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여름 방학의 막바지여서 지난주에는 언니와 조카들이 저희 집을 다녀갔습니다. 바다에서 물놀이하려고 단단히 벼르고 왔지만, 태풍으로 비바람이 몰아쳐 바다도 계곡도 감히 가까이할 수 없었습니다. 비가 멈추고 날이 개어도 바다는 파도가 높았고 계곡은 불어난 물이 세차게 흘렀습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수영복을 입고 물놀이 장비를 갖춘 후 바다로 나가 보았지만, 물놀이는 어림도 없어 보였습니다. 아이들은 먼발치서 파도치는 바다만 바라보다 아이스크림을 사서 들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아쉬운 대로 집 앞에 설치한 물놀이 풀장에서 놀았습니다. 처음에는 시큰둥하던 아이들이 풀장 안으로 들어가자 신나게 서너 시간을 놀았습니다.

    여럿이 모이면 무얼 해도 재미있습니다. 평소에 금지된 온라인 게임도 사촌들이 오면 가능해집니다. 느슨해진 어른들의 감시를 피해 신나게 게임을 합니다. 그러다가 심심해지면 모여서 보드게임을 가져와 놉니다. 4살부터 중학교 1학년까지 모여 있으니 놀다가 싸우고 울고 화해하기를 반복합니다. 그러다가 더 지치면 큰아이들끼리 모여서 놀고 작은 아이들은 따로 놉니다. 방학 숙제가 밀린 큰아이들은 놀이 중간에 숙제를 합니다. 작은아이들도 덩달아 앉아서 일기도 쓰고 책도 읽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밤이 되면 공포체험을 한다면서 집안과 교회 이곳저곳에 숨어서 서로 찾아다닙니다. 누구 하나 시끄럽다고 하는 사람 없는 시골 교회에서 아이들은 소리도 지르고 춤도 추고 공도 차면서 신나게 놀았습니다.

   조카 소개를 해 보겠습니다. 7살 조카는 저에게 한 번 혼난 적이 있어서 “작은이모 무서워.”하며 좀체 저에게 오지 않고, 4살 조카는 저와 잘 만나지 않아서 한동안 낯을 가리다가 엉덩이춤을 두어 번 같이 쳐주고 나니 제게 안겼습니다. 이제 중학생이 된 조카는 조금 변성기가 왔지만 심한 사춘기는 오지 않아서 순하게 말을 잘 듣는 편입니다. 어느 날인가 엄마에게 혼이 난 후 이모들의 단체 SNS에 “엄마를 잘 못 골랐어.”라며 울던 초등학교 2학년 조카는 저를 잘 따릅니다. 함께 지내는 내내 “작은이모랑 같이 잘래.”하며 제 옆에 누워서 잠을 잤습니다.

   초등학교 2학년 조카 서연이(가명)에 대해서 좀 더 이야기해 보자면, 궁금한 것도 많고 말도 많아 에너지에 입에 몰려 있다는 말을 듣는 아이입니다. 아래로 둘이나 있는 동생들 때문에 힘들어하여 제가 자려고 누워서 “동생들한테 양보하느라 힘들지?”하고 물어보니 격하게 수긍하며 안깁니다. 고집이 센 아래 동생과 깜찍하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운 막내에 밀려서 서연이는 엄마에게 혼나는 일이 많습니다. 가끔 저녁에 영상통화로 전화가 와서 엄마에게 혼이 났다고 저에게 일러주기도 합니다. 그럴 때 “엄마를 잘 못 골라서 바꾸고 싶으냐?”고 제가 물어보면 그건 또 “절대 안 된다.”고 대답합니다. 한 번 고른 엄마는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실 서연이가 엄마를 골라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부모를 고를 수 있는 자녀는 아무도 없습니다. 태어나 보니 부모가 있고 그 부모와 함께 살아가는 것을 당연하게 여깁니다. 물론 자라나면서 부모를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는 눈도 생깁니다. 나의 부모와 다른 이들의 부모가 가진 장단점을 꼽아보며 부모가 바뀌면 어떨까도 생각해 볼 것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마음에 들지 않아도 아이들은 부모를 버리거나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부모가 좀 모자라도 금세 잊고 부모를 사랑하고 또 사랑받기를 원하는 아이들의 말간 눈을 보면 배울 점이 많습니다. 부모라고 약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어른의 약점은 같은 어른보다는 어린이들의 눈에 더 잘 보입니다. 저희집 큰아이가 가끔 “엄마 어른들은 왜 말한 걸 안 지켜요?”, “어른들은 우리한테 싸우지 말라고 하고 왜 어른들끼리 싸워요?”, “어른들은 지구가 망가지는 걸 알면서 왜 고치려고 안 해요?”하고 물어봅니다. 제 행동에 대해서도 모순된 점을 지적해 제가 무척 부끄러워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그렇게 약점을 가진 부모를 마음으로도 버리지 않습니다. 속상하고 힘들 때도 그 부모의 사랑을 갈구합니다.

   약점이 있는 사람을 버리는 것은 아마도 어른들에게만 가능한 사고일 것입니다. 어린아이의 시각으로 생각해보면 약점이 있는 사람은 더 잘 돌보고 섬겨야 하고, 약점이 있는 공동체는 회복해 나가야 하며, 약점이 있는 자기 자신도 포기하지 않고 세워나가야 합니다. 약점, 결점, 불만족을 버리고 떠나는 것은 세상의 질서이지만 믿음을 가진 이들의 질서는 약할수록 더 돌보고, 부족할수록 더 채워주고, 불만족스러울수록 나서서 수고하기를 달게 하는 것입니다.

    근래 한일갈등이 심화되면서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바친 선조들의 이야기를 더 많이 접하게 됩니다. 힘들고 어렵다고 버리는 이치로 산 사람들만 있었다면 이 나라의 독립은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철저히 세상의 질서를 따르면서 언젠가 어려움이 닥쳐 왔을 때 나와 이웃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은 자만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약한 자를 돌보고, 어려움을 나눠서 지고, 믿음대로 살아가야 ‘언젠가’에도 우리는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오늘 하루, 억울하거나 힘들어 신을 잘 못 골랐다는 생각이 잠시 들더라도 하나님을 세상과 바꾸려 하지 않고 약하고 부족한 것을 사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