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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자를 위한 인문학 강좌’2019 전북서번트리더십학교 5월 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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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5월 10일 (금) 02:36:30
최종편집 : 2019년 05월 15일 (수) 12:48:55 [조회수 :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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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봄 학기 한국서번트리더십훈련원(대표 유성준교수 협성대)의 전북서번트리더십학교(회장 조성천목사 이리중앙교회) 5월 모임이 익산 갈릴리교회(송흥준목사)에서 5월6일(월) 열렸다. 오전시간은 조성천목사의 ‘목회자를 위한 인문학 강좌’와 오후 시간은 정성규목사(부천예인교회)의 ‘당신으로 인해 건강한 교회’(당당뉴스 5.1. 탐방기사 참조)를 주제로 진행되었다. 오전 주제강연 발제자인 조성천목사는 매주 금요일 지역목회자들을 위한 ‘큰숲 네트웍‘ 독서모임을 인도하며 교회 청장년들 주관으로 15년째 새로운 목회 페러다임에 관한 ’목회자 세미나‘를 개최하고 있다. 조목사가 발제가 내용은 다음과 같다.

왜 인문학인가? 인문학 열풍은 거의 기독교 신앙을 대신하는 것 같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인문학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은 인문학이 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보다 더 자신들을 풍성하게 해준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실제로 저도 다양한 인문학 강좌를 유트브를 봅니다.
고려대학교에서 소개하는 플라톤 아카데미에 좋은 강좌들이 많습니다. 얼마 전에는 석영중교수의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을 유트브를 통해 들었는데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야말로 설교 이상의 감동이었습니다. 목회자로서 느끼는 것은 이 시대는 인문학 강사와 설교자인 우리가 경쟁을 하는 것과 같은 양상입니다. 지적사고력에 있어 설교자가 너무 뒤떨어진다는 인상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한 달에 한 번씩 하는 지역 의사들의 인문학강좌 모임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모임 이름이 필라델피아입니다. 소냐 류보머스키가 쓴 [행복의 신화]란 책을 그 모임에서 리뷰를 한 것을 계기로 자연스럽게 참여하고 있습니다. 쾌락적응은 생존에는 유리하지만 행복에는 불리하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모임에 참여하면서 도전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곳에서는 예술 분야, 고전음악과 미술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서도 나눔을 하고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장자크 루소 사상에 대한 나눔이 있었습니다.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의미가 무엇인가? 루소에 프랑스 혁명과의 관계, 루소와 공산주의 혁명과의 관계 등에 대해 나누었고 그의 또 다른 작품인 [신 엘로이즈]는 다음 주에 나누게 될 예정입니다. 멤버 중에는 기독교인도 있고, 비기독교인도 있습니다. 모임의 분위기가 얼마나 진지한지 모릅니다. 기독교인으로, 목회자로  그 모임에 참여하며 많은 도전을 받습니다. 우리가 너무 안일한 것이 아닌가? 우리가 너무 무지한 것은 아닌가? 우리는 너무 열정이 부족한 것은 아닌가?

저 개인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습니다. 저는 대학원 시절에 많이 방황했습니다. 총신대학 학부를 졸업하고 신대원에 갔는데 반복적인 내용이 많고 솔직하게 들을 강의가 별로 없었습니다. 새로운 내용이 없고 새로운 접근이 없었습니다. 일반대학 출신 학생들은 좋아하기도 했지만 신학 학부 출신들은 대체로 힘들어 했습니다. 특히 저는 더 했던 것 같습니다. 전혀 지적인 욕구가 충족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늘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다가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독서가 지금까지 지속되었습니다. 독서는 자신이 좋아서 해야 합니다. 저는 호기심을 충족하려고 독서를 합니다. 그래서 독서가 무슨 체계적이고 그렇지는 않습니다.
최근에 두 분을 책을 통해서 체계적인 독서법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한 분은 김도인 목사님입니다. 이 분은 오천권의 책을 읽고서 나름 인문학과 설교를 접목하신 분입니다. 인문학적 소양이 없이 설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실적적인 방법까지 제시합니다. 우리 독서모임에서도 두 권의 책을 나누었습니다. [설교는 글쓰기다]와 [설교는 인문학이다]입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많이 공감을 했습니다. 오늘도 이 분의 생각을 통해 깨달은 점들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또한 사람은 김병완이란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삼성 핸드폰 연구원을 하다고 그만두고 일만권의 책을 읽은 사람입니다. 나름대로 독서법을 연구해서 많은 책들을 발간했습니다. 저도 이분의 [초서 독서법]과 [공부에 미친 사람들] 이란 책을 읽어보았습니다. 여러분도 읽어보시면 많은 도움이 되실 겁니다.

