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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왕의 왕, 예수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다니엘 11장 1절~27절)
김명섭  |  kimsubwa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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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7월 28일 (일) 15:53:46 [조회수 : 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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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왕의 왕, 예수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다니엘 11장 1절~27절)

 

0. 다니엘 11장 전반부 요약

 

다니엘의 본 네 번째 이상은 앞에서 살펴 본 이상의 반복이다. 바벨론, 바사, 헬라, 로마까지 이어지는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통치와 의의최후승리 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아의 도래를 증거 한다. 11장은 바사제국에서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B.C.175년~163년)의 출현과 몰락까지의 역사를 증거 한다. (B.C. 540년경 바사왕 고레스에서 예수님 오시기까지 약 500년간 신구약중간사) 이스라엘은 고대열강들(바벨론, 바사, 헬라, 로마)의 각축장이었다. 이스라엘의 멸망과 수난의 원인은 무엇인가? 왕 되신 하나님을 저버린 우상숭배의 결과다. 진짜 왕을 떠나서 다른 것들이 왕노릇하는 일을 당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어떻게 가능한가?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회복되어야 한다. 하나님을 다시 왕(히-메시아, 헬-그리스도)으로 모실 때 회복된다.

다니엘은 절망 중에도 믿음의 눈을 들어 보좌에 계신 이와 세마포 입은 이, 천군천사들의 활약 등 하나님의 통치와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눈앞에 현실은 무시무시한 열강들(바벨론제국, 바사제국, 헬라제국 로마제국)의 통치와 침략이 계속되지만 역사를 주관하시고, 통치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메시아, 왕)를 보내셔서 마침내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것은 약속하신다. 다니엘의 환상(믿음의 눈)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어느 시대, 어떤 상황이든 삶에서 경험하는 절망과 환란 가운데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증거하고 있다.

 

 

1. 낙심과 절망을 극복하려면

 

➀ (1절) “내가 또 메대 사람 다리오 원년에 일어나 그를 돕고 강하게 한 일이 있었느니라”

▶ 앞장에서 다니엘이 ‘큰 전쟁’에 관한 이상을 보고 두려워하고 낙심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열강들에 의한 무자비한 침공에 무기력했지만 그보다 더 절망스러운 건 이스라엘의 회복은 어느 때에 이루어지나? 길이 너무 멀다고 느껴졌기 때문이다. (왕하19:3) ‘아이를 임산하였으나 해산할 힘이 없도다’ 매에 장사 없고 긴병에 효자 없듯이 믿음의 사람도 환란이 크면 두려움을 느끼고 고난이 길어지면 낙심된다. 이런 낙심과 절망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 이전에 나의 삶에서 경험했던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해야 한다. 다리오 원년에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 굴에서 건져내셨다(단6:19~22) 굶주린 사자의 입에서 건져내신 하나님께서 열강들의 손아귀에서도 능히 건져내시리라.

 

② (2절) “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보라 바사에서 또 세 왕이 일어날 것이요 그 후에 넷째는 그들보다 심히 부요할 것이며 그가 그 부요함으로 강하여진 후에는 모든 사람을 격동시켜 헬라국을 칠 것이며”

▶ 낙심과 절망을 극복하는 또 하나의 길이 있다. ‘이제 내가 참된 것을 보이리라’ 오늘의 절망을 극복하는 또 하나의 길은 믿음의 눈을 들어 하나님의 통치를 바라봐야 한다. ‘보라’ 하나님의 구원을, 보라 하나님의 능력을...천사가 다니엘에게 전하는 예언은 B.C. 530년경 바사왕 고레스에서 예수님 오시기까지 향후 500년간에 장구한 역사(신구약중간사)를 기록한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눈앞의 현실만 보는 현미경‘이 아니라 ‘미래를 보는 망원경’이다. 눈앞에 현실에서는 열강들의 침략 아래 있지만 역사를 주관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마침내 이스라엘을 회복하심을 바라보라. ‘의의 최후승리’에 대한 ‘약속 믿고 굳게 서리라’ 말씀이 우리를 환란 가운데 굳게 세운다. 믿음은 인내(기다림)다. 진짜 믿음(신뢰)이 있으면 오래참고 견딘다. 믿음이 없으면 일희일비(一喜一悲)하고 조급하다.

