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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의 저격설교” 호세아 5장 1절~15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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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9월 29일 (일) 20:34:05
최종편집 : 2019년 09월 29일 (일) 20:34:50 [조회수 : 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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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세아의 저격설교” 호세아 5장 1절~15절

 

0. 호세아 5장 요약

 

호세아는 북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폭로하면서 강력하게 회개를 촉구하고 있다. 강해설교나 주제설교 같은 설교방식과 달리 또 다른 설교의 장르 '저격설교'라는 새로운 설교 장르가 있는가 보다. 사전에 나오지 않은 '저격설교'라는 용어는 아마도 설교자가 청중 가운데 특정인을 지목해서 책망하는, 일명 때리는 설교, 매우 듣기 불편한 공격적인 설교를 가리키는 신조어인 것 같다.

만일 ‘저격설교’ 라는 설교 장르가 있다면 그 원조는 호세아다. 그는 '제사장들, 이스라엘족속들, 왕족들'을 겨냥해서 '거역, 교만, 왕 노릇'하는 행위를 고발하며 감춰진 죄악을 폭로하고 공박한다. 아마도 진정한 저격설교의 진수는 누구보다 나사렛 예수님이 아닐까, 스스로 의롭다고 자부하던 당시의 제사장, 바리새인, 율법사, 서기관들을 향해 '바리새인들의 누룩을 조심하라'며 그들의 외식하는 신앙을 콕 집어서 거침없이 돌직구를 날리셨기 때문이다.

 

 

1.거역하는 죄

 

➀ (1절) “제사장들아 이를 들으라 이스라엘족속들아 깨달으라 왕족들아 귀를 기울이라 너희에게 심판이 있나니 너희가 미스바에서 올무가 되며 다볼 위에서 친 그물이 됨이라”

▶ ‘들으라, 깨달으라, 귀를 기울이라’ 북이스라엘의 불순종은 청종치 않았기 때문이다. 경외하지 않기에 경청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여쭙지 않고 귀 기울여 듣지도 않는다. 죄의 본질은 ‘청종치 않음’이다. 말씀대로가 아니라 내 멋대로, 하나님의 뜻대로가 아니라 내 소견대로 행하는 것이 바로 죄다. ‘제사장’, ‘이스라엘족속’, 왕족들‘은 특별한 사명을 위해 선택받고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들이었지만 심판을 피하지 못했다. 할례(세례), 혈통, 직분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본래적인 사명을 감당하지 않으면 더 큰 심판을 받게 된다. ‘미스바’(삼상7:1~6)와 ‘다볼산’(시89:12)은 4장에 등장하는 길갈과 벧아웬 처럼 과거에는 거룩한 성지였으나 현실은 우상숭배의 본거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 북이스라엘의 죄악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왕상12장25절~33절에 기록된 ‘여로보암의 죄’가 무엇인지 정독해서 그 실상을 알아야 한다. 여로보암의 우상숭배는 하나님께 제사를 안 드린 게 아니라 멋대로 잘못 드린 것이다. 한마디로 변질되고 타락한 제사였다. 제사는 예루살렘성전에서 정해주신대로 드려야 하는데 나름대로 특별한 성지라서 성전을 대체할 수 있다고 멋대로 판단했다. 잘못된 제사가 도리어 ‘올무와 그물’이 되었다. 짐승을 잡는 덫과 물고기를 잡는 미끼의 특징은 화려하지만 결국 생명을 빼앗는다. 북이스라엘의 타락한 제사는 자기 무덤을 자기가 파는 자멸, 곧 자업자득이고 자승자박이 되고 말았다.

 

② (2절~3절) “패역자가 살육죄에 깊이 빠졌으매 내가 저희를 다 징책하노라 에브라임은 내가 알고 이스라엘은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에브라임아 이제 네가 행음하였고 이스라엘아 이미 더러웠느니라”

▶ 패역(悖逆)은 거스릴:悖와 거스릴:逆으로 ‘거역’하는 것을 가리킨다. 패역은 곧 살육 죄에 해당됨을 증거 한다. (삼상15:20~23)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술(邪術, 요사스런 점치기)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목이 곧은 백성)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사울왕의 변명 ‘나는 실로 청종했으나 다만 백성이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께 제사하려고 양과 소를 취하였나이다’ ‘내게 숨기지 못하나니’ 아무리 포장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중심(본심)을 꿰뚫어 보신다. 신앙은 경건의 모양이 아니라 우리의 중심을 반듯하게 세워야 한다. 제물이라고 다 받으시는 제물이 아니다. 예배라고 기도라고 예물이라고 다 똑같이 않다.

