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이는 것과 속는 것, 어느 쪽이 나쁜가. 많은 이들이 속이는 것이 나쁘다고 할 테지만 나는 속는 것도 나쁘다고 생각한다. 어리석음이 나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경중을 따지자면 조금 다르긴 하다. 속이는 것은 악의가 있을 수 있지만 속는 것은 악의가 있진 않다.

그럼 속이는 것과 속아주는 것은 어떤가. 상대가 속이는 걸 알면서 상대가 모르게 그냥 넘어가는 게 속아주는 것이다. 거짓말하는 이에게는 어리석어 넘어간 것으로 보이겠지만 속아주는 것은 전혀 어리석은 일이 아니다.

때로 우리는 어리석어 보이면서 속아줄 때가 있어야 한다. 부모가 자녀에게 속아주는 것, 친구가 친구에게 속아주는 것, 부부간 속아주는 것 등 때론 이런 일들이 필요하다.

경북대 총장까지 지낸 박찬석 박사의 어린시절 일화가 있다. 경남 산청의 작은 마을에서 테어난 그는 대구의 중학교에 가게 되었는데 영 공부에는 취미가 없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 대도시로 유학을 보내는 것이 여의치 않았지만 그의 아버지는 결단을 했다.

하지만 아들은 68명 중에 68등을 했다. 아들은 아버지가 실망할 것을 염려해 성적표의 68이라는 숫자를 1로 고쳐 아버지에게 가져다 드렸다. 어설픈 거짓말은 뜻밖의 일로 번졌다. 아버지는 자식의 1등을 축하한다고 재산 목록 1호인 돼지를 잡아 마을 잔치를 벌였다.

아들은 자신의 거짓말 때문에 가장 큰 재산이었던 돼지를 아낌없이 포기한 아버지의 모습을 평생 마음에 담고 살아야 했다.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정말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들은 박사가 되고, 대학교수가 되고, 대학교 총장이 되었다.

아들은 자신에게도 아들이 태어낳고 그 아들이 중학생이 되었다. 어느 날 고요한 밤에 아버지와 마주 한 아들은 아버지께 사실을 말씀드려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아버지. 저 중학교 1학년 때 1등은요...“

아버지는 아들의 말을 막았다.

"알고 있었다. 그만해라. 손자 듣는다.“

박찬석 박사의 아버지는 속은 게 아니고 속아준 것이다. 아들만 속아준 것을 속은 것으로 생각하고 일생을 산 것이다. 그런데 그 속아준 게 아들을 훌륭하게 만들었다. 그렇다. 때로 우리는 속아줘야 할 때가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

어떤 면에서 보면 알면서도 넘어가 주는 아량으로 인하여 이 사회는 더욱 따듯해진다. 하나하나 꼬치꼬치 진실이란 이름의 잣대를 들여다대는 게 모두 좋은 것만은 아니다. 물론 정의를 무시하고파서 하는 말은 아니다. 정의를 세우되 사랑이 기반이 되어야 한다.

간음 중에 잡혀 온 여인을 대하는 예수님의 행동에서 우리는 배워야 한다. 예수님은 돌멩이를 들고 쳐들어 온 군중들에게 정의의 돌 대신 자신을 돌아보도록 하셨다. 예수님은 비윤리의 현장에서 정죄 보다는 ‘속아줌’, ‘넘어감’을 택하셨다. 우리 사회는 탈도 많고 불의도 많다. 이런 사회를 사는 성도는 예수님의 ‘넘어감’도 배워야 한다.

▲ 김학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