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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때보다 더한 물난리? 도대체 무슨 일이?이집 남자들이 고구마 밭에 물주는 법
송상호  |  shmh0619@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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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5월 05일 (일) 19:20:32
최종편집 : 2019년 05월 05일 (일) 22:11:27 [조회수 : 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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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때만 해도 평화로웠다

“에효효! 6.25때 난리는 난리도 아녀?”

한 때 유행했던 드라마 대사처럼, 그 난리가 이루어진 것은 어쩌면 예고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사건의 발단은 이랬다. 사건 당일(지난 4일) 며칠 전, 울 마을(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석하리 양지편마을) 총각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면서부터다.

“길주씨! 울 텃밭에 로터리를 좀 쳐주셔. 그러고 멀칭까지 쳐주면 더 좋아 불고”

이렇게 부탁해놓고, 아내는 멀리 강원도에 사는 언니(나에겐 처형)를 대기시켰다. 해마다 고구마를 심을 때면 처형을 불러 같이 했었다. 처형도 “콜”을 외쳤다. 이제 로터리를 치고, 멀칭을 하고, 고구마 모종만 구입하면 된다. 3일에 아내와 함께 안성 장터에 가서 고구마 모종을 샀다.

“하이고야! 고구마 모종이 한단에 13000원! 뭔 일이래. 작년엔 6000원을 주고 샀는 디?”

아내의 푸념이다. 고구마 모종 시세가 이렇단다. 어젠 11000원이었다고. 날마다 모종 값이 다른 것도 신기한데, 이렇게까지 몸값이 다를 줄이야.

“벌써 사온 겨? 5월 하순쯤 되면 5000원으로 값이 떨어지는 디. 그 때 사지 그랴서~~”

   
▲ 난리의 시작은 대형 고무다라를 차에 싣는 순간부터였다.

모종 사오는 우리에게 마을 형님(토종 농부)이 일러주신다. 참 빨리도 일러주신다. 말을 마시던지, 사오고 있는 데, 어쩔 규? 하하하하. 이래서 농사를 또 한수 배운다.

그런데 차질이 생겼다. 트랙터로 로터리를 쳐준다는 이웃 총각에게 문제가 생겼다. 좀 전에 자신의 아버지랑 한바탕 싸웠고, 술이 취해서 마무리를 못해준단다. 분명히 중간 중간 확인했을 땐, 로터리도 쳤고, 시키지도 않은 비료까지도 그 총각이 줬고, 관리기로 멀칭만 하면 완성된다는 걸 확인하고 있던 터였다.

어쩐지 일이 착착 잘되더라니. 어쩌지? 모종까지 사 놓았는데. 내일(4일) 아침에 멀리 강원도서 처형도 오신다고 하고. 답답한 사람이 우물 팔 수 밖에. 그 총각에게 재차 부탁했더니 도저히 술도 만취됐고, 몸도 마음도 꽝이라 안 된단다. 오 신이시여! 왜 제게 이런 시련을.

가능한 곳으로 전화를 넣었다.

“형님! 관리기로 멀칭 한 번 만 해주셔?”

“안돼여. 나 지금 공도읍내에 농산물 장사하러 나왔어”

또 다른 곳으로 전화를 넣었다.

“완빈이 말여! 옆집 총각이 멀칭 해준다 해놓고 손이 다쳐서 못 헝게로(이렇게 둘러대야지 어떡할 겨 ^^) 자네가 좀 해줄란가?”

“저 못혀요. 울 기계로는 밭고랑 내는 것만 되지, 멀칭은 안돼유.”

   
▲ 애마의 이곳저곳에 물을 담은 통들을 쟁였다.

대략 난감이다. 이쪽저쪽 다 안 된다네. 무려 강원도에서 내일 아침이면 처형이 오실 건데, 멀칭만 하면 준비는 완벽한데, 오늘 오전까지만 해도 준비는 완벽했었는데........

저녁에 옆집 총각에게 또 찾아 갔다.

“다른 집도 사정이 생겨 못 한다고 하니, 좀 해 주소”

“내일 아침에 일어나보면 좀 나을 테니 내일 봐유”

바로 허락이라고 넘겨짚고는 나와 버렸다. 이래놓고 내일 아침에 못하면, 울 처형은 강원도서 왔다가 헛걸음 할 거라는 생각은 지워버렸다. “송서방! 일 좀 야무지게 하셔”란 핀잔도 각오를 했다. 이미 주사위는 던져졌다.

드디어 결전의 날(4일) 아침! 전화를 넣었다.

“간 규? 안 간규?”

“지금 하고 있시유”

와! 십년감수가 따로 없다.

멀칭이 끝났을 무렵 처형도 도착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며 처형을 맞이했다. 아내와 처형, 그리고 내가 고구마 밭으로 출동한다. 뜨거운 뙤약볕 아래지만, 날씨만 좋게 느껴진다. 할 수 있다는 게 어디냐며 아내와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쉴 수밖에.

   
▲ 이게 실상이다.

