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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평화의 주체다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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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10월 26일 (토) 21:35:13 [조회수 :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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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가 4장 1-5절

하나님이 평화의 주체다

 

가. 평화는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

3절, “그가 많은 민족들 사이의 일을 심판하시며 먼 곳 강한 이방 사람을 판결하시리니 무리가 그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 본문은 평화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이다.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라고 하였다. 또한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고”라고 하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역 안에 있다.

* 여기서 ‘심판하다’(사파트)는 ‘다스리다’라는 뜻도 갖고 있다. 그리고 ‘판결하다’(야카흐)는 ‘바로잡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평화는 하나님이 다스리시고 바로잡으실 때에 이루어진다는 말씀이다. 진정한 ‘평화’(샬롬)는 우리가 하나님 앞에 온전하게 설 때에 주어지는 선물이다.

* 힘에 의한 평화는 온전하지 않다. 물론 힘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가능하다. 이사야는 “의인의 길은 정직함이여 정직하신 주께서 의인의 첩경을 평탄하게 하시도다”(사26:7)라고 하였다. 평화는 의로우신 하나님이 의로운 백성에게 주시는 선물이다.

 

나. 빛을 잃은 것이 문제다.

1절, “끝날에 이르러는 여호와의 전의 산이 산들의 꼭대기에 굳게 서며 작은 산들 위에 뛰어나고 그 민족들이 그리로 몰려갈 것이요...”

* 이 말씀도 하나님의 소원을 담고 있다. 여기서 ‘여호와의 전의 산’은 ‘시온’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시온’에서 여호와의 말씀과 율법이 선포되고 이를 통해 인류의 평화를 이루게 하신다. 하나님은 시온이 회복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시온이 이방 모든 나라의 희망이 되기를 원하신다.

* 여기서 문제는 빛의 마을인 시온에 빛이 없으니 평화의 마을 예루살렘에 평화가 없다는 것이다. ‘시온’(치욘)은 ‘눈에 띄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그런데 시온이 빛을 잃고 눈에 띄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즉 시온이 빛을 잃고 타락함으로서 평화의 도시 예루살렘에 평화가 없다는 것이다.

* 예루살렘은 하루빨리 시온을 회복해야 한다. 시온을 모든 사람의 눈에 띄게 해야 한다. “곧 많은 이방 사람들이 가며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여호와의 산에 올라가서 야곱의 하나님의 전에 이르자 그가 그의 도를 가지고 우리에게 가르치실 것이니라”(2절). 빛의 회복이 숙제다.

 

다. 여호와의 이름으로 살라.

5절, “만인이 각각 자기의 신의 이름을 의지하여 행하되 오직 우리는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영원히 행하리로다.”

* 예루살렘이 평화를 회복하는 길은 시온을 회복하는 것이다. 즉 나라가 평화롭게 되려면 교회가 회복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여 살아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추종하는 헛된 신(우상)을 의지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고 살아야 한다.

* 여기서 ‘이름을 의지하여’(베쉠)은 ‘하나님의 좋은 명성을 위하여’라는 뜻이다. 즉 성도는 하나님의 명예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는 자신에게 얼마나 유익한가를 먼저 생각한다. 그러나 성도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얼마나 영광이 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 바울은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고 하였다. 하나님의 이름을 빛나게 하면 자신의 이름도 빛나게 된다. 교회가 빛나지 않는 것은 자신들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명예를 걸고 하라.

 

라. 바로 선 나라가 평화를 누린다.

4절,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에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 본문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선 나라가 평화를 누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서 다시는 서로 치거나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게 된다는 말씀이다. 남의 것을 탐할 때 전쟁이 일어난다.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에 앉는 것으로 만족하는 것이 진정한 평화다.

* 하나님은 그를 존중하는 백성을 존중히 여기시고 그를 멸시하는 백성은 멸시하신다(삼상2:30).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으신다. 하나님은 그의 영광을 위하여 행하는 나라를 든든하게 세우신다. 하나님을 모욕하는 나라가 평화로운 곳이 없다. 하나님의 편에 서야 두려울 것이 없다.

* 특히 교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교회(시온)가 바로 서면 나라(예루살렘)가 평안하다. 소돔과 고모라에는 의인 열 사람이 없어서 무서운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 교회가 이 시대의 의인 열 사람의 역할을 감당하면 나라가 비록 소돔과 고모라와 같을지라도 구원을 받고 평안을 누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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