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임종석 칼럼
죄인 중의 죄인 예수
임종석  |  seok9448@daum.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9년 07월 04일 (목) 00:55:06 [조회수 : 474]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요일4:16)

 

“죄의 삯은 사망”(롬6:23)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죽을 수밖에 없다. 죄가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아니 잉태된 순간부터 죄인이다. 원죄가 없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자범죄까지 쌓아 가며 사람들은 죄의 무게를 더해 죽음으로의 길을 다져 간다.

여기에서의 사망, 그러니까 죽음은 육신의 죽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멸의 죽음이다. 구더기도 죽지 않고 (유황)불도 꺼지지 않는 지옥에서 영원이 고통을 받아야 하는 그런 죽음이다.

그런데 사랑의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형상대로 지으신 사람들이 그 같은 영멸의 죽음으로 떨어지는 것을 보고만 계실 수가 없었다. 어떻게든 살리셔야만 했다. 그래서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인간세상으로 보내셨다. 그것도 사람의 아들, 사람으로 보내셔야만 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지만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당신의 계명을 마음대로 허물 수는 없는 일이기에 사람들이 (영멸의) 죽음으로부터 벗어나 영생의 길을 가게 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죄를 없이 해 주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 방법이 달리는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죄를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도맡게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른 누구에게 그리 하도록 하는 방법도 생각해 볼 수는 있을지 모르지만, 아니다. 그러려면 죄 없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데, 전술한 대로 그런 사람은 없다. 설혹 있다 한들 그 무거운 죄의 짐을 몇 사람 분이나 맡아 질 수가 있겠는가. 아마 두세 사람 것만의 무게조차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외아들을 사람의 아들로 세상에 보내신 것이다. 그라면 세상 죄를 다 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에 의해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 마리아는 약혼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요셉이 있었으나 아직 혼인 전이니 잠자리를 같이 한 적이 없다.

마리아의 잉태 후 요셉은 하나님의 사자의 현몽으로 마리아를 데려다가 같이 살게 되는데, 이렇게 하여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 부부의 아들로서, 사람의 아들로 자라 생활하게 되었다.

삼십삼 년의 생애 중 삼십 년을 그렇게 산 그는 공생애에 들어간다. 복음을 선포하고 전파한다. 삼년간을 복음 전파에 온힘을 다 기울인다. 신성과 인성을 다 지녔으나 신성은 복음 전파의 필요에 따라 극히 제한적으로 드러냈고 삼년간도 거의를 인성만의 보통 사람으로 살았다.

그런데 그런 예수에게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었다. 죽을 날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그는 견디기가 힘이 들었다. 그는 신성으로 자신이 어떻게 죽을 지를 눈앞에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알고 있었다. 십자가의 죽음, 땅바닥에 놓인 커다란 나무 십자가에 눕혀진 자신, 손과 발에 손가락보다 굵은 못이 ‘쿵,쿵,쿵’ 박히며 뼈가 으스러진다.

그는, 예수는 사람의 아들로 사람이다. 신성을 지녔다 해서 육체적 고통이 덜 하는 것은 아니다. 그도 이때의 그에게는 신성은 비켜나 있고 인성만으로 여느 사람과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런데다가 육체의 고통만이 아니라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다는 더 큰 고통이 그를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라고까지 토로하게 했다. 제자들을 데리고 간 겟세마네 동산에서였다.

제자들에게서 떨어져 좀 더 간 그는 “아버지께서는 하시고자만 하시면 무엇이든 다 하실 수 있으시니 이 잔을 저에게서 가두어 주소서”하고 기도 했다. 그러나 그럴 수 없다는 것을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이 하늘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온 것은 세상 죄를 다 지고 죽기 위해서임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몰라서가 아니었다. 알지만 그는 사람의 아들로 사람이었다.

드디어 그 예수의 죽음의 날이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죄 없는 죄인이 되어 붙잡힌 그는 우선 대제사장에게로 끌려갔다가 총독 빌라도에게로 넘겨진 뒤 이어 분봉왕 헤롯에게, 그리고 다시 빌라도에게로 넘겨져 와 사형선고를 받은 후 유대 지도자들에게 넘겨져 사형장으로 끌려갔다.

