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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법을 무시하는 신령한(?) 사람들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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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7월 04일 (목) 11:34:43
최종편집 : 2019년 07월 06일 (토) 21:48:24 [조회수 : 19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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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법을 무시하는 신령한(?) 사람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4-16)

 

예수님은 당신이 율법을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아주 단호하게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8)고 덧붙이셨다. 여기서 율법은 모세가 제시한 율법을 말하는데, 그 율법은 십계명에 집약되어 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십계명은 첫째에서 넷째까지의 하나님에 관한 계명과 다섯째에서 열째까지의 인간에 관한 계명으로 나눌 수 있다. 하나님에 관한 계명을 신앙에 관한 계명 혹은 영적 계명이라고 부른다면, 인간에 관한 계명은 사회적 계명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여기서 계명을 사회에서 사용하는 용어를 따라서 법이라고 바꾸어 말한다면, 영적 법과 사회법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모세에게 있어서 그리고 모세의 율법을 지켜온 유대사회에서는 영적 법과 사회법 두 가지를 모두 중시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예수님도 두 가지 법을 모두 중시하셨다. 바리새인과 헤롯당 사람들이 예수님에게 와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으냐고 물었을 때,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마 12:17)고 대답하셨다. 여기서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은 사회법을 따르는 것이고 하나님에게 바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에서 우리가 해야 하는 영적 법의 실행이고 볼 수 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처럼, 예수님은 결코 사회법을 무시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다. 특히 당신이 율법을 완성하기 위해서 왔다고 말씀하신 마태복음 5장 이하에서 예수님이 예시하신 율법은 주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의 법, 즉 사회법이다. 5-7장에서 기도에 관한 가르침 외에는 모두 살인, 간음, 맹세, 악에 대한 대처, 원수사랑, 구제, 금식, 재물, 삶의 열매 등에 관한 가르침이다.

물론 예수님의 복음의 핵심은 믿음이지만, 예수님은 모세의 십계명에서보다 사회법 혹은 도덕법을 더 중시하신 것으로 보인다. 일부 보수적인 목사들은 사회법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윤리적인 것이라고 외면하면서 믿음에 관한 복음만을 강조한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두 가지를 모두 중요하다고 보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영적 법만을 강조하면서 사회법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다. 아마도 그것은 율법으로 구원받을 수 없다는 바울의 주장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바울은 구원이 예수님의 보혈을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지, 우리의 생활에서 율법을 무시해도 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바울이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라고 말한 데서 그가 우리 일상생활에서 율법이 무용지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잘 드러난다. 특히 로마서 1장 26-32절, 2장 1-16절, 그리고 사랑을 강조한 고린도전서와 성령의 열매를 언급한 갈라디아서에서는 신앙인이 사회법이나 도덕법을 중시해야 할 것을 누누이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사회법이나 도덕법을 등한시하는 사람들이 바울의 가르침을 핑계할 수 없게 되어 있다.


믿음이 좋은 목사의 엉뚱한 외침

벌써 20여 년 전의 일이다. 우리교회의 부흥회에 온 강사가 마가복음 11장 22-24절을 본문으로 해서 믿는 자의 기도에 관한 설교를 했다. 그가 강조한 핵심 구절은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는 구절이었다.

내가 지금도 그 설교를 기억하는 것은 그가 든 예화가 적잖이 불만스러웠기 때문이다. 그의 교회에서는 교회를 신축할 부지를 구입했는데, 그 땅이 개발제한 구역 안에 있다고 했다. 그는 믿고 기도하면 이루어질 줄 믿기 때문에, 그 부지가 개발제한 구역에서 해제되게 해달라고 교인들과 함께 계속 기도한다고, 언젠가 기도대로 될 것이라 믿는다고 말했다. 그의 믿음은 참으로 가상해 보였다.

그런데 그는 모세가 열두지파 대표들을 가나안에 보내어 그 땅을 정탐시킨 일을 언급하면서 여호수아와 갈렙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민 14:8)고 말한 구절을 인용했다. 그러고 나서 이스라엘에게 가나안을 주신 하나님이 그 교회에서 사놓은 개발제한 구역 안의 땅에 성전을 짓게 해주실 것을 믿는다고 말했다. 그리고 교인들과 함께 일주일에 한 번씩 저녁에 산 위에 올라가서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라고 말한 것처럼 시내를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밥이다”(민 14:9)라고 외친다고 했다.

