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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감리회는 과연 연회와 감독의 존속이 필요한가?
민돈원  |  value71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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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8월 03일 (토) 09:29:18
최종편집 : 2019년 08월 03일 (토) 21:23:50 [조회수 : 1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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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감리회는 과연 연회와 감독의 존속이 필요한가?

 

현 감리회는 감리회 구성원안에서 지난 약 12년간 교권을 쥔 자들과 이에 도전하는 세력들 간에 끊임없이 좌충우돌함으로써 희망의 감리회는커녕 불편한 존재로 자처하리만치 고통과 실망과 좌절을 안겨주고 있다.

이러한 부끄러운 민낯은 급기야 한국사회 전반에 기독교신앙이 우리 민족 백성들의 혼을 일깨우고 이 민족에게 위대한 복음의 무형자산(에셋)적인 가치로써 실로 큰 공헌을 했던 자랑스런 역사와는 달리 정면으로 그 유산들을 훼손시켜 버리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심지어 세상 사람들이 십자가 대속의 사랑과 부활의 복음을 듣고 주께로 돌아오게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특정 소수자들이 누리려는 허세 때문에 그 길을 막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무서운 죄악을 자행하는 커다란 걸림돌의 장본인이 되고 있다. 이러한 체제에서 과연 연회와 감독의 존속(存續)이 필요한가?에 대한 문제제기이다.

우선 이에 대한 논리적인 근거는 앞으로 분명한 논의와 검증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합리적인 타당성을 제기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존속의 필요성을 뜻있는 분들의 교감을 거쳐 공청회를 통해 확증해 볼 사안의 가치가 있다고 본다.

2018년 감리회 자료에 의하면 11개 연회 총수입(비경상비 포함)이 약 1조2천900억원으로 집계되었다. 순수 경상비로 따지면 이 액수보다는 교회에 따라 상황이 다르기에 많이 줄겠지만 현재 각 교회의 혈세같은 연회 부담금이 1%임을 고려할 때 그 수익이 적지 않은 액수임이 분명하다. 이 부담금 중 대부분이 인건비 지출일 것이고 운영비 내지는 행사비 등일 것이다.

매년 막대한 예산으로 운영되는 연회가 얼마나 개체 교회에 도움을 주고 감리회에 효용가치가 있는지, 그리고 소속 회원들이 그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절대적인 의문이다. 불과 특정한 몇 사람들을 세워 그들을 떠받드는 구조가 되어있는 현 제도 하에서는 마치 들러리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실제로 지울 길이 없다는 점에서 더욱 회의적이다.

현재 이런 연회 행정 시스템은 본부 내지는 지방으로 얼마든지 이관하여 할 수 있는 일이다.이렇게 될 때 각 지방의 교회수를 조정하는 등 후속방안을 강구할 세세한 논의는 그 이후 사안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아무리 오랫동안 연회시스템으로 운영해 온 감리회라 하지만 오히려 최근 감리회 수많은 사태들을 반복하면서 그 한계점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점을 통감하고, 이쯤에 와서 전면 재고함으로써 존재감 없는 몸집 줄이는 대 혁신을 단행하는 것에 대해 두려워하지 말아야 할 때이다.

그 이유는 첫째, 1차적으로 알다시피 옥상옥의 제도를 만들어 놓고 그 자리 쟁탈전을 벌이는 작금의 제도로는 더 이상 이 시대에 희망을 주는 감리회라고 말하기에는 시대를 역행하는 낡은 권위주의적 틀에 지나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감독 선거철만 돌아오면 모이는 곳마다 목회의 본연에서 벗어나 그 몇 사람들에 대한 대화주제로써 이번에는 누가 순번인지를 화제 거리로 일삼는 우리의 풍토가 안타깝기만 하다.

두 번째는 과연 목사의 꿈과 목표가 기껏해야 이것도 명예라고 여겨서인지 지방 감리사 한번 해보고 마치는 이 정도 수준이란 말인가? 그리고 더러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이를 발판으로 삼아 연회 감독까지 해 보는 것이 일생 목회하면서 여한이 없는 목회자 최고의 목표란 말인가? 라는 강한 회의감이 목회자의 자존감으로부터 더 멀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런 자리에 미치지 못하면 목사구성원들 자체에서도 마치 서열에서 밀려나고 퇴보된 편향된 시각을 갖도록 심화시키는 것이 부인할 수 없는 작금의 감리회 실태다.

이처럼 이런 자리를 한번 해본 사람과 안 해본 사람의 프레임으로 나누는 오늘날의 감리회 제도가 주는 정서는 대부분의 목회자들에게 창의성을 말살하는 슬픈 자화상이다. 왜냐하면 이런 보이지 않은 어둠의 요소들이 감독직책을 감리회의 최고의 자리로 여기게 하는 풍토를 암암리에 조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호칭이 인격, 존중과 자동비례한 줄로 착각하고 있다.대다수 교회가 그들을 세우기 위한 한갓 들러리로 매년 반 강제적인 연회에 참가한다면 억측일까?

