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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의 오류와 '축자영감설'마가복음의 문자적 오류
신성남  |  sungnamshin@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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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7월 07일 (일) 15:52:10
최종편집 : 2019년 07월 09일 (화) 21:35:25 [조회수 : 2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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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수 개신교 보수 교단들은 '축자영감설'을 절대적인 신조로 고수하고 있다. 하나님의 특별한 영감으로 성경 원문에는 단 한 글자는 물론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다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다만 사본상 필사의 실수나 편집 또는 번역상의 오류만을 부분적으로 인정하는 입장이다.

사실 성경에 그 어떤 사소한 오류도 없고 그것이 온전히 무오하다면 그건 정말 좋은 일이다. 나 역시 내 손에 들고 있는 성경이 적어도 원전에 있어서는 100% 완벽하다고 믿어온 사람들 중에 하나다.

그럼에도 나는 "진실은 결코 진리를 배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기에 여기서 성경 본문의 몇 가지 문자적 오류에 대하여 아무런 편견 없이 정직하게 논하고자 한다. 축자영감설은 구호만 열심히 외친다고 성립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십자가 옆 두 강도의 모순(막15:32)

우리는 흔히 예수님의 십자가 옆에 다른 두 강도가 있었는데 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비방하고 반대로 다른 사람은 예수를 믿은 것으로 알고 있다.

누가복음이 이를 잘 설명한다. "달린 행악자 중 하나는 비방하여 이르되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 하되(눅23:39)"로 되어 있고, 다른 하나는 "이르되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 하니(눅23:42)"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마가복음과 마태복음은 전혀 다르게 말하고 있다. 거기엔 두 강도 모두 예수를 욕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마가복음엔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막15:32)."고 되어있다. 마태복음은 좌우에 못 박힌 강도가 둘인데(마27:38)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강도들도 이와 같이 욕하더라(마27:44)."고 설명한다.

이처럼 같은 공관복음에서조차 동일한 사건을 아주 다르게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과연 글자 하나 또는 토씨 하나까지 간섭하여 영감하셨다면 이런 명백한 모순이 기록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막2:26)"도 저자의 오류

마가복음 2장에서 다윗이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은 건 제사장 '아비아달' 때가 아니라 그의 아버지인 '아히멜렉' 때였다(삼상21:1-6). 사무엘상에는 분명히 "아히멜렉이 떨며 다윗을 영접"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 아히멜렉 제사장이 직접 영접하여 진설병을 주었는데 그것을 아들인 아비아달 제사장 때라고 굳이 바꾸어 기록할 이유는 전혀 없다.

이 때문에 현대의 많은 주석가들이 고심하며 여러가지로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고 해명하려 하지만 이는 저자의 오류 외에 다른 사유로 설명하기는 힘들다. 이 구절 역시 성경 본문 자체가 스스로 모순적으로 충돌하는 것이기에 별도로 다른 증명이나 증거가 필요 없다.

더구나 이와 유사한 오류는 마태복음에도 있다. "이에 선지자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이 이루어졌나니(마27:9)"라고 말했지만 이는 사실 '예레미야'가 한 말이 아니라 '스가랴'의 기록이다(슥11:12).

설상가상으로 구약 성경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바뀐 구절도 있다. 사무엘상23:6에서는 아비아달이 아히멜렉의 아들이지만, 사무엘하8:17에서는 아히멜렉이 아비아달의 아들이다. 게다가 이런 틀린 서술이 역대상에도 반복된다(대상18:16). 이는 그것이 단지 일회성 필사 오류가 아니라는 걸 보여준다.

이것 외에도 신구약 성경 전체엔 적지 않은 자체 모순적 오류가 있다. 오죽하면 성경에서 오류를 찾아내는 건 "식은 죽 먹기 만큼 쉽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축자영감설은 무당영감설의 아류

우리는 교회 역사 속에서 무수히 많은 인물들을 만난다. 그들 중엔 왕, 선지자, 제사장, 사도, 교부, 교황, 사제, 교사, 목사, 그리고 장로가 있다. 하지만 오류가 없던 사람은 거의 드물다. 다시 말해서 인간이란 존재 자체가 본래 다분히 제한적이며 오류 투성이인 것이다.

성경은 인간사다. 그리고 성경은 모두 인간을 통해서 기록된 것이다. 그러니 거기엔 당연히 부분적으로 인간의 실수도 있고, 실패도 있고, 약함도 있고, 그리고 오류도 있다.

물론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유일한 특별계시다.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도 맞다. 하지만 하나님은 로봇이나 무당을 통해 진리를 계시하지 않으셨다. 그럴 거라면 차라리 하늘에서 제본된 책 한 권을 직접 땅으로 던지셨을 거다.