거기에 모인 교인들은 그의 확신에 찬 말에 아멘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나는 아멘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 먼저 그가 내세운 성경구절은 믿는 자의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과장법적 표현이기 때문에, 그 구절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또한 개발제한에 묶인 땅을 사놓고 그 제한이 풀리게 해달라고 온 교회가 기도하는 것도 마땅치 않지만, 그보다도 산 위에 올라가서 시내를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밥이라고 소리치는 것은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땅을 그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이 아무리 그 땅의 족속들이 강하다 하더라도 그들을 정복하게 해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가나안 족속은 이스라엘이 정복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그 족속들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허락하신 밥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개발제한 구역의 땅을 사놓으면 거기에 교회를 짓게 해주겠다고 약속하신 일이 없다. 그리고 개발제한 구역을 정한 행정 담당자들은 그 교회가 정복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그 교회가 협조하면서 살아야 할 이웃들이다.

그런데 사회법을 정하고 집행하는 사람들을 싸워야 할 적으로 생각하고 그들을 밥이라고 외친다는 것은 부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 목사가 의지하는 영적 법이 사회법과 대립하는 것으로 보는 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에 합하는 것이라고 볼 수 없다. 그것은 광신이나 무지에서 나온 것이다.

 

사회법을 무시하는 목사들

요즘 사회법이나 교회법을 무시하는 목사들이 부쩍 늘었다. 교회재정을 유용해서 실형을 받은 조용기 목사, 교회법을 어기고 세습한 김삼환 목사, 여성 신도들을 성폭행한 죄로 복역 중인 이재록 목사 등 법을 어기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그중에 대표적인 사람은 오정현 목사다.

그는 학위논문 표절 문제로 한동안 담임목사직을 쉰 일이 있다. 합동측 교단의 담임목사 자격문제로 재판을 받아왔는데, 최근 서울고등법원에서는 오 목사는 사랑의 교회 위임목사 자격이 없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그가 시무하는 사랑의 교회는 공공도로 점용의 문제로 재판을 받아왔다. 오 목사는 개인적으로 교회적으로 상습적인 범법자로 보인다.

지난 달 초에 교회 헌당식에서 서초구청장이 올해 12월 말로 만료되는 도로점용 허가를 연장해주겠다고 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도로 점용의 문제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그 문제가 서울행정법원에 제소되어서 1, 2심에서 승소했으나 대법원에서 그 재판 결과를 받아들이지 않고 행정법원으로 환송했었는데, 이번에는 하급심에서 패소하고 지금 대법원의 판결을 기다리고 있다. 그렇다면 대법원의 최종 판결은 사랑의 교회에 불리할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그 일을 주도한 오 목사는 믿고 기도하면 산이라도 바다에 던져진다는 믿음을 가지고 그렇게 한지 모르지만, 목사나 교회는 사회법정에 고소당할 만한 일을 하지 말았어야 한다. 그렇지 않아도 사랑의 교회는 담임목사 개인의 범법으로 인해서 말이 많았는데, 한국을 대표하는 그 교회가 여러 해에 걸쳐서 승소하기 어려운 재판에 휘말려 있다는 사실이 새롭게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니, 그 교회의 교인이 아니더라도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고개를 들기 어려울 지경이다.

사회법이나 교회법에 저촉될 만한 일을 한 오정현 목사는 사회법 위에 도덕법이 있고 도덕법 위에는 영적 법이 있다고 말했다. 사회법이나 도덕법을 무시하는 그는 영적 법에 따라서 행동하겠다는 확신을 가진 모양이다. 그런데 그 교회의 모토대로 모든 것을 하나님이 해주시니 우리가 사회법을 어겨도 하나님이 해결해주실 것이라고 믿는 것이 영적 법에 따르는 올바른 일인가?

