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모두 태풍 타파로 인해 긴장된 주말을 보내셨을 줄로 압니다. 진부령은 비가 많이 내리기는 했지만 강한 바람은 불지 않았습니다. 뉴스를 보니 제주도와 남부지역에 피해가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부디 부상자 치료와 피해 시설물 복구가 신속히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주말에 저는 남편과 작은아이와 함께 ‘달무티’라는 보드게임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하는 게임인데 지난주 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아이들이 분교 수학여행을 가면서 가방에 챙겨 왔습니다. 주말에 심심했던 작은아이가 달무티를 꺼내서 함께 하자고 했고 남편과 제가 동참했습니다. 처음 보는 보드게임이라 작은아이가 저에게 어떻게 하는 것인지 간단히 설명을 해 주었습니다. 게임의 규칙은 설명도 필요하지만 직접 해보면 더 빨리 익힐 수 있기에 저는 바로 실전으로 돌입했습니다.

   처음 두 게임은 제가 꼴찌로 끝이 났습니다. 규칙을 익히면서 손에 집히는 대로 카드를 내다보니 제가 이길 수 있을 리가 만무했습니다. 그리고 이후 세 게임은 제가 일등을 했습니다. 이 역시 치밀한 계산에 의한 것이 아니라 그냥 손에 있는 카드를 빨리 내려놓은 결과였습니다. 게임을 가장 많이 해 보고, 가장 잘 알던 작은아이는 게임에서 지기 시작하면서 얼굴이 슬퍼지기 시작하더니 연속 세 게임을 제가 이기자 급기야 눈물을 흘렸습니다. 저도 처음 이겼을 때는 즐거웠고, 두 번째는 이길 수 있는 카드를 의도적으로 내지 않으며 작은아이에게 져주기 위해서 애썼으나 제가 손에 들고 있는 카드를 작은아이가 보게 되면서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게임도 어떻게 하면 질 수 있을까를 고민하였으나 카드를 내다보니 제가 제일 먼저 손에 들고 있던 카드를 소진하고 일등이 되었습니다.

   작은 아이가 속이 상해서 눈물을 뚝뚝 흘리는 것을 보니 아들에게 져주지 않고 이긴 저는 비정한 엄마 같았습니다. 단연코 저는 이기기 위해 고심하지 않았고 지기 위해서 고심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지려고 해도 어떻게 해야 질 수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작은아이는 속상했지만 포기하지 않고 저와 단둘이 이길 때까지 다시 게임을 했습니다. 지는 것이 힘들었던 저는 작은아이에게 이길 수 있는 카드 내기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두어 게임을 해 본 작은아이는 이내 입가에 미소를 띠며 저를 이겼습니다. 좋은 카드를 아끼느라 사용하지 않다가 지고 말았던 작은아이는 좋은 카드를 먼저 사용해서 저를 이기는 법을 알았습니다.

   저는 원래 대부분 게임에서 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게임에서 지는 것으로 슬퍼하지 않습니다. 실제가 아닌 가상의 상황에서 지는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재미있게 게임을 하면 그만입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체육대회, 운동회, 보드게임에 이르기까지 경기나 게임에서 지는 역할 전담입니다. 어린 시절 언니들이 게임을 할 때도 저는 만화책을 읽었습니다. 게임은 도통 재미가 없었습니다.

   그런 저에게도 해가 반짝 뜬 것이 바로 지난주 ‘달무티’ 세 게임 연속 승리입니다. 그런데 함께한 작은아이는 울고 남편은 져주지 않는 저에게 마음이 상했습니다. 이기기 위한 전략 같은 것은 없었던 저도 황당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지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것인지 몰랐습니다. 보통 아이들과 단순한 게임을 하거나 놀이를 할 때 지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지략이 필요한 게임에서 지는 것은 상대가 모르도록 교묘하게 지는 기술, 상대의 기분이 나쁘지 않도록 지는 연기력, 상대의 카드를 읽는 재치 등 ‘게임을 잘 알아야 할 수 있는 능력’에 해당했습니다.

   지는 것이 그처럼 어렵다는 사실이 저에게는 신선한 충격이 되었습니다. 지는 것은 상대에 대한 애정과 배려, 지혜가 함께할 때 제대로 이루어집니다. 실제 일상생활도 돌아보면 일부러 져주는 사람이 있습니다. 상대를 격려하고 용기를 주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리고 져주는 사람은 그 ‘지는 행위’를 통해 기쁨을 맛봅니다.

   그런 맥락에서 보면 예수님은 ‘져주기’의 달인 같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셨고 어떤 것이 진정한 ‘져주기’인지 아셨습니다. 조롱하고 채찍질하는 사람들, 아무것도 모르고 손가락질하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져주셨습니다. 인간의 삶을 잘 아셨기에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져주심’으로 우리 모두의 구원을 이루어 주셨습니다. 오늘 하루, 예수님이 저를 위해 어떤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셨는지를 기억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저도 누군가에게 기꺼이 짐으로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갈 수 있기를 또한 기도합니다.

*그동안 매주 진부령 편지를 쓰면서 제 삶을 돌아볼 수 있었고 좋은 인연들도 많이 만났습니다. 감사드립니다. 이제 매주 쓰던 글을 내려놓고 가끔 편지하려고 합니다. 내내 강건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