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교계
한독연합예배에 초대된 평화의 소녀상2019 독일 개신교의 날 참석 이후
추용남  |  목사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9년 07월 09일 (화) 01:08:03
최종편집 : 2019년 07월 14일 (일) 00:11:35 [조회수 : 178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 한독예배에 초대된 「평화의 소녀상」

필자가 섬기는 「기독교복흠한인교회」는 기독교재독한인교회협의회에 속한 초교파 교회이다. 50년 전 독일에 광부와 간호사로 독일 땅에 와서 살아가는 디아스포라 한인사회에 뿌리를 내린 교회이다. 독일교회인 ‘Melanchtonkirche 멜란히튼교회’는 한인교회 50년의 역사의 선한 이웃이자 좋은 친구로서 두 교회는 1년에 두 번씩, 한독연합예배를 드린다.

이번 7월 7일 한독예배는 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모였다. 「Der Friede des HERRN, 주님의 평화 - 참된 평화」를 주제로 모인 이 예배에 지난 6월에 Kirchentag Dortmund 개신교회의 날 행사에 전시되었던 「평화의 소녀상」을 초대했기 때문이다. 이번 한독예배는 필자가 설교할 차례였지만, 독일인이 바라보는 「평화의 소녀상」이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서, 독일인 목사인 Pfr. Martin Röttger 뢰트거 목사에게 양보했다.

뢰트거 목사는 에스겔서 37장1-14절을 본문으로 말씀을 증언했다. 그는 선지자 에스겔이 보고 있는 마른 뼈 골짜기의 환상을 한 장의 그림(예술작품)으로 보고 그 그림이 이스라엘의 현실로 들어가는 문이 되어준다고 했다. 마찬가지로 평화의 소녀상은 일본군 성 피해자 할머니들과 관련해 역사와 고통의 현실로 우리를 이끈다고 말했다.

“Ezechiel erzählt. Und indem er erzählt, malt er uns ein Bild vor Augen, das wir nie wieder vergessen werden: das Bild ist wie eine Tür zu der Geschichte, die dahinterliegt. Was Ezechiel hier schafft ist ein Kunstwerk. Ein gutes Kunstwerk ist wie eine Tür zur Wirklichkeit. Was wir vor Augen sehen, mag uns an Hieronymus Bosch erinnern, ein Maler des 16. Jahrhunderts, der in seinen apokalyptischen Visionen erstaunlich modern ist und damit die Angst und den Schrecken seiner Zeit darstellte. Oder wir denken an Bilder des 20. und 21. Jahrhunderts. Das sind Fotos, reale Abbilder der Realität, die uns umgibt. Unsere Zeit scheint die Realität, die Ezechiel beschreibt, eingeholt zu haben: die Schlachtfelder des Ersten, des Zweiten Weltkrieges, des Vietnamkriegs, bis hin zu den Kriegen in diesen Tagen in Syrien und Jemen und anderswo. Wir sehen tote, wir sehen fliehende Menschen. Die Toten im Mittelmeer, das zu einem riesigen Friedhof geworden ist, sehen wir nicht. Sie verschwinden für immer. Und dann über all dem die Stimme Gottes: Und er sprach zu mir: Du Menschenkind, meinst du wohl, dass diese Gebeine wieder lebendig werden? Und ich sprach: HERR, mein Gott, du weißt es.”

에스겔은 말합니다. 그리고 이야기를 통해서, 그는 우리 눈앞에 우리가 다시는 잊지 못할 한 장면을 그려 냅니다: 이 장면은 그 배후에 있는 역사 속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문과 같습니다. 에스겔이 이곳에서 한 것은 하나의 예술작업 입니다. 하나의 뛰어난 예술 작업은 실재 속으로 들어가는 하나의 문과 같습니다. 우리가 우리 눈앞에서 보았던 것은 16세기 네덜란드 화가인 Hyeronymus Bosch(히로니뮈스 보스)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의 묵시적인 환상들은 놀랍도록 현대적인데, 그것을 통해서 그는 자신의 시대의 두려움과 끔찍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또한 우리는 20세기나 21세기의 그림을 떠올립니다. 그것은 사진들인데, 우리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 대한 현실적인 모사들입니다. 우리의 시대는 에스겔이 묘사하는 현실을 따라 잡은 것처럼 보입니다: 1, 2차 세계대전, 베트남전쟁, 오늘날의 시리아, 예멘 그리고 곳곳의 전쟁들의 끔찍한 현실들. 우리는 죽음을 바라봅니다. 우리는 난민들을 바라봅니다. 하나의 거대한 공동묘지가 되어가고 있는 지중해에서의 죽음을 우리는 외면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영원히 사라진다는 것을.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의 음성이 울려 퍼집니다. 그가 내게 물으셨다. “사람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내가 대답했다. “주, 하나님, 주님께서는 아십니다.”

