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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돗의 밭을 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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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8월 04일 (일) 14:05:45 [조회수 : 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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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돗의 밭을 사다
렘32:6-11
(2019/08/04, 성령강림 후 제8주)

음성으로 듣기

   
 

 [주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너에게 와서, 아나돗에 있는 그의 밭을 너더러 사라고 하면서, 그 밭을 유산으로 살 우선권이 너에게 있기 때문에, 네가 그것을 사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과연 주님의 말씀대로,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근위대 뜰 안으로 나를 찾아와서, 내게 부탁하였다. 베냐민 지방의 아나돗에 있는 그의 밭을 나더러 사라고 하였다. 그 밭을 소유할 권리도 나에게 있고, 그 밭을 유산으로 사들일 권리도 나에게 있으니, 그 밭을 사서 내 밭으로 삼으라고 하였다. 그 때에 나는 이것이 바로 주님의 명령임을 깨달았다. 나는 숙부의 아들 하나멜에게서 아나돗에 있는 그 밭을 사고, 그 값으로 그에게 은 열일곱 세겔을 달아 주었다. 그 때에 나는 매매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그것을 봉인하고, 증인들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 주었다. 그리고 나는 법과 규례에 따라서 봉인된 매매계약서를 봉인되지 않은 계약서와 함께 받았다.]

∙어려운 시절
주님의 은총과 평안이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8월에 접어들었습니다. 무더위도 무더위려니와 일본의 아베 정권이 벌인 일 때문에 마음이 많이 답답하실 겁니다. 많은 이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 리스트’에서 제외했습니다. 믿고 신뢰할 수 없는 국가라고 선언한 셈입니다. 일본의 많은 지식인들과 시민 사회가 한일 관계를 이렇게 막장으로 몰고 가면 안 된다고 말했지만 아베 정권은 애초부터 그런 충고를 들을 생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있지만 일본의 의도는 비교적 명확합니다. 과거사 문제에 더 이상 구애받지 않고 그들이 말하는 보통 국가 그러니까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를 지향하겠다는 것입니다. 정의당이 내놓은 논평 가운데 한 대목입니다.

“아베 정권의 도발이 단지 수출규제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과거사와 경제·안보 모든 면에 걸쳐 치밀하게 준비된 전략적 도발이라는 것을 우리는 엄중히 인식하고 있습니다. 위안부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개인청구권 등 한일 과거사를 ‘65년 협정’에 묶어두기 위한 의도입니다. 4차 산업혁명 기술전쟁에서 한국의 추격을 따돌리기 위한 의도입니다. 더 나아가 동북아 안보틀을 흔들고 한국을 일본의 하위 파트너로 밀어내겠다는 발칙한 의도가 담겨있습니다.“

한국을 하위 파트너로 밀어내겠다는 의도, 이게 핵심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상황을 두렵게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그럴 것 없습니다. 자기들이 저지른 잘못을 철저히 반성하지 않는 나라는 그 대가를 치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것이 성경이 일관되게 가르치는 내용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일화를 통해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비전을 찾아보면 좋겠습니다.

예레미야 32장은 시드기야 10년 즉 주전588년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유다의 멸망이 주전 587년이니까 멸망 바로 전 해에 일어난 일이라는 말입니다. 이미 바빌로니아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의 운명은 그야말로 풍전등화와 같았습니다. 예레미야는 그때 왕궁 근위대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그는 ‘국론을 분열시키는 자’라는 혐의를 받았습니다. 예레미야는 뭔가 희망적인 이야기를 듣고 싶었던 사람들에게 실상을 직시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루살렘은 결국 함락될 것이고, 시드기야를 비롯해 많은 귀인들이 갈대아인들에게 사로잡혀 바빌로니아로 끌려갈 것이고, 갈대아인과 싸우려 해보아도 승리할 수 없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누구도 듣고 싶어하지 않는 말이었습니다. 시드기야는 예레미야를 가둠으로 그 메시지가 사람들에게 퍼지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땅을 사다
어느 날 감옥에 갇혀 있던 예레미야에게 숙부인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찾아옵니다. 그는 예레미야에게 아나돗에 있는 자기 땅을 사라고 말합니다. 기업을 무를 권리가 예레미야에게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라고 믿었고, 자기들이 지금 살고 있는 땅은 하나님께서 각 지파들에게 분배해주신 것이라 여겼습니다. 비옥하든 척박하든 지금 살고 있는 그 땅이 소중한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이들은 그 땅에서 얻은 수확을 통해 부를 축적했지만, 어떤 이들은 가난에 몰려 몰락하기도 했습니다. 부의 차이는 계급 발생의 조건이 되기도 합니다. 평등공동체의 꿈을 가르쳤던 토라는 그런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장치로 면제년과 희년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때가 이르면 채무자의 빚을 탕감해주고, 남의 집에서 종살이 하던 이들은 자유인으로 방면하고, 다른 이에게 넘어갔던 땅은 원주인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땅은 소유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라 공적인 자산이라는 확신에서 비롯된 가르침입니다.

