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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를 향한 노래
조진호  |  jino-j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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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6월 01일 (토) 09:38:27
최종편집 : 2019년 06월 01일 (토) 09:41:39 [조회수 :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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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는 지난주 하늘결교회의 주일예배에서 성서일과에 따른 신약본문, 계시록 21장과 22장 말씀을 기초로 ‘하나님 나라’에 관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런데 설교 내용에 부합하는 찬송가를 찾다가 난감한 상황에 이르렀습니다. 설교와 맥을 같이 하는 마땅한 찬송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찬송가에는 분명 ‘교회’라는 제목 분류 안에 ‘하나님 나라’라는 하위분류(207~210장)가 있지만 그 분류에 속한 찬송가들은 예수께서 팔복 말씀과 수많은 비유와 기적으로 보여주시고자 애쓰셨던 ‘하나님나라’가 아니라 모두 ‘교회’에 관한 찬송가였습니다. 제목 밑에 있는 관련 성경구절만 보아도 예수께서 펼쳐 보이신 ‘하나님나라’와 연관된 구절은 하나도 없습니다.

 이밖에 찬송가 234장부터 249장은 ‘천국’이라는 제목 분류로 묶여 있는데 이 카테고리에 있는 찬송가들은 대부분 하나님의 다스리심으로서의 하나님 나라가 아니라 죽음 이후에 가는 소위 ‘천당’과 관련된 것들입니다. 게다가 ‘천국’ 제목 분류로 묶여 있는 찬송가들은 대부분 장례식장이나 추도 예배 때 부르는 찬송가들인데 그런 선입견 때문에 일반 예배 때에 부르기에는 뭔가 찝찝한 찬송가들이 되어 버렸습니다.

 큰일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마태복음 5장의 ‘팔복’ 말씀이 향하고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중심이며 창세기의 ‘에덴동산’과 계시록의 ‘거룩한 성’이 수미상관을 이루며 성경 전체가 품고 있는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인데 이와 관련된 찬송가가 없다니요! 교회 내에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선포가 거의 없음을 발견하고 한탄했던 피터 와그너 박사의 그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집니다.

 “그리스도인이 된지 30년인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설교를 왜 그렇게 하지 못했는지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성경을 읽으면 그에 대한 말씀이 분명 많이 나온다. 그러나 이제껏 내가 거쳤던 목사들 가운데 실제하나님 나라를 설교한 사람은 솔직히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나 자신의 설교노트를 들춰보니 나 역시 거기에 대해 설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하나님 나라는 도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달라스 윌라드, <하나님의 모략>, p.111)

 그런 와중에 새로운 찬송가를 발견했습니다. 찬송가 244장 ‘구원 받은 천국의 성도들’입니다. 그 찬송가로 저의 눈길을 이끌었던 것은 바로 작곡가의 이름, 본 윌리엄스(R. Vaughan Williams, 1872~1958)였습니다. 본 윌리엄스는 엘가의 뒤를 이어 구스타프 홀스트와 함께 영국 음악의 새로운 부흥기를 이끌어 냈던 위대한 작곡가였습니다. 그는 대기만성형의 작곡가로서 독일적 전통이 주류를 이뤘던 당시에, 엘리자베스 여왕 튜더 왕조 시대의 음악과 영국 민요 선율에 관심을 가졌고 수년간의 민요 채집과 대중과 친밀한 음악 작업을 통해 영국 문화의 황금기를 열어 준 작곡가입니다. 본 윌리엄스 이전의 영국음악은 조금 과장하자면, ‘피쉬엔 칩스’와 같은 볼품없는 영국음식과도 같았습니다. 하지만 민족의 자주성과 영성을 찾아내어 음악적 언어로 만들어 냈던 그의 작업들은 훗날, 비틀즈와 팝음악 , 엔드류 로이드 웨버와 뮤지컬 음악 등 영국 문화가 세계를 선도하는데 선구자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옛날 바흐가 했던 일도 이와 같았지요. 이탈리아 전통이 주류를 이뤘던 당시에, 바흐는 루터의 독일어 성경 번역을 바탕으로 독일 민중들의 영성이 담긴 선율들을 통해 독일음악의 초석을 다졌습니다. 그 영향으로 바흐 이후 모차르트와 베토벤등 독일 음악의 거장들이 음악사의 큰 획을 그을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기독교와 서양 음악이 전해진 지 백 년이 훌쩍 넘었건만, 우리나라의 현실은 아직 아쉽기만 합니다. 아직까지 서양의 음악을 흉내 내고만 있는 모습의 우리의 현실입니다. 아무튼 본 윌리엄스의 이름을 찬송가에서 발견하게 된 것은 참으로 가슴 떨리는 일이었습니다.

 피아노를 치며 떨리는 마음으로 이 찬송가를 노래 해 봅니다. 역시나 너무나 아름다웠습니다. 피아노의 베이스 라인이 마치 ‘거룩한 하나님 나라 백성들의 행진’처럼 느껴집니다. 오르간으로 연주하면 더 감동적일 것입니다. 이 찬송가의 멜로디는 ‘20세기 가장 아름다운 찬송 선율’로 하마평에 오르내리며 미국과 영국 교회에서 매우 사랑받고 있습니다.

 이 찬송가의 작사자는 성공회의 사제 하우(W. W. How 1823~1897)입니다. 옥스퍼드 대학을 졸업한 그는 사제 서품을 받은 후 런던 동부의 빈민가에서 활동하며 목회하였는데 빈민들에게 깊은 관심을 두었기 때문에 교회 밖 일반 사람들조차 그를 “The poor man's bishop/가난한 사람들의 감독”이라는 존경어린 애칭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닮은 그의 목회적 삶과 그가 남긴 찬송시가 이 찬송가를 통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를 하나님 나라로 연결 하고 있습니다.

 아래에 링크한 음악을 들으시면서 이 찬송을 불러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 찬송을 노래할 때 하나님 나라가 마치 영화 ‘인터스텔라’의 책창 틈 사이의 빛처럼 열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전율하였고 눈물이 핑 돌았고 너무 행복했습니다. 태초의 에덴, 팔복 말씀을 통해 펼쳐 주신 예수님의 꿈, 그리고 영원한 거룩한 성까지... 이 찬송가를 만든 이들과 이 찬송가를 부르는 이와 하나님 나라가 그렇게 전율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낯설다는 이유로 덮어 두기에는 너무나 아름답고 귀한 찬송가입니다. 이 찬송가를 온 성도들이 한 목소리로 부른다면 얼마 좋을까요!

천국에서 누리는 안식은
새 하늘과 새 땅의 영화라
눈물 슬픔 죽음도 없는 곳
알렐루야 알렐루야

-찬송가 244장 2절

*캠브리지 킹스컬리지 합창단이 부르는 찬송가 244장 ‘For All the Saints’
https://youtu.be/1OaBgaMcOv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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