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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당의 대표가 된 황교안 전도사의 딜레마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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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6월 01일 (토) 09:47:57
최종편집 : 2019년 06월 08일 (토) 00:00:42 [조회수 :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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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교안 전도사가 12일 부처님 오신 날 절에 갔다가 불교적 예법인 합장을 하지 않아서 비판을 받았다. 그는 18일 “제가 미숙하고 잘 몰라서 다른 종교에 대해서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불교계에 사과드립니다”라고 말했다. 그러고 나서 “저는 크리스천으로 계속 생활해 왔고 절에는 잘 가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절에 갔을 때 행해야 할 절차나 의식에서 부족한 부분이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앞으로 잘 배우고 익히겠습니다”라고 자기의 불찰을 인정했다. 여기서 우리는 한나라당의 대표가 된 황 전도사의 딜레마를 어림할 수 있다.

그는 법무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하고 대통령 권한대행까지도 수행한 사람이다. 이렇게 고위 공직을 섭렵한 그가, 정치판에서는 신인이라 하더라도, 공당의 대표로서 절에 갔을 때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모르고 있었다면, 무조건 그를 옹호하려는 기독교인들을 제외하고는 불교계뿐 아니라 일반 국민 모두가 아직 배워야 할 것이 많은 그에게 실망할 수밖에 없다.

그의 말대로 그는 크리스천으로 생활해왔고 전도사였기 때문에 절에는 잘 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독실한 크리스천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불교에 대한 배타적 교육을 받았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중이 와서 목탁을 두드리거든 아무것도 주지 말고 “우리는 교회 다녀요.”라고 말하라고 배웠다. 60이 넘은 황 전도사도 그렇게 배웠을 것이다.

기독교인으로서 불교에 대해서 배타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다면, 왜 불교의 행사에 참석했는가? 그가 개인 황교안 전도사였다면 그 행사에 가지 않았을 것이 틀림없다. 그렇지만 공당의 대표로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달리 말하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간 것이다. 그러나 이왕 갔다면 그는 좀 더 현명했어야 한다. 당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갔을 텐데, 결국 전혀 도움이 되지 못했으니 말이다.

기독교인으로 살아온 그의 삶이 그가 보수정당의 대표로서 활동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하고 싶지 않은 것까지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수정당의 대표가 된 황교안 전도사의 딜레마를 감지할 수 있다.


한국교회의 보수성

보수주의는 크게는 국가통치 이념에서부터 작게는 관습에 이르기까지 현 체제를 안정시키려고 기존의 가치질서를 옹호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보수정당에서는 성장주의에 의거해서 개발정책이나 부자에 대한 감세 정책, 수도권 규제완화와 친자본정책을 추구하고 있다. 외교통상 분야에서는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패권주의에 순응하고 북한에 대해서는 상호주의에 입각한 강경책을 편다. 그리고 보수정당에서는 기존의 관습을 중시한다.

한국교회가 모두 보수적인 것은 아니지만, 한국교회는 대체적으로 보수적 성향이 강하다. 특히 한국은 종교적 신앙을 불신하는 공산주의자들과 대립하고 있기 때문에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보수적인 태도를 견지해야 했다. 많은 교인이 북한에서 공산주의자들의 박해를 피해서 신앙의 자유를 찾아 고향을 버리고, 형제자매 부모까지도 버리고 남한으로 내려왔다. 그리고 6,25를 거치면서 교회와 공산주의자들은 같이 공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경험했다. 그래서 한국의 기독교인들에게 좌파라고 하면 끝까지 싸워서 이겨야 하는 철천지원수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그분이 세상을 창조하셨음을 옹호하기 위해서 날로 발전하는 과학과 대립해왔다. 17세기에는 지동설을 주장하는 갈릴레오를 파문해가면서 성서의 기록을 지키려고 노력했고, 19세기 이후에는 진화론을 반대하면서 하나님의 창조를 옹호하려고 몸부림쳤다. 요즘은 도킨스 류의 무신론 과학자들에 맞서서 싸우고 있다.

