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여름이 왔음을 알리는 신호탄과 같은 ‘하지’(夏至)가 지났다. 6월에 들어서면서부터 슬슬 더위가 찾아오더니, 이제 본격적으로 더위를 몰고 온다고 알리는 인사와도 같았다. 여름 더위는 해가 지날수록 기세가 더욱 맹렬해지고 있다. 그렇다보니 이번 여름에는 또 얼마나 더울까 걱정하면서 더위를 피할 손님을 잡기 위해서 상점들은 에어컨을 틀기 시작했다. 두려운 더위에 반가운 소식은 여름철 한시적으로 누진제를 완화하는 ‘전기요금 개편안’이 통과됐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한 가구당 월평균 1만원 정도의 요금 할인 혜택을 볼 전망이라고 한다.

이제는 여름하면 시원한 에어컨을 트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염려되는 점도 있다. 몇 해 전에 겪었던 일이다. 어느 한가로운 여름 저녁, 온 가족이 둘러앉아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침 그날은 좋아하는 야구 경기가 있어서 TV 앞에 앉아서 집중해서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TV가 꺼지더니 사방이 온통 컴컴해졌다. 순식간에 앞이 캄캄해지니까 가족 모두가 그 자리에서 얼음이 되고 말았다. 일단 손을 더듬어 가며 어딘가에 보관해 둔 초를 찾아서 켰다. 그러고 나니 곧 아파트 단지 내에 일시적인 정전이 일어났다는 방송이 나왔다.

그런데 내가 사는 아파트뿐만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가 전기 공급을 받지 못한다면 그건 더욱 심각한 상황을 불러 온다. 이른바 ‘9.15 대정전 사태’라고 불리는 그날의 사고에서는 우리가 예측할 수 없었던 피해들이 있었다. 갑자기 엘리베이터가 멈춰버려서 안에 있던 탑승객들이 갇혀있어야 했다. 그리고 산업 현장에서는 기계들이 멈춰버려서 일시적으로 생산이 중단되는 피해를 입기도 했다.

그 사건 이후로 우리는 언제 갑자기 찾아들지 모르는 블랙아웃에 대한 불안감이 더해졌다. 블랙아웃은 우리가 사용하는 전기의 사용량이 순식간에 증가하거나, 전기를 생산해내는 발전소에 사고가 생기면 일어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전기 에너지가 충분히 있어도 어느 한 지역에서 블랙아웃이 일어나면 연쇄적으로 일어난다. 일단 한 지역이 정전 되면 곳곳에 연결되어 있는 전력망들을 마비시켜 정전이 자꾸 퍼지게 된다. 그래서 전염병이라도 걸린 것처럼 전국적으로 퍼져서 블랙아웃 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고 한다.

사실상 우리에게는 블랙아웃 경계령이 내려졌고, 그에 대한 대비책은 마련되어야 한다. 도저히 우리의 힘으로 막아낼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충분히 예방할 수 있다. 가장 손쉽게 전기 에너지 사용량이 한꺼번에 급증해서 공급에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전기 에너지를 아껴야 한다. 또한 어느 한 곳에서 정전이 일어나더라도 더 이상 전염되지 않도록 재빨리 복구하는 대처능력이 필요한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우리가 가진 신앙의 에너지도 어느 날 갑자기 블랙아웃이 일어날 수 있다. 세상에서 그리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쏟아 붓는 신앙의 에너지는 어두운 곳을 밝히 비추는 빛이 된다. 그런데 한꺼번에 집중적으로 신앙의 에너지를 사용하게 되면 금세 바닥나 버린다. 갑자기 한꺼번에 전기 에너지 사용량이 증가하여 공급이 중단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면 기쁨과 감사로 채워져야 할 우리의 내면은 빛을 잃고 블랙아웃을 경험하게 된다. 게다가 신앙의 블랙아웃은 다른 지체들에게도 전염되어서 공동체가 순식간에 어둠에 갇힐 수도 있다. 건강한 신앙 공동체로써의 에너지도 함께 상실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자신을 돌아보며 신앙 에너지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만약 하나님의 일을 하는데 쓰일 신앙의 에너지가 바닥나 버렸다면, 정상적으로 복구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먼저 예배의 자리를 사모하고 꾸준한 기도생활과 말씀 묵상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조금씩 신앙의 에너지를 채워가야 한다.

결국 신앙 에너지가 바닥나기 시작할 때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기본기를 탄탄하게 하는 것’ 뿐이다. 목회자로써 성도들의 신앙이 흔들리거나, 쉽사리 바닥을 보이게 되면 안타까운 마음에서 여러 가지 말로써 권면을 하게 된다. 그런데 정작 말로써 했던 권면이 사실상 비수로 꽂혀서 상처를 받고 낙심하게 하는 실수도 벌어진다. 그러니 신앙에 블랙아웃 경계령이 내려졌다면 다른 무엇보다 신앙의 기본기를 다져가도록 인도하는 것이 최선의 해결책임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교제해야 살아나는 영적인 존재임을 잊지 말고, 사람의 어리석은 권면이 아닌 참된 교제의 장으로 인도해내야 한다.

항상 목회자는 영적으로 깨어있어서 민감해져야 한다. 우리 교회 공동체의 신앙 상태를 점검하고, 블랙아웃이 엄습하지 못하도록 경계령을 내려야 한다. 모든 지체가 균형 있는 건강한 신앙생활로 서로가 서로에게 유익한 에너지를 내게 하고, 고갈되지 않도록 하나가 되는 일을 위하여 더욱 중보하라. 어떤 사역보다도 기도와 말씀으로 성도들을 이끄는 영적 리더십의 자리를 놓치지 말고, 신앙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도록 더욱 힘써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