저희 교회에서 몇 분의 목회자들과 수년 동안 독서모임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희들과 모임을 하다 그만 두신 분이 계십니다. 그분의 주장은 목회자는 성경만 열심히 연구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목회와 관계없는 다른 책을 많이 읽는 것은 목회에 해가 된다는 주장을 하시고 모임을 떠나셨습니다.

저는 그것은 대단히 무책임한 발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하나님 말씀인 동시에 인간의 책입니다. 하늘의 계시를 땅의 언어로 적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이해하려면 계시를 연구할 뿐 아니라, 계시의 도구로 사용된 다양한 성경의 문학 양식을 이해해야 합니다. 케네스 베일리가 주장한 문예적 연구가 그렇습니다. 성경은 다양한 문학 양식으로 기록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비평주의자들만 아니라, 보수 쪽에서도 문예적인 접근은 아주 당연합니다. 성경은 다양한 문학 양식만이 아니라, 역사와 철학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그밖에도 심리와 정신의학 부분도 다루고 있습니다. 당연합니다. 성경은 모든 인간사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학문이 필요하지 않고 오직 성경으로 해결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인간 이해가 없는 사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세상에 대한 이해가 없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오직 성경으로 만을 주장한 종교 개혁자들도 인문학자들이었습니다. 에라스무스도 칼빈도 그랬습니다. 칼빈도 [세네카의 관용론]를 저술했습니다. 이렇게 성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도 인문학이 필요하고 나가서 목회와 설교를 수행하려고 해도 인문학이 필요합니다. 우리들의 목회 대상과 설교를 듣는 청중들이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대상에 대한 이해가 없이 목회를 하고 설교를 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목사와 교인들과 대화가 안 되고 그런 목사의 설교를 교인들이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융복합의 시대에는 각 분야에 인문학을 적용합니다. 기술 분야가 그렇습니다. 기술을 사용하는 자가 사람이기 때문에 인문학적인 접근은 아주 중요합니다. 스티브 잡스도 이런 시각으로 큰 성공을 이루었습니다. 요즘에는 일본 사람이 철학을 삶의 각 분야에 얼마나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지에 대한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베스트셀러입니다. 야마구치 슈 [철학은 어떻게 삶이 무기가 되는가?]입니다. 하버드 대학 니먼 재단의 논픽션 작가를 위한 저술 가이드가 나왔습니다. [진짜 이야기를 쓰다]를 흥미있게 읽었습니다.
이 작품은 51명의 작가의 글을 모은 내용입니다. 영어 제목은 [Telling True Stories]입니다.신문에 기고하는 내러티브(nerative 기사를 쓰는 방법에 대한 내용입니다. 어찌보면 성경도 설교도 내러티브입니다. 매우 흥미로운 작업입니다. 이 작업은 세 단계로 나뉩니다. 리포팅(Reporting) – 씽킹(Thinking) – 롸이팅Writing)입니다. 설교 작업과도 동일합니다. 취재를 하고 – 취재도 그렇습니다. 건성으로 전화 한통으로 취재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 취재로 쓴 기사는 읽을 가치가 없습니다. 설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깊이 있는 연구와 묵상이 없다면 리포팅이 허접한 것과 같습니다. 씽킹은 구성(Plot)이 될 겁니다. 그 다음으로 글쓰기 작업입니다.

