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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포지방 성지순례 ‘신(新) 사도행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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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9월 08일 (일) 19:23:57
최종편집 : 2019년 09월 20일 (금) 05:06:14 [조회수 : 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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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13일 일정으로 터키-그리스-이탈리아-스위스를 다녀온 경기연회 군포지방의 성지순례를 소개합니다. 군포지방은 바울의 길을 따라 걸으며 그의 믿음과 선교의 유산을 보았고 이를 계승하려는 열망을 그들이 집필한 순례기 ‘신(新) 사도행전’에 담았습니다. 순례에 참여한 36명중 26명의 목회자와 사모들이 편찬한 군포지방의 성지순례 기록 ‘신 사도행전’을 6회에 걸쳐 게재합니다. 다른 분들의 기고 또한 환영합니다. - 당당뉴스 편집부 -

차례
성지순례 자료집 편찬을 축하하며 (김경호 감리사)

Part 1 신사도행전 교회사적 배경
1 세계 3대 그리스도교를 찾아 (송병구 목사)
2 동방정교회를 아십니까 (김봉균 목사)
3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분열과 화해 (이선재 목사)
4 WCC에 대한 오해와 이해 (천영태 목사)

Part 2 터키(Turkey)
5 비잔틴 문명과 오늘의 이스탄불 (김명환 목사)
6 성 게오르기오스 성당 (김경호 감리사)
7 이스탄불의 과거와 현재 (배승룡 목사)

Part 3 그리스(Greece)
8 그리스 한 눈에 보기 (이선미 목사)
9 이콘과 성상에 대해 알아봅시다 (배중장 목사)
10 메테오라와 수도사들 (이은파 목사)
11 바울의 2차 전도여행 (정봉용 목사)
12 성경에 나오는 그리스 도시들 (한희준 목사)

Part 4 이탈리아(Italy)
13 이탈리아 인상기 (주기석 목사)
14 바울과 선교지에 보낸 편지 (우명순 목사)
15 로마 박해와 순교의 역사 (김기흥 목사)
16 아씨시의 성 프란체스코 (임남선 목사)
17 피렌체와 르네상스 예술 (이상국 목사)
18 이탈리아의 발데제 교회를 탐방 한 후 (김종은 목사)
19 아름다움과 슬픔의 일교차 몬테비앙코를 읽다 (조성철 목사)

Part 5 스위스(Switzerland)
20 존 칼빈의 제네바 신정정치를 통한 신정국가 (박흥윤 목사)
21 종교개혁 500년 그 후<스위스 제네바> (최명관 목사)

Part 6 순례후기
22 에그나티아에서 산본으로 (우귀자 사모)
23 행복한 순례길, 소중한 시간들 (푸른초장교회 이혜영 사모)
24 성지순례를 다녀와서 (이경미 사모)
25 신사도행전 후기 (김은영 사모)
26. 콜래트럴 뷰티 (이미옥 사모)

   
 

 

   
▲ 빌립보 원형극장

그리스 한 눈에 보기

초평교회 이선미목사

 

1. 소 개

유럽 동남부 발칸 반도의 최남단을 차지하고 펠레폰네소스 반도에 딸려 있는 지중해연안의 여러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에게해를 중심으로 그리스 문명은 현재의 서구 문명을 낳았다. 하늘색 바다에 태양은 눈부셔 그리스 신화의 나라다운 운치를 만들어 내며, 푸른 올리브나무, 하얀 건물을 연상하게 만든다. 북쪽 국경을 따라 서쪽으로부터 동쪽으로 알바니아, 유고슬라비아, 불가리아가 있으며 동쪽에 터키가 있다.

반도인 그리스 본토는 남서쪽은 이오니아해, 남쪽은 지중해, 동쪽은 에게해가 둘러싸고 있다. 지중해에 이 나라 최대의 섬인 크레타가 있으며 섬과 반도 사이에는 크레타해가 있다.

공식 국명은 그리스 공화국이다. 수도는 아테네이고 면적은 131,986㎢으로 본토가 81%, 섬이 19%이다. 전 영토의 1/5을 차지하는 섬들과 해안선을 가진 그리스의 경관은 바다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그리스 영토의 어떤 부분도 바다까지 거리가 140킬로미터 이상 떨어진 곳은 없다. 국토의 약 1/5이 삼림이다. 인구는 약1,100만명이고, 그리스어를 사용하며 종교는 그리스정교(98%), 이슬람교(1,3%)이다. 주요산업으로는 해운, 관광, 광업, 농축산이다. 올리브와 포도주가 유명하다. 통화는 유로화(EUR)이다. 전형적인 지중해성 기후로서 사계절 온난하며 지진이 잦다. 여름에는 고온건조하고 겨울에는 온난 다습으로 온도가 낮은 것은 아니지만 우기라 비가 자주 온다. 정치학과 철학, 민주주의의 본고장으로 토론 문화가 발달되어 있고 수직적 관계보다는 수평적인 관계를 지향 한다. 초대 올림픽 개최지이자 고대 올림픽의 발상지로, 올림픽 개막식에서는 항상 제일 먼저 입장한다.

