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경기를 뛰는 선수들에게 유니폼에 새겨진 등번호는 아주 각별한 의미가 있다. 원래 등번호는 그라운드에서 선수들을 구분하고, 기록하기 편하도록 하는 기호였다고 한다. 그런데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선수를 구분할 뿐만 아니라 그 선수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보여주는 수단이 되었다. 따라서 선수들에게 등번호란 자신을 나타내는 ‘그라운드의 프로필’과 같다. 그래서 어떤 등번호를 새기고 그라운드를 활보하느냐는 선수 자신뿐만 아니라 선수들을 응원하는 관중들에게도 중요한 의미가 된다.

보통 선수들의 등번호는 감독의 재량이나 선수 자신의 선택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런데 등번호는 프로팀의 선수들과 월드컵에 출전하는 선수들 간에 차이가 있다. 프로팀은 1번에서 99번까지 두 자릿수의 숫자면 번호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월드컵에는 최종으로 23명의 선수들이 뽑혀져 출전하기 때문에 1번부터 23번까지만 번호가 허용된다. 나라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겠지만 월드컵에 출전하는 선수들은 대개 2번에서 5번은 ‘수비수’가, 6번에서 8번은 ‘미드필더’가 배정된다. 이어서 9번에서 11번은 공격수가 배정받게 되고, 12번에서 23번까지는 교체 선수들이 해당 번호를 배정받는다.

이처럼 축구선수 등번호에는 그 선수에 관한 정보가 압축되어있다. 근데 여러 숫자들 중에는 선수 중 딱 한 사람만 차지할 수 있는 번호가 있다. 그 번호는 바로 오직 골키퍼들만 가질 수 있는 번호 ‘1번’. 이것은 ‘국제축구연맹’(FIFA)이 2002년에 정한 규정인데, 골키퍼 이외에는 1번을 달 수 있는 선수가 아무도 없다.

이외에도 7번은 스타플레이어들에게 부여되는 번호로 공격형 미드필더들이 차지하는데 ‘베컴’이나 ‘박지성’ 선수가 달았던 번호이다. 10번은 ‘지단’과 ‘호나우딩요’와 같은 그 팀의 에이스 선수에게 주어지는 번호로 공격수들이 제일 선호하는 숫자이다.

마지막으로 특별한 사연을 가진 번호들도 있다. 어느 스포츠 종목을 불문하고 붙여지는 ‘영구결번제도’가 있는데, 뛰어난 실력과 훌륭한 인격으로 존경을 받은 스포츠 스타를 기리기 위한 것이다. 영구결번으로 정해진 번호는 팀 내에서 다시 사용할 수 없으며 선수들이 번호를 선택할 수 없게 된다.

선수들의 등번호에 담긴 의미들 때문에 이제 막 그라운드에 데뷔하는 신인들에게 정해지는 백넘버는 큰 관심사이다. 만약 신인으로써 뛰어난 활약을 보여줬던 선배 선수들의 백넘버를 물려받는다면, 그 선수의 재능과 기량이 선배 선수와 닮았다고 인정받는 것이다. 그래서 선망의 대상으로부터 백넘버를 물려받는 것은 선수 자신에게 굉장한 명예가 된다.

우리도 이　땅에서 믿음을 지키고 살아가도록 치열한 경쟁을 위해서 선발된 선수들이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영광스러운 역할을 부여받아서 뛰고 있다. 각자의 포지션을 가지고 부여받은 진정한 소명과 값진 달란트를 가지고 세상과 교회라는 그라운드를 누빈다. 때로는 숨이 턱까지 차서 포기하고 싶을 때도 많다. 심각한 부상을 당해도 붕대를 감고 뛰는 한이 있어도 진정한 승리를 위해서 달린다. 당신은 어떤 백넘버를 달고 경기에 임하고 있는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공격수로써, 때로는 믿음이라는 골문을 지키기 위하여 적극적으로 방어하는 수비수로써 그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면 참으로 응원과 격려를 받을 일이다.

그렇게 그라운드를 누비며 최선을 다하고 난 다음에 신앙의 후배들에게 어떤 백넘버를 물려주고 싶은가? 다음 주자는 자신이 선망하던 대상에게 부여받은 백넘버를 소중히 생각할 것이다. 다음의 주자들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지금의 시간을 사력을 다하여 달려가야 한다. 지난 경기연회에서는 은퇴 목회자들을 찬하하는 예배에서 후배 목회자들에게 선배 목회자가 지니던 ‘스톨’을 물려주는 순서가 있었다. 가슴이 뭉클했다. 앞으로의 그 길을 선배들처럼 더욱 견고하고 진실하게 나아가라는 대물림의 뜻 깊은 장면이었다. 후배들에게 스톨을 물려주기까지 인고의 시간을 견뎌온 그 분들이 바로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전심을 다해 달리는 ‘에이스’이자 ‘스타플레이어들’이다. 아니 더 나아가서 주님의 귀한 성품까지 닮은 ‘영구결번’을 가진 선수들이다. 우리도 그러한 백넘버를 새긴 자들처럼 날마다 새롭게 부어주시는 능력과 지혜로 오늘의 주어진 믿음의 선한 경기를 잘 치러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