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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양 가는 길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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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5월 11일 (토) 23:13:12
최종편집 : 2019년 05월 11일 (토) 23:28:45 [조회수 : 3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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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격월간 <강단과 목회>의 표지글을 채우려고 나선 길이다. 며칠 전에 한국일보에 난 기사 덕분에 유명세를 탄 하양무학로교회 조원경 목사와 약속을 잡았다. 동대구역에서 무궁화호로 갈아탔는데, 열차에서 내려다 본 풍경은 복잡한 수도권과 너무 달랐다. 오전의 햇빛이 한가로이 비춘 느릿한 물길의 이름은 금호(琴湖)강이라고 했다.
 
  그리고 부전행 열차가 머문 첫 읍내가 하양이었다. 어쩌면 동네 이름과 주변 환경 이미지가 똑 같은지 새삼 놀랐다. 하양은 색깔의 이름이 아니라, 하양(河陽) 곧 빛의 물결이었다. 금호강의 유역에 자리한 까닭에 이름을 얻었을 것이다. 그리고 하양무학리교회는 그곳의 유일한 감리교회로 34년째 존재하고 있었다.

  소읍의 작은 교회가 중앙일간지에 대문짝만하게 이름을 낸 이유가 있었다. 까탈스런 기자 누군들 시골 교회의 ‘가장 작은’ 예배당 신축에 호기심을 가질까 싶었다. 예배당 이전에 승효상이란 이름 때문이었다. 기사는 ‘재능기부’한 대표적 건축가의 미담을 다루고 있었다. 자본의 논리를 거슬러, 이익과 거리가 먼 선택을 한 건축가는 그 자체로 뉴스의 초점이 되었다. 이로재 대표인 승효상 선생은 현재 국가건축정책을 총괄하는 자리에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하양교회를 방문해 다짜고짜 예배당을 먼저 들여다보지 않기를 잘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30여년 만에 마주한 조 목사는 희미한 옛 모습으로 남아있었다. 그는 뭔가 딴 세계에 사는 인물처럼 느껴졌다. 추레한 양복저고리며, 흰 고무신 그리고 느릿한 말투는 빠른 세상에 어울리지 않았다. 그의 호의로 개량한 한옥 지붕 아래에서 볶은 호박채 고명을 얹은 잔치국수를 먹고 나서, 자리를 옮겨 보이 차까지 홀짝 들이켰다.

  그가 안내한 목사방은 슬레이트 지붕 건물이었다. 입구에는 ‘묵정실’(默靖室)이라고 써 붙였다. ‘잠잠할 묵’(默), ‘고요할 정’(靖)자인데, 듣자니 예수님이 풍랑을 잠잠하게 하신 한문성경의 표현이란 설명이 뒤 따랐다. ‘가라 앉다’는 의미가 있다고 했다. 낮은 문 때문에 잔뜩 머리를 숙여 들어가니 온갖 고서를 꽂아 둔 책꽂이가 가지런하였는데, 작은 개다리소반은 그의 독서대요, 찻상으로 쓰였다. 공부하는 옛 선비의 방이 이렇지 않았을까 싶다.

  뜻밖의 건축과정 이야기를 들으며, 뜸들이기 잘했다는 마음이 들었다. 미리 읽은 신문기사에는 두 가지 오류가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작은’ 예배당은 대지가 부족해 그렇게 지은 것이 아닐까 싶었는데, 실상은 전혀 달랐다. 하양교회는 대지가 350평이나 되고, 마당 한 가운데 은행나무를 둔 채 사방에 네 개의 건물이 자리 잡고 있었다. 또 하나는 건축가의 호의로 아주 값싼 비용으로 운 좋게 건축한 것으로 착각할 수 있었는데, 이 역시 오해였다.

  건축가와 건축주가 의기투합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었다. 두 당사자는 한국의 상례(喪禮) 전통을 연구하는 상여집과 관련해 오래 전부터 만나고 있었고, 나라얼연구소의 일원이었다. 더 나아가 둘은 예배당다운 예배당을 건축하려는 의도와 의지에도 마음이 일치하였다. 온갖 편의성을 고려하여 다기능의 복합건물을 규모 있게 지어낸들 하나님의 집은 못 된다는 건축가의 지론과 규모의 논리가 아닌 낮고 낮은 깊이의 영성을 추구한 건축주의 바램이 제대로 만난 것이 그 결과였다.

  그런 점에서 재능기부란 말은 부적절하다. 승효상은 시간 외 가욋일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의 거룩함을 위해 아주 값비싼 헌신을 한 것이다. 이를 거룩한 낭비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그는 “가난한 교회일수록 절박하고, 절박할수록 본질을 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에 임자를 만난 듯 성심과 성의를 모은 것이다.

  마침내 두 사람의 진심이 합류하였고, 떠들썩하나 잠잠해야할 우리 시대의 성전을 모델화한 것이다. 두 사람이 부여한 거룩의 의미는 값으로 따질 수는 없을 것이다. 보이는 건물로서 성전이 중요하냐, 보이지 않는 마음의 집이 중요하냐는 식으로 시시비비 할 일은 더 더욱 아니다.

  이미 하양무학로교회는 한국근현대 건축사를 에두르는 울타리라는 평을 듣고 있었다. 1936년에 지어 교회의 식당과 주택으로 사용하는 한옥도, 사무실과 목사방으로 쓰는 1970년대식 슬레이트집도, 20세기 말 조립식 판넬로 지은 옛 예배당도 봉헌을 앞둔 새 예배당과 함께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그리고 네 개의 건물은 어울려 조화를 이루면서 교회다움을 느끼게 하였다.

  드디어 살펴 본 새 예배당을 단숨에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다. 예배당은 독립된 건물이나 사방의 익숙함과 더불어 거룩한 공간을 이루고 있었다. 마을과 교회를 터주는 느티나무나 두 배롱나무를 이식한 조경이 밖과 안을 연한 풍경이라면, 회랑의 기둥문으로 시작하여 예배당 입구까지 이어진 묵상의 길, 경계로서 대형 수반(水盤), 천정이 뚫린 입구 그리고 무거운 철문에 이르는 장치들은 겉에서 속을 잇는 경건 포인트였다. 게다가 예배당의 벽에 맞닿은 높은 계단을 따라 13미터 높이의 옥상에 오르면 공중에 벽을 아래 부분으로, 하늘을 윗부분으로 십자가를 구성한 기도공간이 기다린다.

  그리고 지성소같은 예배당의 검고 육중한 문을 여는 순간, 마침내 고요한 빛의 물결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태어나자마자 우리 시대의 고전미가 된 예배당은 시골동네에서 나지막한 빛의 언덕이 되었다.

  그날따라 맑은 하늘 덕분에 예배당 안으로 쏟아져 내려온 햇살은 거룩함의 의미를 따듯하게 누리게 하였다. 절정은 동네의 이름을 닮은 하양, 빛의 물결을 표현한 예배당의 벽이었다. 고집스런 건물만으로 이미 예스러워진 거룩함의 의미가 다시 새로이 눈 뜨고 있었다. 그런 예배당의 존재가 멀리 또 가까이 있어 일부러 찾아가자니 반갑기가 하양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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