다음의 내용은 인문학과 설교에 대한 상관관계입니다. 김도인의 글을 참고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내용을 그가 책으로 잘 정리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설교를 본문을 읽고 해설하고 적용하는 방식으로 하시는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성경 공부와 설교는 아주 다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탄탄한 구성을 갖춘 작품이듯이 설교도 그렇게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글과 자신의 말이 되어야 합니다. 설교는 자기 논리와 자기주장이 있어야 합니다. 논리도 없고 논지도 없고 그래서 무엇을 주장하는지 모르는 설교라면 곤란합니다. 설교는 철저하게 자신만의 작품으로 내 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본문이 무엇을 주장하는지 그 주장을 나는 어떻게 이 시대, 이 사람들에게 나만의 방식으로 전달하려고 하는지가 명확해야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이 구성입니다. 플롯(Plot)이라고 합니다. 기승전결, 어떤 식으로 논리의 흐름을 가져갈 것인지를 정해야 합니다. 다르게 말하면 시나리오 구성입니다. 반전이 있는 구성이 시나리오입니다. 극적인 요소를 포함한 구성을 하여야 청중들이 집중할 수 있습니다. 고대 그리스 희비극의 대본을 만드는 내용의 책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시학]입니다. 헐리웃 영화들도 아직까지 [시학]을 기초로 시나리오 작업을 합니다. 극적인 요소를 가미해서 탄탄하게 구성해야 합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들이 아주 탄탄한 구성요소를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성경 이야기에는 극적인 반전도 있습니다. 그런데 설교가 구성이 없다면 정말로 재미없는 들을 수 없는 최악의 작품이 되고 말 것입니다.

왜 성경은 내러티브적인데, 설교는 전혀 내러티브적이지 못할까? 미스테리합니다. 설교의 구성 플롯을 위해서는 내러티브 설교에 대한 책들을 읽어보시면 많은 도움이 됩니다. 유진 로우리의 책을 보면 반전을 만드는 기법에 대한 설명도 잘 되어 있습니다. [설교자여 준비된 스토리 텔러가 되라] 해돈 로빈슨, 스티븐 매튜슨, 한국 분으로는 이연길 목사님이 계십니다. 이리 신광교회 출신이시고 미국 달라스 빛내리 교회 목사님 은퇴 목사님이십니다. 그의 제자인 평신도 김병선교수가 [성경도 문학이다]란 책을 냈습니다. 성경을 문예적으로 분석한 책입니다.탁월한 책입니다. 이런 구성에도 시대별 유행이 있습니다. 시대마다 수용방식이 다르다는 뜻입니다. 요즘은 포스트 모던 시대적인 특성을 가진 구성이 필요할 겁니다. 논리도 중요하지만 감성도 아주 중요합니다. 포스트 모던에 대한 적용을 위해서는 레너드 스윗의 책들이 많이 도움이 됩니다.

설교는 말 이전에 글이어야 합니다. 물론 문어체가 아닌 구어체 문학이 되어야 합니다. 김도인이 주장하는 것과도 일치합니다. 설교는 구성이 탄탄한 글쓰기 작업입니다. 한편의 수필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생각을 한 후에 글을 쓰기도 하고 글을 쓰면서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정교하게 탈고 작업도 필요합니다. 더하기 보다는 빼기 작업입니다. 더 이상 더할 것이 없다기보다는 더 이상 뺄 것이 없는 단계까지 가야 합니다. 그래야 단순하고 명료해서 전달이 잘 됩니다. 구성이 탄탄해야 명작이 됩니다. 허접한 시나리오를 가진 드라마는 청중들의 수준을 넘지 못하기 때문에 청중에게 내용 전개를 다 읽힙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미가 없습니다. 긴장감이 전혀 없습니다. 반전의 묘미도 없습니다. 내용이 너무 뻔해서 전혀 낮 설지 않습니다. 설교가 너무 뻔하면 지루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교는 뻔한 이야기를 낮 설게 하는 기술입니다. 말이 안 되는 이야기를 말이 되게 만드는 기술입니다.
 
시나리오는 얼마나 정교한 작업인지 모릅니다. 저는 좀 둔해서 영화를 볼 때에 암시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제 아내는 정확하게 잡아냅니다. 어떻게 진행될 것 같다고 예측합니다. 영화로 말하면 첫 장면, 문학 작품으로 말하면 첫 문장이 중요합니다. 처음에 보여준 장면이 전체 진행에서 아주 중요합니다. 어떤 작품은 왜 감독이 영화의 첫 장면으로 그 그림을 보여 주었는가 거의 끝날 때 알게 되면 전율이 흐릅니다. 영화가 끝나고 앤딩 크레디트(마지막 자막)가 나오는 데도 자리를 뜨지 못하는 여운을 느끼게 됩니다.