국기 - 파랑과 하양 두 가지 색으로 구성된 국기로 파란 바탕에 하얀 십자 그리고 줄무늬가 있다. 십자는 그리스정교를 상징하며 파랑과 하양은 그리스의 왕이된 바바리아공의 오토 가문색으로 파랑은 지중해와 에게해 그리고 그리스의 영공을 상징하고 흰색과 푸른색으로 교차된 9개의 가로줄은 1821년 오스만제국 지배시절 독립운동 때 '''자유냐 죽음이냐'''의 음절수 9개를 상징하기도하고 9번 반복하여 음독한 음절이자 9년간의 독립전쟁을 상징한다.

종교 - 흔히 그리스 하면 무엇보다 가장 먼저 '신화의 나라'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현대 그리스인들에게 있어서 '자랑스러운 그리스인들의 신앙'이란, 이미 AD 1세기 시절부터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여 교회 공동체가 활발히 살아 숨쉬던 고린도, 데살로니가, 빌립보, 에베소로부터(에베소가 터키이지만, 당대에는 그리스 문화권이었다.) 내려오던 전통을 일컫는 것이다. 그리스인들은 바로 여기에서 민족적인 자부심을 느낀다.

400여년간 터키의 지배를 받았던 시기에 정교회는 그리스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장이었고, 그리스 사람이 되는 것은 곧 정교회 교인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 한편 로마 가톨릭은 5만 명 정도, 개신교는 모든 교파 다 합쳐서 4만 명 정도가 믿고 있다.

 

   
▲ 로마 에그나티아 도로
   
 

2. 역사

여러면에서 고대 그리스는 서구 문명의 산실이었다. 예술 및 고고학에서 남긴 유산은 막대하다. 그리스의 크레타, 미케네 문명은 유럽 최초의 문명으로 인정받는다. 오늘날 서양의 학문 중, 철학, 과학, 예술, 역사학, 수학, 농업, 상공업, 군사 등 그리스에서 기원하지 않은 학문을 찾기가 어렵다. 이러한 그리스의 문화는 로마를 거쳐 서양 문명의 토대가 되었으며, 나아가 세계 문명을 지배하고 있다. 다만 그리스 자체는 기원전의 전성기가 끝난 뒤로는 마냥 밝지만은 않은 길을 걸었으며 현재 진행중이다.

미케네와 크레타 문명이 도리아인(혹은 알 수 없는 제 3의 침략자들)에 의해 파괴되고 흡수되면서 그리스 반도와 소아시아, 흑해와 시칠리아에 이르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 시대가 막을 열었다. B.C 338년에 마케도니아의 필리포스 2세가 그리스 도시 국가들을 정복했다.

이로서 그리스는 독립을 잃게 되었지만, 필리포스의 아들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 문명을 거대한 마케도니아 제국 전역에 전파함으로서 불멸의 생명을 누리게 되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가 막을 연 헬레니즘 제국, 헬레니즘 세계는 모두 로마 제국에게 점령당한다. 이후 로마 제국의 중심지는 서방에 비해 부유했던 동방으로 이동하였고, 콘스탄티누스 1세는 그리스 북동부 트라키아에 '노바 로마' (콘스탄티노폴리스, 오늘날의 이스탄불이다. 새로운 로마라는 뜻.) 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수도를 세워 천도함에 따라 그리스 지역은 명실상부한 로마 제국의 중심지가 되었다. 고대 로마가 동서로 분열되고 서로마 제국이 망한 이후에도 이 지역에는 동로마 제국(비잔티움 제국)이 15세기까지 자리 잡았다. 동로마가 이탈리아 북부 대부분과 키레나이카, 이집트, 시리아를 비롯한 지역을 잃은 이후에도 동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았다.

15세기 동로마 제국 멸망 이후에는 최종적으로 오스만 제국이 그리스를 지배하게 된다. 찬란한 문명을 이룩해왔던 그리스인들 입장에선 평생 잊을 수 없는 굴욕이자 치욕. 이러한 이유로 오스만 제국의 후예인 터키와는 지금까지도 원수지간이다. 그러나 오스만 제국에 저항하는 혁명이 1821년에 일어났는데 이는 주로 그리스 사회의 발전과 유럽의 개입 덕분이었다. 투쟁은 길었고 내부 불화로 방해를 받기도 했지만 당대 최고의 문학가였던 바이런이 그리스 독립을 위해 전쟁에 나갔다가 전사하면서 영웅이 되었고 이에 도취된 시민들이 앞다투어 그리스의 독립을 지지하면서 그리스는 독립을 맞게 된다. 결국 1830년에 그리스 독립이 인정되고 1833년 바이에른 출신의 오토1세가 왕위에 올랐다.