사회 사람들도 가능하면 법을 어기지 않으려 하고 혹 그런 일을 한 사람들은 죄송하다고 후회하는 빛을 보이는 것이 상례다. 어떤 사람들은 부끄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하기도 한다. 그런데 그 교회는 영적 법에 의지해서 계속 사회법이나 교회법을 어기면서 부끄러워할 줄도 회개할 줄도 모르니 이것은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영적 법을 앞세워 놓고 그 뒤에서 잔머리를 굴려가면서 세상 법을 피하려고 온갖 재주를 부린다. 그러고는 그것을 하나님이 해주셨다고 모든 책임을 하나님에게 돌린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 소송과정에서 사랑의 교회 측에 불리한 재판결과가 잇따라 나오자 한국교회가 일어나서 사랑의 교회를 감싸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한국기독교총연합회, 한국기독교연합, 한국장로교총연합회, 세계한국인총연합회는 국민일보 미션라이프에 “사랑의 교회에 대한 무분별한 비판과 왜곡 행위를 중단하라.”는 성명을 냈다. 그리고 한국교회언론회는 법원이 사랑의 교회 공공도로 점용 취소판결을 내린 것은 “종교 탄압”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참으로 참담한 일이다. 이것이 바로 사회법을 무시하는 한국교회의 민낯이다. 여기서 한국의 기독교계가 회복되기 어려울 만큼 타락했다는 사실이 분명히 드러난다.

오 목사 외에도 요즘 전광훈 목사가 흙탕물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2017년 대선 당시에 장성민이라는 국민대통합 신당 후보를 지지하는 발언을 하고 단체문자 메시지를 돌렸다가 선거법 위반으로 1심에서 징역 10개월을 선고 받고 복역했다. 그리고 항소심에서 징역 6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 받고 풀려났다. 그는 예배시간에 공개적으로 어느 특정 정치인들을 거론하면서 그들을 대통령으로 밀어주자거나 국회로 보내자고 선동한다. 이것은 선거법 위반에 해당한다. 그는 최근에도 예배시간에 송영선을 국회로 보내야 한다는 발언을 했다가 선관위로부터 경고를 받았다.

그는 이렇게 법을 아랑곳하지 않고 마치 동키호테처럼 좌충우돌하는 정치목사다. 그는 국민이 선출한 문재인 대통령을 빨갱이 혹은 간첩이라고 비난하면서 그를 하야시켜야 한다고 말하고 다닌다. 그리고 하야를 위한 단식 투쟁에 앞장서고 있다. 더구나 그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 대표라는 직함을 내세우고 마치 한국의 교회가 모두 자기의 주장을 지지하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니 그의 언행을 접하는 사람들이 한국교회를 어떻게 보겠는가? 한국교회가 온통 무법천지라고 보지 않겠는가?

더구나 요즘은 한국의 본회퍼가 되겠다고 공언하고 다닌다. 본회퍼는 히틀러 치하에서 자기 교회가 박해를 받아 문을 닫게 되자 히틀러를 피해서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에 가서 교수직에 있었다. 몇 개월 후에 자기가 있어야 할 곳은 안락한 미국이 아니고 교회가 탄압을 받는 그리고 유대인들이 학살당하는 독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안전한 미국생활을 버리고 고통의 땅 독일로 돌아갔다.

그는 독일에 돌아가서 히틀러 암살단에 가입했다. 목사가 암살단에서 일하는 것이 옳은 일이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미친 사람이 자동차를 운전하면서 많은 사람을 죽일 때 죽은 사람의 장례식에 가서 조문을 하는 것보다는 그 차에 올라가서 자동차 핸들을 뺏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는 히틀러가 발광해서 유대인들을 가스실로 보내고 교회를 탄압하는 것을 막으려고 자신을 불사른 순교자였다.

그런데 이데올로기에 매몰되어서 입에 담기조차 어려운 말을 뱉어내면서 사회를 혼란시키는 전 목사가 한국의 본회퍼가 되려 한다니 이것은 어처구니없는 말이다. 그러면 문재인 대통령은 히틀러같이 교회를 박해하고 우리 국민을 죽이고 있다는 말인가? 그리고 그가 본회퍼처럼 순교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말인가? 그는 지금 순교자 본회퍼를 욕보이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북한에 유화적이고 경제면에서 실정을 하는 것에 대해서 불만이 있다 하더라도,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제자를 자처하는 목사가 이렇게 국론을 분열시키는 언행을 해서는 안 된다. 그는 문 대통령이 탄핵의 대상이라고 말하지만, 밥 먹듯이 법을 어기고 한국교회에 먹칠을 하고 있는 본인이야 말로 목사직에서 내몰려야 옳지 않을까?