'축자영감설(Verbal Inspiration)'은 2000년 신학 역사상 최고의 거짓말이다. 명백히 틀린 걸 맞았다고 주장하는 건 진리가 아니다. 차라리 '개념영감설(Concept Inspiration)'이나 '사상영감설(Thought Inspiration)'을 주장했다면 오히려 더 설득력이 있을 것이다.

장신대 김명용 총장은 "자유주의 신학의 발달과 더불어 성서 비평학이 힘을 얻자, 성경의 오류가 속속 드러나가 시작했다"고 증언했다. 비록 축자영감설을 유기적 영감설이니 어쩌니 하며 아무리 아름답게 포장하더라도 그건 결국 기계적 영감설과 크게 다를 게 없다.

인간 자체가 본래 오류가 있는 제한적 존재인데 만일 거기서 정말 모든 '사소한' 오류까지 완전히 제거하려면 결국 로봇처럼 기계가 되거나 신들린 무당이 되는 수밖에 더 있겠는가. 성경 속 모든 문자의 절대적 무오를 주장하는 축자영감설은 결국 무당영감설의 아류일 뿐이다. 그것은 중세판 교황무오설만큼이나 시대착오적 억지다.

나는 여기서 복잡한 신학적 논쟁을 하자는 게 아니다. 그냥 상식적 검증을 하자는 거다. 누구라도 좋다. 축자영감설을 진정 설득력 있게 주장하려면 적어도 위에 지적한 성경 본문의 지극히 간단한 '문자 오류'들을 먼저 명쾌하게 설명해보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학교 어린 초등생이라도 그 축자영감설이란 신화에 결코 승복하지 못 할 것이다.

진실에 눈 감으면 진리는 왜곡된다.

신성남 / 집사, <어쩔까나 한국교회>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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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59.15.221.173)
2019-07-16 12:44:46
성경무오설은
x기독교 교리 가운데서도
최악의 교리이죠.
벌코프 교리신학 읽으면
성경이 죄다 해석되는데
먹사들이 공부할 이유가 없지요.
그 밑에서 신앙과 믿음을 배우는
성도들이란 분들은
전후좌우가 구분이 안되어
빤스 벗으라 하면 벗고
집문서 내놔라하면 내놓고
태극기에 성조기는 기본이요
이스라엘 깃발과
일장기까지 들고
광화문을 휘젖고 다니지요.
아주 유치찬란 합니다.
기독교인 천만?
백만이 아니라 십만으로 줄어야
제대로된 기독교 모양
갖추게 되겠지요.

그래도 신성남 님의 고군분투에
경의를 보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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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19-07-16 16:49:56
축자영감설 등을 신뢰하지는 않지만...

어느 누가 문재인 신통방통 교주를 졸졸 따라다닌다고 하여 비판은 할 수 있어도 그의 선택이라면 그건 어쩔 수 없지요. 이미 죽어버린 온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 그 무신 공산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다음에야 다른 사람이 말릴 도리가 없지요. 죽은 자식 불알이라도 만지겠다는 걸 어떻게 막아요.

지금도 천동설을 믿는 사람이 있고, 미국의 경우 근본주의적 개신교가 활개치고 있지요. 이들을 아무리 비판해봐야 이들은 “배째라!”라고 믿는 데 누가 뭐랄 거요. 한국도 이미 죽어버린 성경무오설을 붙들고 끝까지 가겠다는 데 제3자가 뭐라고 해도 소용없을 거요. 거기다 북한은 주체교를 믿는다고 난리를 치고 있소이다. 강경이슬람교는 성전을 벌이다가 죽으면 처녀 70명이 천국에서 기다리고 있다고 죽음을 독려하고 있소이다.

죽은 사회주의를 붙들고 거기에 미쳐있는 문재인 따위나 성경무오설로 성경을 붙들고 거기에 미쳐있는 먹사 따위나 둘 다 미친놈처럼 널뛰며 경쟁하고 있는 데 제풀에 지쳐서 스스로 포기할 때까지 누가 뭐라고 비판해도 통하지가 않을 거요. 똑같이 미친 듯이 널뛰고 있으면서 상호비방을 해대니 봉숭아학당이 따로 없소이다. 배꼽을 잡고 웃습니다. 하하하... 하고

그러니 너무 비관하지 맙시다. 여기에는 레닌에게 뿅간 사람, 저기에는 한국먹사에게 뿅간 사람, 또 다른 곳에는 천국에서 기다리는 처녀70명에게 뿅간 사람, 그것뿐만 아니라 지구의 역사가 6000년이고 천동설이 맞는다는 미국먹사에게 뿅간 사람, 80년이나 쌀밥에 고깃국과 기와집을 떠벌이는 주체교에 뿅간 사람도 있으니까요 ...