셋째, 목회자의 대 내외적 품위를 떨어뜨리는 불의한 풍토와 감리회 내 위상을 실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자리 취하기를 좋아하고 탐닉하는 자들의 나눠 먹기식의 도식으로 점철된 현재 연회 감독제도로서는 절대 다수 감리회를 대표하는 리더라고 보기에는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데서 그렇다.따라서 이런 자리를 서로 돈과 밀실거래를 하지 않아도 되는 풍토를 조성하려면 목회자가 처한 자리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클로즈업 시킬 수 있는 각각의 탁월한 능력의 기회를 존중하고 제공하는 감리회를 디자인해야만 한다. 아울러 소수 사람들에게 집중되어 있는 교권을 분산 시키는 정책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역사의식이나 책임적인 삶은 고사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달변과 기교로 그 해당연회 헤게모니 쥐고 있는 자들의 노선에 얼마나 줄을 잘 서 있느냐가 관건인 현 제도의 한계성으로는 존경받는 지도자 세우기는 요원하다. 이렇게 각본대로 짜여진 선거전에서 다수득표 했다는 하나만으로 지도자라고 어느 날 우리 앞에 나타나 알지도 못한 그를 믿고 따른다는 불신을 불식하지 않고서는 하나님이 원하는 지도자상은 아닐 것이다.따라서 적어도 존중받고 감리회 다수의 본이 될 수 있는 새롭고 참신한 아젠다를 제시해야 할 때이다.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갈 지도자라면 더욱이 진정한 역사의 주역을 담당하는 큰 축이라 할 수 있는 존경받는 목회자의 위치에 있다면 그 인품이나 영성, 업무추진 할 수 있는 행정적인 능력, 그리고 무엇보다도 대내외 지도자로서의 역사의식을 갖추었는지를 오랜동안 검증받아야만 한다. 그런데 현재 연회제도로서는 이것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사료된다. 이는 한 때 정실인사 기용하던 케케묵은 잔재가 여전히 감리회안에는 기생하고 있음이 그 반증이다.

예컨대 특정인을 아는 측근의 사람들 몇 명이나 잘 지내고 잘 알까 그 외에는 별로 알리도 없고 절대 다수는 그런 사람 알려고 하는 관심도 없다는 사실에서 잘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연회와 감독제도를 폐지하고 그 후속책으로 지방회 조직을 확대 개편 함으로써 그동안 연회 일부 업무를 이관하는 동시에 아울러 필요에 따라 본부조직 역시 개편하여 주요 해당업무를 분장하도록 추진하는 혁명적인 듯 하나 창의적인 대안을 1차로 제기하는 바이다.

현실적으로 실행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주장하는 분들이 태반일지 모르나 똑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더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갖는 것은 시대에 뒤떨어진 후발 주자들이나 하는 몽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었으면 좋겠다.

하여 그런 희망의 날이 10년 후가 될지 20년 후가 될지 아니 우리 다음 세대들의 과제로 남겨질지 모를 일이나 반드시 작금의 시스템으로는 희망이 없다는 점에서 뼈를 깎는 자성과 함께 획기적인 개혁 방안이 지금이라도 주체적인 역량을 가진 분들의 중지를 모아 모색되어야만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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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신 (121.154.74.229)
2019-08-06 09:17:27
전 개인적으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타락한 감독과 그로인한 연회가 온갖 구설수와 불법에 시달린다 하여도 감리회하는 단체가 존재하는 한 감리사와 감독 그리고 감독회장은 필요하다 생각을 합니다.

감독과 연회로 인해 교회가 부흥이 되지 못한다는 지적은 감리회의 현실을 뼈아프게 합니다.

감독과 연회가 없어도 개교회가 어려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나 감독과 연회가 희망의 감리회는 커녕 불편한 존재로 자처하리만치 고통과 실망과 좌절을 안겨주고 있다는 사실 또한 너무도 안타까운 감리회의 현실입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목사로인해 교회가 어려움을 당하거나 또한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는 것은 얼마나 됩니까? 어느덧 목사는 교회의 불편한 존재가 된 것은 아닐까요?

그렇다고 목사가 필요없다고 할까요?
그렇다고 워치만니의 지방교회처럼 교회 제도를 바꿀까요?
진정 그렇다면 워치만니의 지방교회는 아무런 문제가 없음인가요?

타락해서 문제이지 필요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니 제발 선거를 잘 해야 합니다.
그러니 제발 돈에 마음을 빼앗겨선 안될 것입니다.
그러니 제발 돈으로 표를 사려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원하는 이가 있으니 돈을 줄 것이고 돈을 주려하는 이가 있으니 돈을 받는 것이겠지요. 돈이 곧 표수가 되는 현실이니 누군들 있는 돈을 스고 싶지 않겠습니까?
당선되면 투자했던 돈 이상의 것을 얻을 수 있으니 누군들 투자하여 당선되고 싶은 마음이 없겠습니까? ㅎㅎㅎ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있다면 목사가 필요한 것이며 감리회란 단체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면 당연히 연회나 감독이 필요한 것입니다.

자동차 사고로 사람들이 많이 죽는 다고 자동차를 부숴버릴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물론 세상을 등지고 산 속에 들어가 살 각오를 한다면 모르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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