.... 중략 ...

"Das Bild, das Ezechiel malt, erinnert mich auch an die Schicksal der Frauen, für die die Mädchenstatue steht, die auf dem Kirchentag auf Zeche Zollern in Dortmund zu sehen war und die wir heute in unserer Mitte haben. Da vorn, in der ersten Reihe sitzt sie."

에스겔이 묘사하고 있는 이 장면은, 저로 하여금 그녀들을 위해 이 소녀상이 세워진 여성들의 운명을 떠올리게 합니다. 교회의 날 행사 때 도르트문트 Zeche Zollern에서 봤었고, 그리고 오늘 우리의 한가운데에 함께하고 있는 이 소녀상 말입니다. 그녀는 여기 앞에, 첫 번 째 줄에 앉아있습니다.

... 중략 ...

"Dass die Opfer der Kriege nicht vergessen werden, liegt an uns. Darum führt uns der Prophet auf das Feld der Toten, damit wir sie nicht vergessen. Darum kann der Prophet nicht schweigen."

전쟁의 희생자들이 잊혀지지 않게 하는 것은 우리의 몫으로 남아있습니다. 선지자가 우리를 죽음의 계곡으로 이끌고 간 것은, 우리가 그 죽음들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 Pfr. Martin Röttger 뢰트거 목사의 설교 중에서

   
 

 

따로 마련된 공간에서 주일학교가「평화의 소녀상」의 모형에서 얻은 평화의 영감으로 나비를 만드는 활동을 했고, 한독예배 마지막에 이르러 한독예배에 초대된 소녀상에게 나비를 전달하는 퍼포먼스도 있었다.

필자와 뢰트거 목사는 중보기도를 통해서, 한인교회와 독일교회가 진정한 이웃과 좋은 친구로 밝은 미래를 열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이며, 동시에 기쁨과 고통, 그리고 기억을 함께 나누는 하나님의 사명이라고 기도했다. "Diese Gemeinschaft ist ein großes Geschenk. Und sie ist zugleich eine Aufgabe, die du uns stellst: dass wir Freude und Leid miteinander teilen und auch Erinnerung. Wir sind heute Morgen in diesem gemeinsam Raum des Erinnerns beisammen."

필자는 한국말로 「우리는 참된 평화를 원합니다. 우리가 ‘평화의 소녀상’과 함께 예배하는 이유입니다. 소녀상은 부끄러움과 수치를 벗어버리고 세상으로 나온 일본군성피해자 할머니들입니다. 그분들은 역사적 진실이 밝혀지기를 원합니다. 가해자의 진정한 사죄와 반성을 원합니다. 그에 합당한 보상이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 아직은 그분들이 살아계실 때에, 그분들이 원하는 것을 이루소서! 그것으로 참된 평화가 시작되게 하소서! 주님,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소서!」라고 기도했고, 뢰트거 목사는 이것을 독일말로 번역해서 기도했다.

참여한 한인교인들과 독일교인들이 손을 잡고 원을 만들어 평화를 노래하고, 함께 교회 앞 공터에 마련된 큰 걸개에 나비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한독예배를 마감을 했다.

 

   
 

 

   
 
   
 
 
   
▲ 필자와 뢰트거 목사
 
 
   

 

   
▲ 참여한 한인과 독일인 주일학교가 함께 나비를 만들었다.
   
 
   
 
   
 

 

   
▲ 큰 걸개 그림에 나비를 그리다.

 

   
▲ 할머니들의 이름이 적혀진 걸개와 초대된 소녀상
   
 
   
 
   
▲ 할머니들의 이름이 적혀진 걸개
   
 
   
 

 

[관련기사]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2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1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김경환 (222.100.38.174)
2019-07-09 05:57:24
'소녀상교(敎)'가 불교와 기독교보다 고급 종교?(네티즌 무학산의 글)
우리는 일찍이 ‘소녀상敎’가 생길 것이다고 주장했다. 마침내 소녀상교가 생겼으니 그 동상에 침을 뱉었다하여 모욕죄로 다스리려 한다. 소녀상교가 종교보다 더 높은 종교가 아닐 수 없고, 북한의 김일성교와 버금가게 되었다.

부처를 보고 침을 뱉어도 모욕죄를 씌우지 않고 예수를 향해 눈을 부라려도 무탈하지만 소녀상에 침을 뱉으면 모욕죄로 처벌되니 소녀상교는 불교와 기독교보다 고급 종교인 것이다.

서울 시내에서 김일성 만세를 불러도 괜찮아야 민주주의라고 우겼던 자들이 한낱 구리로 빚은 무정물(無情物)에 침을 뱉았다 하여 처벌한단다. 하나하나 북한을 따라가고 있고 국민 의식을 착착 북한화하고 있다.
리플달기
2 8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