이 세상은 사기당할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들로 넘쳐나는 데... 여기도 뿅간 사람, 저기도 뽕간 사람 천지에서 한국먹사 역시 숟가락 하나 더 얹어 놓은 것밖에 안되지요. 이렇게 보면 세상은 요지경이고 나 역시 불완전한 인간이니 이것도 요지경인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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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인구 (59.15.221.173)
2019-07-15 22:20:28
성경은 믿으라고 주어진 것이 아니라
연구하라고 주어진 것이지요.
아직도 한국교회는 이 빌어먹을
성경무오류설 같은 걸 믿으라고 합니다.
아예 한국인이 정신을 차리게 하려면
경제가 폭 망해야 한다는
(개독)교인들의 수준인 게죠.
아마 기독교는 그 세력이
지금의 십분의 일보다도 작아져야
조금 정신을 차리고
가라지는 흩어지고
알곡들만 남을지도 모르죠.
아직 멀었죠.
성경을 문자 그대로 믿으려 하는
무지몽매한 기독교인들...
깜깜합니다.
워낙 목사들이 무식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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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59.15.221.173)
2019-07-15 22:46:31
[태극기 집회 참가자] "일본이라고 엄청 싫어했다고. 근데 지금은 일본이 예뻐. (현 정권이) 반일감정 앞세워 가지고 정치를 한단 말이야"(유튜브 보세요?) "지금 요 방송하는 거"

[태극기 집회 참가자] "반도체로 저걸로 그치면 안 돼. 망해야지 문재인이 내려오지. 일본이 지금 잘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나라는 망해야 됩니다. 숨이 깔딱깔딱할 때까지 죽어야 돼. 경제가 죽어야 돼. 일본 식민지 돼봐야 돼"

취재진은 뉴스라는 이름의 이런 거짓말이 가장 활발하게 유통되는 경로가 교회 교인들의 단체 카톡방이라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이런 거짓말이 가장 활발하게 유통되는 경로가 교회 교인들의 단체 카톡방이라는 사실!

성경을 문자적 사실로 믿으려는 그 우매함의 결과로!!!
먹사들의 수많은 거짓말에 세뇌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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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19-07-16 04:27:37
신통방통 부적이나 찾고 나자빠진 남편이 무능하니 홧김에 서방질하는 여편!

집구석에 쌀이 다 떨어져 가는 데... 동학농민 수천 명이, 1894년 11월 충청도 우금치에서 총알이 피해간다는 신통방통 부적을 몸에 붙이고 자신감에 넘쳐 무모하게 일본군 겨우 200명을 향해 그대로 돌진하다가 전부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신통방통 부적은 전혀 효험이 없었던 거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문재인이 나누어준 신통방통 부적을 마빡에 붙이고 우리보다 덩치가 3배나 큰 일본을 향해 돌진하는 용감무쌍한 <토착조선인>이 넘쳐나는 데...

집구석에 쌀이 다 떨어지지 않도록... 자기 식구들을 알뜰살뜰하게 챙겨주는 다른 남정네에게 눈길이 가서 홧김에 서방질하는 여편은 무지몽매한 게 아니고, 정신적으로 타락한 거다. 아베는 일자리도 많이 만들어 식구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데 문재인은 신통방통 부적이나 마빡에 붙이고 다니니까 욱하여 돌아버린 여편이 남세스럽다고 아베 칭찬할 정도로 머리가 돌아가는 데 이건 무지몽매한 게 아니다.

동학이니 국채보상운동이니 하며 신통방통 부적이나 찾고 나자빠진 문재인 일당이 아베 칭찬하는 여편 일당 보다는 더 우매한 거다. 100년이 지나도 신통방통 미신 부적이나 마빡에 붙이고 다니는 우매한 짓을 역성드는 사람은 또 뭔가? 나라가 어지러우니까 온갖 미신이 난무하고 홧김에 서방질하기도 하는데 거기다가 무엇이 더 우매한지도 모르는 사람까지도 설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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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59.15.221.173)
2019-07-16 06:13:22
<토착조선인>이란 표현을 보니 <토착왜구>인게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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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19-07-16 09:47:57
‘토착조선인’은 최근에 ‘토착왜구’와 ‘토착빨갱이’ 그리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토착중간이’로 分化되어 있다고 본다면...

