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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다니엘 12장 5절~13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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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8월 19일 (월) 01:26:43 [조회수 : 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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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다니엘 12장 5절~13절

 

0. 다니엘 12장 후반부 요약

다니엘이 전하는 “마지막 때”는 과연 언제를 가리키는가? 과거와 현재, 장차 올 미래를 모두 가리킨다. “마지막 때”의 첫 번째 의미는 죽음의 순간을 말한다. 또한 삶에서 만나는 위기와 절망의 순간이다. “마지막 때”의 두 번째 의미는 과거에 벌어진 역사적 종말사건이다. 노아의 홍수는 세상의 종말이었다.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져 내리는 날이다. 믿었던 하늘이 무너져 내렸던 역사적 경험이다. “마지막 때”의 세 번째 의미는 장차 알 수 없는 미래에 벌어질 대환란의 때를 가리킨다. 이 중에서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미래에 관심이 많지만 알 수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나갔다. 핵심은 현재적 종말에 있다. 종말이 전하는 메시지는 마지막을 생각하며 오늘을 살아가는 삶에 있기 때문이다. 다니엘이 전하는 “마지막 때”는 바로 오늘 삶에서 만나는 위기와 절망의 때에 요구되는 믿음의 자세를 증거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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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때와 기한은 언제인가?

 

➀ (5절)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편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편 언덕에 섰더니”

▶ 다니엘이 네 번째 이상의 내용은 ‘큰 전쟁에 관한 환상’이다. 10장에서 12장까지 이어진다. 다니엘 10장에 따르면 다니엘이 이상을 본때는 세이레 동안 금식하며 기도할 때다. 이상은 본 장소는 힛데겔 강가에서다(바벨론제국의 티그리스강). 힛데겔 강 세 분의 영적인 존재가 등장한다. 첫 번째는 ‘인자와 같은 이’다.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 우바스정금 띠를 허리에 두르고 그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다. 심판자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두 번째는 ‘천사 가브리엘’이다. 하나님의 명령으로 다니엘이 본 이상을 설명하고 다니엘을 도와준 사자다. 세 번째는 천군 미가엘이다. 천사 가브리엘을 도와 바사군과 헬라군 즉 영적인 대적들과 싸우는 사자다. 가브리엘은 강 이편에 와서 돕고 깨닫게 하신다(10:14) ‘이제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이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 미가엘은 강 저편에서 싸운다. 세마포 옷을 입으신 분은 강 물 위에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 중요한 점은 ‘나 다니엘이 본즉’ 눈 앞 에서는 비록 세상의 통치자들이 왕노릇하지만 세상을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보좌에 계신 이, 영생하시는 자)이고 그분의 명령으로 주관하시는(통치하시는) 세마포 옷을 입으신 인자 같으신 분과 도우시는 천사 가브리엘과 싸우시는 천군 미가엘을 보내서 세상을 통치하시고 심판하심을 증거 한다. 지금도 친히 주관하시고 도우시고 싸워주신다.

 

② (6절~7절) “그 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기사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기로 내가 들은 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때 두때 반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 ‘이 기사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마지막 때가 언제냐? 이상이 성취되는 날이 언제인가?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아들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만 아신다. 예나지금이나 오랜 궁금증이며 풀리지 않는 의문이다. (마24:3~5)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해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사람을 미혹하리라’ (마24:36) ‘그러나 그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행전1:6~7) ‘저희가 모였을 때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때와 기한은 수행하는 천사도 모른다. 오직 하나님의 권한에 있다.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개인의 죽음, 죽는 날을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다.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다. 그날에 하나님의 심판대에 선다는 것이다. 그날은 심판과 구원의 날이다. 적대자를 심판하시는 날이고 의의 최후승리에 나타나는 구원의 날이다. 안 알려 주신 것을, 오직 하나님의 권한에 있는 것을 알려고 하거나 아는 척 해서도 안 된다. 쓸데없는 짓이다. 왜? 종말은 ‘마지막 때’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마지막을 생각하며 살아가는 ‘오늘의 삶’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두려워 말라. 도와주신다. 예비하고 있으라. 깨어있으라. 핵심은 마지막을 준비하는 ‘오늘’의 삶에 있다.