1862년 오토1세가 퇴위하고 덴마크 출신의 게오르기오스 1세가 왕위에 올랐다. 그의 치하에서 국경이 확장되었으나, 제1차 세계대전 후 아나톨리아를 합병하려던 시도는 실패로 그쳤다. 20세기 그리스 정부의 특징은 정치적 불안정이다.

   
 
   
▲ 까발라(네압볼리)
   
▲ 바울 빌립보감옥 앞에서
   
▲ 루디아 정교회
   
▲ 세례터

3. 그리스와 사도바울 (군포지방 성지순례지)

 1) 까발라(네압볼리) -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고 배를 타고 도착해서 유럽 전도를 시작한 항구. 바울 기념교회.                        
 2) 빌립보 - 기독교가 유럽에서 전파된 최초의 땅인 빌립보, 빌립보유적지, 사도바울감옥, 루디아 기념교회, 문밖 강가, 암비볼리(에그나티아)
 3) 데살로니가 - 사도바울이 예수님의 부활을 전한 (데살로니가, 아테네), 성데미트리우스 교회, 화이트타워, 알렉산더 동상, 아볼로니아(에그나티아)
 4) 베뢰아 - 베뢰아 사도바울 기념교회,
 5) 메타오라 - 공중에 떠 있다는 뜻.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 그리스 최고의 절경인 11세기 당시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 뛰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메테오라
 6) 아테네 - 아크로폴리스, 세계문화유산 1호인 파르테논 신전, 아레오바고, 아고라 소크라테스 감옥, 근대 올림픽경기장, 아테네대학교,
 7) 고린도 - 고린도 유적지, 유대인들의 회당, 아고라, 사도바울의 재판자리, 박물관, 고린도운하, 고린도 초대교회, 겐그레아 항구.

 

 

   
▲ 성 서피아 교회 내부

 

이콘(icon, 성화(聖畫) & 성상(聖像))에 대해서 알아봅시다.

새군포교회 배중장목사

 

성지순례에 대한 ‘설레임’중에 하나는 직접 보고 직접 느끼는 일을 할 수 있다는 기대입니다. 과거의 유적이나 흔적들이 말을 걸어오면서 역사 속에서 어떻게 역사화 되었는지를 직접 전해 줄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을 이해할 때나 말씀을 구체적으로 전할 때, 나의 오감을 통해 직접 보고 느낀 것들이 성경 본문이나 자료만으로는 알 수 없었던 것들을 이해하게 하는 것- 이것이 성지 순례의 유익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번 성지순례 후기를 기록하면서 저는 이콘(icon)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자 하는 것들을 이야기 해 보려고 합니다.

 

이콘(성화, 성상)

이콘은 기독교에서 성모 마리아나 그리스도 또는 성인들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을 말합니다. 그림을 성화(聖畫), 조각을 성상(聖像)이라고 하며, 기원후 1세기에 처음 제작되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물론 미술의 역사 속에서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사자나 동물을 벽에 모자이크 형식으로 그려낸 것을 상징화(이콘)의 시작으로 보기도 합니다.

성경속의 이스라엘 민족은 성상이나 성화를 만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수많은 이방 민족들이 우상 숭배의 한 수단으로 신의 형상을 제작하였고, 이스라엘 민족 내에서도 우상숭배를 한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초대 교회에서도 성경의 내용과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성상이나 성화를 통해 표현했었으나, 그것을 공개하지는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카타콤배의 유적을 보면 성령의 상징인 흰 비둘기 그림이나 유리병이 있고, 거기에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형상과 어린 양을 메신 그의 형상이 있으며, 그리스도의 상징인 어린 양의 표시나 닻(믿음의 표시)이나 큰 배(교회를 상징),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상징(물고기 그림)등이 있어왔습니다. 그리고 기독교가 공인화 된 후에는, 성경에 기록된 이야기와 예수님의 사역을 전하면서 많은 이콘들이 교회 안팎으로 만들어 지기 시작했습니다.

트리덴티노 대공의회에서는 이콘을 모시며, 성당 내에 두는 것이 옳음을 선언합니다. 이교도처럼 미신적 신뢰를 두어서가 아니라 ‘존경의 뜻’을 두는 것이고, 그 상징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숭배하고 성모와 여러 성인들을 공경하는 것일 뿐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우상숭배 VS 그림으로 말씀 읽기

개신교인들의 눈에는 성모 마리아 앞에서 조아리며 기도하는 모습은 낯설고 거부감이 드는 모습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존경의 표현’으로 구지 석상 앞 조아리는 것을 기뻐하실까 하는 의구심이 들고, 서구 카톨릭 역사 속에서 교황권의 강화와 성당 건축을 목적으로 면죄부를 팔았던 어두운 면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을 통하여 개신교는 이콘을 버리면서, 유일한 진리이신 예수님을 알아가는데 있어서 이콘이 도움을 주기보다 오히려 성상숭배와 같은 부작용을 불러일으킨다고 여겼고, 이콘은 ‘오직 말씀’ 앞에서 제거되어야 할 대상으로 지적받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을 우상 숭배로 여기는 것은 옳을까요?