그리고 보수적인 교파에서는 성서비평에 맞서서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근본주의 신학을 고수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근본주의적 신학이 하나님의 절대성을 견고히 지켜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런 교회에서는 현대적인 것이라면 무조건 자유주의 신학으로 매도하면서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복음주의의 스펙트럼이 극 보수에서 진보까지 그 폭이 넓지만, 복음주의를 표방하는 대부분의 한국교회는 극 보수 쪽에 치우쳐 있다.

성경의 문자적 이해를 중시하는 한국교회에서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의 관습을 고수하려고 노력한다. 여자는 남자의 갈비뼈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나 하와가 아담을 유혹해서 죄를 짓게 했다는 기록을 근거로 해서 남성우월주의를 고수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여성안수를 반대하고 허용한다 하더라도 남성에 치우쳐 있다. 낙태를 반대하고 요즘 이슈가 되어 있는 동성애를 적극 반대한다. 그리고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는 십계명에 근거해서 타종교에 대해서는 배타적이다.

이렇게 공산주의나 과학 같은 외부 세력으로부터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지킬 뿐 아니라, 성서를 문자적으로 해석하면서 성서비평학으로부터 성서의 절대성을 지키려는 수구적인 교회가 정치적으로 보수정당의 편을 드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처럼 보인다.


예수님의 진보적 가르침

사회의 변화와 발전을 추구하는 진보주의는 기존의 가치질서를 넘어서서 새로운 가치질서를 수립하려는 경향을 나타낸다. 한국의 진보정당에서는 종부세 등을 통해 부자에게 세금을 많이 물리고 복지정책을 강화하는 등 분배정의를 실현하려 하고, 지방분권화를 추구한다. 외교 통상 분야에서는 자주외교와 북한과의 화해와 협력 증진을 통한 평화통일 기반의 확대를 꾀한다. 그리고 관습에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려고 한다.

기존의 유대교의 가치질서를 넘어서서 새로운 복음을 선포하셨다는 면에서 예수님을 진보주의자라고 말할 만하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이 혁명가였다고 말하기도 한다. 그분이 유대교 지도자들의 미움을 사서 고발당하고 결국 십자가에 달리게 된 것은 기존 유대교의 가치를 전복시키려는 위험한 인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대교에서는 이방인들과 상종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은 당시의 고정관념을 버리고 이방인까지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다. 예수님은 그 유명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이러한 사랑을 강조하셨다. 예수님은 유대인들이 이방인으로 취급하면서 상종하지 않았던 사마리아인과 대화하고 그들이 사는 지역에 들어가기도 하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언행은 당시의 관례를 깨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사랑을 가르치신 예수님은 당시의 사회신분의 경계를 뛰어넘는 진보적 행보를 보이셨다. 유대인들이 죄인으로 취급하고 멸시했던 세리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식사하셨다. 그러자 유대교 지도자들은 그분을 죄인의 친구라고 비판했지만, 예수님은 죄인들의 편에 서서 당신이 의인을 구하려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구하러 오셨다고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맞섰다.

이렇게 예수님은 당시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들이나 버려진 자들의 친구가 되셨고 그들을 위해서 일하셨다. 병자들을 불쌍히 여기셨고, 당시에 사람의 수에 들지 않았던 여자들의 신앙을 칭찬하셨다. 그리고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된 한셈병 환자들을 불쌍히 보시고 그들의 병을 고쳐서 그들을 사회로 복귀시키셨다. 이러한 예수님의 행보는 사회적 금기를 깨는 진보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부유한 사람들의 편을 들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의 편에 서셨다. 부자 청년에게는 가진 것을 모두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라고 가르치셨고, 재물을 탐하는 부자의 허점을 지적하시면서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고 가르치셨다. 이런 재물에 대한 비판은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보다 어렵다는 말씀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예수님은 기존의 종교적, 사회적 경계를 뛰어넘으셨고, 가난한 자들을 돕고, 소외된 자들을 품고, 죄인들을 살리시려는 사랑의 계명을 선포하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기존 세력인 유대교 지도자들과 여러 면에서 대립했다.