나는 차라리 ‘토착왜구’가 될지언정 ‘토착빨갱이’가 되지는 않으련다. 토착빨갱이들이 나라를 말아먹고 있는 지금에는... 왜냐? 나는 마빡에다 신통방통 미신부적이나 붙이고 김정은 수석대변인인 문재인을 졸졸 따라다니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으니까... 그래서 하는 짓이 좀 못마땅하더라도 문재인보다는 덜 못마땅한 反문재인 기치를 내건‘토착왜구’에게 박수치련다. 21C에도 여전히 마빡에 신통방통 부적이나 붙이고 있는 데 이 코미디 난리에 속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다.

무릇돌님이 언급한 <먹사>를 따르는 <우매한 교인>보다는 오히려 <신통방통 교주>를 따르는 <토착조선인>이 더 한심하고 우매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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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59.15.221.173)
2019-07-16 12:38:34
대단허셔~.
머 전봇대로 이빨을 쑤시든
맨손바닥으로 뒤를 닦든
그대 맘대로 허셔.
그래도 남의 댓글에 머 할라고
퇬글을 다시나?
헐일이 매우 없으신게벼.
광화문 천막 지키러 가셔야지
태극기 들고 성조기도 들고
일장기도 함께 들고 말이여.
폼날겨.
그려. 폼나게 살아야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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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19-07-16 12:55:11
광화문에 갈 사람은 가도 난 안가요!

거기 사람들도 꽉 막힌 사람들 많아요. 그래도 문재인 신통방통 교주 쪽보다는 조금 나은 곳인데... 딱 한번 갔다가 졸다가 왔소이다. 反문재인세력이 광화문에만 있다고 보는 건 착각이요. 그쪽 아니어도 反문재인은 많으니 걱정은 붙들어 매시고 한국은 다양한 사회라는 사실을 망각한 채 그곳에만 반문재인세력이 있다고 그쪽으로 가라고 하는 단순 무식함에 놀랐소이다. 그런 단순 무식함이 철철 넘쳐나니 문재인이 던져주는 신통방통 미신부적에 뽕하고 가는 사람들이 넘쳐나지요. 참으로 웃기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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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59.15.221.173)
2019-07-16 15:13:53
설마 했는디
가긴 갔었네뷰.
그래도 졸다가 그냥 오셨으니
다행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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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릇돌 (59.15.221.173)
2019-07-15 22:36:01
베뢰아의 유대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의 유대 사람들보다 더 고상한 사람들이어서, 아주 기꺼이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이 사실인지 알아보려고,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였다.<사도행전 17장 11절, 새번역>
Now the Bereans were of more noble character than the Thessalonians, for they received the message with great eagerness and examined the Scriptures every day to see if what Paul said was tr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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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19-07-13 10:39:07
신성남 집사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들께,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신성남 집사는 '말씀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자기 견해를 표명'했습니다. 어느 누구에게 강제로 자기 의견을 받아먹으라고 강요한 적도 없습니다. 신성남의 주장에 대해 신성남의 코를 납작하게 만들 증거로 반론을 제기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봅니다.

저의 경우 신성남의 견해에 대해 대충 75% 정도는 공감하고, 25% 정도는 공감하지 않습니다. 저 역시 공감하지 않는 부분에 대해선 신성남을 거세게 몰아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는 가운데서 제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도 알게 되고, 반대로 저 사람은 이런 면에서 무척 약하구나 하면서 反面敎師로 여기면서 나름대로 공부를 하게 됩니다. 저로서는 경청할 부분이 있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합니다. 신성남이가 뭐라 떠든다고 그에 따라 내 믿음이 흔들린다면 그건 믿음 축에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왜냐구요? ‘성경상의 일부 지엽적인 충돌’을 알면서도 ‘성경상의 근본취지’를 믿기 때문입니다.

저는 신성남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분들과 이러한 점에서 의견을 달리합니다.

첫째, 만일 신성남의 주장이 잘못되었다면, 잘못되었음을 증명하여 이 게시판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신성남의 주장이 억지라는 것을 알게 하면 된다. 신성남이 엉터리였음을 밝히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본다. 신성남이 완전 바보된 거다. 완전 바보 된 사람에게 항복문서까지 요구하는 건 지나치게 가혹한 처사다.

둘째, 열린 게시판이라면 누구든지 다양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한다. “나는 당신이 하는 말에 찬성하지는 않지만, 당신이 그렇게 말할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서라면 내 목숨이라도 기꺼이 내놓겠다.”<볼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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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
염현경 (125.143.17.4)
2019-07-13 09:43:09
신집사님의 공개적인 답변을 부탁합니다.
본인은 신집사님께서 축자영감설에 대한 근거로 제시한 성경 구절들을 본 뒤, 그것에 대한 댓글을 190711일에 달았습니다. 본인의 댓글을 보셨습니까? 확인하신 뒤, 신집사님의 공개적인 답변을 보고 싶습니다.

