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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랖이 넒은 사람도 필요하다.
김학중  |  hjkim@dream10.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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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9월 29일 (일) 23:03:35 [조회수 : 4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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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일을 내 일처럼 참견하고 간섭하는 사람들에게 ‘오지랖이 넓다’라고 표현한다. 그런데 오지랖이 넓은 사람들을 이해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의 일에 흥미는 있지만 내 일처럼 발 벗고 나서서 관심을 갖거나 돕는 것을 불필요하게 생각하고 기피하기도 한다.

의외로 남의 일을 내 일처럼 생각하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은 우리 주변 가까이에 있다. 직장 상사의 유형 중에 길을 가다가 쓰러진 사람을 절대 지나치지 못할 심성을 가진 상사가 있다면 그 분은 ‘돌고래형 상사’에 속한다고 한다. 돌고래형 상사에 속하는 유형들은 기본적으로 '누구든 내 도움의 손길이 필요하겠지'라고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의 업무까지 꼼꼼하게 처리하다보니 매일 야근에다가 일벌레로 통한다. 왜 저렇게 사서 고생을 하나 싶지만, 이런 분들이 있어야 다른 동료가 불가피하게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오는 업무의 혼란을 막을 수 있다.

어느 책에 소개된 이야기 중에 이런 일화가 있다. 일본에 사이타마 현이라는 동네에 자리 잡은 서점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 서점에서 자꾸만 책이 없어지자 서점 관계자는 고민 끝에 글 하나를 써 붙였다고 한다.

“항상 저희 서점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오늘은 항상 저희 서점을 이용해 주시는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요즘 들어 특정한 잡지가 매주 한 권씩 없어지고 있습니다. 만약 수상한 사람을 발견하면 직원에게 알려주시지 않겠습니까? 여러분의 힘을 빌려주시길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매주 한 권씩 없어지는 잡지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막기 위해 서점에서 내 놓은 특단의 조치였다. 그런데 참 재밌는 점은 책을 훔쳐간 고객을 가려내기 위해서 다수의 고객을 ‘오지랖 넒은 사람들’로 만들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서점에 생긴 문제이지 고객들이 발 벗고 나서서 관심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이렇게 서점에서 써 붙인 요청의 글에 다수의 고객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 놀랍게도 불특정 다수의 고객들은 ‘오지랖 넓은 사람들’로 변했다. 이렇게 다수의 눈을 빌려서 감시를 하자 잡지는 더 이상 없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 서점의 고객들이 오지랖 넓게 마치 내가 손해 보는 것처럼 생각하지 않았다면 서점이 갖고 있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남의 일을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처럼 생각하는 오지랖이 넓은 사람도 필요하다. ‘지나치게 불필요한 일에 간섭하고 에너지를 낭비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특이한 사람으로 취급하며 의아한 시선으로만 바라볼 일은 아니다. 적절한 오지랖은 나를 변화시키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비슷한 맥락에서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성경에서 일어난 여러 역사적 사건들이 자신과 상관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그러니까 야곱이, 다윗이, 베드로가 겪었던 일은 몇 천 년 전에 일어난 남의 일이라고 여기면서 그들에게 일어난 기적을 믿지 못한다.

그러나 성경 속에 기록된 모든 일들은 ‘남의 일’이 아니라 결국 ‘나의 고백’이 될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시며 일하시기 때문이다. 성경의 여러 인물들이 겪었던 환난은 우리의 환난이며, 환난을 이겨내고 나타난 영광도 우리의 것이다. 반드시 그 기적의 사건들이 내게도 일어나는 일이라고 믿어야 한다.

그리고 믿음이 없이 방황하는 이들에게도 오지랖 넓게 행동하여 남의 일이 아닌, 내 일처럼 여기고 용기를 북돋아줄 수 있어야 한다. 그들에게도 성경의 수많은 놀라운 이야기가 그저 남의 일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경험이 될 수 있도록 희망의 메시지를 외치는 목회자로 바로 서야 한다. 다른 이들을 향한 사랑과 관심으로 오지랖이 넓은 사람이 되는 게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더욱 믿음 안에서 ‘오지랖 넓은 소망’을 품을 때 지금보다 크고 놀라운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다. 우리 모두의 삶에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저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성경의 이야기가 살아 움직이는 은총이 풍성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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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신 (121.154.74.229)
2019-09-30 21:27:24
목사는 원래 오지랖퍼다.
목사는 세상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일에 관여하고 싶어 합니다.