우리가 성지순례에서 만난 동방정교회 대주교님은 오히려 반대로 말합니다.

“정교회는 성화의사용을 통해서 신자들로 하여금 지상에서 천상의 실재로, 임시적이고 물질적인 것에서 영원하고 영적인 것으로, 썩어 없어질 불완전한 세상에서 썩지 않는 완전한 하느님 나라로 건너가도록 도와줍니다. 정교회 성화는 성화에 직접 다가오는 이들에게 영적으로 유익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 성화의 목적은 고대 그리스 시대와 같이 신을 사람의 모습으로 표한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화의 가장 근본적인 목표는 우리는 ”말씀의 육화(肉化)를 통한 인간의 신화(神化)“로 인도하고 안내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화의 목표는 우리를 지금 이 지상에서 영원한 천상으로 이끄는 것입니다”(영성예술 2 중에서)

개신교 학자인 라이프니찌(Leibnitz)도 이콘이 우상숭배인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그 상징하는 존재에게 공경하지 않는 성상 공경은 없으며, 그 본뜻에 있어서는 하나님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나타내는 존경과 아무 차이도 없을 것입니다. 이름도 하나의 표지이지만 표상 효력에 있어서는 상물만큼 직감적일 수 없으므로 상물에 비하여 표상가치가 적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상 공경은 ‘예수의 이름 아래는 모든 이가 무릎을 꿇어야 한다’ 또는 ‘주의 이름에 영광이 있기를 바랍니다.’하는 거룩한 이름에 대한 경의 표시와 같은 취지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유형의 성상에 대한 경의표시와 무형의 내적 형상에 대한 경의 표시는 서로 다를 바 없다. 유형의 성상은 내적 심상의 물적 표현일 뿐입니다”

즉 국기를 소중히 하는 이유는 국가를 사랑하기 때문인 것처럼, 그 내적 심상을 담아내는 물적 표현일 뿐이고, 실제로 개신교회도 교회 꼭대기에 십자가를 달거나 예배당 전면에 십자가를 위치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풍성함으로 우리가 올라갈 것인가?
유스티니아노스 황제가 이콘을 보고 있을 때 나이 지긋한 수도사가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성화를 읽을 줄 아십니까?
황제는 다시 묻습니다.
‘성화는 책이 아닌데 어떻게 읽을 수 있지요?“
노 수도사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모든 성화는 하나의 펼쳐진 책과 같아서 상징적인 언어를 알면 읽을 수 있지요”

성지 순례중의 많은 이콘을 보면서, 이콘에 있는 상징적 언어를 배우고 읽어냄으로써 좀 더 풍성한 이해를 갖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콘이 신앙을 교육하고 인도하는 재료로 쓰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즉 이콘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풍성함으로 우리가 올라갈 것인가”를 제시하는 도구로 보면 참 좋을 것입니다. 정교회 성당에서 만난 이콘들은 하나의‘새로운 언어’이며 하나의‘통로’로서 교회의 은총과 진리를 구체적으로 표현해 왔던 역사로 인정되어 졌습니다.

야고보스 마이나스(정교회)의 말로 마무리 합니다.
“이콘은 믿음의 신비에 다가서기 위한 감각적, 실용적 도구로만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이콘은 우리에게 정보 제공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하늘로 인도해줌으로써 우리를 가르치는 것입니다”

 

 

   
 

<메테오라와 수도사들: 그리스 메테오라 ‘메갈로 마테오론’수도원 순례를 다녀와서!>

2018.04.19._성지순례 4th day(목 오전)
by 이은파 목사(주영광교회)


 성지순례를 출발하여 셋째 날 저녁 우리는 약 일만 명의 인구가 사는 깔람바까(Kalambaka)란 작은 시에 도착해 하루 저녁을 묵었습니다. 다음 날, 성지순례의 넷째 날인 목요일 아침(그리스에서의 셋째 날)을 맞이해 우리는 ‘변화산 수도원’이란 애칭을 가진 메테오라 수도원을 향해 버스에 올랐습니다.

메테오라 수도원은 뛰어난 건축양식과 더불어 어떤 장소를 수행, 명상, 기도의 장소로 만든 탁월한(remarkable) 사례로 인정을 받아 1988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습니다. 이 수도원들은, 접근하기 어려운 기묘한 절벽 위에 불가사의한 형상으로 서있으며, 이 사암(砂巖) 봉우리들은 ‘하늘의 기둥(columns of the sky)’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6천만 년 전에 해저에서 퇴적된 사암이 융기되어, 이후 풍화작용과 지진을 통해 오늘에 이르렀다고 하네요.바위들의 평균높이는 300m이며 가장 높은 것은 550m에 이른다고 하니, 최소 80층 이상의 건물 높이가 되는 됩니다.

