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다이어트를 위해 간헐적 단식을 하느라 아침을 먹지 않고 있다. 하지만 예전에는 시리얼과 우유로 간단하게 먹더라도 꼭 아침을 챙겨 먹었다. 로마신화의 농업의 여신인 케레스(Ceres)에서 유래된 단어인 시리얼(cereal)은 아침식사용으로 먹는 조그만 곡물 조각을 말한다. 우리가 보통 접하는 시리얼에는 몇 가지 종류가 있다.

시리얼로 가장 많이 알려진 콘플레이크(cornflakes])는 옥수숫가루에 소금, 설탕, 꿀 따위를 넣어 얇게 가공하여 만든 식품을 말한다. 설탕이 많이 첨가되었기에 식사대용으로 쓰려면 설탕 함량 4% 이하를 사서 먹어야 한다. 오트밀(oatmeal)은 귀리의 겉겨를 벗기고 가공한 음식을 말하고 그래놀라(Granola)는 오트밀과 보리, 현미, 옥수수 등을 중심으로 한 곡물 가공품과 코코넛, 견과류 등을 설탕, 꿀, 메이플 등의 시럽과 식물성 기름에 섞어 오븐에서 구운 것을 말한다. 먹는 방법은 주로 우유나 요구르트에 넣어서 먹는다. 나에게 있어 그래놀라는 과거 어느 날의 소중한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음식이다.

2011년 가을, 뉴욕에서의 유학시절, 경제적으로 어렵고 힘든 시기였다. 그 당시 내게 큰 고민거리는 자동차였다. 2010년도 봄에 2000$을 주고 저렴하게 구입한 내 차는 캐딜락 드빌 1992년형이었다. 8기통의 4800CC 검은색 대형 세단인 이 캐딜락 드빌에는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었다. 과거 흑인들의 로망이 이 캐딜락 드빌에 백인여자친구를 태우는 것이었다거나 큰 트렁크에 시체 4구를 넣을 수 있어서 마피아들이 선호한 차였다는 등의 이야기도 나중에 듣게 되었다. 외관은 한두 군데 금이 간 부분도 있었지만 그런대로 봐 줄만 했고, 전체가 빨간색인 실내도 인상적이었다. 왜 그렇게 큰 차를 샀느냐 할지 모르지만 당시 구입자금이었던 2000$로 구입할 수 있는 몇 대 안되는 차였기 때문이다.

미국은 기름 값이 우리나라보다 저렴해서 유류비는 큰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1년이 넘게 시간이 지나니 차 수리비가 너무 많이 지출되었고, 앞으로도 많이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고장 난 에어컨 수리비는 차 값보다 훨씬 더 나와서 수리를 포기했고, 엔진오일이 새서 늘 트렁크에 엔진오일 통을 넣고 다니며 부어주어야 했다. 엔진에도 몇 가지 문제가 발생하여 거액의 수리를 요했기에 차를 바꾸어야 하는 상황이었는데, 차를 바꿀 수 있는 경제적 형편이 아니었다. 이러다가 서 버리면 팔지도 못하고 폐차시켜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었다. 그래서 당시 내 기도의 제목은 “주여 차를 해결해 주옵소서!”이었다.

그러던 어느 월요일 아침 7시 30분, 그날따라 일찍 엔진오일을 교환하러 자주 갔던 카센터를 찾았다. 다행히 손님은 나보다 먼저 오셔서 앉아계시는 노신사 한분뿐이었다. 그런데 그 노신사 분께서 내 차를 유심히 보며 관심을 가지신다. 그래서 내가 말했다. “1992년형입니다. 차는 참 좋은데, 수리비가 너무 많이 나와서 속이 상합니다.” 내 이야기를 듣고  그 노신사 분께서 말씀하신다, “나도 97년형 캐딜락 드빌을 갖고 있어요. 그런데 내 차는 아주 상태가 좋습니다. 지난 5년 동안 차를 타지 않고 주차장에 주차해 놓고 있어서 차한테 아주 미안하답니다” 내 차보다 5년이나 젊고 상태가 아주 좋은 캐딜락 드빌이 차고에 보관중이라는 그 분의 말씀을 듣고 나는 농담으로 “아 그러세요. 안타시면 저 주세요!”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정말 농담이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에게 차를 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런데 이 분의 반응이 뜻밖이다. “그래요? 그럼 전화번호를 좀 알려주세요! 제가 전화를 드리지요!” 알고 보니 이 분은 수년 전에 한인루터교교회에서 은퇴하신 장 목사님이셨다. 나도 감리교 목사로 공부하러 뉴욕에 왔다고 소개하니 더욱 반가워하신다.