부득이 땅을 누군가에게 넘길 수밖에 없는 형편이라면 가까운 친척에게 넘겨야 했습니다. 그래야 그 땅이 다른 지파의 손에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업 무를 권리’란 그런 우선권을 이르는 말입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좀 얄궂습니다. 지금 나라가 다 망해서 어떻게 될지 모를 상황인데 땅을 사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오히려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어려운 시절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멜의 요청을 받아들이라고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는 은 십칠 세겔을 달아줍니다. 그 시대 사람들은 돈을 주조하거나 규격화하지 않은 채 은 덩이를 돈으로 사용했는데 십칠 세겔은 지금 단위로 환산하면 약 200그램 정도가 됩니다. 지금 돈으로 쳐도 얼마 안 되는 액수입니다.

예레미야는 증인들의 서명을 받은 매매 증서 두 부를 작성해서 하나는 봉인하고 다른 하나는 봉인하지 않은 채 서기인 바룩에게 넘겨주었습니다. 봉인한 것은 임의 변경을 막기 위한 조치이고, 봉인하지 않은 것은 누군가 확인을 요구할 때 보여주기 위한 것입니다. 바룩은 그 매매 증서를 토기에 담아 보관했습니다.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땅 매매 계약을 완료한 후에 예레미야는 지금 자기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천천히 톺아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하나님에 대한 배신의 역사였습니다.

∙하나님을 등지고 걸어온 길
하늘과 땅을 만드신 하나님은 세상 역사를 이끄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은혜는 수천 대에 이르도록 갚아주시지만 잘못은 기어코 대가를 치르도록 하십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은 계획하는 일도 크시고, 실천하는 힘도 강하고, 우리 삶을 감찰하시면서 각자의 행동과 그 행실의 열매를 따라 갚아주시는 분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신음하던 히브리인들을 이끌어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인도하셨고, 권능으로 압제자들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나 정착생활에 익숙해졌을 때부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기 시작했습니다. 예레미야는 그 상황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그래서 그들이 들어와 이 땅을 차지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주님께 순종하지도 않고, 주님의 율법에 따라서 살지도 않고, 주님께서 그들에게 실천하라고 분부하신 모든 것을 실천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이 모든 재앙을 당하게 하셨습니다.“(렘32:23)

보이지 않게 쌓이는 먼지처럼 재앙은 오랜 기간 준비되는 법입니다. 절박할 때는 하나님께 부르짖지만, 문제가 사라지면 이내 자기 욕심에 집중하는 게 인간의 버릇입니다. 욕심에 눈이 가려지면 하나님도 이웃도 눈에 들어오지 않습니다. 욕망을 적절히 통제하는 훈련을 하지 않는 한 우리는 미혹될 수밖에 없습니다. 일상적인 삶에서만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라고 다를 바 없습니다.

저는 한국교회가 이 지경이 된 것은 ‘교회 성장주의’라는 우상 앞에 절을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의 증인이 되라 하셨던 주님의 명령을 사람들은 교회의 양적 성장을 명하는 것으로 쉽게 받아들였습니다. 교회에 마케팅 이론을 도입하고, 전도상을 제정하기도 하고, 공간을 확장하는 데 골몰했습니다. 교인들을 교회에 묶어두기 위해 두려움을 주입하기도 했습니다. 오래지 않아 혐오와 배타가 한국교회의 이미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본을 버리고 말을 취한 결과 몇몇 교회는 커졌지만 다수의 교회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회중석에 앉은 유력자들의 눈치를 보느라 설교자들은 복음의 급진성을 포기했습니다. 갈릴리에서 가난한 이들의 벗으로 살면서 사람들을 율법의 노예로 만들던 성전 체제를 향해 독설을 퍼부었던 예수, 힘으로 다른 이들을 강압하고 지배하던 로마에 맞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던 예수는 한국교회에서 침묵을 강요당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를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을 등지고 살아온 삶의 결과가 재앙으로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은 전쟁과 기근과 염병에 시달렸습니다. 우상숭배에 빠진 이스라엘, 하나님의 뜻을 저버린 예루살렘에 하나님의 진노가 내립니다. 하나님은 바빌로니아 군대로 하여금 예루살렘을 불사르도록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은 기정사실입니다. 돌이킬 수 없습니다. 성은 점령될 것이고, 집들은 불타게 될 것입니다. 절망의 어둠이 짙습니다. 희망의 빛은 어디에서도 비쳐오지 않았습니다.