마치면서

기존의 가치질서를 옹호하려는 보수정당의 자세와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교회의 수구적 태도 사이에는 공통점이 있다. 그러나 그 둘 사이의 공통점은 거기서 끝난다. 보수정당이 기존의 가치체제를 옹호하고 성장주의를 추구하면서 부자들의 이익을 챙기는 것은 예수님이 율법주의적인 유대교의 기존체제를 해체하시면서 가난한 사람들과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선포하신 것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심과 그분의 창조를 믿는 신앙의 정체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수구적인 자세를 취하면서도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가르침과 삶을 따라서 살려고 노력한다.  이것은 일면 보수적인 자세로 신앙을 지키려고 노력하면서도 진보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보수정당과 진보정당이 극한으로 대립하고 있다. 이 정치판에 뛰어든 보수정당의 대표 황교안 전도사는 이 진흙탕 싸움에 휘말려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과 함께 장외투쟁에 나섰고 보수세력을 결집하기 위해서 전국을 돌았다. 그 결과 한나라당의 지지율이 높아졌다. 이것은 그가 한나라당 대표로서 거둔 큰 성과다. 이 성과에 고무된 한나라당에서는 그가 더욱 보수세력을 결집하는 일에 매진해줄 것을 바라고 있다.

앞으로 황교안 전도사는 보수정당의 대표로서 그 정당이 추구하는 가치체제를 실현하기 위해서 몸 바쳐야 할 판이다. 그는 보수적 가치를 지키려는 그의 동료들과 발을 맞출 뿐 아니라, 앞장서서 모범을 보이고 보수적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특히 전도사로서 지금까지 그가 실천하려고 노력해온 예수님의 진보적인 가르침을 외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은 그가 기독교인으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

이것이 바로 보수정당의 대표가 된 황교안 전도사의 딜레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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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19-06-04 23:07:02
딜레마의 딜레마
사랑할 때가 있고, 싸울 때가 있습니다. 사랑할 때 싸움을 생각하면 사랑을 잃게 되고, 싸울 때 사랑을 생각하면 사랑도 잃고 싸움에도 지게 됩니다.

대한민국 建國 이래 가장 존경하는 정치인은 素石 李哲承 신민당 대표최고위원입니다. 박정희 철권통치 하에서 中道統合論을 주장하여 박정희 정권에 협력할 것은 협력하고, 비판할 것은 비판하자고 하였습니다.

이철승 선생의 주장은 무조건적인 박 정권 타도를 주장하는 윤보선, 김영삼, 김대중 등의 大衆迎合主義에 의해 거부당하여 이철승 선생은 ‘사꾸라’로 몰렸습니다. 이게 정치 현실입니다. 상대를 배려하자고 하는 주장은 민중들에게 먹혀들지 않았습니다. 김준엽 고려대총장, 이철승 대표최고위원 등이 대통령이 되었다면 나라는 ‘좀 더 인간답게 사는 나라’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이것도 고려하고, 저것도 고려하자는 건 理論的으로는 맞는 데 現實的으로는 맞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버려야 할 것은 버리고 취해야 할 것은 취해야만 現實的으로 맞습니다. 太宗 이방원이 무지막지하게 정적들을 제거하고 대왕이 되어 “모든 업보는 내가 질 테니 세자는 태평성대를 이루라!”고 하여 世宗의 시대가 열리게 된 것입니다.