 

③ (4절) “저희의 행위가 저희로 자기 하나님에게 돌아가지 못하게 하나니 이는 음란한 마음이 그 속에 있어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까닭이라”

▶ 사울왕은 자신의 숨겨진 사심을 백성들을 핑계하며 하나님께 제사 드리려고 한 것이라고 불순종을 정당화시키려했다.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해야 한다. 결과가 동기를 정당화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을 기뻐하신다. (시편 69:30-31) ‘내가 노래로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하며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위대하시다 하리니 이것이 소 곧 뿔과 굽이 있는 황소를 드림보다 여호와를 더욱 기쁘시게 함이 될 것이라’ 하나님은 우리가 드린 물질을 받으시는 게 아니다. 그 속에 담겨진 중심을 기뻐 받으신다. 그래서 회개는 마음을 고쳐먹는 회심이어야 한다. 삶을 바꾸고 싶으면 먼저 마음을 바꿔야 한다. 무엇으로 마음을 바꾸나? 말씀과 기도로 성령께서 심령을 새롭게 하신다.

 

 

2. 죄의 뿌리는 교만

 

➀ (5절) “이스라엘의 교만이 그 얼굴에 증거가 되나니 그 죄악을 인하여 이스라엘과 에브라임이 넘어지고 유다도 저희와 한가지로 넘어지리라”

▶ 북이스라엘이 죄악을 저지른 원인은 한마디로 ‘교만’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불순종하는 진짜 이유는 교만하기 때문이다. 사울 왕은 자신을 선택해서 왕 세우신 분, 전쟁을 승리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 곧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스스로 높아져서 내 능력, 내 지식, 내 노력이라고 착각했기 때문이다. ‘유다도 저희와 한가지로 넘어지리라’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다. 예외가 없다. 교만은 필패한다.

 

② (6절~7절) “저희가 양떼와 소떼를 끌고 여호와를 찾으러 갈찌라도 만나지 못할 것은 이미 저희에게서 떠나셨음이라 저희가 여호와께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자를 낳았으니 그러므로 새 달이 저희와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 교만과 자기과시로 드리는 헛된 제사와 헛된 제물은 하나님께서 열납 하지 않으신다. 사람에게 보이려고 너희 의를 행치 말라(바리새인의 누룩, 외식) (벧전 5:6)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고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신다’ 교만의 가장 큰 폐해는 은혜가 사라지고 감사와 기쁨이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지 못한다. ‘정조를 지키지 아니하고 사생자’ 멋대로 드린 제사, 형식적인 예배를 가리킨다. ‘새 달’(호데쉬)은 매월 초하루 곧 월삭이다. (왕상12:33) ‘자기마음대로 정한 달’에 절기를 지키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 기업을 함께 삼키리로다’ 잘못 드린 예배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가 된다. 가인의 제사,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헌금, 마르다의 봉사는 예배, 헌신, 봉사를 안 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잘못 드린 것 때문이다. 교회일 하다가 시험이 들고 교회일하다가 분쟁에 휘말리는 까닭은 목적과 동기가 사리사욕, 자기 자랑, 자기영광을 구하다가 분쟁과 시험에 빠지는 것이다.

 

③ (8절~9절) “너희가 기브아에서 나팔을 불며 라마에서 호각을 불며 벧아웬에서 깨우쳐 소리하기를 베냐민아 네 뒤를 쫓는다 할찌어다 견책하는 날에 에브라임이 황무할 것이라 내가 이스라엘 지파 중에 필연 있을 일을 보였노라”

▶ ‘기브아, 라마, 벧아웬’ 북이스라엘의 요충지들이다. ‘나팔, 호각, 파수꾼의 외침’은 적의 침입을 알리는 경고소리다. ‘베냐민’은 남유다를 가리킨다. ‘필연 있을 일을 미리 보였노라’ 거역하는 자와 교만한 자의 최후를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 남유다가 북이스라엘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경고하신다. 앞서간 선배들의 실패를 교훈삼아야 한다. 하나님의 축복이 오히려 독이 된 경우를 따라가면 반드시 패망한다. 예외가 없다. 타산지석을 삼아야 하는데 충고를 무시한다. 교만한 사람의 특징은 경고(충고)를 새겨듣지 않는다. 교만한 자가 패망하는 이유는 경고(충고)를 듣지 않기 때문이다.