∙표징이 된 사람들
그러나 이 엄혹한 선언 가운데서 우리는 희망의 단초가 있음을 봅니다. 이 모든 일의 주도권을 쥐고 계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내가 넘겨 준다’, ‘내가 태워 버리겠다’. 하나님의 심판은 엄혹하지만 파괴로 끝나지 않습니다. 심판은 정화의 과정인 동시에 새로운 역사의 시작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어김없이 이루어집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이 열어주실 미래를 백성들에게 알립니다.

“똑똑히 들어라. 내가 분노와 노여움과 울화 때문에 그들을 여러 나라로 내쫓아 버렸다. 그러나 이제 내가 그들을 이 모든 나라에서 모아다가, 이 곳으로 데려와서 안전하게 살게 하겠다. 그러면 그들이 나의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한결같은 마음과 삶을 주어, 그들이 언제나 나를 경외하여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그들의 자손들까지도 길이 복을 받게 하겠다. 그 때에는 내가 그들과 영원한 언약을 맺고, 내가 그들에게서 영영 떠나지 않고, 그들을 잘되게 할 것이며, 그들의 마음 속에 나를 경외하는 마음을 넣어 주어서, 그들이 나에게서 떠나가지 않게 하겠다. 나는 그들을 잘되게 함으로 기뻐할 것이며, 나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이 이 땅에 뿌리를 굳게 내리고 살게 하겠다."(렘32:37-41)

흩으시고 내쫓으신 하나님은 다시 그들을 모아다가 그 땅에서 안전하게 살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상처를 입은 백성에게 한결같은 마음과 삶을 주어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고, 자손 대대로 복을 받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잘되는 것을 보고 기뻐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놀라운 문장과 만납니다. “나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그들이 이 땅에 뿌리를 굳게 내리고 살게 하겠다.” ‘온 마음과 정성’은 하나님을 향한 인간의 마음을 나타날 때 주로 사용하던 용어입니다. 이 용어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해 사용되고 있습니다. 놀라운 역전입니다.

사람도 없고 짐승도 없는 황무지로 변했던 땅, 바빌로니아 군대의 손에 들어갔던 땅에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고, 희망의 씨를 뿌릴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입니다. 그때 사람들은 아름다운 삶을 일구기 위해 땅을 사려 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비로소 땅을 사라시던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아나돗에 있는 땅을 사라 하셨던 것은 바로 시련의 시간 후에 빚어질 희망의 선취(先取)인 셈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은 지금 이 땅에서 하나님 나라를 선취하는 사람들로 부름 받았습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징표가 되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절망의 땅에서 희망이 되어야 합니다.

어려운 시절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정의와 공의를 일관되게 추구한다면, 평화와 진실을 지향한다면, 시련의 시간은 오히려 복으로 화할 것입니다. 잠시 동안의 어려움을 면하기 위해 불의를 용인한다면 우리는 역사의 패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아나돗의 밭을 사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을 깊이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는 할 수 있습니다. 역사를 바로잡으시는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으로 명랑하게 묵은 땅을 갈아엎는 우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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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19-08-05 06:19:12
어떤 사건을 판단할 때에는 사실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 이번 경제전쟁도 마찬가지!
1.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 제외하는 데 대한 일본국민의 지지도는 95%이다.(일본 경산청의 한국 배제 결정을 위한 사전조사에서)

2. 일본 언론 중 영향력이 그다지 크지 않은 反아베, 親좌파성향 언론의 아베 비판논조가 일본을 대표하는 게 아니다. (※한국의 경우 좃선과 한걸레의 논지가 완전하게 다른 경우가 많은 데 어느 한쪽의 기사만을 뚝 따서 한국의 대표 여론이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듯이)

-우파系(親아베) : 요미우리 신문<세계最多발행부수, 일본 내 영향력 막강>, 산케이 신문 
-중도系 : 니혼게이자이 신문
-좌파系(反아베) : 아사히 신문, 마이니치 신문, 도쿄 신문

하토야마 전 수상과 같은 부류는 일본에서조차 왕따 당하고 있는 인물로 일본국민에 대한 영향력은 거의 없는 실정인데... 이런 부류를 한국에서 ‘양심적인 일본인’이라고 칭송한다. 일본 내에서 거의 또라이 취급받는 아주 극소수의 의견을 ‘양심적인 일본인’이라고 한국에서 칭송하니 어리벙벙할 뿐이다. 한번 확인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3. 한일협정 위반 등에 대해선 일언반구도 없고, 오로지 아베의 잘못만 보이는가!