그리고 목사가 정치판에 뛰어드는 것이 마땅한가? 정치인들은 자기 당의 이익이나 자신의 영달을 위해서 일하는 사람들이다. 요즘 한국의 정치판을 보면 여당과 야당 간에는 대화도 양보도 없고,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한 극한 대립이 있을 뿐이다. 국회에서는 몸싸움, 고성, 막말이 판치고 있다. 거기서 예수님의 가르침이나 삶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런 곳에 목사가 끼어들어 그들과 같이 어울려서 어쩌겠다는 말인가? “까마귀 싸우는 골에 백로야 가지 마라”는 시 구절이 있다. 신령한 목사는 그런 정치판을 기웃거리지 않는다. 요즘 사람들이 개신교보다 천주교와 불교를 더 좋아한다는데,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중의 하나는 그곳의 지도자들이 “까마귀 싸우는 골에” 가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정신과적으로 말하면 전 목사는 과대망상증에 시달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자신이 오정현 목사가 말하는 영적 법을 따르는 초법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것 같다. 영적 법을 따르는 신령한 목사는 사회법과 도덕법을 무시해도 되는가?


마치면서

우리는 여기서 모세도, 예수님도, 바울도 사회법이나 도덕법을 무시하라고 말하지 않았다는 것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철저히 그런 법을 지키라고 가르쳤다. 십계명에서 그것을 알 수 있고, 산상수훈에서 읽을 수 있고, 로마서, 고린도전서 그리고 갈라디아서에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교인들뿐 아니라 교회 밖의 사람들도 목사는 법을 잘 지키고 도덕적으로 흠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혹은 그런 사람이기를 바란다. 그런데 지금 한국교회의 목사들의 삶은 사람들의 기대에 훨씬 미치지 못한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큰 실망감을 안겨주고 있다.

그런데 왜 목사들이 그렇게 실망스런 삶을 살게 되었을까? 왜 그들이 마치 그들의 내면까지 통찰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처럼 악한 일을 자행하는가? 왜 그들이 그렇게 사회법을 지키지 않고 세상 법정에서 유죄판결을 받거나 교회법에 저촉되는 일을 거리낌 없이 함으로써 교회를 분열시키고 세인의 지탄을 받고 있는가?

그것은 오정현 목사가 말한 영적 법만을 생각하기 때문 아닐까? 영적 법은 하나님의 법 혹은 성령의 법을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이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니 세상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 그래서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인도해주신다는 것을 믿는 것을 말한다. 혹은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할 것이 없다는 사실을 믿는 것을 말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 혹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세상 법을 지킬 필요가 없는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세상에 사는 동안 세상의 법을 지키셨다. 바울 역시 이 세상 법 안에서 살았다. 모든 선지자도 믿음의 조상들도 그랬다. 더구나 우리들에게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워나가야 할 사명이 주어졌다. 따라서 우리가 초법적인 삶을 살려고 해서는 안 된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드려야 한다.

우리는 보통 한국교회의 현 사태를 목사 탓으로 돌리지만, 한국교회가 이렇게 된 데에는 평신도의 책임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만약 전광훈 목사가 설교 시간에 하는 선거법 위반에 해당 하는 말을 아멘으로 응답하는 사람들이 없다면 그가 그런 말을 계속 할까? 그가 무슨 말을 해도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그를 통해서 이익을 얻고자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안하무인격인 혹은 안하무신(眼下無神)격인 언행을 일삼고 있다.

사랑의 교회에 오 목사의 범법행위에 무조건 아멘하는 교인들이 없다면 그가 그런 행동을 하면서 그 교회에 붙어 있을 수 있을까? 이재록 목사가 속한 교단의 교인들과 목사들이 그의 성추행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그가 옥중에서 총회장에 선출될 수 있었겠는가? 산에 올라가서 “너희는 우리의 밥”이라고 외치자는 목사를 교인들이 따라나서지 않았다면, 그런 어처구니없는 코믹 쇼가 벌어졌겠는가?

목사들뿐 아니라 교인들도 깨어 있어야 한다. 교인들이 깨어 있으면 목사가 비리를 저지르거나 엉뚱한 짓을 하지 못한다. 목사들은 교인들의 묵인 아래 혹은 교인들의 찬동을 얻어서 법을 위반하고 망신스러운 일을 저지르고 있다. 누구의 말대로 침묵하는 것조차 동조하는 일이다.

교인들은 담임목사가 비리를 저질러도 하박국에 나오는 “없을지라도”를 목사에게 적용시킨다. 학위논문을 베끼고 담임목사 자격조건을 갖추지 않았을 지라도, 법원에서 유죄판결을 받았을 지라도, 여성 성도를 성추행했을 지라도 우리 목사는 신령한 분이라고 믿으려 한다.