1) 축자영감에 대한 것은 각자의 취사선택이니 논외로 합니다.

2) 그러나 신집사님이 축자영감이 틀렸다고 하면서, 그 근거로 제시한 성경의 몇 구절을 신집사님의 주장에 대한 근거로 제시하셨습니다. 그러나 본인의 주장은 신집사님께서 그렇게 주장하는 것은, 그 성경 구절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나온 결론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런 이유에서 신집사님의 그런 주장은 잘못되었다고 하는 것이 본인의 생각입니다. 본인이 주장하는 것에 대한 답변을 부탁합니다.

3) 만약에 본인의 주장이 맞고, 신집사님의 주장이 틀린 것이라고 한다면, 깔끔한 공개적인 사과를 부탁합니다. 지금도 신집사님의 글이 오도되고 있고, 댓글 순위 1위에 오르고 있는데, 내심 그런 류의 것들을 즐기시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신집사님의 글에 대한 사과와 더불어 그 글을 삭제해 주시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본인이 왜 이렇게까지 요구하는 것이냐? 신집사님이 주장하는 현재의 내용은 매우 심각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평소에 신집사님의 주장들이 맞는 것들도 있지만, 신집사님이 주장하는 많은 내용들이 보는 이들에게 상처를 주고 있으며, 마음들을 불편하게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나아가 본인은 신집사님의 주장들 때문에 당당뉴스 조차 보고 싶지 않을 정도입니다.

부디 본인의 주장을 확인하시고, 평소에 신집사님이 강한 주장들을 해 왔듯이, 그 결과를 깨끗하고 깔끔하게 공개 표명 해 주시길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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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0
신성남 (49.50.206.22)
2019-07-13 11:43:37
x염현경님, 귀한 의견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성경 오류나 난제에 대한 반론은 저도 전부터 많이 보아온 내용입니다. 다만 그 중에 상당수는 지나친 가정이나 전제를 조건으로 한 반론이기에 그게 정답이라고 동의하지 못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그런 반론에 대해 제가 일일이 논박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아마 독자들께서 양측 견해에 대해 객관적인 판단을 하시리라 믿습니다.

사실 지면 제약상 이번에 많은 내용을 충분히 올리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기회가 된다면 다음 글에 축자영감설에 대한 추가 쟁점들을 좀 더 다루고자 합니다.

아무쪼록 다음에도 아낌없는 질책과 좋은 의견 많이 주시기 바랍니다.^^ 샬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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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
최재석 (122.35.176.192)
2019-07-12 09:31:23
네 개의 복음서가 각각 다른 것을 생각하면 문제가 쉽게 풀립니다.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이 다르고 공관복음서 3권도 조금씩 다릅니다.
축자영감설에 따르면 다르면 안 되겠죠. 지금 우리는 기록자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그것도 기록자가 자기가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쓴 것이 아니고 전승을 참고했다는 것이죠. 그렇다면
성경에 나오는 상충되는 기록에 대해서 왈가왈부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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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0
김경환 (222.100.38.174)
2019-07-12 19:26:25
- 역사는 승자의 관점에서 기술되는 것이 허다하고 패자의 관점은 野史에서 그 편린을 엿볼 수 있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 -

얼마 전에 예수님 당시의 유태인들의 유골을 바탕으로 예수님을 추정한 모습을 컴퓨터시뮬레이션 하였더니 까만 곱슬머리에, 약간 둥근 코, 통통한 갈색얼굴이 나왔더군요. 통상적으로 우리가 그리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과는 전혀 상반되었습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예수님의 모습을 로마제국의 정신이 투영된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겁니다.

예수님의 모습과 마찬가지로 성경도 그렇다고 봅니다.

신약성경을 집대성(편집)할 때 로마제국의 구미에 맞는 것만을 골랐다는 사실도 추가해야 될 것 같군요. 마리아 복음서, 예수님의 일상생활 관련 복음서, 영지주의적 관점의 복음서 등이 분서갱유로 사라져버렸습니다. 공관복음서는 철저하게 로마제국의 관점에 맞는 것만을 채택했으니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 중 半도 안 되는 것만으로 갑론을박을 벌인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최재석 선생님의 의견에 동감하면서 위 두 가지 의견을 추가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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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19-07-12 08:17:38
고인 물은 썩는다!
성경에 대해 이런저런 의문을 제기하는 걸 불편해하는 사람이 많은 걸로 알고 있다. 신성남類가 제기하는 의문을 정직하게 분석해보고 신성남類가 제기하는 의문이 맞는다고 하더라도 그런 것쯤은 뛰어넘어 하나님을 믿는 것이 제대로 된 믿음이라고 확신한다.