문재인과 김명수가 합작하여 前정권이 일본과 합의한 위안부 문제라든지, 징용공 판결을 뒤집었다. 일본이 한일청구권협정 위반이라고 이에 대해 대화하자고 8개월 동안이나 졸랐어도 문재인은 모르는 체했다. 이제 일본이 반격을 가하자 완전 거꾸로 되어 문재인이 일본에 대화하자고 매달리고 있다. 이러한 사건전개는 쏙 빼버리고 아베만 나무란다? 이거 참으로 부끄럽다. 아베 욕하기 전에 참으로 부끄럽다. 자기반성은 전혀 없고, 남에게만 반성을 요구하니... 그저 헛웃음만 나올 뿐이다.

4. 불매운동의 효과에 관하여

센카쿠 국유화 파동 당시의 신문보도를 한번 꺼내보라! 한국의 불매운동은 불매운동이라고 부르기조차 부끄러울 정도이다. 센카쿠 국유화 당시 이미 14억 중국의 불매운동까지 견뎌내고 내성까지 갖춘 일본이, 5천만 한국의 불매운동에 크게 동요될까? 가장 중요한 것은, 당시는 일본이 먼저 상대방에게 시비를 건 상황(센카쿠 국유화)이었고, 이번엔 반대로 한국이 먼저 시비를 건 상황(한일협정 위반)이라는 점이 결정적으로 다르다는 것이다. 일본이 쉽게 굽히거나 물러설 이유가 당시에 비해 더더욱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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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3
김경환 (222.100.38.174)
2019-08-05 06:39:07
이미 전세는 기울었다!

지금 현재 문재인의 지지도는 대충 50%쯤 된다고 한다. 하나회 척결 당시 김영삼의 지지도는 90%이상이었다.

문재인이 입에 거품을 물고 마빡에 신통방통부적을 붙이고 죽창가를 부르고 촛불을 들고 난리를 쳐도 겨우 지지율 50% 정도라면 이미 문재인이 아베와의 경제전쟁에서 한국국민의 民心을 얻는 데 실패했다고 봐야한다.

나머지 50% 국민은 문재인의 광대짓을 물끄러미 쳐다보고만 있는데... 이들을 돌려세워 지지율 90%이상으로 만들기 위해 ‘노영방송’ 등을 통해 온갖 견강부회로 국민을 현혹시키고 있으나 글쎄올시다.

이제라도 한일청구권협정을 지킬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보겠다고 문재인이 한 발짝 물러서는 게 현명한 처사로 보인다. 더 버티다간 문재인만 더 바보 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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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3
김경환 (222.100.38.174)
2019-08-05 12:11:03
2차세계대전 後 한국(舊조선)의 정확한 지위는?

1. 舊조선은 舊시암과 함께 일본의 부역국가

샌프란시스코 협정(1951년 9월 8일) 당시 舊조선은 오스트리아, 핀란드, 이탈리아, 발트3국, 태국(舊시암)과 함께 <특수상태국>의 지위에 있었다. 즉 오스트리아, 핀란드, 이탈리아, 발트3국은 독일의 부역국가 신분이었고, 舊시암과 舊조선은 일본의 부역국가 신분이었다.

연합국에게 독일, 일본이 적성국이었고 오스트리아, 핀란드, 이탈리아, 발트3국, 한국, 태국은 준적성국이었다. 이 준적성국을 <특수상태국>이라고 칭한 것이었다. 舊조선은 일본과 함께 연합국에게 총부리를 겨눈 나라로 자리매김 되었다.

※구조선이 일본과 함께 연합국에 총부리를 겨누었다는 근거자료
<1938년~1943년, 조선인 청년의 日本軍 자원입대 현황> 
1938년 400명 모집에 2900여 명 지원, 1939년 600명 모집에 1만2300여 명 지원, 1940년 3000명 모집에 8만4400여 명 지원,1941년 3000명 모집에 14만4700여 명 지원, 1942년 4500명 모집에 25만4300여 명 지원, 1943년 5330명 모집에 30만3400여 명 지원/ 일본이 전시징용을 한반도에 적용하기 시작한 것은 1944년 9월 이후인데... 그 이전에는 강제가 아닌 일본군 자원입대 모집에 매년 수십만 명이 일본군이 되기 위해 줄을 섰다.
<싱가포르 이광요 수상의 견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본 조선인은 일본군복을 입고 싱가포르를 함락시킨 침략의 협력자였다."

2. 구조선은 피해국이 아닌 부역국이므로 피해국 코스프레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일본이 한국의 피해국 코스프레를 넙죽하고 받아준 것이 애초에 잘못되었다. 한국은 일본과 함께 연합국에 총부리를 겨눈 準전범국이었는데도 불구하고...

3. 진정한 역사바로세우기는 한국이 연합국을 상대로 총부리를 겨눈 죄과를 사과하는 데부터 출발해야하고, 일본은 더 이상 한국의 피해자 코스프레를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한국이 準전범국으로서 일본에 부역하여 연합국에 총부리를 겨눈 사실에 대해 인류에게 사죄부터 하는 게 진정한 역사바로세우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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