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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용기로!’ 전의(戰意)를 불태워라.
김학중  |  hjkim@dream10.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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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6월 09일 (일) 23:41:02 [조회수 : 4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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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사거리에 가보면 오른손에 칼을 쥐고 갑옷을 입은 용맹한 모습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 세워져 있다. 그리고 100원짜리 동전의 앞면에는 이순신 장군의 얼굴이 새겨져 있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 이순신 장군이 죽기 직전에 남긴 이 명언은 우리의 뇌리 속에 깊게 박혀있다. 몇 해 전에는 명언을 남기며 죽음을 맞이하기 바로 전 왜적을 격파시켰던 ‘명량대첩’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든 영화가 흥행 1위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영화에서 그려내고 있는 당시의 상황을 살펴보면 왜적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늘 우리나라를 침략할 때 마다 왜적을 두려움에 떨게 한 것은 거대한 우리나라 군대가 아닌 단 한사람, 바로 이순신 장군 때문이었다. 영화 속에서 왜적은 말끝마다 이순신 장군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들의 두려운 상대임을 밝힌다.

그래서 왜적은 이순신 장군을 꺾어서 제압을 하고자 비장의 무기를 준비했다. 그것은 바로 바다의 무법자라고도 불릴 만큼 악랄한 해적 장수를 필두로 또 하나의 군대를 조직한 것이다. 이렇게 왜적은 이순신 장군을 전쟁에서 제압하고 한양으로 돌격하고자 온갖 방법을 동원한다.

하지만 실상 이순신 장군은 참으로 외롭고 고단한 위치에 있었다. 정유재란이 터지고 왕의 신임을 얻지 못한 이순신 장군은 투옥되어 모진 고문을 받았다. 그로 인해 이순신 장군은 몸이 쇠약해졌고 병중에 있었다. ‘백의종군’으로 풀려나서 목숨만은 겨우 건지고 나서 우여곡절 끝에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받게 되었다. 그 때 이순신 장군에게는 전쟁에서 보여 준 뛰어난 기질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엄청난 에너지를 잃은 상태였다. 이순신 장군에게 남아있는 것은 12척의 배와 오랜 전쟁으로 전의를 상실한 병사들과 백성들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순신 장군을 탐탁지 않게 여기던 다른 장군에 의해 희망을 가지고 건조 중이던 거북선도 불에 타게 됐다.

이순신 장군은 심리적인 두려움에 휩싸인다. 그러나 본래 그가 가지고 있던 올곧은 성격이 알려주듯이 자신은 물론이고 자신을 따르는 병사들과 백성들의 ‘두려움을 용기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싸움에 있어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다”라고 외친다. 그렇게 이순신 장군은 왜적이 무려 330척의 거대한 배를 이끌고 돌진할 때, 바다를 지키고 조선을 구하기 위해서 맨 앞으로 달려 나간다.

우리에게도 두려움을 용기로 변화시킬 수 있는 확실한 힘이 있다. 더 이상 삶에 희망이 없고 막다른 골목에 왔다고 생각한 순간이 끝은 아니다. 그 끝에서 두려움과 좌절을 새로운 삶의 희망으로 변화시키는 용기를 주시는 분은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 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과, 다시 사신 부활의 승리는 삶의 고난을 두려워하지 않는 용기로 변화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지금의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할지라도 믿음의 끈을 붙잡는다면 누구나 살게 되어 있다. 최근 계속되는 경기침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강퍅해지고 있다. 올해 하반기에 경제전망도 먹구름이 잔뜩 끼어있다. 미-중 무역 분쟁과 수출 부진 그리고 해외 투자 감소로 인하여 경제 주름살이 하나 더 는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상황이 이렇다보니까 실제로 체감하는 경제적 어려움은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더 위축되게 만든다. 그로 인한 여러 가지 삶의 문제들로 살아야겠다는 전의를 상실한 이들이 많다. 이리저리 치이는 현실 속에서 믿음의 끈도 놓아버리고 만다.

부디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는 믿음’을 잃지 않기를 바란다. 모든 상황 속에서 주를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이 있다면 위기의 상황 속에서도 맞서 넉넉히 이겨낼 용기를 주신다. 전능하신 그 분의 손길 안에 속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된다. 때마다 베푸시는 은혜가 있기 때문에 살아갈 수 있음을 인정한다면, 믿음으로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 必生則死)’ 할 수 있다. 우리를 절망에 빠뜨리게 하는 세상이 두려운 게 아니라, 세상을 놀라게 하는 역전의 용사가 될 수 있다.

벌써 6월이다. 일 년 중에 절반을 달려왔다. 어떤 이는 끝도 없는 긴 터널을 통과하듯이 남은 반년이 두려울 수도 있다. 그러나 지나온 모든 시간이 전부 은혜임을 기억하며 현실을 돌파할 믿음을 가지고 나아가자. 더불어 그 사실을 기억하며 삶의 벼랑 끝에 처해있는 많은 이들을 돌아보며 목회자가 해야 할 본분에 최선을 다할 때, 두려움을 용기로 변화시키는 선한 영향력이 있다. 누군가의 두려운 삶에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용기를 심어주는 ‘희망의 메신저’들로 살아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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