 

 

3. 왕 노릇하는 죄

 

➀ (10절~12절) “유다 방백들은 지계표를 옮기는 자 같으니 내가 나의 진노를 저희에게 물 같이 부으리라 에브라임은 사람의 명령 좇기를 좋아하므로 학대를 받고 재판의 압제를 당하는도다”

▶ 지계표는 땅의 경계선이다. 방백들은 관리자인데 왕 노릇하고 있다. (신9:14)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얻게 하시는 땅 곧 기업 된 소유의 땅에서 선인의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찌니라’ 오버하지 말고 분수를 지켜라. (롬12:3)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우리가 회의해서 좋은 대로 결정하지 말고 주님의 뜻을 구하며 기도해서 결정해야 한다.

▶ ‘사람의 명령 좇기를 좋아하므로’ 세상 법정의 권위에 굴복하기보다 하나님의 법대로 살아야 한다. 교리와 장정은 사람들이 필요에 의해서 만든 것이다. 오직 성경 말씀에 더 높은 권위를 두어야 한다. 감리교회가 끊임없는 법정소송을 통해 멸시를 받고 사회법정의 결정에 휘둘리는 것은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고전12:5~6) ‘믿음의 형제들 간에 서로 송사하는 일은 부끄러운 일이다’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대에 맡기는 지혜가 요구된다.

 

② (12절~13절) “그러므로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좀 같으며 유다 족속에게는 썩이는 것 같도다”

▶ 왜 하나님 앞에서 왕 노릇하는 일을 벌이는 이유를 기록한다. 에브라임은 북이스라엘의 별칭인데 하나님 알기를 ‘좀 같으며’ 남유다는 ‘썩이는 것 같도다’ 고름과 오물(배설물)처럼 하찮게 여겼다. (삿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왕되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은 마치 지휘자가 없는 합창단, 감독이 없는 축구팀, 목자 잃은 양떼와도 같은 운명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시다. 주님 앞에서 머리 숙이고 겸비하며 잠잠해야 한다. 말씀대로 기도하며 결정해야 한다. 주님보다 앞서 가면 안 된다. 주인노릇하거나 잘난 척 해서도 안 된다. 돈 자랑, 힘자랑, 재능 자랑하면 안 된다.

▶ (13) “에브라임은 앗수르로 가서 야렙 왕(싸움의 왕)에게 사람을 보내었으나...능히 너희를 고치지 못하겠고 상처를 낫게 하지 못하리라” 사람을 의지하지 말라. 사람을 의지하면 반드시 넘어지고 실망한다. 약하기 때문이다. (사2:22) ‘너희는 인생을 의지하지 말라 그의 호흡은 코에 있나니 수에 칠 가치가 어디 있느뇨’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는 친애굽정책, 친앗수르정책, 친바벨론정책 대제국의 군사력이 너희를 지키는 게 아니다. 사람은 의지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할 대상이다. 사람이 악해서가 아니라 약하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위로나 칭찬받으려 하면 반드시 실망한다.

 

③ (14절~15절) “내가 에브라임에게는 사자 같고 유다 족속에게는 젊은 사자 같으니 나 곧 내가 움켜갈찌라 내가 탈취하여 갈찌라도 건져낼 자가 없으리라”

▶ 백수의 왕 사자처럼 무섭고 두렵게 하시리라. ‘가만히 있으니깐 장기판의 졸로 본다’ 오래 참으시지만 영원히 참지 않으신다. 사랑으로 기회를 주시고 존중해주시는 것을 방종의 기회로 삼으면 안 된다. 오늘날 믿는 자나 안 믿는 자나 하나님 없는 것처럼 산다. 하나님 두려운 줄 모른다. 하나님 안 계신 것처럼 불평하고 원망한다. 하나님 안 계신 것처럼 물질과 사람을 더 의지한다. 삶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은 흥하게도 하시고 망하게도 하신다. 열면 닫을 자가 없고 닫으면 열 자가 없다.

▶ (15)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서 저희가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리라”

기다리신다. 탕자의 아버지는 찾으러 가지 않고 문을 열어 놓고 기다린다. 왜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할 때까지’ 진정한 회개는 강요가 아니다. 스스로 자신의 허물을 깨달아야 한다. 거역, 교만, 왕 노릇하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 체험을 통해 철저하게 자각하길 기다리신다. ‘매타인지( meta認知) 학습법’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는지에 대해 스스로 아는 것이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는 척하는 게 가장 큰 배움의 적이다. 신앙의 적은 ‘거역’, ‘교만’, ‘왕 노릇’하는 것이다. 너무 늦기 전에 빨리 깨닫고 돌아오는 게 지혜다. 아직 기회가 있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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