 

③ ‘반드시 한때와 두때와 반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 적대자의 횡포가 끝나는 때와 하나님의 통치가 실현되는 때가 온다. 반드시 성취된다. 최후심판과 최후승리의 때가 온다. 환난이 끝나는 때가 있다. 하나님의 공의는 반드시 이루는 날이 있다.

‘한때와 두 때와 반 때’는 언제인가? (단7:25) ‘성도는 그의 손에 붙힌 바 되어 한때와 두때와 반때를 지나리라’ 그 기간을 은유적으로 묘사한다. 왜냐하면 대적자로 인한 모든 박해의 때를 가리키기 때문이다. ‘한때와 두 때와 반 때’는 3년 6개월, 마흔 두달, 일천이백육십일(30*42=1260)이다. B.C. 167년 매일 드리는 제사, 멸망의 가증한 것(제우스신상) 때로부터 B.C. 164년 마카비 하누카, 수전절까지의 기간이다. 적그리스도를 심판하시고 믿음의 성도들을 구원하시는 의의최후승리의 날까지다. ‘한때와 두 때와 반 때’는 A.D 70년 예루살렘성전파괴하고 초대교회를 핍박했던 로마제국의 박해의 때를 동일하게 가리킨다. (마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예수께서 예언하신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무너지리라. (계11:2) ‘저희가 거룩한 성을 마흔 두 달 동안 짓밟으리라. 내가 나의 두 증인에게 권세를 주리니 저희가 굵은 베옷을 입고 일천 이백 육십 일을 예언하리라’ (계13:5)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한 말 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달 일할 권세를 받으리라’ 무엇보다 ‘한때와 두때와 반때’는 현재적인 종말의 때 곧 삶에서 만나는 위기의 순간에서도 환난과 박해는 영원하지 않고 고난의 기간이 끝나면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신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알 수 없는 미래에 벌어질 장차 올 마지막 때에도 에피파네스 같은 대적자가 등장해서 왕 노릇 할 것이나 때가 차면 주님께서 다시 오셔서 통치하시고 승리하게 하심을 증거한다.

 

 

2.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➀ (8절~9절) “내가 듣고도 깨닫지 못한지라 내가 가로되 내 주여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삽나이까 그가 가로되 다니엘아 갈찌어다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

▶ 다니엘은 듣고도 여전히 깨닫지 못했다.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의 결국이 어떠하겠삽나이까’ 또 물어본다. 주님의 응답은 ‘다니엘아 갈찌어다’ 이제 그만 됐다. (다니엘아, 너는 그저 네 할 일을 계속하여라) ‘대저 이 말은 마지막 때까지 간수 하고 봉함할 것임이니라’(이 메시지는 마지막이 올 때까지 기밀사항으로 봉인되어 있을 것이다) 종말과 심판에 대한 우리의 자세를 가르쳐준다. ‘언제오시나?’ 쓸데없는 관심 갖지 말라. 내게 맡기신 일 잘 감당하면 된다. ‘간수하고 봉함해라’는 종말신앙에 대한 왜곡과 변질을 막아라. 왜곡은 임박한 종말론(시한부, 수한부, 신옥주 피지섬) VS 변질은 지연된 종말론(더디오심, 세속주의)을 경계해야 한다.

 

② (10절)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리니 악한 자는 아무도 깨닫지 못하되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으리라.