일전에 우리교회 장로 한 분이 용인으로 이사하게 되어서 장로들이 모여 송별회를 가졌다. 거기서 장로 한 분의 입에서 전광훈 목사가 문제를 일으켜서 걱정이라는 말이 나왔다. 장로들이 모인 자리에서 교회를 걱정하는 그런 말이 나올 법하다. 그런데 어느 장로가 나서서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실상 전 목사는 아주 신령한 분이지요.”라고 말했다.

가만히 있으면 전 목사가 정말 신령한 분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내가 한 마디 거들었다. “전 목사가 선거법 위반으로 실형을 받았다고 하던데 그 사람 정치목사 아닌가요!“ 분위기가 좀 썰렁해지니까 장로 한 분이 이 자리에서 정치에 관한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해서 전 목사에 대해서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사람마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교인들은 정확한 판단을 할 수 있는 지혜를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사회법을 지키지 않는 목사를, 너도 나도 질타하는 목사를 신령한 사람이라고 믿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목사에 대한 맹종이고, 목사를 우상화하는 일이다. 한국교회의 한심한 현 사태는 사회법을 무시하는 목사와 그에게 동조하는 교인들의 합작품이다.

우리는 우리의 내면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 앞에 서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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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신 (175.202.122.164)
2019-07-07 15:37:25
사회법을 무시하는 감리회의 신령한(?) 사람들
그는 돈 감투를 쓴이입니다.
돈 감투를 쓴 것은 불법이라 하여 선거무효 당선무효가 사회법을 통하여 선고되었습니다.

그러나 즉시 항소하면 돈 감투는 쓸수 있음이라 주장하며 항소하였습니다.
그래서 돈 감투를 강제로 벗기려 하나 워낙 든든한 접착제로 붙여서 몇달 동안 옴짝달싹 하지 않습니다.

역시 돈의 힘은 대단합니다.

지랄 맞은 돈장난
학수 고대하며 떼어내려 하지만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돈장난에 열중이네.
리플달기
2 0
노재신 (175.202.122.164)
2019-07-07 15:39:24
전무후무한 이로구나
명이 길어 죽지도 않고 벗으라 해도 벗지 않는 돈감투.
구질질하게 언제까지 돈감투 쓰려 하는가!
리플달기
2 0
노재신 (175.202.122.164)
2019-07-07 15:42:46
박식다학하여 행구실장인가?
영틀렸네 행구실장!
근심이 많구나, 돈 감투쓰고 버티는 감리교회.
리플달기
2 0
김경환 (222.100.38.174)
2019-07-04 14:08:50
사회법을 준수하지 않은 건 본 회퍼 목사도 마찬가지! 전광훈 파동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이 아쉽다!
1. 본 회퍼는 사회법을 준수하지 않은 테러리스트(※오로지 사회법 측면만을 과도하게 강조한다면!!)

독일국민 90%가 히틀러 수상의 대통령 겸직을 찬성하였고, 오스트리아국민 99%가 오스트리아병합에 찬성하였고, 히틀러가 자살하는 마지막 날까지 독일국민은 히틀러를 열렬히 지지하였다. 히틀러가 자살하자 괴벨스 신임수상을 비롯한 수백명이 “히틀러가 없는 세상은 살 가치가 없다.”고 여기면서 동반자살 하였다. 일본제국도 천황이 항복 선언하자 할복자살한 사람이 부지기수였다.

독일국민의 절대 다수가 성당이나 교회에 가서 “하나님! 우리 총통에게 힘을 주시어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하는 가운데 본 회퍼는 <사회법을 무시하고 영적 법>에 따라 행동하였다. 社會法인 바이마르헌법(또는 수권법) 어디에 암살이나 반역을 정당화시키는 구절이 있는가?

일본천황 암살 시도나 독일총통 암살 시도는 국민 대다수로부터 지지를 받지 못했다. 樞軸國이 패전하고 나서 도덕성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하자 히틀러를 열렬히 지지했음에도 그 당시 독일국민은 무조건적인 총통 지지자가 아니었다며 모든 잘못을 히틀러 일당에게 떠넘겨 <살아남은 자들>은 도덕심이 충만했다는 근거들의 하나로 히틀러 암살시도를 과도하게 포장한 것이다. 히로히토나 히틀러를 지지한 국민은 어디 별나라에서 왔는가? 살아남은 자들의 ‘면피용 자기 최면현상’의 극치라고 할 수 있겠다.

