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무더위가 해를 더할수록 이르게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고성도 읍내에서는 뜨거운 바람이 붑니다. 주말 낮에 저와 아이들이 함께 읍내에 내려갔다가 볼일만 보고 얼른 진부령으로 올라왔습니다. 그늘에 있으면 선선한 바람이 부는 진부령에 살다보니 더위에 더 민감해 진 것 같습니다.

   지난 주말에 장로님의 하우스에서 쌈 채소를 뜯어 교회 가까이 사시는 할머니 성도님께 가져다드렸습니다. 할머니는 시력이 나빠지신 후로 부쩍 체력도 약해지셨습니다. 해마다 집 앞의 텃밭에 심던 옥수수와 상추를 올해는 심지 못하셨습니다. 다행히 서로에 대한 소식이 빠른 시골마을인지라 마을 이장님이 할머니 대신 텃밭을 일구어 옥수수를 심어주셨습니다. 저는 농사에는 아직 자신이 없기에 장로님의 하우스와 텃밭에서 채소를 뜯어서 할머니께 가져다 드립니다.

   뜯어간 채소를 드리고 할머니와 저, 그리고 큰아이가 함께 할머니의 집 마당에 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할머니는 오래전부터 방 2개인 민박을 운영하시는데 근래에는 군부대 공사를 하는 3명의 손님이 장기투숙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손님들이 오가며 저희가 누구인지 할머니께 물어 보았습니다. 할머니는 저를 교회 사모라며 손님들에게 소개를 했습니다. 잠시 함께 지내다가 떠나는 손님들이지만 할머니께는 좋은 이웃입니다. 할머니 말씀에 따르면 손님 중 한 분은 장을 보고 오면 꼭 할머니께 드릴 것을 따로 사서 오신다고 합니다. 가끔 말벗도 되어주고 먹을거리도 신경을 써주는 손님들이 있어 혼자 사시는 할머니의 얼굴에도 함박웃음이 깃듭니다.

   그리고 올 해 처음 안 사실인데 할머니의 마당에는 체리 나무가 3그루 있습니다. 저는 한 번도 할머니의 앞마당에 체리가 열린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체리를 보고도 무심하게 지나쳤거나 보통 시장에서 사서 먹던 수입체리와는 조금 다른 모양이어서 체리인지 몰랐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우리 마당에 체리 열리면 좀 따가.”하고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나무 가까이 가서 보니 자그마한 열매들이 익어가고 있었습니다. 체리가 열린다는 말을 듣고 가장 신이 난 것은 큰아이입니다. 큰아이는 우리나라에도 체리가 열리는지 몰랐다며 함박웃음을 띄고 언제 딸 수 있는지 상세히 물어보았습니다. 나무에서 막 딴 진부령 체리는 어떤 맛일지 저도 궁금합니다.

   더불어 5년을 살면서도 할머니 앞마당에 있는 체리나무를 처음 본 저 자신이 머쓱합니다. 교우들과 이웃들에게 관심이 부족한 것은 아닌지 저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관심이 있으면 자세히 보고 세세히 알게 마련인데 저에게는 그런 부분이 좀 부족합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니 3주 전 잃어버린 보자기 사건도 생각이 납니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주일식사를 위해 세 분의 할머니 교우께서 반찬을 준비해 오셨습니다. 보통은 예배 후 점심식사를 하고 반찬통 설거지가 끝난 후 각자의 반찬통을 찾아서 보자기에 싸서 가지고 가십니다. 그런데 그날 한 할머니 집사님께서 피망농사가 바빠 점심식사를 하지 못하고 가셨습니다. 집사님은 가시면서 “다음 주에 통이랑 보자기 가져가게 사모님이 챙겨놔요.”하고 당부하셨습니다. 저는 그러겠노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런데 오후예배까지 끝이 나고 교우들이 모두 돌아간 후 살펴보니 할머니 집사님의 반찬통은 있는데 보자기는 없었습니다.

   저는 보자기를 잘 사용하지 않기에 사라진 보자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주중에 마을에 올라갈 일이 있어 할머니 집사님께 통을 가져다 드리면서 보자기를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말씀을 드릴 때 까지만 해도 그랬습니다. 그런데 집사님이 그 보자기를 꼭 찾아야 한다며 장로님께 “사모님이 내 보자기를 내다버렸다.”고 말씀하셨다는 것을 듣고서 ‘잃어버린 보자기’의 심각성을 깨달았습니다. 그 이후 집사님은 새 보자기를 드려도 “집에 보자기 많은데 새 것은 필요 없어요. 내 보자기를 찾아야지”라고 하셨고, 반찬통을 담기 좋은 장보기 가방을 드려도 “그런 가방은 쓰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보자기의 행방은 아직도 묘연하고 집사님은 3주째 저를 볼 때마다 “보자기 찾았어요?”라고 물어보십니다. 그리고 다른 교우들에게도 사라진 보자기의 행방을 묻고 계십니다.

   그렇게 집사님의 사라진 보자기로 저는 곤욕을 치르고 있습니다. 제가 보자기를 누군가에게 주거나 버린 것은 아니지만 “몇 개 안되는 보자기도 누구 것인지 구분 못하고 다른 사람을 줘버렸다.”는 집사님의 말씀은 일면 사실입니다. 저는 보자기 모양을 잘 구분을 못합니다. 보통은 보자기의 주인이 보자기를 알아보고 찾아갑니다. 장로님 말씀에 따르면 잃어버린 보자기는 앞으로 반년은 저를 따라다닐 것 같습니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이 사소한 사건을 통해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첫째는 제가 주의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실수하는 저 자신을 스스로 너그럽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 둘째는 저에게 별 것 아닌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주 중요할 수 있다는 것, 마지막으로 믿음의 교우들에 대한 관심과 사랑만이 저를 성숙시켜 나가는 길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체리나무와 잃어버린 보자기를 교훈 삼아 제 안에 자연스러운 관심과 사랑이 자라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