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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의 일을 고민하라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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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6월 29일 (토) 21:07:59 [조회수 : 3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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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9장 41-44절

평화의 일을 고민하라

 

가. 평화에 관한 일을 고민해야 한다.

41절, “가까이 오사 성을 보시고 우시며...”

* 본문은 평화의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라는 말씀이다. 예수님은 평화에 관하여 무지했던 예루살렘 사람들을 보시고 크게 우셨다. 평화의 도시인 예루살렘에 평화가 없는데도 아무런 문제의식이 없는 것을 보시고 탄식하셨다. 평화는 단순히 메시아를 기다림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 우리는 평화를 위하여 고민해야 한다. 평화는 주술적인 기원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니다. 물론 하나님은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우리는 평화를 기원할 수 있다. 그러나 평화는 주술적인 기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우리는 평화의 일을 고민해야 한다.

* 예레미야는 평화를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공의와 정의를 실천하라고 선포하였다. 그러나 그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은 단순히 평화를 기원하였다. “항상 그들이 나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평안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며 또 자기 마음이 완악한 대로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르기를 재앙이 너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였느니라”(렘23:17).

 

나. 하나님의 통치를 보지 못하는 것이 문제다.

42절,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좋을 뻔하였거니와 지금 네 눈에 숨겨졌도다.”

*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을 보시고 우시며 탄식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별히 불의한 백성에게 내리는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였다. “네 눈에 숨겨졌도다”라는 말씀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무지의 상태를 보여준다.

* 당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백성들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고 계셨다. 주님은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가 보살핌 받는 날을 알지 못함으로 인함이라”(43-44절)라고 경고하셨다. 의로운 백성에게는 평강을, 불의한 백성에게는 심판을 내리시는 하나님의 통치를 알았어야 한다.

* 본문에서 ‘보살핌 받는 날’은 여호와께서 ‘방문하시는 날’을 가리킨다. 이스라엘을 이 날을 막연히 구원의 날로 생각하고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날은 의로운 백성에게는 평화를, 불의한 백성에게는 심판을 내리시는 날이다. 막연한 기다림이나 주술적 기원은 아주 위험한 신앙형태다.

 

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42절, “너도 오늘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더라면...”

* 예수님은 ‘평화에 관한 일’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씀하셨다. 여기서 ‘평화’(에이레네)는 ‘결합하다’(에이로)에서 유래하였다. 주님과 인격적으로 결합하고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행함으로 주님이 주시는 평강을 누리는 상태를 가리킨다. 이는 하나님의 심판인 전쟁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 그리고 ‘평화’(에이레네)는 구약의 ‘샬롬’에 해당한다. 그리고 ‘평화’(샬롬)은 ‘완전하다’와 ‘안전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즉 진정한 평화는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여질 때 누리게 되는 안전이다. 주님이 평화에 관한 일을 간략하게 말씀하신 것은 이를 잘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창17:1-2)라고 하셨다. 바울은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디카이오쉬네, rightousness)와 화평과 희락이라”(롬14:17)라고 하였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온전히 의를 이루는 것이 평화의 길이다.

 

라. 완전한 백성에게 안전과 평강이 있다.

43절, “날이 이를지라 네 원수들이 토둔을 쌓고 너를 둘러 사면으로 가두고...”

* 불의한 백성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방문하시는 날이 구원의 날이라고 생각하고 막연히 기다렸다. 그리스도의 강림도 같은 차원에서 정치적 메시아로 기다렸다. 예수님이 오셨을 때에 이스라엘은 정치적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정치적 행보를 하지 않으시자 배신하였다. 그들은 잘못된 기대와 주술적 신앙으로 인하여 결국 쓴 맛을 보고 말았다.

* 예수님의 예언은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루어졌다. 이스라엘은 로마에 의해 완전히 함락되고 파멸되었다. 그의 말씀처럼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파멸되었다. 그들은 주님의 경고를 들었어야 했다.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행하고 의로운 백성이 되었다면 심판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 하나님 앞에서 완전하게 행하는 의로운 백성에게 평화가 있다. 지혜자는 “인애와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체다카, rightousness)와 화평(샬롬)이 서로 입맞추었으며”(시85:10)라고 노래하였고, “공의(체다카)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잠14:34)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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