하나님은 성경해석권을 '특정인에게만' 부여한 적이 없다. 축자영감설 운운하며 성경해석 기득권을 제멋대로 先占한 자들이 가르친 대로 따른 결과는 교회의 타락이었다. 그렇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가? 하고 묻는 건 상식적이고 건전한 거다.

즉 똑 같은 내용을 의심 없이 앵무새처럼 무한 반복한 결과는 기독교의 타락이었다. 지금 제대로 된 목사가 몇이나 있으며, 제대로 된 교회가 몇이나 있다고 보는가? 고인 물은 썩듯이... 이 고인 물을 그대로 마셔봐야 복통을 일으키는 교회만 나올 뿐이다.

기존의 고인 물이 아닌 졸졸 흐르는 다른 물을 마시면 무슨 큰일 날 것처럼 펄쩍 뛰는 사람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무궁무진하심을 의심하는 자이다. 물 하나 바꿔 마셨다고 하나님이 와르르 무너질 것이라고 지레짐작으로 겁을 먹는 자들이 교회의 主流로 있는 한 한국교회는 계속 썩어 문드러질 것이다.

다른 물을 마시는 사람이 많이 나와야 기득권을 쥐고서 고인 물을 계속 강요하는 이른바 서기관들이 정신을 차릴 것이다. 고인 물을 움켜쥐고 있는 데 한국교회가 썩지 않는다면 그게 도리어 이상한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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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석 (122.35.176.192)
2019-07-12 02:58:25
성경에 서로 상충되는 기록이 나오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지 않나요?
그 이유를 감안한다면 그렇게 흥분할 일도, 실망할 일도 아닐 것 같은
데요. 중요한 것은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이 계심을 믿는 것 그리고
교회를 바로 세우려는 노력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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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현경 (125.143.17.4)
2019-07-11 13:12:23
성경을 좀 더 알고 연구한 뒤에, 주장하시길 부탁합니다.
본인이 당당뉴스를 보기 심히 꺼려하는 이유는 단 한 가지입니다. 신집사님의 이런 것에 대한 강한 거부감 때문입니다. 오늘도 수개월 만에 들어와 보니, 또 엉뚱한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우는 것을 보고, 오늘은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댓글을 달기 위해, 오늘 가입하면서 답글을 달아 봅니다.

먼저 예수님의 십자가 상의 문제는 보기에 따라 다를 수 있기에 오류라 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논외로 하고 자 합니다. 그래서 다음의 두 가지에 대해 언급하고 자 합니다.

1. 막2:26 에 대하여
아비아들은 아히멜렉의 또 다른 이름으로 사용되곤 했습니다(삼상21;1, 22:9, 11, 20). 아히야라는 이름으로도 사용되었습니다(삼상14:3). 그것을 알고 난다면, 성경의 오류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의 아들도 같은 이름으로 사용하였습니다(삼상22:20, 대상18:16)

2. 마27:9에 대하여
렘18:1-4, 19:1-3의 영감을 받은 슥11:12-13에 나타나 있는 내용입니다. J당시의 사람들은 이 구절을 예레미야가 말한 것으로 이해를 했다. 왜냐? 예레미야를 대표적인 선지자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가랴가 했다 할지라도 예레미야를 대표자로 이해하고 표현했다는 말이다.

위와 같은 내용들을 좀 더 깊이 알고 연구한 뒤에, 주장을 해야 신집사님의 주장에 설득력이 있을 것입니다.

신집사님!
부탁을 드립니다. 신집사님의 지식들을 좀 더 유용하고 좋은 방향으로 사용할 수는 없겠습니까? 본인은 신집사님의 이런 주장들에 매우 불편해 하는 사람 중에 한 사람입니다. 언필을 좀 더 애정이 갈 수 있도록 사용하시길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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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19-07-10 22:09:21
성경상의 모순에 대해 고심 끝에 찾은 나의 해결책
1. 하나님은 처음부터 구약의 upgrade를 예정하고 있었다고 보아야한다

구약의 ‘기계적 적용’에 반발한 예수님은 <구약의 보충, 개정, 완성>을 하였고 이를 받아들인 기독교와 이를 부인하는 유태교로 갈라졌다. 기독교인은 <예수님의 구약성경 개정권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나온 것이 新約이다.

