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와 연해주 시절, 한인들이 끈질기게 항일투쟁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단군신앙 때문이었다. 지금은 소수의 종교가 됐지만, 대종교(大倧敎)의 단군 신앙은 한인들의 자존이고 힘이고 이데올로기였다. 대종교 신도 십만 명 이상이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하다가 죽었다고 보면 된다. 그리고서 싹이 잘렸다.

1919년 독립만세가 한반도를 덮었어도 독립은 오지 않았다. 만세운동은 자연히 무장투쟁으로 변했다. 무장투쟁의 중심은 간도였다. 대한제국, 군대, 그리고 정부를 합쳐 이름을 지으면 대한군정부(大韓軍政府)가 된다. 상해에 임시정부가 있는데 군정부(軍政府)라고 부를 수는 없었다. 정부(政府)를 정서(政署)로 고치고, 서간도 지역 항일무장을 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 북간도 지역 항일무장을 북로군정서(北路軍政署)로 불렀다. 1919년 북로군정서가 설립된 지 한해 만에 천육백 명의 무장 독립운동 단체가 되었으니 괄목한 만하다.

독립군에 대해서 알려면 밀산(密山)을 알아야 한다. 밀산은 블라디보스톡 북쪽에 있는 한카(Khanka) 호수 북편 지역을 가리킨다. 1909년 이상설은 밀산의 토지를 매입해 한인 백 호를 이주시키고 마을을 세웠다. 그 마을을 한흥동(韓興洞)이라 불렀다. 여기에 학교들을 세우고, 독립운동 기지를 만들어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안창호는 신민회 단원을 보내 밀산의 넓은 토지를 사들이고 한반도와 연해주에 사는 동포들을 이주시켰다. 밀산 한인들의 노력으로 독립군의 식량과 자금이 확보됐다. 신채호, 김좌진, 이범석, 홍범도 모두 여기서 항일투쟁을 준비했다. 밀산의 무장독립운동은 봉오동 전투와 청산리 대첩의 승리로 이어졌다. 여기에는 독립군을 양성하는 군관학교가 있었고 대종교 총본사가 있었다.

독립군들이 믿은 종교는 대종교였다. 대종교는 1909년 나철(羅喆, 1863-1916)이 민족정신을 되찾기 위해 창건한 단군교다. 독립운동의 중심이 대종교임을 알게 된 일제는 탄압하기 시작했다. 대종교는 본부를 만주 밀산으로 옮겼다. 연해주 책임자는 이상설이었다.

나철은 1916년 8월 15일 황해도 구월산에서 일제에 항거하는 유서를 남기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순절한 후 사람들은 더욱 몰려들었다. 나철의 뒤를 이은 김교헌(金敎獻, 1868-1923)은 만주에서 군관학교를 열고 독립군을 양성했다.

독립운동의 역사는 대종교를 빼고 얘기할 수 없다. 대종교는 항일 투쟁을 위해 태어난 종교다. 한반도를 떠난 지사들은 대부분이 대종교 신자였다. 삼일 운동 전 1918년 무오독립선언의 서명자도 대부분 대종교인이었다. 민족의식을 갖고 국권을 회복하는데 대종교만큼 좋은 민족종교는 없었다.

출처가 분명치 않으나, 단재 신채호의 말로 회자되는 글이 있다. “우리나라에 부처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부처’가 되지 못하고 ‘부처를 위한 한국’이 된다. 공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공자’가 되지 못하고 ‘공자를 위한 한국’이 된다. 기독교가 들어오면, ‘한국을 위한 예수’가 아니고 ‘예수를 위한 한국’이 되니, 이것이 어찌된 일이냐.”

두만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백두산으로 꺾어지는 지역에 봉오동이 있다. 지금은 중국 도시인 투멘(Tumen, 도문)에서 가깝다. 1920년 6월 홍범도가 이끄는 천이백 명 독립군 연합부대가 길림성 봉오동(吉林省 鳳梧洞) 일대에서 일본군과 싸워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일본군과 싸운 첫 대규모 전투였다.

독립군을 몇몇 의병 정도로 얕잡아 보던 일본군은 뒤집어졌다. 1920년 조선총독부는 ‘간도지방 불령선인 초토계획’(不逞鮮人 剿討計劃)을 세웠다. 불령선인이라는 말은 ‘불량한 조선인’, 즉 식민통치에 반대하는 조선 사람을 가리키는 ‘불량한 일본말’이다.

일본군 2개 사단이 간도로 들어왔다. 홍범도의 독립군 부대는 청산리로 이동해서 김좌진의 북로군정서와 함께 일본군을 무찔렀다. 서일, 김좌진, 이범석 등 대종교인의 북로군정서는 청산리 전투에서 대승을 거뒀다. 일본군 천이백 명을 사살한 청산리 전투는 항일 무장투쟁 사상 최고의 전투였다.

참혹한 보복이 뒤따랐다. 일본군은 독립군의 근거지를 초토화하기 위해 작전을 펴고 한인들을 학살했다. 북간도에서 두 달 동안 많은 한인들이 피살됐고, 많은 가옥과 학교와 교회가 불탔다. ‘간도참변’이 그것이다.

봉오동, 청산리 전투 후 독립군 부대는 일본군의 토벌을 피해 러시아 연해주로 이동했다. 만주에서 무기와 식량을 구하기 어려워지자 러시아로 넘어가서 계속 일본에 항전하려 한 것이다. 러시아는 혁명에 반대하는 백군과 혁명을 지지하는 적군이 싸우는 내전 중이었다.

러시아 혁명정부는 자연히 일본군과 싸우는 독립군을 지원했다. 1921년 여러 독립군 부대들은 소련의 지원을 기대하며, 아무르 주 자유시(스바보드니 Svobodny, 블라고베셴스크 Blagoveshchensk)로 이동했다. 여기서 6월 자유시 참변이 일어났다.

일제는 백군을 도왔다. 1918년부터 일본군은 시베리아에서 전쟁을 벌였다. 일본 육군 21개 사단 중, 11개 사단 칠만오천 명이 시베리아에 주둔했다. 러시아 내전에 간섭한 나라는 일본뿐이 아니었다. 러시아 전역에 영국군, 프랑스군, 그리스군, 폴란드군, 캐나다군, 세르비아군, 이탈리아군, 루마니아군, 에스토니아군, 호주군이 파병되었다. 블라디보스톡에는 일본군, 미군, 영국군, 캐나다군이 들어왔다. 일본군과 외국 군대들, 백군과 적군, 일본인 첩자와 독립군이 싸우는 연해주에서 한인들의 일상이 얼마나 어려웠을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1925년 일본이 소련과 수교하고 군대를 철수할 때까지 일본군 오천 명이 죽었다. 그런데도 일본은 ‘시베리아 전투’라고 하지 않고 ‘시베리아 진출’이라고 한다. ‘체코 군단’을 구출하기 위해 출병(진출)했다는 것이다. 침략(전투)이라는 낱말을 쓰고 싶지 않거나 실패한 시베리아 전투를 지우고 싶은 꼼수다.

일본군에게는 진출일지 모르지만, 식민지인 한반도 사람들에게는 배가 된 고통이었다. 한반도는 일본 군인을 위한 쌀 공급지가 됐고, 많은 한반도 여성이 군위안부로 끌려갔다. 그리고 일본의 시베리아 전투는, 1937년 연해주 한인 강제이주의 이유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