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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로 인한 형벌인가, 의를 위한 핍박인가” 호세아 9장 1절~17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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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10월 27일 (일) 19:55:28 [조회수 : 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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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로 인한 형벌인가, 의를 위한 핍박인가” 호세아 9장 1절~17절

 

1. 물질이 신앙의 척도인가

 

➀ (1절~3절) “이스라엘아 너는 이방 사람처럼 기뻐 뛰놀지 말라 네가 행음하여 네 하나님을 떠나고 각 타작 마당에서 음행의 값을 좋아 하였느니라”

▶ 우상숭배는 ‘타작 마당에서’ 드러난다. 풍성한 수확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고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처럼 기뻐했다. ‘음행의 값을 좋아 하였느니라’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이 아니라 우상을 섬긴 결과물이라고 착각했다. 물질이 신앙의 척도다. (마6:21)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2절) “타작 마당이나 술틀이 저희를 기르지 못할 것이며 새포도주도 떨어질 것이요” 모든 소출은 삶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에게서 온다는 사실을 잊어버렸다. (잠3:9~10)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히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물질을 어디에 먼저 사용 하느냐에 삶의 우선순위가 드러난다.

▶ (3절) “저희가 여호와의 땅에 거하지 못하며 에브라임이 애굽으로 다시 가고 앗수르에서 더러운 것을 먹을 것이라”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땅의 소산도 잃어버린다. 애굽에서 노예였던 것처럼 또 다시 앗수르의 비참한 포로가 될 것을 경고한다. (신8:12~14)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또 네 우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 (17~18) ‘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땅과 소산을 다 빼앗기고 멸망했던 진짜 이유다.

 

② (4절) “저희가 여호와께 전제를 드리지 못하며 여호와의 기뻐하시는 바도 되지 못할 것이라 저희 제물은 거상 입은 자의 식물과 같아서 무릇 그것을 먹는 자는 더러워지나니 저희의 식물은 자기 먹기에만 소용될 뿐이라 여호와의 집에 드릴 것이 아님이니라”

▶ (출29:40) ‘한 어린 양에 고운 밀가루 에바 십분 일과 찧은 기름 힌의 사분 일을 더하고 전제로 포도주 힌의 사분 일을 더할찌며’ 전제는‘술을 붓다’ 번제를 드릴 때 함께 드리는 포도주다. 전제의 포도주는 기쁨을 상징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리면 하나님께 드리는 기쁨을 상실한다. 하나님도 기쁘게 열납하지 않으신다. ‘거상 입은 자의 식물’은 장사지낸 자들과 그 손댄 음식이 부정하듯이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은 상태를 가리킨다. 제물은 ‘자원하여 기쁨으로 온전하게’ 드려야 한다. ‘자기 먹기에만 소용될 뿐...여호와의 집에 드릴 것이 아님’ 자기 먹기에 급급해서 하나님께 드릴 것이 남아있지 않다. 처음 익은 열매(먼저)로 드려야지 쓰고 남는 잉여(나머지)를 드려선 안 된다.

 

③ (5절) “너희가 명절일과 여호와의 절일에 무엇을 하겠느냐”

▶ 너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 형식적인 제사는 아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명절일’은 안식일이나 월삭 같은 정기적인 제사이고 ‘여호와의 절일’은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의 3대 절기다. 제사(예배)의 목적은 하나님의 구원과 은혜를 기억(기념)하는 데 있다. 이스라엘의 타락은 제사(예배)의 타락이었다. 이스라엘의 실패는 예배의 실패였다. 예배는 하나님과의 관계의 척도다. 예배가 무너지면 삶도 무너진다.

 

2. 죄로 인한 형벌 VS 의를 위한 핍박

 

① (6절) “보라 저희가 멸망을 피하여 갈찌라도 애굽은 저희를 모으고 놉은 저희를 장사하리니 저희의 은 보물은 찔레가 덮을 것이요 저희의 장막 안에는 가시 덩굴이 퍼지리라 (7절 상) 형벌의 날이 이르렀고 보응의 날이 임한 것을 이스라엘이 알찌라”

▶ ‘가시와 찔레’는 고난과 환란을 상징한다. 고난의 두 가지 차원이 있다. 죄로 인한 고난이 있고 의를 위한 핍박(고난)이 있다. (겔2:6)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처하며 전갈 가운데 거할찌라도 그들을 두려워 말고’ 겉보기엔 똑같은 ‘가시와 찔레’(고난)지만 전혀 달라서 해법도 다르다. 지금 북이스라엘이 찔레와 가시는 ‘죄로 인한’ 형벌의 날, 보응의 날이 임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죄로 인한 고난(형벌)을 의를 위한 핍박이라고 착각을 한다. 이와 반대로 의를 위한 핍박을 죄로 인한 징벌로 오해한다. ‘십자가의 고난’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받는 의를 위해 핍박받는 고난이다. 의를 위한 핍박(십자가)은 ‘인내’해야 한다. 죄로 인한 고난(형벌)은 ‘빨리’ 회개해야 한다.