 

③ (3절~4절)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이 일어나서 큰 권세로 다스리며 임의로 행하리라 그러나 그가 강성할 때에 그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 2절에 기록된 헬라국정벌에 나선 바사의 네 번째 부강한 왕은 크세르크세스(아하수에로)다. 헤로도토스의 ‘역사’(페르시아전쟁사, B.C 491년~449년, 42년간)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정벌하기 위한 2차 원정(영화 300, 스파르타 레오니다스왕 테르모필라이 협곡전투, 살라미스해전 등)을 벌였으나 실패하고 국력이 쇠퇴한다. ‘장차 한 능력 있는 왕’은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대왕(Alexander the Great B.C 336년∼B.C 323년) 약100년 후 그리스, 페르시아, 이집트, 인도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한다. 4절 ‘그 나라가 갈라져 천하 사방에 나누일 것이나’ ,알렉산더대왕의 급작스런 죽음으로 그의 휘하에 있던 네 명의 장군들(셀류코스, 프톨레미, 카산드로, 리시마코스)에 의해 네 개의 나라로 분열되었다. 그중 북방왕 셀류코스왕조, 남방왕 애굽의 프톨레미왕조가 강성하여 대립했다. 어디서? 유대 땅 이스라엘나라(성전)에서 언제까지? 예수님 오실 때 까지(로마제국 통치전) 약 300년 동안,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셀류코스왕조의 에피파네스의 성전모독과 마카비가문의 성전정화사건이다.

 

 

2. 북방왕과 남방왕의 전쟁

 

➀ (5절~9절) “남방왕은 강할 것이나 그 군들 중에 하나는 그보다 강하여 권세를 떨치리니...북방왕이 남방 왕의 나라로 쳐 들어갈 것이나 자기 본국으로 물러 가리라”

▶ 북방왕(시리아 셀류코스왕조 B.C 312년~134년까지 약 200년)와 남방왕(애굽 프톨레미왕조 B.C 323년부터 B.C 30년까지 약 300년) 약 200년 동안 5차 차례에 걸친 시리아전쟁을 치르며 대립한다. 북방왕들과 남방왕들 사이에서 벌어진 격전지가 레바논-팔레스타인지역(유대 땅)에서 벌어졌다. 이스라엘 나라와 민족은 열강들의 각축장이 되 버리고 만다. 그 원인은 하나님의 통치를 저버린 결과다. 세상의 왕들이 패권을 다투며 왕노릇 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 세상과 역사를 주관하신다. 아주 구체적인 역사를 기록한다.

‘남방의 왕은 강할 것이나’ 제1차 시리아 전쟁(B.C. 276-271) 남방왕 프톨레미 2세가 이 지역을 다시 탈환하고 시리아를 정복하였다. 남방왕 우세하의 무승부다. 6절 ‘남방왕의 딸과 북방왕과의 정략결혼’ 제2차 시리아 전쟁(B.C.260-253) 북방왕(안티오커스 2세)의 우세하의 무승부다. 8절~9절 ‘북방왕이 남방왕의 나라로 쳐들어 갈 것이나 자기본국으로 물러가리라’ 제3차 시리아 전쟁(B.C.247-241) 남방왕 프톨레미 3세 전성기 때 승리 유대 땅을점령한다.(B.C 197년) 강대국 사이에 놓인 이스라엘은 수탈과 전쟁이 끊이지 않았다. 왕 되신 하나님을 저버렸기 때문이다. 선지자 예언대로 하나님의 통치 곧 메시아(왕)를 고대하는 기간이다.

 

② (10절~16절) “그 아들들이 전쟁을 준비하고 심히 많은 군대를 모아서 물의 넘침 같이 나아올 것이며...그가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요 그 손에 멸망이 있으리라”

▶ 11절 ‘남방왕은 크게 노하여 북방왕과 싸우리라’ 제4차 시리아 전쟁(B.C.219-217) 북방왕 안티오쿠스 3세가 남방왕을 공격하여 유대땅 예루살렘은 북방왕 셀류코스왕조로 통치가 넘어간다. ‘그가 영화로운 땅에 설 것이요’ 영화로운 땅은 이스라엘 유대땅이다. 남방왕과 북방왕의 큰 전쟁의 격전지가 유대 땅이라는 사실이다. 히브리어로 ‘하르 메깃돈’(아마겟돈)이다. ‘므깃도의 언덕’이란 뜻. ‘주둔지’란 뜻. 북방 시리아에서 남방 애굽으로 내려갈 때 반드시 통과해야 할 교통의 요지, 전략적 요충지, 천혜의 요새로서의 특성 때문에 므깃도는 역사 이래 수많은 분쟁과 전쟁의 무대가 되었다. 유다 왕 요시야가 애굽의 바로 느고에 패하여 전사했던 곳(왕하 23:29-30; 대하 35:22)이다. 더욱이 에스겔 선지자는 곡과 마곡이 하나님의 백성과 전투를 벌일 장소(겔 39:1-6), 요한계시록에서 ‘아마겟돈’ 적대자들과 하나님의 군대와의 격전장으로 언급했다(계16:16) 아마겟돈은 단순한 지명이 아니라 의의 최후의 승리, 하나님의 통치와 영광이 나타나는 곳을 가리키는 은유다.