자유의지를 가지고 있고 지능이 있는 인간이 세월이 지남에 따라 신약상의 모순점을 발견하고 있다. 예수님이 구약상의 모순점을 발견했듯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구약도 모순점이 발견되어 예수님이 upgrade하였다면 하나님은 처음부터 구약의 upgrade를 예정하고 있었다고 본다. 구약의 upgrade를 허용한 하나님이라면 신약의 upgrade도 인정할 것이라고 보는 게 타당할 것이다.

2. 하나님은 예수님에게 구약개정권(구약 upgrade)을 부여하였다

유태교는 예수님의 구약개정권을 부인하고 있고, 기독교는 예수님의 구약개정권을 인정하고 있다. 예수님이 개정한 신약조차도 신약 내용상으로 보면 모순되는 게 한 두가지가 아니다.

원수이자 죄인인 서기관과 바리새인을 사랑하고 부르기는커녕 “독사의 새끼!, 화있을진저!”하고 막말과 저주를 늘어놓고 있는 건 “원수를 사랑하라!, 죄인을 부르려고 왔다!”는 가르침과 완전히 모순되고 있다. 부분적으로 보면 이해가 되나 전체적인 맥락에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평화가 아닌 검을 주러 왔다고도 했는데, 구원하러 왔다고 하는 것 등과도 모순된다. 굳이 축자영감설이니 번역상의 誤記이니 하는 등의 아주 지엽적인(?) 문제를 따지지 않더라도 말씀과 말씀이 충돌하는 경우가 있다.

이 충돌되는 부분을 좋은 쪽으로만 해석하면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이는 데 자유의지와 지능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보면 완전히 납득이 안 되는 부분도 있다.

이 문제 때문에 많은 고통의 시간을 보냈다. 心情으로는 예수님을 믿는 데 物證으로는 회의한다고나 할까... 최근에 많이 회자되는 “심증은 있는 데 물증이 부족하다”는 뜻과 유사한 개념인데... 기독교를 떠나려고 하는 순간 나를 붙잡은 게 있었다.

구약을 몸소 체험한 예수님이 하나님에게 구약의 개정을 건의하였고 그래서 신약이 나왔다. 예수님이 그 당시 민중의 수준에 맞게 설파하다보니 그 시대의 민중에게는 맞았는지는 몰라도 시대가 변함에 따라 인식상의 차이로 위에서 예시한 것과 같은 말씀과 말씀의 충돌이 일어났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면, 하나님에게 신약의 개정을 건의할 것이고, 하나님의 허락을 얻어 upgrade된 새로운 말씀이 선포될 것이다. 그렇다면 물증을 보고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아닌 심증으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이 美德이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떠나지 않고 그대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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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티끌 (39.7.18.202)
2019-07-10 03:39:14
성경은 다 맞다.

내가 오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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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성 (220.89.28.88)
2019-07-09 03:35:14
1. "선지자 이사야의 글(막1:2)"은 원저자의 오류 ---?
RE:
(마가복음 1:2)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마가복음 1:3)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이사야 40:3)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

2.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막2:26)"도 저자의 오류 ---?
RE:
성경 인물엔 동명이인이 많고 조상이 썼던 이름을 다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비아달 족보를 이미 정리를 잘해주신 분이 있어서 링크 합니다.
https://moyha.tistory.com/69

3. (마태복음 27:9) --- 예언한 인물 오류?
RE:
마태복음에는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 으로 인용했고, ‘기록된바’ 로 이야기 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출처를 정확히 찾기가 어려운 것은 맞습니다만, 그렇다고 이것이 완전히 오류라고 지적 될 만큼의 확연한 모순점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여기엔 확인이 될만한게 없으므로 반대 주장에 대한 문서 링크를 드립니다.
http://www.creation.or.kr/library/print.asp?no=4718

* 과학이나 다른 학문들의 이론과 철학은 시간과 시대가 변함에 따라 해석되지 않는 새로운 현상이 발견되면 그것을 수년~수백년 만에 수정해야만 했습니다. 현재도 그러고 있고요. 그러나 수천년 지난 성경은 적어도 사본으로 발견된 그 원문의 내용은 변경이 없으며 시간이 지나 진리를 밝히는 도구가 늘어나면서 점점 더 진리로서 명확해지는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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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남 (49.50.206.22)
2019-07-09 06:55:54
김아성님, 귀한 의견을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지적해주신 대로 1번 이사야서 인용 부분은 저의 착오가 있었습니다. 깊이 사과드립니다. 그래서 이 부분은 삭제하고 다른 내용으로 수정하겠습니다. 거듭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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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19-07-08 17:22:58
성경 본문의 오류와 '축자영감설' 관련 혼란은 오히려 약과다!
마태복음 23장을 보면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심히 꾸짖는 장면이 연속된다. “화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레위지파 성직자들)과 바리새인들이여!