그렇게 헤어지고 나서 3일 후 그 목사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월요일 뉴욕에 있는 자신의 집으로 오라는 것이다. 내게 줄 캐딜락은 매릴랜드주에 있는데, 자신과 함께 가서 그 차를 가져가라는 것이다. 약속한 날이 되었다. 뉴욕에서 매릴랜드까지 5시간이 걸리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운전은 내가 했고, 가는 도중에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70년대 유학을 와서 고생하며 정착하던 이야기, 피아노조율의 기술을 갖고 있어서 스타인웨이 피아노회사의 조율사로 일했던 이야기, 1997년도에 교인들이 사준 캐딜락 드빌을 나중에 은퇴하고 난 이후 선물로 받았다는 이야기, 자신의 딸이 변호사로 성공해서 메릴랜드 주의 자신의 집 옆에 은퇴한 부모의 집을 지어주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가끔씩 메릴랜드로 가서 딸과 손주들을 봐주고, 반찬도 해서 전해준다며, 그때마다 마트에 갈 때 캐딜락을 탔다는 이야기 등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해가 어두워질 무렵 드디어 매릴랜드에 도착했다. 잘 지어진 주택에 도착해서 차고의 문을 여니 장목사님께서 내게 주신다고 했던 캐딜락 드빌이 자태를 드러냈다. 지금 내가 소유하고 있는 92년형 드빌과는 비교할 수 없는 훌륭한 컨디션이었다. 감동적이었다. 오랫동안 주차되어 있어서 방전된 배터리를 다시 충전하고 시동을 거니 엔진소리도 힘이 있다. 목사님 말씀으로는 자신이 ‘아기처럼 아끼고 관리했던 차’라고 말씀해주셨다. 이미 해가 떨어진 상태라, 하룻밤을 자고 난 뒤 아침에 출발하기로 했다.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 무릎을 꿇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하나님께서 차로 인해 애를 먹던 나의 기도를 이렇게 해결해 주심에 감사를 드리고 잠을 청했다.

아침이 되어 장목사님과 짧은 기도회를 가진 후에 목사님께서 손수 준비해 주신 아침식사를 하게 되었다. 요거트에 견과류가 들어있는 그래놀라와 과일, 구운 식빵과 잼 그리고 커피, 미국식 아침식사였다. 간단하지만 노 목사님의 따뜻한 정성이 가득 담긴 밥 한 끼를 대접받은 것과 같은 감동과 감사가 느껴졌다. 이전에 내게 시리얼은 그저 바쁜 아침 끼니를  대신하는 것 정도의 의미를 갖고 있는 평범한 음식이었다. 그러나 낯선 땅에서 받았던 그 따뜻한 아침식사가 시리얼에 대한 특별한 의미를 갖게 해주었다.

식사를 마치고 이제 나 혼자 차를 가지고 떠날 시간이 되었다. 차를 그냥 주시는 것만도 감사한데, 기름을 가득 채워 놓으셨고, 고속도로통행카드까지 차에 꽂아주시면서 뉴욕에 도착하면 우편으로 보내달라고 하셨다. 섬세하고 깊은 배려였다. 3일 전까지 전혀 알지 못하던 젊은 목사에게 그분은 할 수 있는 모든 친절과 정성을 다해서 대해 주셨다. 고마운 마음으로 수없이 감사의 인사를 드리며 그 차를 가지고 뉴욕까지 오게 되었다. 이후 그 차는 미국 생활하는 동안 고마운 발이 되 주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그 날 아침에 카센터에서 장목사님을 만나게 하시고 그 만남을 통하여 차에 대한 절박한 나의 기도제목을 해결해주셨다. 한 시간만 늦게 카센터에 갔어도 이 모든 경험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생전 알지 못했던 젊은 목사에게 자신이 아끼던 차를 아무런 대가없이 선물로 주시며, 섬세하게 배려해 주시는 노목사님의 따뜻함과 환대에 깊은 감동과 감사가 밀려왔다. 언젠가 나도 누군가에게 대가없이 차를 선물해야겠다는 마음 또한 갖게 되었다. 때때로 아침에 시리얼과 우유로 식사를 할 때마다 장목사님과 캐딜락에 대한 추억이 떠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