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 링링이 지나간 자리를 오롯이 걸으며 솔 내음을 맡았다. 아직 태풍이 내는 바람소리가 낭창한데 솔숲을 걷는다는 게 모험일 수도 있지만 바람이 시원하여 오히려 걷기로는 안성맞춤 날씨였다.

그날 참 솔 내음이란 게 이런 거구나 많이 느꼈다. 링링 이전에도 태안 해변길 안면도 솔숲에 들어서면 은은하게 퍼지는 솔향 때문에 행복 한 아름 담아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링링이 지나간 이후는 더욱 솔향이 짙다.

물론 링링이 낸 상처로 얼룩진 솔숲은 그야말로 전쟁터다. 이리저리 뒹구는 나뭇가지들과 솔방울들, 바람이 할퀴고 간 길목에 널브러진 솔잎들, 수북이 쌓인 그들을 밟고 걸으며 맘이 편하지는 않지만 향기 하나 만큼은 아주 짙어졌다.

소나무들이 찢겨나간 자리에서 송진이 엉겨 붙는 아픔으로 소나무들은 진저리를 치지만 그들의 아픔 이면에서 흩어지는 향기는 그 어느 때보다 깊다. 아, 그냥 쉽게 이리 생각한다. 솔향은 아픔을 먹고 나온다고.

추석을 보내면서 솔향에 대하여 더욱 생각하게 되었다. 추석은 송편을 먹는 날이다. 우리 집은 송편을 빚지는 않았지만 성도들이 가져다 준 송편을 맛있게 먹었다. 참 감사한 일이다. 송편이란 솔잎을 깔고 쪄낸 떡이다. 그래서 당연히 솔향이 난다.

실제로는 그래야 한다. 하지만 내가 먹은 성도들이 쪄낸 송편에서는 솔향이 나지 않았다. 이름은 송편(松∼) 인데 솔향기는 없다? 아, 다시 날 멈칫하게 만든다. 아픈 상처를 보듬으며 송진을 뿜어내는 솔숲에선 이리도 솔향이 짙은데, 정작 솔향이 나야 할 송편에서는 솔향이 전혀 안 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솔잎을 깔고 쪄낸 게 아니기 때문이다. 요즘은 솔잎혹파리 때문에 방제를 한다. 그러니 그 솔잎을 사용할 수가 없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 해도 솔잎을 채취하는 것 자체가 금지되어 있다. 그러니 송편에서 솔향이 날 리가 없다.

장황하게 솔향기 이야기를 꺼낸 것은 실은 성도의 향기 이야기를 하고파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성도를 그리스도의 향기며 편지라고 비유했다. 주님처럼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함으로 예수님의 향기가 풍겨야 한다는 뜻이다.

성도를 보면 예수님이 생각나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오늘날 내남직 그리스도의 항기는커녕 악취나 안 풍겼으면 좋겠다. 신앙의 선진들을 보면 그렇게 예수님처럼 산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점점 더 예수님처럼 사는 성도가 적어지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든다.

왜 그럴까. 솔향기 짙은 솔숲을 걸으며 든 생각이다. 희생이 없기 때문이다. 고난을 마다하기 때문이다. 태풍으로 인해 상처 난 소나무의 아픔이 송진을 내고 그 송진의 고통으로 인하여 솔향을 짙게 풍기듯, 신앙인에게도 고난을 감내하는 수고만 있다면 당연히 그리스도의 향기로 충만하지 않을까.

고난은 싫어하고 향기가 나길 바라니 향기 없는 성도로 전락하는 건 아닐까. 소나무도 성도도 아픈 만큼 성장하는 것이다. 아픈 만큼 성도의 향기가 날 것이다.

▲ 김학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