굽이굽이 오르막길을 올라 전망포인트에 이르렀을 때, 이 사암바위의 절경과 함께 눈으로 펼쳐진 메테오라의 그 장엄한 경이가 얼마나 놀라웠던지, 이 압도적인 감동(the first impression)이후 들렀던 어떤 곳도(개인적으론) 그 이상의 제압된 감흥으로 오진 못했습니다.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도, 아고라광장의 신전의 터도, 심지어 몬테 비앙꼬도 말이죠. 우린 쩍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으며, 한편 자연계를 살짝 다독(?)거리시는 하나님의 경의로움에 절로 무릎 꿇게됩니다. 혹자가 말하듯, ‘지구상 어떤 곳도 메테오라와 같은 곳은 없다’ 하는 말이 의심의 여지없이 수긍되어집니다.

그리스어로 메테오라(Meteora)는 ‘공중에 떠있는’(단수‘메테오로’가 아닌, 복수형 ‘메테오라’를 사용함으로서 수도원이 다수일거란 의미가 이미 함축되어 있으며, 영어의 운석(meteor)도 이에 파생된 단어임을 알게 됨), ‘공중에 매달린’, ‘하늘 바로 아래’란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공중에 떠있는 듯한’ 사암(sandstone)바위 위 수도원들이 군락을 이룹니다. 14세기에 수도원이 처음 세워진 후 15~17세기에는 무려 20여개(약24개)에 달했다라고 하는데, 18세기 말 자연지반의 붕괴로 인해 대부분이 무너져 현재는 6개가 남아있고, 즉 다섯 개의 수도원과 한 개의 수녀원만이 운영되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방문해 관람한 곳은 메갈로 마테오론(Megalo Meteoron)수도원입니다. 수도원 중에 가장 오래되며 규모로도 가장 큰 이곳을 우리는 192계단(250m) 층계(혹자는 146개라 함)를 밟고 올랐습니다. 마치 중세의 단단한 성채를 연상케 하는 수도원의 외관이 인상적이었으며 단단한 바위 위를 고르게 만들고, 벽돌 한 장 한 장 씩을 날라다 건물을 지었던 수도사들의 모습을 떠올리게 됩니다. 이 수도원으로 들어가기 위해선 협곡을 건너야 했다고 합니다. 1923년에 협곡의 다리를 건너 오르내리는 계단이 만들어졌으며, 그 계단이 만들어 지기 전에는 외줄에 매달린 구식 승강기를 타고 가야 했다고 합니다.

안으로 들어오니, 비잔틴시대의 성화와, 고문서, 목조 장식물들, 그리스정교회의 ‘이콘성화’가 있었습니다. 내부는 사방이 프레스코화(fresco)로 되어있으며,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그 벽화의 내용들이 순교자들이 잔인하게 처형당하는 장면들이었습니다. 무엇인가 신앙의 의미를 부여하는데 있어 이보다 더 인상적일 수(critical)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촬영이 금지되어 카메라에 담을 수 없었으나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장면들입니다. 부엌과 식당은 오랫동안 사용해서인지 그을음이 지금까지 남아있었고 생활도구들을 모아놓은 창고에서부터 역대 수도사들의 초상화와 수도사들의 유골까지 한눈에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왜 이곳에서 생활을 했을까? 무엇이 그들로 스스로 은둔하게 했고, 이 위험천만한 높은 곳에 올라와 인고의 시간을 보내며 평생 수도를 하게했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가이드께서 설명한대로, 사실, 처음 이곳은 수도자들에게 있어, 그 높음과 험한 지형이 속세와의 관계를 끊고, 기도와 명상하는데 있어서 안성맞춤으로 여겨졌습니다. ‘높이 계신 하나님과 더 가까이 있을 수 있었던’ 이 높은 곳을 저들은 선호한 것이죠. 초기 수도사들은, 그러니까, 현재와 같이 수도원 공동체를 형성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각자 기암군의 동굴이나 바위틈에 정착하여 수도를 했다고합니다. 그러나 메테오라 수도원(공동체)이 성립된 것은 11세기 이후 그리스 전역을 장악하기 시작한 세르비아왕국이 테살리아 지방에 세력을 확장해오던 때, 당시 동로마제국에서 수도원 활동의 중심을 담당하고 있던 아토스 산이 1346년에 세르비아 령에 통합되어버리면서입니다. 당시의 전란을 피해 많은 수도사들이 아토스를 나와 목숨 걸고 남하하여 메테오라에 정착을 하게 된 것이지요. 우리가 방문한 메갈로 마테오론 수도원은 아토스산의 수도원에서 전란을 피해 내려온 수도사 아타나시우스에 의해 14세기 중반에 세워졌습니다. 1383년 아타나시우스가 죽은 후에는 그의 제자이자 세르비아 왕가 출신인 이아사프가 원장이되어 수도원을 발전시켰다고 합니다. 이아사프는 메테오라를 보호홰 주던 테살리아의 군주 시메온우로스의 아들로, 테살리아를 지배하는 왕가 계승권을 포기하고 메테오라의 수도사가 된 사람입니다.