오정현 자칭목사가 사회법을 무시하는 거나 본 회퍼 목사가 사회법을 무시하는 거나 사회법 무시라는 측면에서는 둘 다 사회법을 무시한 거다. 차이점은 오정현 자칭목사는 교세확장을 위해서이고, 본 회퍼 목사는 히틀러 암살시도를 위해서 사회법을 무시한 거다.

사회법 무시가 무조건 옳지 않은 거라면, 본 회퍼도 옳지 않은 것이다! 따라서 사회법 무시 문제는 輕重과 事案에 따라 판단할 문제이지 획일적으로 무조건 터부시하는 건 옳지 않다고 본다.

2. 전광훈 파동에 대한 종합적인 판단이 아쉽다!

빤스 목사 전광훈이 입이 걸고 장성민 등에게 추파를 던지고 자기를 과대하게 포장하고 하는 건 분명하게 문제가 있다. 그런데 보수파 국민은 문재인이 나라를 말아먹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고 교회에도 김일성주의자가 득실댄다고 여기고 있다. 나라가 누란의 위기에 처했다고 느끼고 있다. 사실상 赤化된 거나 마찬가지라고 여기는 국민도 많다.

빤스 목사이자 장성민 빠돌이인 전광훈이가 反문재인 기치를 내거니 여기에 환호를 한 거다. 전광훈이 도덕군자여서가 아니라 反문재인이라서 보수우파 국민이 박수를 친 거다. 만일 어느 유명한 도덕군자 목사가 反문재인 기치를 내걸었다면 호응도는 훨씬 더 높았을 것이다. 도덕적으로는 문제가 좀 있더라도 옳은 말을 하니 여기에 박수를 친 거다. 오히려 도덕군자 목사들이 몸을 사리고 있을 때 전광훈이 나선 용기를 가상하게 여기고 뒤로 나자빠진 웰빙 도덕군자 목사들을 문재인 빠돌이, 김정은 빠돌이라고 여기는 보수우파 국민도 많다는 사실을 직시하자.

反히틀러운동에 참여한 사람 중 본 회퍼 같은 도덕군자도 있었고, 히틀러 빠돌이였다가 전세가 기울자 양다리 걸친 롬멜 원수 같은 장성도 있었고, 도덕적으로는 완전 개판인 사람들도 있었다. 도덕군자 본 회퍼 이외에는 反히틀러운동에 참여할 자격조차 없는가? 反김일성운동에 오로지 도덕군자들만이 참여할 수 있다고 한다면 지나가는 개가 웃을 것이다.

보수우파 국민이 박수친 것은 전광훈이 反문재인운동에 나선 것 때문이지 그가 빤스 목사여서가 아니란 점을 한 번 더 강조하고자 한다.

그리고 전광훈의 反문재인운동을 정치활동이라고 심히 야단을 치고 있는데 본 회퍼 목사가 反히틀러운동한 것은 정치활동이 아닌가? 목사가 정치활동에 참여하는 것도 무조건 백안시 할 것이 아니라 경우를 따져봐야만 한다.

김수환 추기경, 함석헌 목사, 문익환 목사, 정의구현사제단 등이 정치활동을 활발하게 한 것부터 씹고 난 후에 전광훈의 정치활동을 씹어대는 것이 제대로 된 순서일 것이다. 정치활동조차도 누구는 괜찮고 누구는 안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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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재신 (175.202.122.164)
2019-07-07 15:48:21
x문재인 대통령이 히틀러와 동급인가요?
전두환 노태우 대통령이 문재인 대통령과 동급인가요?

모르겠습니다. 전광훈 목사가 본훼퍼인지도.....
본훼퍼 목사가 죽은 후에도 멀리 타국땅에 와서 고생이 많습니다.

함석헌 선생도 목사인가요? 그것도 잘 모르겠네요. ㅎㅎ
무식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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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19-07-07 18:43:00
1. 문재인과 히틀러의 유사점

히틀러는 국회의사당방화사건을 빌미로 나치 위성정당과 함께 합세하여 국회를 무력화시키는 수권법으로 바이마르체제를 껍데기로 만들었다. 문재인은 패스트트랙으로 더불당 위성정당과 함께 200석을 얻어 헌법상의 자유민주주의체제를 형해화시키려하고있다.(※문재인에 대한 이러한 평가에 동조하는 국민은 25~30%정도가 되고, 동조하지 않는 국민은 40% 정도가 된다.)

