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순례자는 믿음의 길을 걷는다. 많은 사람이 ‘카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어도 저 마다 다른 호흡과 마음가짐으로 걷게 마련이다. 스페인의 야고보 길을 걸어본 사람마다 자기의 경험을 순례기에 담아내고 싶은 이유다.

  산티아고 순례기 <그 길에서 나를 만나다>를 쓴 독일 코미디언 하페 케르켈링은 걸으면서 자신의 믿음을 회복했다고 적었다. 이런 말로 고백하였다. “창조자는 우리를 공중에 던진다. 그리고 결국에는 놀랍게도 우리를 다시 붙잡는다. 부모가 그들의 자녀들과 함께 하는 자유로운 놀이와도 같은 것이다.”

  지난 해 스위스 취리히에 있는 한인사랑교회 수양회에 초대받았다. 하루는 참가자 모두가 오후 내내 수양회가 열린 산장에서부터 쉴 강을 따라 10킬로미터 쯤 산책하였다. 요즘 트렌드로서 걷는 일이 아니라, 평소 걷는 일이 일상처럼 느낄 만큼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트레킹은 정복을 목적으로 하는 산행과 다르다. 원래는 아프리카에서 달구지로 집단 이동하던 것에서 유래했다지만, 자연과 문화 그리고 인문과 즐거움을 느끼며 체험하며 걷는 길이라고 할 만하다.

  스위스 병원에서 간호사로 은퇴한 두 권사님에게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들었다. 두 분은 모두 독일근무 3년을 마치고 스위스에서 재취업하였다. 이윤수 권사님은 산티아고 순례를 한 차례 다녀왔는데, 수양회를 마친 다음 날에도 스페인으로 떠날 배낭을 꾸렸다. 한복녀 권사님은 새벽마다 기차를 타고 집을 나서 스위스 산티아고 길을 걷는다고 하였다. 독일국경에 위치한 보덴제로부터 프랑스 국경까지 스위스 길 420킬로미터 완주를 목표로 한다.

  흔히 말하는 산티아고 순례는 피레네 산맥에서 시작해 스페인 북부를 통과하여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하는 도보여행이지만, 유럽 사람들은 자기 집 앞에서부터 시작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독일 복흠에서, 체코 카를로비바리에서, 폴란드 크라코프로부터 저 마다 자신의 길을 걷는 셈이다. 사실 인생의 길은 서로 다르지만 목적지가 똑같으니 누구나 고유하면서도 서로 알만한 순례 길을 걸어가는 셈이다.
   
  유은진 권사님도 자신의 길을 걸어 왔다. 파독 간호사로 독일로 날아온 때가 1972년이니 어느새 50년 가까운 세월이다. 누구나 자기 인생은 책이 몇 권이고, 영화가 몇 편이라고 할 만하지만 유 권사님 역시 그가 연출해 온 인생의 무게가 만만치 않다. 그만큼 걸어온 세월을 어찌 다 갈무리할까?

  그 삶의 내용을 ‘내가 독일에서 예수님을 살아가며 살아온 이야기’로 묶었으니 그 다운 <믿음의 길>임에 분명하다. 그의 순례기는 신앙생활은 물론 가족사, 노동의 수고, 독일이주민, 여성으로서 삶 그리고 목숨을 건 투병조차 자신의 고유한 여정으로 포함시켰다.  
 
  어느 새 고희를 넘어선 유은진 권사님이 자신만의 인생 순례기를 출판하였다. 그때그때 내 나이를 먹기도 힘이 벅찬 일인데, 그만그만한 일상 속에서 보물 같은 성찰을 일구어 냈으니 얼마나 아름다운 눈빛인가? 틈틈이 갈무리한 이야기를 책으로 묶은 이유는 단 한 가지다. 독일에서 자란 자녀들에게 유언처럼, 유산답게, 고이 물려주고 싶은 갈망 때문이다. 평생 갈증을 품고 살아온 엄마와 할머니의 사연을 두고두고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는 심정일 것이다.

  1994년부터 2002년까지 독일에서 더불어 살아온 우리 가족은 이 분에게 갈매기 조나단이란 별명을 붙여 주었다. 평소 유 권사님의 시선이 해변 가에서 파도에 밀려온 물고기나 조개류를 찾는데 머물지 않고, 남들이 바라보지 않는 창공을 더듬었고, 그렇게 높이 비행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참 아름다운 <믿음의 길>을 출간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린다. 그리고 더 멀리, 더 든든하게, 나만의 산티아고 길을 계속 걸어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