문학 작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작가가 첫 문장을 그렇게 썼는가? 음악도 마찬가지입니다. 처음에 제시된 모티브를 풀어가는 솜씨에 감탄합니다. 전원 교향곡을 들어보시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바하의 골드베르크 변주곡, 재즈의 경우는 그런 패턴을 잘 읽을 수 있습니다. 처음에 제시된 모티브를 변주로 그 다양성을 과시하다가 나중에 다시 모티브를 재현하는 구조입니다.특히 스텐다드 연주에서는 그 감흥이 놀랍습니다.

구성과 진행도 중요하지만 어휘력도 아주 중요합니다. 사용할 수 있는 어휘력에 따라서 명작이 될 수 있고 싸구려가 될 수 있습니다. 제 며느리가 재즈 피아니스트입니다. 재즈는 본인이 작곡하거나 편곡을 합니다. 때로는 즉흥적으로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이 구사할 수 있는 풍부한 보케뷰러리가 필요합니다. 그래야 듣기가 좋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책을 많이 읽어야 합니다. 음악으로 말하면 많은 곡을 들어야 합니다. 특히 이 시대를 반영하고 이 시대 문화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작품들을 많이 접하여야 합니다.

매주 모이는 저희 독서모임을 소개합니다. 책은 혼자 읽는 것도 좋지만 독서 클럽이 있으면 더 좋습니다. 독서 노트를 만들고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 서로 나누고 토론하면 더 좋습니다. 몇 년이 된지 모르겠습니다. 많은 책들을 함께 읽었습니다. 매주 금요일 10-12명 정도 꼭 인문학은 아닙니다. 신학 서적이 많습니다. 대체로 두꺼운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두꺼운 책의 장점은 거시적인 안목을 줄 수 있습니다. 얇은 책의 장점은 간단한 아이디어를 주는 정도입니다. 여러분도 독서 모임을 만들어서 하시면 여러가지 장점들이 많이 있습니다. 서로에게 자극과 도전이 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습니다. 목회자들은 더 많이 읽지 않습니다. 김도인도 목회를 몸으로 하지 말고 머리로 하라고 합니다. 독서를 하고 글쓰기를 하라는 뜻입니다. 요즘 서점에 가면 슬픕니다. 기독교 코너가 황폐해졌습니다. 대중적인 기독교 작품이 없어졌습니다.베스트셀러 책들은 스님들이 거의 점령했습니다. 약간의 신부들이 있고 목사들은 거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책을 읽을 수 있는가? 억지로는 못 읽습니다. 자기가 좋아서 해야 합니다. 재미를 붙여야 합니다. 관심이 있는 책들 중에서 두껍지 않은 책들을 읽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합니다. 시간이 없어서 읽지 못한다기보다는 관심이 없어서 또는 재미가 없어서 못 읽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읽다가 보면 많은 유익이 있습니다. 다양한 지식이 생기고 재미가 있고 어휘력이 늘고 통찰력이 생기고 구성력과 공감 능력이 생깁니다. 제가 잘 읽는 분야는 신학뿐 아니라 심리학, 철학, 역사, 자기 개발서, 문학 작품 예술 분야 등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습니다. 지적욕구가 점점 소멸되는 시대에 다양한 분야의 책읽기를 통해 인문학적 소양을 키울 뿐 아니라 교인들과 풍성한 삶의 나눔과 설교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한편 협성대학교 국제회의실에서 진행되는 한국서번트리더십학교에서는 5월13일(월) 오전에는 이세형교수(협성대)의 ‘상담과 서번트목회’(오전10시-12시) 강의와 전영호교수(미국 세인폴 신학대학원)의 ‘왜 기독교인들의 모임을 ecclesia라고 정의하는가?: 본질, 특징, 사명’(오후1시-3시) 강의가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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