와는 전혀 다른 의미의 커피였다. 나의 필요를 채워준 커피 한잔에 담겨있는 그 전도사님의 마음과 수고가 너무 감사했다. “전도사님! 어떻게 이 커피를 타서 가지고 오실 생각을 하셨어요?” 하고 물으니 그 전도사님께서 “정상에 올라와서 목사님들께 드리려고 가지고 왔어요” 라고 답하셨다. 전도사님께서 주신 그 커피는 평생 잊지 못할 커피 한 잔이 되었다.

톨스토이는 항상 다음 3가지 질문을 마음에 품고 살았다고 한다. 첫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언제인가? 둘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누구인가? 셋째,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인가? 그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시간은 지금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은 지금 내가 마주하고 있는 사람이다. 이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은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다”

오늘도 따뜻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지금 나와 함께 하고 있는 사람의 필요를 채워주는 섬김을 실천할 수 있다면 우리는 누군가에게 잊지 못할 최고의 순간을 선물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