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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괜찮다’고 말해주는 ‘괜찮은’ 사람이 필요하다.
김학중  |  hjkim@dream10.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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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5월 19일 (일) 23:41:47 [조회수 : 4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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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옛적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나오는 ‘경문왕 설화’가 바로 그것이다. 줄거리를 되짚어보면 경문왕(景文王)은 신라의 제48대 왕으로 즉위 후에 별안간 귀가 당나귀처럼 길어졌다고 한다. 이러한 변화는 아무리 가까이에서 경문왕을 모시는 사람이라도 알 수는 없었다. 그렇지만 단 한 사람 오직 임금님의 두건을 만드는 장인 ‘복두장’(幞頭匠)만은 알고 있었다고 한다.

임금님의 비밀을 알게 된 복두장은 그 날부터 큰 고민을 떠안게 되었을 것이다. 길게 생각하지 않아도 이 비밀이 소문으로 도는 날에는 그에게 큰 위험이 닥칠 것이 뻔했다. 아마 키우던 개에게도 절대 말해서는 안 될 일이었을 것이다. 평생 속앓이를 하며 살아 온 그는 죽기 전에 도림사 근처의 대숲에 들어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쳤다. 어쩌면 여태껏 잘 숨겨오다가 대숲에 가서 임금님의 비밀을 발설한 행동이 자칫 가볍게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복두장에게 대숲은 마지막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하루도 맘 편할 날이 없었을 그가 어마 무시한 비밀을 털어놓은 곳이 대숲이었으니, 오늘날까지 대슢은 속앓이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반가운 상징적인 장소이다.

얼마 전, 소식이 뜸하던 친구에게서 문자 한 통을 받았다. 자세히 밝히긴 어렵겠지만, 결론은 하던 사업이 뜻대로 되지 않아서 실패를 겪은 사연이었다. 이 어려운 이야기를 꺼낸 그 친구는 말 할 곳이 마땅치 않아서 죽을 날을 앞두고 대나무 숲까지 가게 된 복두장의 심정으로 메시지를 보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오죽하면 나에게 그런 속내를 털어 놓았을까’ 하며 그 친구에게 든 생각은 어쩌면 애처로움일지도 모르겠다. 한강을 갈까 하다가 문득 내가 생각났을 것이고, 자신의 처지를 한 글자씩 손으로 찍어 보냈을 친구의 모습을 그려봤다.

우리는 세월에 무뎌질수록 누군가의 고민과 슬픔을 진지하게 보듬어주던 시절의 순수함이 결여(缺如) 된 채 살아간다. 그래서 인생의 전반전보다 후반전에서 뼈저린 고난을 겪는 사람들은 더욱 외롭다. 그저 내 이야기에 ‘괜찮다, 괜찮다’하고 받아 줄 어머니의 넓은 품과 같은 의지할 사람이 하나도 없음에 절망하여 갈 곳을 잃고 방황한다.

그렇기 때문에 아프다고 하는 사람을 가만히 품으면 그것이 바로 희망이다. 아무 조건 없이 상대방을 위해 시간을 내고 귀를 기울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다만 그렇게 하기 까지가 우리는 너무 버거울 뿐이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면 과거에는 나조차도 누군가로부터 아무 조건 없이 괜찮다고 말하는 돌봄을 받았기에, 역경을 딛고 지금 그 자리에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다른 사람에게 ‘괜찮다는 위로’를 건넬 줄 아는 ‘괜찮은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의 성품을 배워야 한다. 그리고 늘 머릿속에는 예수님처럼 남을 위한 삶을 그릴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예수님께서 누구나 쉽게 다가가지 못하는 까칠한 성격에다가 모든 일에 사사로운 유익을 위해서 행동하셨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예수님은 어느 누구에게도 삶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가진 특별한 존재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목회자는 복두장과 같이 속앓이를 하며 사는 성도들에게 언제든 찾을 수 있는 넓은 대숲이 되어야 한다. 삶에 지친 몸을 쉬게 할 수 있는 그늘 하나가 절실한 사람에게 대나무 숲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딱히 그 사람의 고민을 해결해주지 않아도 좋다. 흔히들 ‘문제를 잘 해결하는 사람이 괜찮은 사람이다’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다. 복두장도 대숲에 가서 한 일이라고는 그저 일평생 그를 옥죄여 왔던 고민을 털어놓은 것이 전부였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허덕이는 사람은 다 나에게로 오너라. 내가 편히 쉬게 하리라’(마태복음 11:28, 공동번역) 예수님 당시에 소시민들은 유대 지도자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해서 터무니없이 늘어난 율법에 옥죄여 살고 있었다. 그런 자들에게 예수님은 그 자체로 복음이 되어 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참 괜찮은 사람’의 가장 정확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시대에 타인의 견디기 힘든 절망과 아픔을 받아주는 ‘괜찮은 사람’이 필요하다. 대나무 숲을 찾은 사람들이 삶에 희망을 발견하는 기쁨이 나에게로부터 일어난다면 참 행복한 일이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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