1. 예루살렘에서 예수님 말씀을 직접 들은 제자와 그 제자 등으로부터 口傳으로 전해들은 著者들의 기사는 성경에 나와 있으니 생략하고...

2. 예루살렘에서 예수님 말씀을 직접 들은 非기독교인인 한국 기자가 본사에 이렇게 송고했다고 한다면 어떨까?

“예수님이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에게 독사의 새끼라고 망언과 저주를 퍼부었다! 막말과 저주와 망언으로 일관하는 예수님!”이라고 전한다면?

원수를 사랑하라고 할 때는 언제이고, 그 원수에게 저주를 퍼붓는 것은 또 무엇인지? 예수님의 진심은 “원수를 사랑하라!”인가 아니면, “원수를 저주하라!”인가?

또 다른 곳에서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려고 왔다!”고 하였는데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의인이라서 부르지 않은 것인가? 그렇다면 예수님이 의인에게 이렇게 막말을 해도 좋은가? 그건 그렇다 치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죄인이라면 왜 그들을 부르지 않고 “독사의 새끼! 화있을진저!”하고 저주와 막말을 퍼붓는 것일까?

원수를 사랑하라, 죄인을 부르려고 왔다는 가르침은 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인가? 그렇다면 아예 처음부터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제외한 원수를 사랑하라!”,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제외한 죄인을 부르려왔다!”고 하면 될 것인데 왜 혼란을 자초하면서 막말로 망언을 일삼는지 모르겠습니다. -이상 예루살렘에서 非기독교인 **일보 ***기자였습니다.-

3. 닥치고 믿어야만 합니다. 예수님은 그걸 요구하였습니다. 묻지 말고 무조건 믿어라! 그리고 행동하라!

어느 누군가 한 말이 기억납니다. 성경은 닥치고 무조건 믿어야만 합니다. 비판하려고 작정하면 살아남는 것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의문이 나는 건 그대로 두고 밀고 나가야만 합니다. 현미경을 들이대기 시작하면 밑도 끝도 없습니다. 그래서 교부철학자나 루터나 간에 성경말씀 그 자체는 건드리지 않은 겁니다. 자기 나름의 해석을 남에게 강요한 적은 있어도 결코 성경말씀 그 자체를 건드리지 않은 겁니다. 古代에는 主人이 무슨 말하는 데 종이 사사건건 토를 달면 그건 죽음뿐입니다. 中世도 왕이 무슨 말을 하는 데 종이 달려들면 죽음뿐입니다.

現代에는, 헌법을 만들 당시에는 옳게 보인 것이라도 세월이 가면 모순이 발생되기 마련입니다. 모순이 극대화되면 헌법개정이 이루어집니다. 성경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때 시대와 지금 시대가 맞지 않아서 ‘인식상의 괴리’가 발생하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또 ‘口傳을 記述’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몇 몇 발생하는 건 당연한 겁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의 재림’이라는 포괄적인 언약이 있으니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聖經改定權을 행사할 때까지는 무조건 닥치고 믿는 게 기독교인의 도리라고 봅니다. 의심나는 건 그대로 놔두고 말입니다. 의심나지 않는 가르침도 많으니까요! 우리의 주인인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성경을 개정할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도 美德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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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19-07-08 20:58:04
<성경 본문의 오류와 '축자영감설' 관련 혼란 등에서 오는 다양한 반응>

1. 알버트 아인슈타인과 스티븐 호킹類의 반응
이 두 사람은 과학자로서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데 익숙해져있다. 성경을 읽어 본 이 두 사람은 기독교의 신을 인정하지 않는다.

2. 리차드 도킨스類의 반응
인간이 필요에 의해 신을 창조했다고 한다. 즉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창조했다고 한다.

3. 프리드리히 니체類의 반응
인간에 의해 신은 죽었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인간이 신을 잘못 대하고 있다고 한다. 플라톤 式의 신은 박물관에 박제된 동물처럼, 대리석처럼 죽어있는데 디오게네스 式으로 신을 되살려야 한다고 한다.

4. 脫기독교類의 반응
이래저래 실망하여 아예 기독교를 떠난다.

5. 主流 측의 반응
신의 깃발을 꽉 쥐고서 절대로 놓지 않는다.

6. 非主流 측의 반응
호기심과 탐구정신을 가지고 신의 깃발을 이리저리 흔들어 어디까지 흔들리는지 실험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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