히틀러가 바이마르헌법의 탈을 썼는데... 자고 일어나보니 바이마르헌법정신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vs 문재인이가 대한민국헌법의 탈을 썼는데... 자고 일어나보니 대한민국헌법정신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2. 전두환과 문재인의 유사점

전두환은 삼청교육대를 통한 언론 장악으로 ‘땡전뉴스’를 남발하였고, 문재인은 친위 노동조합을 통해 국영방송(민영방송)을 80% 이상 장악하여 ‘노영방송’으로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 노태우는 6共 시조대통령으로서의 중심을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 표류하는 등 유약하여 전두환, 문재인 등과 비교할 가치가 없다.

3. 함석헌은 일본에서 무교회주의자가 되어 귀국하였다. 조금 지나서는 퀘이커교도로도 활동하였다.

※목사라고 한 것은 김수환 추기경, 문익환 목사 등과 함께 거론하다보니 깜빡하여 ‘함석헌 종교인’이라고 하지 않고 ‘함석헌 목사’라고 제가 잘못 거론하였음을 사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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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19-07-08 04:44:01
<민중-지도자의 관계로 보는 히틀러와 문재인의 유사점>

1차대전패전과 인플레이션과 세계대공황으로 격심한 불안(불만)을 야기하자 울분에 넘친 수많은 독일인이 사이비 해법이라도 움켜잡은 것이 히틀러식 해법이었다. 히틀러는 사이비 해법이라도 계속 유지하기 위해 유태인을 적으로 만들고, 소련을 적으로 만드는 방식으로 계속하여 대중의 눈과 귀를 붙잡았다.

상대적 박탈감에 절망하고 있던 차에 고영태-최순실 스캔들이 발생하자 울분에 넘친 수많은 한국인이 사이비 해법이라도 움켜잡은 것이 촛불식 해법이었다. 문재인은 족보에도 없는 촛불식 해법이라도 계속 유지하기 위해 무제한적 적폐청산, 무조건적 반일운동, 판문점쇼를 통한 우리끼리운동 등으로 계속하여 대중의 눈과 귀를 붙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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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19-07-08 05:32:34
靑太宗이 남한산성에 갇힌 仁祖에게 보낸 편지를 한번 보자!

너(인조)가 나(청태종)를 황제라고 칭하지 않은 죄를 물을 것인데, 어디 明나라가 너를 구해주는지 한번 보자라며 호통을 쳤다. 최근 일본의 아베신조 수상이 문재인을 거세게 몰아붙이자 넌지시 미국의 트럼프가 구해주길 희망하는 문재인의 처참한 몰골과 오버랩 된다. 무능한 인조보다 더 무능한 문재인이다. 오호, 통재라!!! 기억하고 싶지 않은 역사가 지금에 와서 또다시 되풀이 되는가?

- 청태종의 편지 -

짐의 나라 안팎의 여러 왕들과 신하들이 짐에게 황제의 칭호를 올렸다는 말을 듣고, 네가 이런 말을 우리나라 군신이 어찌 차마 들을 수 있겠느냐고 말한 것은 무엇 때문이냐. 대저 황제를 칭함이 옳으냐 그르냐 하는 것은 너에게 있는 것이 아니다. 하늘이 도우면 匹夫(필부)라도 天子(천자)가 될 수 있고, 하늘이 재앙을 내리면 천자라도 외로운 필부가 될 것이다. 그러니 네가 그런 말을 한 것은 방자하고 망령된 것이다. 
  
이제 짐이 大軍(대군)을 이끌고 와서 너희 八道(팔도)를 소탕할 것인데, 너희가 아버지로 섬기는 명나라가 장차 너희를 어떻게 구원할 것인가를 두고 볼 것이다. 자식의 위급함이 경각에 달렸는데, 부모된 자가 어찌 구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만일 그렇지 않다면 네가 스스로 무고한 백성들을 물불 속으로 몰아넣은 것이니, 억조중생들이 어찌 너를 탓하지 않으랴. 네가 할 말이 있거든 서슴지 말고 분명하게 고하라. 崇德(숭덕) 2년 정월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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