 

③ (17절~19절) “그가 결심하고 전국의 힘을 다하여 이르렀다가 그와 화친할 것이요 또 여자의 딸을 그에게 주어 그 나라를 패망 하려 할 것이나 이루지 못하리니 그에게 무익하리라”

▶ 제5차 시리아 전쟁(B.C.202-195) 북방왕이 총력을 다해 남방왕을 공격했다. 북방왕(안티오커스 3세)의 딸(클레오파트라)과 프톨레미 5세와 정략결혼을 시켜서 애굽을 속국으로 통치하려고 했다. 하지만 클레오파트라의 배신으로 남방왕 남편을 설득해서 지중해의 절대강자로 부상한 로마(포에니전쟁)와 동맹을 맺게 된다. 18절 ‘한 대장이 있어서...수욕을 그에게로 돌릴 것이므로’ 로마의 장군 스피키오와의 전투에서 참패한 북방왕은 고국으로 귀환하면 거액의 전쟁배상금을 지불하게 된다. 새로운 강자인 로마제국의 출현에 주목해야 한다.(세상에 영원한 강자, 영원한 제국은 없다. 바벨론-바사-헬라-로마-그리스도의 통치)

 

 

3. 대적자 에피파네스의 출현

 

➀ (20절~24절) 그 위를 이을 자가 토색하는 자로 ... 몇 날이 못되어 망할 것이요

▶ ‘그 위를 이을 토색하는 자는’ 안티오쿠스3세의 아들 셀류코스 4세다. 전쟁 배상금을 마련하기 위해 식민지 예루살렘을 수탈하다가 저항과 봉기로 살해당한다. 대적자 에피파네스의 출현을 기록한다. 둘째 아들인 안티오쿠스 4세 에피파네스는 14년간 로마에 볼모로 잡혀 갔다가 조카를 볼모로 잡히고 자신이 왕으로 등극한다. ‘비천한 사람’, ‘궤휼로 나라를 얻을 것이며’ 에피파네스의 계략과 모함, 술수와 모략으로 왕위를 얻은 인품을 드러낸다.

(* 신실하신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으면 비천한 자의 통치를 받는 노예가 된다. 하나님의 말씀을 섬기지 않으면 돈의 노예, 쾌락의 노예, 명예의 노예로 전락하게 된다)

 

② (25절~27절) ‘그가 그 힘을 떨치며 용맹을 발하여 큰 군대를 거느리고 남방왕을 칠 것이요 남방 왕도 심히 크고 강한 군대를 거느리고 맞아 싸울 것이나 능히 당하지 못하리니’

▶ 제6차 시리아 전쟁(B.C170 ~ B.C 168) 안티오커스 4세 에피파네스가 큰 군대를 일으켜 남방을 공격하고 ‘자기의 진미를 먹는 자’ 프톨레미 6세의 측근들을 모략으로 속여 내란에 빠뜨려 남방왕을 포로로 삼는다. 하지만 ‘깃딤의 배들’ 신흥강자 로마제국의 개입으로 다시 본국으로 돌아간다. 승전으로 교만해진 에피파네스는 돌아가는 길에 유대땅 예루살렘에서 성전모독과 엄청난 박해를 저지른다. 이런 역사적 배경을 기록한 책이 외경 마카베오 상하다. 제사장 마타디아와 그의 아들들의 저항과 박해, 순교와 배교 그리고 천사 미가엘의 도움으로 마침내 승리하는 역사를 기록한다.

 

③ (10:1) 그 일이 참되니 곧 큰 전쟁에 관한 것이라 다니엘이 그 일을 분명히 알았고 그 이상을 깨달았느니라...(10:14) 내가 말일에 네 백성의 당할 일을 네게 깨닫게 하러 왔노라...(11:2) 이제 내가 참된 것을 네게 보이리라’ * 구체적인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 다니엘이 본 이상에 대한 천사의 자세한 설명이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신구약중간기(헬라제국~로마제국, 예수님오시기까지 예언이 없는 암흑기) 여전히 역사 속에서 감찰하시는 역사의 주관자 되신 하나님의 통치를 증거하고 있다. 다니엘을 통해 절망 중에도 믿음의 눈을 들어 보좌에 계신 이와 세마포 입은 이, 천군천사들의 활약 등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하고 있다. 눈앞에 현실은 열강들의 끊임 없는 전쟁의 소용돌이에서 희생양으로 전락했지만 역사를 주관(통치)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 마침내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것은 약속하신다. 다니엘의 환상(믿음의 눈)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삶에서 경험하는 절망과 환란 가운데 있는 모든 성도들에게 동일한 메시지를 증거 한다.

▶ 왜 이 지경이 되었나?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 이스라엘 나라(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성전)가 왜 고대열강들의 각축장(놀이터)가 되었나? 군사력, 힘이 없어서가 아니다. 대적자가 강해서도 아니다. 이스라엘의 멸망과 수난의 원인은 무엇인가? 왕 되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다른 것을 하나님처럼 섬긴 우상숭배의 결과다. 한마디로 왕(헬-그리스도, 히-메시아)이 없기 때문이다. 소금이 땅에 버려져 밟히는 이유는 맛을 잃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회복은 언제, 어떻게 가능한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성전)을 회복할 때, 왕(그리스도, 메시아)이 다시 오셔서 통치하실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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