처형장은 해골의 땅이라는 의미의 골고다로 예루살렘 성에서 가까운 곳이었다. 그는 자신이 못 박힐 십자가를 어깨에 메어 끌고 형장으로 갔다. 그게 관례였다. 구경하러 나온 연도의 많은 사람들이 행렬을 이루며 뒤를 따르고, 행렬은 갈수록 길어졌다. 모두가 슬픈 얼굴로,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도 있다.

붙잡히고부터 재판 전후에 이르기까지 장시간의 심한 채찍과 모욕으로 체력이 소진된 그로서는 십자가를 끄는 게 무리였다. 비틀거리다 쓰러지고 비틀거리다 쓰러지기를 반복했다. 호송하던 군졸들이 건장해 보이는 장정 하나를 억지로 붙잡아 대신 끌고 가게 했다. 이제 그는 죄 없는 죄인이 아니라, 죄인 중의 죄인이었다. 세상 죄를 다 졌으니 그보다 더 큰 죄인이 어디 있겠는가.

죄인 예수는 멀지 않은 길을 먼 길보다 더 어렵고 힘들게 골고다에 도착했다. 아직 오전 아홉시였다. 군사들에 의해 옷이 벗겨진 그는 하체만 겨우 가린 채 십자가 위에 뉘어졌다. 팔이 십자가에 묶인다. 묶지 않고 못만 박으면 세웠을 때 체중 때문에 손이 찢겨 몸이 땅에 떨어진다. 양팔과 양발 옆으로 쇠망치와 커다란 쇠못을 든 사람들이 다가선다. 그들 왼손의 쇠못이 예수의 손과 발 위에 놓이고 오른 손의 망치가 들려올라 ‘쿵! 쿵! 쿵!’ 내려친다. 살이 뚫려 찢기고 뼈가 으스러진다. 그의 입에서 비명소리가 새어나온다. 세상에서 가장 심한 고통의 잔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히고 세 시간정도가 지나 정오가 되었다. 그런데, 가장 밝아야 할 한낮인데 사방이 어두워지고 있다. 어둠은 계속되었다. 그러는 동안 세 시가 되었다. 그때였다. 예수가 절규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육체적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자신이 짊어지게 된 죄로 인해 성부 하나님과의 단절된 영적 고통은 육체적 고통과는 비교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로 인해 인성적 생명의 마지막 힘을 다 쏟아 아버지 하나님께 부르짖은 것이다. 인류구원의 대사명을 위해 아버지 하나님에게까지 버림받아야 하는 고통을 겪은 것이다. 인류를 대신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것이다. 세상 끝 날에 인류가 절규해야 할 말을 대신 부르짖은 것이다.

죽음의 시간이 임박했다. “다 이루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역을 자신의 죽음으로 마치게 되었다는 선언이었다. “아버지, 제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기나이다.” 이 짧은 말 한 마디로 그는 숨을 거두었다.

그러자 그때 땅이 갑자기 심하게 흔들렸다. 여기기저기서 바위들이 터지고 쪼개진다. 외아들의 죽음으로 하나님의 예민한 감성이 치는 몸부림의 표현이었다.

이때 성전에서는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 드리워져 있는 두꺼운 휘장 한가운데가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었다. 이 휘장은 일 년에 단 한번 대제사장이 속죄의 제사를 드리기 위해 열고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그런데 그런 휘장이 찢어짐으로, 그러니까 예수의 죽음으로 구약의 희생제사가 끝나고 모든 성도가 하나님께 직접 나갈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모든 성도가 왕 같은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휘장은 곧 예수의 몸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휘장을 찢어 당신과 인간 사이에 죄로 인해 막힌 담을 친히 허무셨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죄로 말미암아 단절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가 예수의 죽음으로 회복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주신 것이다.

내밀어 주신 손을 붙잡고 예수를 영접하면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구원을 받아 영생을 얻는다. 그 사실을 믿는 것이 기독교다. 기독교 신앙이다.

임종석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9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