당시의 처한 상황, 그들이 겪었던 괴로움과 신앙의 절박함, 힘든 시대적 괴로움과 사선을 넘나든 분투의 흔적들, 무엇보다도 타협치 않는 신앙의 순수성을 지켜내기 위해 자기신앙의 세속화를 경계하며 쟁투했던 모습, 또한, 소위 ‘갈데없어서 온 것이 아닌’ 권력과 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기꺼이 포기하고 신앙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모습은(그들의 전체적인 모습이 우리에게 교훈이 될수 없다할지라도) 분명 오늘을 신앙하는 우리에게 도전장을 건넵니다. ‘참으로 외로웠고 고독했겠다’하는 생각도 한편 드네요.

이곳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고 갈 것인가? “중세의 눈으로 보십시오, 슬픈역사가 있었고, 신앙의 길을 찾고자했던 이들의 사선을 넘은 신앙의 생존법칙이 배어있습니다’ 가이드께서 틈틈이 했던 말을 한 번은 생각해보면서, 우리는 적어도 ‘타협하지 않는 신앙’을 배우며 세속화된 세대 속에서 어떡해든 자기신앙의 비세속화(롬12:2)를 위해 싸워야 할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나아가 내 자신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자신의 것을 포기하고 내게 유익하다 할 것 까지도 내려놓고 주를 위해 내 삶을 온전히 드릴(be dedicated)수 있는 자(빌3:8)여야 함을 반추(反芻)해봅니다.

-2018.04.19.일 그리스 메테오라 ‘메갈로 메테오론’수도원을 떠나면서-

   
 
   
   
 
   
 
   
 
   
 

 

 

 

   
▲ 베뢰아 바울도착기념교회

바울의 2차전도여행   

                                   
포도나무교회 정봉용목사

  4월 15일 오후예배 마치고 준비해서 가야지, 그런데 6시까지 처리하지 않으면 안되는 일이 계속되었다. 여행에 대한 흥미와 관심이 없는 터라 기대도 하지 않고 저녁식사도 못하고 출발! 그런데 신사도행전은 지금까지 성지순례 및 지방에서 간 해외 여행 중 가장 많은 의미를 준 여행 이었다. ‘무엇이 바울을 그렇게 살게 했을까?’학문적인 접근이 아닌 목회현장에서의 질문이며 나의 고뇌이다.

바울의 2차전도 여행은 터키 남서부와 유럽전도의 시작 지점인 마게도니아의 네압볼리 항구와 빌립보 그리고 데살로니가와 베뢰아, 아덴 그리고 고린도와 겐그리아에서의 복음전파다. 특히 이곳에서의 복음의 능력이 나타난다. 사람이 목숨을 아끼지 않으면 얼마나 담대해지고 무서운 힘이 솟아나는지를 바울을 통해 느끼면서 나의 신앙이 부끄럽기만하다.

바울의 2차전도여행의 기록은 너무 방만하여 그리스의 고린도 지역에서의 복음전파에 대하여 기록하겠다. 고린도는 51-52년에 바울이 방문했던 그리스 첫 도시이며 당시 통치자는 갈리오였다. 바울 방문 당시 고린도는 무역의 요충지로써 부유한 항구도시 특성상 타락과 비행이 만연해 있었다.

바울은 빌립보에서 심한 매질을 당하여 몸이 좋지 않았고 아덴에서도 별로 성과를 내지 못해 의기소침한 상태에서 고린도에 도착했다. 이러한 악조건에서도 다행히도 바울은 이곳에서 훗날 생명을 내어 놓을 정도로 신실한 동역자 역할을 하게 되는 아굴라 부부를 만나서 거처와 전도사역의 도움을 받게 된다.(행1-3)

얼마 후 베뢰아에 두고 왔던 전도여행의 동반자 실라와 디모데가 이곳에서 다시 합류하여 1년 6개월 동안 전도 활동하였으며, 타락한 이곳 사람들에게 복음이 수용되기 시작하자 적대감을 가진 유대인들은 바울을 총독 갈리오 재판장에게 끌고 가서 처벌을 요구한다.

 갈리오 총독은 냉철한 판단으로 바울의 행실이 법적 문제가 되지 않음을 선포하면서 유대인 스스로 해결하라고 기각하고 유대인들을 법정에서 쫓아낸다(행18:5-16) 이에 흥분한 유대 군중들은 오히려 바울을 핍박한 회당장(소스테네스)을 폭행하는 사태가 발생하였으나 갈리오 총독은 못 본채 상관하지 않았던 것이다.