황교안이 정권투쟁에 나선 이상 철저하게 현실세계에 뛰어들어 일단 승리를 쟁취해야만 그 뜻을 펼칠 수 있습니다. 정권을 잡기 전까지는 김대중보다 거짓말을 더 잘해야 하고, 김영삼보다 3당 합당을 더 잘해야만 합니다. 그런 다음 태종 이방원처럼 한국사회의 온갖 부조리를 척결하고 나서 다음 후계자에게 세종式 치세를 이루도록 하는 게 가장 ‘현실적’이 아닌가하고 여겨집니다.

황교안이 싸울 때는 과거 박정희 정권 타도 투쟁처럼 물불을 가리지 않고 싸워야만 합니다. 大衆은 강한 자에게 박수를 보낸다는 만고의 진리를 새겨듣고서... 善意를 가지고 무지막지하게 싸워야만 결실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런 다음 “그는 기독교인으로서, 특히 전도사로서 지금까지 그가 실천하려고 노력해온 예수님의 진보적인 가르침을 외면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것은 그가 기독교인으로서 결코 해서는 안 되는 일이다.”라는 본문 글의 우려를 일거에 날려버리길 바라마지 않습니다.

승리하지 못하면 아무런 뜻도 펼칠 수 없으니 일단은 승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 ‘전도사의 뜻’을 정치적으로 펼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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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환 (222.100.38.174)
2019-06-06 11:23:02
푸드트럭 타고 노래 부르고 다니면 정권이 굴러 들어올까?(네티즌 '무학산'의 글 퍼옴)

정권을 지키려는 정당은 결사적으로 나오는데 정권을 뺏겠다는 정당은 모범생 노릇만 하겠다니 더 할 말이 없다.

누가 봐도 민주당은 막말 대가들 집합소이다. 입에 담지 못할 막말을 하고서도 사과는커녕 도리어 눈알을 부라린다. 그러면서도 한국당이 뭔 말만 하면 ‘막말’이라면서 사과를 요구한다. 왜 그럴까? 사과를 요구하면 한국당이 잽싸게 사과를 하기 때문이다. 사과를 받은 민주당은 한 건 올린 개선장군이 되고 한국당은 몹쓸 정당이 돼 버린다. 그런데도 건건마다 사과를 한다. 물론 막말을 하지 않아야 하지만 어쩌다가 했다면 사과할 것은 사과해야 하고, 사과하지 않아야 할 것은 하지 말아야 한다. 사과하지 않아도 될 것에 사과를 하니 문제인 것이다. 마치 무뢰배가 윽박지르고 나오면 내가 참고 말지 하며, 좋은 게 좋다는 식으로 사과를 하니까 구경꾼의 속이 다 느글거린다.

한국당이 전에는 그래도 이토록이지는 않았는데 왜 이젠 ‘사과 정당’이 되었을까? 투쟁정신이 부족해서이기도 하지만 정당의 가치를 지키려는 의지가 없기 때문으로 보아 마땅할 것이다.

이 마당에 황교안은 푸드트럭 타고 노래 부르며 2040 토크콘서트 나섰다고 한다. 참 한가하다. 저러고 다니면 정권이 굴러 들어올까? 세상에는 ‘때’가 있고 그 때를 알아채야 성공한다.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때가 있다. 태어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뽑을 때가 있으며 전쟁의 때가 있고 평화의 때가 있는 것이다. 지금은 일부 문빠들 말고 거의 모든 국민이 문재인에게 등을 돌렸다. 이 찬스에 황교안은 가일층 화력을 집중하여 공격해야 한다. 그래도 정권을 쥐기는 어렵다. 한데도 어제는 사과를 하고 오늘은 노래 부르고 다닌다.

황교안 씨가 그 인격이야 훌륭하지만 정치감각은 제로인 듯하다. 거기다가 샌님답게 정치를 한다. 정권을 지키려는 정당은 결사적으로 나오는데 정권을 뺏겠다는 정당은 모범생 노릇만 하겠다니 더 할 말이 없다. 투쟁하지 않는 야당을 어디다 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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