(메시지) ‘다시 생각하여라 너희가 지금 큰 곤경에 처한 것은 너희의 큰 죄 때문이다’

 

② (7절 하~8절) “선지자가 어리석었고 신에 감동하는 자가 미쳤나니 이는 네 죄악이 많고 네 원한이 큼이라 (에브라임은) 내 하나님의 파수꾼이어늘 (선지자는) 그 모든 행위에 새 잡는 자의 그물 같고 또 그 하나님의 전에서 원한을 품었도다”

▶ ‘(너희는 말하기를) 이 예언자는 어리석은 자요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이자는 미친 자라고 모함하였다. 왜냐하면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싫어하고 미워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나를 예언자로 임명하셔서 에브라임을 지키는 파수꾼이 되게 하셨다. 그러나 예언자가 가는 길목마다 덫(올무)을 놓았다. 하나님이 계신 집에서마저 너희는 예언자에게 원한(hostility 적의, 적대감, 적개심, 강한 반대)을 품었다’(NIV)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를 훼방하고 적개심으로 불탔다. 저것만 없으면 내 세상이니 우리가 죽이자. 이사야를 죽이고 예레미야는 가두었다. (메시지) ‘그 예언자는 지금 하나님의 명을 받아 일하며, 에브라임을 보살 피고 있다. 그러나 모두가 그에게 딴쭉을 걸려고 하니, 그 모든 곳에서, 심지어 하나님의 집에서도 미움을 받는다’

 

③ (9절) “저희는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심히 패괴한지라 여호와께서 그 악을 기억하시고 그 죄를 벌하시리라”

▶ 기브아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사사기의 마지막 사건이다. 약속의 땅에서 벌어진 희대의 집단강간에 의한 살인사건이다. 이일로 인해 동족상잔의 내전이 벌어진다.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삿19장1절~21장25절) ‘어떤 레위사람이 그 첩이 행음하고 남편을 떠나 유다 베들레헴 그 아비의 집에 거하며 넉달을 보내매...기브아에서 베냐민지파 사람들이 여인을 밤새도록 욕보이고 동틀 때 문지방에 죽어있었다. 레위 사람 그 남편이 열두 개로 쪼개서 모든 이스라엘 지파에게 보내자 일제히 미스바에 모여 총회를 열고 베냐민지파의 악을 행한 자들을 벌하기로 했다. 도리어 베냐민지파가 전쟁을 벌인다. 동족상잔의 비극 연합지파군 40만명VS 2만6천명 전투로 600명만 생존하는 대참사가 벌어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21장25절)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대로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기브아의 시대와 같이 패괴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악행을 행할 뿐만 아니라 징계하실 때 대적해서 저항하고 완고해서 회개치 않는 시대다. 마침내 회개치 않은 베냐민 지파의 완고함을 멸하셨다. 누가 하나님을 대적하랴, 공의로운 심판을 피할 자 없다.

 

 

3. 용두사미 신앙

 

① (10절) “옛적에 내가 이스라엘 만나기를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같이 하였으며 너희 열조보기를 무화과 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를 봄 같이 하였거늘 저희가 바알브올에 가서 부끄러운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의 사랑하는 우상 같이 가증하여졌도다”

▶ ‘옛적에’ 이스라엘은 과거에 ‘광야에서 포도를 만남 같이’ ‘무화과 나무에서 처음 맺힌 첫 열매 같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으나 그 사랑을 저버리고 ‘브올에 있는 바알의 집’ 하나님보다 우상을 더 사랑해서 ‘가증하여졌도다’ 하나님이 몹시 싫어하고 구역질날 정도로 혐오하는 대상으로 타락했다. 하나님 앞에서 왕년에 자랑이나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지금 오늘’ 나의 모습이 중요하다.

 

② (11절~13절) “에브라임의 영광이 새 같이 날아가리니 해산함이나 아이 뱀이나 잉태함이 없으리라혹 저희가 자식을 기를찌라도 내가 그 자식을 없이하여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저희를 떠나는 때에는 저희에게 화가 미치리로다”

▶ 성경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가정에서 후사를 주시는 기적이 자주 등장한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이삭)과 마노아의 아내(삼손), 한나(사무엘), 엘리사벳의 기적은 단순한 불임가정에서 출산의 기적이 아니다. 후사가 없다는 것은 미래의 희망이 없다는 뜻이고 하나님이 생명의 주관자 되심을 증거하고 있다. 삶의 주관자되신 하나님은 생명을 주시기도 거두기도 하신다. ‘한 사람도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로 인한 타락은 당대에 끝나지 않고 후손들이 그 열매를 먹게 된다. 과거의 한국교회 과거의 영광은 사라졌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타락은 여기서 끝나지 않고 다음세대에 급격한 몰각으로 이어질 것이다.