 바울은 이곳에서 데살로니가전서와 후서를 써서 데살로니가 교회로 보냈다. 바울이 60군데 도시들을 선교여행하면서 가는 곳마다 유대인과 이방인의 반발과 지역총독의 저지 때문에 길게는 한 달, 짧게는 3-4일 정도 머물렀는데 왜 고린도에서는 1년 반을 머물렀는가?

 그 이유를 종합해보면 당시 고린도는 이테네보다 번성한 국제적인 상업도시로 세계각지에서 몰려오는 사람들로 항상 붐볐기에 유대인은 물론 외국인들과 교류하면서 선교하기에 최적이었다.

두 번째는 고린도에서는 2년에 한 번씩 올림픽에 필적할 만한 대규모 축제(이스티미아 축제)가 2-3개월씩 열려서 절호의 복음 전파의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셋째는 이곳에서 만난 천막업자인 아굴라와 브리스길라 부부의 생업과 같아 함께 살며 대규모 행사용 천막을 만들어 선교자금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의 바울과 동고동락했던 아굴라부부는 선교의 중요성을 깨달아 일생 목숨을 아끼지 않고 바울을 섬기는 가운데 에베소와 로마까지 따르면서 함께하게 된다.(고전16:29, 로마서16:3-5)

 신사도행전 성지순례를 통하여 주님! 나에게도 바울의 복음의 열정, 예수의 영이 함께하심, “생즉사 사즉생(生則死 死則生)”을 주시옵소서!! 성령충만함을 주사 사도행전29장을 기록하게 하소서! 기도와 결단을 해본다.

‘신사도행전’ 성지순례를 위해 많이 수고하신 김경호 감리사님, 그리고 기획한 송병구 선교부총무님, 그리고 많이 섬겨주신 기획단, 동참한 동역자들, 군포지방교회와 모든 분 들게 감사드립니다.
 

 

성경에 나오는 그리스 도시들

 

푸른초장교회 한희준 목사

사도 바울은 2차 전도여행중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 섬을 거쳐 네압볼리(현 까발라)에 도착한 후 이어서 마게도니아 지방의 첫 성인 빌립보로 왔었는데, 이번 성지순례에서는 버스를 타고 터키-그리스 국경인 입살라를 통과하여 빌립보를 거쳐 네압볼리(까발라)에 도착하여 바울기념교회를 둘러본 후 까발라에서 3박4일 그리스 여정중 첫 밤을 보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그리스 도시들을 이번 성지순례에서 방문한 순서대로 간략하게 소개하겠습니다.

   
 

1. 빌립보(Philippi 행16:12-40)

 

현재 빌립보 지역은 상당한 규모의 옛 도시 발굴작업을 한창 진행중에 있었다. 마게도니아 지방의 첫 성인 빌립보에서 로마 당시에 조성되었던 로마로 이어지는 에그나티아 가도를 옛 모습 그대로 확인할 수 있었고, 옛 길을 배경으로 사진 촬영도 하였다. 우리는 이곳에서 사도 바울이 귀신들린 여종의 귀신 축출로 실라와 함께 갇혔던 감옥(간수의 개종)과 예배터 등을 돌아본 후, 바울의 선교활동을 솔선수범하여 후원한 두아디라 지방 출신 자주장사 루디아 기념교회와 강가 예배(세례)터 등을 돌아보았다.

 

   
 

2. 네압볼리(Neapolis 현지명 까발라, 행16:11)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때 드로아에서 환상을 보고 배를 타고 사모드라게 섬을 거쳐 도착했던 그리스 항구(당시 섬에서 항구까지는 2일 소요)로 유럽 전도를 처음 시작한 곳이다. 바울 당시 이곳은 동서양을 뱃길로 잇는 교통 요충지였고, 육로 역시 로마로 향하는 에그나티아 가도가 이곳을 지난다. 이곳에는 바울의 도착을 기념하는 교회가 2곳이 있는데 우리는 항구 가까이에 있는 기념교회을 둘러보고 그곳에서 바울 도착 장면이 그려져 있는 벽화를 볼 수 있었다. 다른 기념교회는 언덕 위에 있다.

 

   
 

3. 암비볼리(Amphipolis 행17:1)

바울이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로 가는 도중에 들린 곳으로 빌립보에서 남서쪽으로 약 60Km 떨어진 스트리몬 강 유역에 있는 도시다. 로마로 향하는 에그나티아 가도가 이어지는 이곳은 마게도니아 첫 번째 지방의 수도로 BC 4세기께 만들어진 사자상과 박물관이 있는데, 우리는 사자상을 배경으로 기념 촬영을 하였다. 사도행전에 바울이 지나간 지명을 남긴 것으로 보아서는 바울은 이곳에서도 복음을 전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4. 아볼로니아(Apollonia 행17:1)

바울이 빌립보에서 데살로니가로 가는 도중에 들린 곳으로 암비볼리로부터 48Km, 데살로니가로부터 61Km 떨어져 있는 도시다. 에그나티아 가도에 접해 있는 이곳은 바울이 데살로니가로 가던 도중 설교를 하였던 곳으로 우리는 바울이 설교를 하였던 바위 주변을 둘러보며, 당시 바울이 외쳤던 복음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었다.