▶ 마지막 때, 환난이 찾아올 때, 말세의 현상 두 가지 선택이다. 고난을 통해 회개한 사람은 정결하게 되어 구원받고 이와 반대로 끝까지 회개치 않음으로 결국 심판에 이른다. (계22:11) ‘불의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마지막 때 ‘지혜 있는 자’와 ‘어리석은 자’로 구분된다. 환난이 있지만 의의최후승리를 믿고 견디는 사람과 절망하고 낙심해서 배교하는 사람이다. 영원하지 않고 마지막 심판대가 있음을 알고 사는 사람과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이다. 지혜 있는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 때가 가까워짐을 알고 날마다 죽음을 준비하며 산다. 오늘을 ‘지금 이 순간’을 마지막 날처럼 산다. 은혜와 감사, 기쁨과 평강으로 산다. 종말의 메시지는 알 수 없는 ‘마지막 때’가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순간’의 삶에 초점이 있다.

 

③ (11절~12절) “매일 드리는 제사를 폐하며 멸망케 할 미운 물건을 세울 때(B.C.167년)부터 일천 이백 구십일(1260+30=1290)을 지낼 것이요 기다려서 일천삼백삽십오일(1290+45=1335)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 왜 1260일보다 30일 추가되고 45일이 더 추가된 이유, 그 정확한 의미는 모른다. 다니엘도 모른다. 다만, 환난 가운데 믿음을 잃지 않고 끝까지 ‘기다려서’ 승리의 날까지 ‘이르는’ 그 사람은 복이 있으리라. 숫자적인 기한이 아니라 기다림과 인내에 핵심이 있다. (단8:13~14)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 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동일한 사건을 가리키는 데 1260일과 달리 ‘2,300일’로 기록된 이유는 제사장 오니아스3세를 박탈하고 제사장 야손을 세우는 일을 저지른 때 에피파네스의 1차 예루살렘성전 모독사건(B.C 171년)에서 마카비성전재봉헌(B.C 164년)까지 약 6년 반이다. ‘1260일’은 제2차 예루살렘성전 모독사건(B.C 167년)에서 마카비성전재봉헌(B.C 164년)까지 3년 반을 가리킨다. 같은 때를 가리키지만 시작 기간의 차이다. ‘때와 기한’이 중요한 게 아니라 환난에는 끝이 있고 때가 차면 하나님께서 친히 구원하시고 승리하게 하신다는데 핵심이 있다. (약 5:17~18)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저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년 육 개월(마흔 두달, 1260일, 한때 두 때 반때) 동안 땅에 비가 아니 오고 다시 기도한 즉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내었느니라’

 

 

3. 마지막을 기다리라

 

➀ (13절) “너는 가서 마지막을 기다리라.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날에는 네 업을 누릴 것임이니라”

▶ 다니엘에게 주신 말씀이며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결론의 말씀이다. 마지막을 기다리며 오늘을 사는 삶이다. 언제 오시나? ‘곧’ 오신다. ‘속히’ 오신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지혜 있는 사람은 인생의 마지막 때가 가까워짐을 알고 날마다 죽음을 준비하며 산다. 오늘을 ‘지금 이 순간’을 마지막 날처럼 살아라. 더 은혜, 더 감사, 더 기쁨으로 산다. 종말의 메시지는 마지막이 아니라 오늘의 삶에 초점이 있다.

‘이는 네가 평안히 쉬다가 끝 날에는’ 다니엘의 인생의 마치는 죽음의 순간을 가리킨다. 우리 모두 ‘누구나’ 예외 없이 죽음의 순간에 하나님의 심판대에 서게 될 것이다. 죽음과 종말은 궁금할 것도, 두려워할 것도, 염려할 것도 아니다. 마지막 심판대에서 물으시는 질문을 기억하라. 1) 하나님의 자녀, 2) 청지기 3) 사명(미션, 소명)을 잘 감당하며 살아가면 된다. (벧전 3:8~14)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눅21: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EZRA말씀학교 다니엘서 강해에 함께 해주신 모든 독자들에게 감사드립니다. 계속해서 호세아서 강해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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