 

③ (13절) “내가 보건대 에브라임은 아름다운 곳에 심긴 두로와 같으나 그 자식들을 살인하는 자로 끌어 내리로다”

▶ ‘아름다운 곳에 심긴 두로와 같으나’ 두로는 해상무역의 거점으로 풍요와 번영을 누리던 곳이다. (창49:3) ‘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나의 능력이요 나의 기력의 시작이라 위광이 초등하고 권능이 탁월하도다마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네가 아비의 침상에 올라 더럽혔음이로다 그가 내 침상에 올랐었도다’ 장자의 축복권을 받았지만 상실했다. 타고난 환경이나 재능이 중요한 게 아니다. 맡겨진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하면 빼앗긴다. 최고의 환경에서 타락한 아담, 최악의 환경에서 요셉은 형통했다. 시작은 아름다웠지만 끝이 초라해지는 용두사미의 신앙을 경계해야 한다.

 

 

4. 방황하는 인생

 

① (14절) “여호와여 저희에게 주소서 무엇을 주시려나이까 청컨대 배지 못하는 태와 젖 없는 유방을 주시옵소서”

▶ 얼핏 보면 호세아가 이스라엘백성을 향해 저주하는 기도처럼 읽혀진다. 오해다. 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다. (사1:19~20)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아주 심플하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삶의 주관자 시기 때문이다. ‘배지 못하는 태’와 ‘젖 없는 유방’처럼 무용지물되리라. 왜냐하면 생명의 주관자시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다. 저주가 아니라 역설적인 은혜다. 포도원 농부 되신 하나님께서 극단적인 정전과 정지작업을 수행하신다. 멀쩡한 가지를 치는 전정과 정지가 과일나무를 죽이는 게 아니고 더 풍성한 열매를 맺기 위함이듯이 ‘배지 못하는 태’가 죽이려는 게 아니라 다시 살리는 과정이라는 것이다.

 

② (15절~16절) “저희의 모든 악이 길갈에 있으므로 내가 거기서 저희를 미워하였노라 그 행위가 악하므로 내 집에서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

▶ 호세아의 간구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우상숭배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다. ‘길갈’은 (수4:20~24) 요단강을 건널 때 12개의 돌을 쌓고 할례를 받은 장소다. 과거에는 아주 특별한 성지였으나 지금은 우상숭배의 본거지가 되었다. 하나님 앞에서는 ‘과거의’ 영광이 아니라 ‘오늘의’ 내 모습이 중요하다. ‘저희를 미워하였노라...내 집에서 쫓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아니하리라...비록 아이를 낳을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태의 열매를 죽이리라’ 무시무시한 저주로 다 끝난 것 같지만 그 속에 담겨있는 하나님의 본심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본심은 심판이 아니라 회개다. 회복이다. 회개하면 새로운 내일을 여신다. * 우리도 지금 당장 눈앞에 벌어지는 ‘하나님이 날 버리신 것 같은’ 현실만 바라보면 절망하고 낙심한다. 눈을 들어 하나님이 여시는 내일을 바라보는 믿음의 눈이 있어야 한다.

 

③ (17절) “저희가 듣지 아니하므로 내 하나님이 저희를 버리시리니 저희가 열국 가운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

▶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 멸망한 이유를 한 단어로 정리한다. 오늘 우리에게도 중요한 까닭은 믿음의 성도들도 죄의 노예로 ‘유리하는 자’ 방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희가 듣지 아니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종이란 단순히 듣기만 하는 게 아니라 ‘들은 대로 실천하는 순종’이다. 순종이 어려운 것은 내 생각과 다르기 때문이다. (사55:8~9)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 생각보다 높으니라” 순종은 이것을 인정하고 내 생각 내려놓고 더 좋은 길을 선택하는 것이다.

▶ 예언자(히브리어 navi), 네비게이션의 약자(navi)는 공교롭게 동일하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의 네비게이션(navigation. 항해, 차량항법장치, 길 도우미)이다. 다윗의 고백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치 않는 인생의 결과는 ‘유리하는 자’ 인생의 방황이다. “인생의 방황은 예수그리스도를 만나면 끝나고 신앙의 방황은 좋은 교회를 만나면 끝난다” 그런데 예수그리스도를 만나고 좋은 교회를 만나도 여전히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다. 내비게이션을 켜놓지만 지시대로 따르지 않고 내 경험, 내 생각, 내 뜻대로 지시를 불이행하기 때문이다.

▶ 순종을 위해서는 믿음이 요구된다. 어떤 믿음인가? (사55:10~11) “비와 눈이 하늘에서 내려서는 다시 그리로 가지 않고 토지를 적시어서 싹이 나게 하며 열매가 맺게 하여 파종하는 자에게 종자를 주며 먹는 자에게 양식을 줌과 같이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 순종하면 열매와 형통이 따라온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 있으면 순종한다. 이 믿음이 없어서 순종하지 못한다. 이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어떤 사람은 뼈저린 체험을 통해서 얻기도 한다. 이스라엘백성들이다. 방황과 결핍을 직접 체험하지도 않고도 믿는 경우도 있다. (요20:28~29)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방황과 결핍을 통해 잃어버린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방황과 결핍을 체험하지 않고 믿는 믿음이 더 복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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