 

   
 

5. 데살로니가(Thessaloniki 행17:1-9)

아테네에 이어 그리스 제2의 도시로 에그나티아 가도와 연결되는 교통의 요충지로 BC 315년경 알렉산더 대왕의 이복누이인 테살로니카의 이름을 따서 ‘데살로니가’로 불렀다. 이곳에는 비잔틴 시대에 세워진 20여개의 교회들이 남아있는데 우리는 그중에서 성데미트리우스 교회를 방문하였다. 이 교회는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 직전 데미트리우스 순교 장소에 세워진 순교자를 기념하기 위한 교회이다. 우리는 교회 방문전 바닷가에서 화이트 타워와 알렉산더 동상도 둘러보았다.

 

   
 

6. 베뢰아(Berea 행17:10-15)

데살로니가 서쪽 80Km, 해안에서 40Km 내륙에 위치한 도시로 바울은 2차 전도여행중 데살로니가에서 쫓겨나 실라와 함께 이곳으로 와서 복음전도에 성과를 올린 곳이다. 에그나티아 가도에서 조금 벗어나 있으나 비교적 번창했던 도시로 유대인도 많고 유대인 회당도 있었다. 행17:11에는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라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이곳에 있는 사도바울 기념교회를 둘러본 후, 화장실이 폐쇄된 덕분과 성경 말씀과 같이 너그러운 베뢰아 카페 주인 덕분으로 아이스크림을 맛나게 먹고 그리스 최고의 절경이며 그리스 정교회 수도원이 있는 메테오라로 이동했다

 

   
 

7. 아덴(Athens,Athina 행17:16-34)

서구문명의 발상지이며, 고전 문명의 많은 지적. 예술적 사상이 시작된 곳이다. 바울은 이곳이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격분하여 날마다 만나는 사람들과 변론하였다. 우리는 바울이 많은 아덴(아테네) 사람들을 향해 그들에게 새로운 신인 하나님을 전한 아레오바고 언덕을 올랐다. 아레오바고 언덕을 오르기 전에는 파르테논 신전과 아크로폴리스 등을 둘러보았고, 전날은 근대올림픽 경기장과 소크라테스 감옥(야간) 등도 둘러보았다.

 

   
 

8. 고린도(Corinth 행18:1-17)

고린도는 고대와 현대 고란도로 구분된다. 고대 고린도는 1858년 지진으로 파괴되어 현재 유적만 남아있으며, 여기서 북서쪽으로 6Km 떨어진 코린트만 기슭에 새로 건설한 도시가 현대 고린도이다. 고린도는 헬라문화와 로마문화가 혼합된 도시이며, 1893년 완공된 고린도 운하로 유명해진 곳이기도 하다. 우리는 고린도 운하를 둘러보고, 겐그레아를 거쳐 산꼭대기에 있는 고린도 신전을 조망하며, 고대 고린도 유적지로 가서 박물관을 둘러본 후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아고라(시장터) 등을 살펴보았다. 고린도는 바울이 복음전도에 수많은 훼방과 어려움을 겪은 곳이기도 했지만, 데살로니가전후서를 쓴 곳이기도 하고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의 헌신적 도움을 받은 곳이기도 하다.

 

9. 겐그레아(Cenchrea 행18:18, 롬16:1-2) 겐그레아는 고린도에서 약 11Km 동남쪽에 위치한 항구이다. 바울이 수리아로 가기 위해 배를 탓던 곳으로 바울이 서원이 있어 머리를 깎은 곳이기도 하다. 바울이 고린도에 있을 때 이곳에 교회를 세웠고, 이 교회에는 바울이 인정한 일꾼인 여집사 뵈뵈가 있었다. 그녀는 여러 사람과 바울의 보호자가 되었다고 하면서 바울은 그녀가 소용되는 바를 도와주라고 말한다. 현재 겐그레아 옛 도시는 바닷물에 잠겨있는 상태이고, 겐그레아 교회 터는 바닷가에 남아 있다. 시간과 여건상 우리는 그 곳을 버스로 한바퀴 둘러보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10. 니고볼리(Nicopolis 딛3:12) 바울이 겨울을 지낸 곳으로 그리스 서쪽 해안도시이며, 이번 성지순례에서는 방문하지 못한 곳이다. 이곳에서 바울은 아데마나 두기고를 보내서 그레데 섬에 있는 디도가 급히 오기를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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