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오늘의칼럼
오월에 대한 믿음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9년 05월 19일 (일) 00:45:40 [조회수 : 3409]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작년 이 맘 때 목회자 몇몇이 승합차로 광주에 다녀왔다. 국립 5.18민주묘지 앞에서 열린 기념식은 이미 마친 후였다. 모처럼 꽃으로 장식한 묘역을 다니며 묘비의 이름과 고인의 삶의 이력을 살피며 다녔다. 문득 가로세로 가지런한 묘역에서 두 사람의 존재를 찾았다. 김의기 형제(1959~1980)와 임기윤 목사(1922~1980)는 5.18로 희생한 대표적 감리교인이다.

  놀라운 것은 함께 간 동역자들조차 두 사람의 존재를 알지 못하였다. 5월 18일을 맞아 광주를 방문한 남다른 정성도 무색할 정도였다. 그런 인물을 모르고 지냈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들도 놀랐다. 그만큼 우리는 현대사에 대해 문외한처럼 살았다. 하긴 십여 년 후배들이니 1980년의 구체적 현실에 어두운 것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감리회 공동체의 무심함마저 동의할 수는 없었다.

  청년 김의기(형제교회)는 1980년 5월 30일, 종로 5가 기독교회관 6층에서 투신하였다. 그는 자신이 직접 광주에서 목격한 학살의 진실을 담은 ‘동포에게 드리는 글’을 뿌리고 서울 시내 한 복판에서 죽음으로써 고발한 것이다. 겨우 22살이었다. 해마다 열리는 추모식은 39년을 맞은 올해도 변함없이 이어져 5월 25일(토) 오후 4시에 서강대 의기촌에서 열린다.

  임기윤 목사(부산제일교회)는 부산지역에서 활동한 대표적 민주인사로, 당시 부산지방 감리사였다. 1980년 광주항쟁 직후 7월 19일 보안사 부산분실로 끌려가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 관련인’으로 조사 받던 그는 사흘 만에 갑작스럽게 죽었다. 58세로 사망한 그의 사인조차 오래도록 밝혀지지 않은 채 의문사로 남았다. 1990년 그가 떠난 지 10년 만에 서울 동대문교회에서 추도식이 열렸는데, 너무 늦은 지각추도식이었다. 고(故) 임기윤은 2001년에야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위법한 공권력 행사 때문에 희생한 것으로 인정받았다.

  김의기는 침묵하는 시민들을 향해 죽음으로 호소함으로써 당시 숨 막힌 현실의 벽에 틈을 내고자 하였다. 그리고 아스팔트 위에 몸을 던져 깨뜨린 파열음은 양심의 소리가 되어 커다란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그가 마침 광주항쟁의 현장 한 복판에 있었고, 그는 자신이 목격한 진실 때문에 괴로워했다. 서울로 올라왔고, 자신의 몸으로 웅변하였다. 그가 몸을 던진 그 자리에는 기독교방송이 있었으나, 자신이 곧 예언자의 소리가 되었다.

  일찍이 오월의 광주는 ‘민족 양심’으로 상징화되었고, 광주사람이 아니더라도 ‘익명의 광주시민’들은 한국사회를 변화시켜 나갔다. 우리 세대는 누구나 예외없이 광주에 대해 두려움이든 신비감이든 경외심을 지녔다. 광주는 미국에 대해서, 민주주의에 대해서, 평화와 통일에 대해서 다시 생각하게 하는 시대정신의 이정표였다.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란 항쟁의 기록물은 숱한 험로와 분노를 ‘넘어 넘어’ 새로운 시대로 안내하였다. 그리고 다시 광주의 오월에 이르렀다.

  1980년 이후 지금까지 광주에서 비롯된 오월정신의 그늘과 햇빛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다. 그늘은 부끄러운 양심조차 감춰주었고, 햇빛은 당당히 역사의 진보에 동참하게 하였다. 김의기는 ‘동포에게 드리는 글’에서 예언하였다. “동포여, 일어나자. 마지막 한 사람까지 일어나자. 우리의 힘 모은 싸움은 역사의 정 방향에 서 있다. 우리는 이긴다. 반드시 이기고야 만다.” 김의기가 우리에게 전한 진실은 가장 혹독한 암흑기에 오히려 희망에 대한 확신, 미래에 대한 낙관이었다.

  그리고 세상은 참 많이 변했다. 어느 새 39년이 흐른 지금, 그만큼 성장한 민주주의 덕분에 이젠 5.18정신을 짓밟는 망언조차 가능해졌다는 것은 기막힌 현실이다. 이것조차 역사발전의 열매라면 참 희극적이고, 또 비극적이다. 그리고 40년을 앞둔 지금도 규명해야할 진실이 여전히 남아있는 현실은 지각생이 된 우리 사회의 지체된 모습이다.

  민주주의는 이루어졌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경제적 양극화와 정치적 양극화는 민주주의를 크게 왜곡시키고 있다. 게다가 이를 부추기는 정론을 가장한 왜곡언론, 가짜뉴스, 막말논쟁은 민주주의가 더욱 견고히 서야 함을 일깨워 준다. 행여 우리 사회의 부족함을 정치인들에게만 맡겨둘 일은 아니다. 언제까지 광주로 대표되는 시민정신에 의존할 것인가? 정의, 민주주의, 평화는 우리 모두가 함께 짊어질 십자가이기 때문이다.

  1980년 스러진 김의기 형제와 임기윤 목사가 소망한 아름다운 오월은 아직 꽃피지 않았다. 두 사람의 삶과 죽음은 ‘그 때 거기’ 그 아픔, 그 비참, 그 절망 속에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고백에서 출발하였다. 그리고 희망은 하나님의 공의를 믿는 우리의 죽음과 삶과 더불어 찾아올 것이다. 그것이 오월에 대한 믿음이다.

송병구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14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