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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에 분노할 것인가?
김학중  |  hjkim@dream10.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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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8월 04일 (일) 23:36:20 [조회수 : 4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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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가깝게는 일상적인 삶과 넓게는 사회를 쥐고 흔드는 모든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에 대해 분노를 일으킨다. 내면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올라오는 분노는 갈등을 일으키는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으면 없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안에 생긴 분노로 인해 삶이 마비되고 사회에 대한 불신을 커져가기만 하지 분노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는 점이다.

우리가 낼 수 있는 분노의 형태는 다양하다. 분노는 자신의 욕구 실현이 저지당하거나 어떤 일을 강요당했을 때 이에 저항하기 위해 생기는 부정적인 정서 상태이다. 이렇게 부정적인 정서 상태에 이르게 되면 가볍게는 얼굴의 인상이 변하지만 분노가 조금 더 심해지면 몸싸움과 같은 사태로 번진다. 그래서 걷잡을 수 없는 대규모 폭동이나 시위로 커져서 사회 전체에 해를 끼치는 위험한 상황에 이르기도 한다.

따라서 분노는 참지 말고 밖으로 드러내되 동시에 분노를 다스릴 줄 아는 법도 알아야 한다. 정신의학적으로 분노를 잘 조절하지 못하는 것은 질병으로 분류되어 있다. 어떤 의학 정보에 의하면 우리가 품는 분노는 뇌에 학습이 되는데, 분노가 학습이 될수록 뇌의 움직임이 빨라지고 분노를 표출하는 시간이 단축된다고 한다. 그리고 자주 분노를 일으킬수록 뇌가 분노에 중독되는데 결국 뇌세포가 손상돼 뇌가 줄어든다고 한다.

이것은 곧 우리 몸에 반응으로 나타나고, 감정이 조절되지 않고 집중력이 떨어지며 사리 판단에 흐려지는 증상을 동반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분노는 바이러스처럼 주변의 사람들에게 전염된다. 분노를 일으킨 사람이 저지른 폭언과 폭행을 목격한 사람은 충격을 받고, 그 감정을 거울로 비추듯이 부정적인 감정을 습득해 자연스럽게 따라하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증상은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악영향을 받을 수 있다. 만약 이렇게 분노가 조절이 되지 않으면 취해야 할 방법이 있다. 분노를 다스리기 위해서는 ‘누가 분노하게 만들었는지, 어떤 일로 분노가 일어났는지’ 정확한 원인을 알아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지 분노가 쌓이지 않고, 더 큰 문제가 확산되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사실 우리가 일으키는 분노는 아주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왜 분노해야 하는지 원인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누구든지 화를 낼 수 있습니다. 이것은 쉬운 일입니다. 그러나 적절한 사람에게, 적절하게, 적절한 시기에 올바른 목적으로 올바른 방법으로 화를 내는 것,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아마도 이 말은 우리가 제대로 된 분노를 내줄 알아야 하지만 정작 그것은 매우 어렵다는 뜻을 나타낸 듯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리스도인들은 ‘내가 무엇 때문에 분노 하는가’를 분별하고 고민할 줄 알아야 한다. 특별히 다른 사람을 위해 분노를 할 줄 아는 우리가 되었으면 한다. 나의 편의와 이익에 맞지 않는다고 불만을 품고 분노하기 보다는, 불의와 부정직한 문제들에 ‘의로운 분노’의 목소리를 내었으면 한다. 일방적인 권위나 불균형한 계층에 억압된 약자들의 편에 서서 강력하게 부당함을 외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분노를 일으킨 그 원인과 문제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공의로 심판하시기를 선포하며 지나친 감정은 다스릴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부정적인 감정이 다른 사람에게 악영향을 미치며 또 다른 범죄로 변질되기 전에 거룩한 분노로 승화시켜야 한다.

특히 목회자는 항상 ‘무엇에 분노할 것인가?’를 기억하고 깨어 있어야 한다. 목회자도 인간적인 감정에 휩쓸려 분노할 때가 있다. 여러 가지 형태의 갈등과 억압에 대하여 분노하게 되면 언어나 행동으로 표출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을 조절하지 못하면 결국 나 자신은 물론이고 상대방에게 날카로운 칼날을 겨누고 상처를 주게 된다.

목회자라는 위치에서 일방적인 권위의식은 내려놓고 나의 분노로 인하여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지 항상 따져봐야 한다. 교회 공동체를 지금보다 더욱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분노라면 인간적인 판단이 아니라 오직 말씀에 근거하여 교훈과 훈계로 다스리자. 불의가 가득한 세상에 대하여도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바른 목소리를 내도록 권면하자. 우리 안에 의로운 분노, 거룩한 분노가 있을 때, 어지럽고 각박한 모든 곳은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하나님의 나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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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신 (121.154.74.229)
2019-08-05 16:16:02
무엇에 분노할 것인가?
정의롭지 못한 목사들의 행위에 분노해야 합니다.
외식된 신앙의 지도자들의 기망에 분노하야 합니다.
불의 앞에 한마디의 말도 하지 못하는 교권의 비겁함에 분노해야 합니다.

불의와 타협하며 그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하는 이들의 합리화에 분노해야 할 것이며,
자신의 공이 없는 것을 취하려는 도둑놈의 심보를 갖고 있는 이들에게 본노해야 합니다.

무엇에 분노해야 할지 모르고 떠벌이는 입만 살아 있는 이들의 행동에 분노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죄를 죄라하지 못하고 불의를 불의라 하지 못하며
옳지 못함은 아니오라 말하지 못하는 나약함에 분노해야 합니다.

감리회의 부흥과 발전을 위해 선출한 감독들이 자신들의 이기심만을 채우려 함에 분노해야 합니다.

교권에 눈이 뒤집혀 부끄러움을 모르고 뻔뻔한 집착을 보이는 이에게 분노를 해야 합니다.

자신의 잘 못으로 전체가 부끄러움의 자리에 서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고 자신의 이기심만을 채우기 위하여 고집을 부리고 있는 이들에게 분노해야 합니다.

내 자신이 의의 길로 행하지 못하고 선한 길로 가지 못함에 가장 큰 분노해야 합니다. 그래서 분노가 분노로 끝나지 않고 분노가 진실한 회개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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