목사는 사람의 일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일에 일일이 관여하여 똑바로 살라고 합니다.

목사는 죽은 후의 일에도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할 수만 있으면 천국에 가길 바랍니다.

목사는 천국에 관심이 없는 이들에게도 관심이 많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후에 그들도 천국에 들어가길 바라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교회에 무관심하고 하나님의 뜻에 무관심한 이들에게도 관심을 갖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말을 합니다.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노라고 말입니다.

목사는 남의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래서 남의 일에도 일일히 관여하려 하고 남의 가정사에고 관심을 갖고 관여하려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향하여 바르게 살아라 권면을 합니다. 그런 관심이 필요없다 해도 그들에게 바르게 살기를 바랍니다. 왜냐하면 목사의 존재 이유가 그러한 이유에 있기 때문입니다.

목사는 마땅히 오지랖퍼야 합니다.
목사는 열심으로 오지랖이 넒여야 합니다.
목사는 외로운 이들에게 오지랖을 떨어야 합니다.
목사는 병든 자들에게도 오지랖을 떨어야 합니다.
목사는 죄인들에게 오지랖을 떨어야 합니다.

목사는 세상의 일에 오지랖을 떨어야 하며, 국가와 사회의 일에도 어지랖이 넓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웃들에게도 어지랖이 넒어야 합니다.

목사는 자신의 교회가 아니라도 교회의 일에 오지랖이 넓어야 합니다.
감리회 소속 목사는 감리회의 일에도 오지랖이 넓어야 합니다.
만약 그런 오지랖을 떨지 못할 것이라면 감리회의 목사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감리사는 지방 내 교회의 일들에 오지랖이 넓어야 합니다.
감독은 연회의 일들에 오지랖이 넓어야 합니다.
감리회원들은 감리회의 모든 일들에 오지랖이 넓어야 합니다.

그런데 감리사가 자신의 이기심 외에는 개교회의 일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감독은 자신의 교권 외에는 연회 내의 지방의 이들에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감독회장은 감독정치 외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럴싸한 행사들은 자신의 감독정치를 위한 명분 쌓기일 뿐입니다.

교권주의자들은 강단위에선 오지라퍼입니다. 회중들을 향하여 회개하라 권명을 하니 말입니다.
교권주의자들은 강단 아래에선 오직 자신의 일에만 관심을 갖습니다. 그래서 회개할 줄 모르고 그래서 무엇을 잘못하는 줄 모르고 그래서 이기심으로 가득합니다.

감리회의 부조리한 일들이 이러한 교권주의자들에 의해 나타납니다.
타락한 종들이며 거짓 목사들이며 외식적인 자들이며 양의 가죽을 쓴 이리들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억울한 누명을 스거나 억울한 일을 당한 이들에겐 철저히 외면을 합니다. 그러나 자신과 같은 교권을 갖은 이들이라면 많은 관심이 있습니다. 그가 누구의 편인지 뒷조사까지 마다하지 않습니다.

목사는 원래 오지랖퍼입니다.
그러나 교권주의자들은 오지게 자신의 일에만 관심을 둡니다.
만약 관심을 둔다면 먹이로 삼을 양에 대해선 절대 눈을 떼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권주의자들은 목사라 불리지만 실은 목사가 아닐수도 있습니다.

진실한 목사는 양의 문으로 드나들지만 거짓된 목사들은 양의 문이 아닌 울타리를 넘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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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신 (121.154.74.229)
2019-09-30 21:34:33
나는 감독들이 선거무효 당서무효의 판결을 받은 이를 위하여 감리회의 공의를 버리고 탄원서라는 충성맹세문을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할 줄은 몰랐습니다.

절대 의로운 감독들이었다면 그리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의로운 자는 절대로 악한자(범법자)와 함께 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복(의로운)있는 사람은 악인(불법)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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