아내와 처형은 작년에 하던 대로 고구마 모종을 심었다. 나는 지난겨울을 지나면서 파손된 고라니 망을 보수했다. 우리가 일을 시작한 시각이 오후 12시30분. 진짜 농부들은 일하지 않고 쉰다는 시각에 우리는 판을 벌였다. 원래 그렇다. 진짜 농부들은 한낮엔 일하지 않는다. 해 없는 아침나절이나 저녁 무렵에 일을 한다. 우리처럼 얼치기 농사꾼들이나 낮에 일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같은 사람들은 평소 직장 일을 하기 때문에, 지금과 같이 일부러 시간을 내어야 농사를 할 수 있다.

약 3시간을 모종을 심으니 일이 끝났다. 원래대로 하면 심고 나서 바로 물을 주는 게 좋은 데, 워낙 뙤약볕이라 물을 조금 주면 심긴 모종이 타서 죽는단다. 그래서 바로 물을 주지 못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저녁에 그 난리가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아내와 처형은 일을 끝내고, 아내는 직장으로, 처형은 강원도로 떠났다.

“여보! 해거름에 물 좀 줘요”

“네~~ 마님! 여부가 있것습니까요?”

저녁이 되어가니, 물을 어떻게 주어야 할지 머리에서 떠오르기 시작했다. 고구마 밭은 들에 있어서 물이 부족하다. 그렇다면 집에서 물을 가져가야 하는데, 방법이 없을까. 머리를 돌리다보니 나름 해답이 나왔다. 바로 그거다.

집에 있는 뚜껑 달린 물통들을 떠올렸다. 그 물통들을 집안 구석구석에서 찾아내어 물을 담았다. 그 후보들은 주전자, 김치냉장고용 김치 통, 효소 담그는 통, 아이스박스, 대형 냄비 등. 여기까진 좋았다. 그러다가 하나를 떠올렸다. 김장할 때 쓰는 대형 고무다라를 찾아냈다. 아시다시피 거기엔 뚜껑이 안 달렸다. 물이 부족하니까 충분히 줘야한다는 것에만 꽂혀서 나온 발상이었다. 단순한 남자들이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 증상이 발동했다.

일단 제일 큰 고무다라를 카니발(우리 집 애마) 트렁크에 실었다. 아이스박스도 실었다. 비교적 작은 물통들엔 물을 채워 담고는 애마에 이곳저곳으로 쑤셔 넣었다. 마지막으로 트렁크에 있는 고무다라와 아이스박스에 물을 채웠다. 이때도 수돗물을 끈 채로 다라에 호스를 쳐 박은 후, 물을 틀어야 한다. 이 순서를 안 지키고, 물을 켠 채로 호스를 옮기다 보면 차 실내에 물이 흐를 수 있다. 물을 채웠다. 물을 가득 채우면 틀림없이 물이 출렁거려 넘칠 테니, 나름 계산을 해서 2/3만 채웠다. 다시 말하지만, 나름 고도의 계산을 한 물 양이었다.

이제 시동을 걸어 밭으로 출발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러리라곤 예상도 못했다. 차 속력을 10~20km로 냈다. 아주 천천히, 유모차 다루듯이.

그런데 웬 걸. 아무리 천천히 움직여도 물이 출렁출렁하더니 조금씩 넘치기 시작했다. 아무리 천천히 가도, 물은 계속 출렁출렁! 룸미러로 봤더니 물이 조금 넘치는 게 아니고, 마치 한강이 넘치듯 넘친다. 하이고! 이러다가 차안이 한강 되는 거 아녀?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이미 물은 엎질러 진 거고. 그렇다고 다시 돌아갈 수도 없고. 돌아간다고 해도 물은 넘칠 거고. 진퇴양난이 따로 없다. 룸미러로 뒤를 보기가 무서울 정도로 물이 넘치는 듯했다. 아! 계산 착오였다. 물이 출렁출렁 할 때마다, 내 심장도 출렁출렁한다. 겨우 텃밭에 도착했다. 차를 대고 차안에 숨겨놓은 물통들을 다 끄집어냈다.

   
▲ 밭에 펼친 물통사대.

이걸 어쩌나. 아! 또 문제가 생겼다.

대형다라와 아이스박스에 대한 원래 대책은 이랬다. 트렁크에 실어놓고, 조그만 통으로 물을 길어 물을 주다보면, 물을 다 소진할 거라 예상했다. 텃밭에 도착하니 울 텃밭 앞쪽 농로를 지나가는 차(그 분들도 텃밭농사 지으려고 왔다)가 안쪽에 대어있었다. 텃밭 앞쪽 농로는 외길이다. 그분들이 집으로 귀가한다고 차를 몰고 나오면, 우리 애마를 비켜주어야 한다. 마침 밭일을 마치고 귀가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아! 또 예정에 없던 일이 생긴 거다. 이 많은 물을 내가 먹어버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버릴 수도 없고. 저 차가 나오면서 비켜달라고 하면, ‘꼼짝마라’의 상황이 될 건 ‘명약관화’다. 평소 차를 비켜주려면, 차가 오던 길에서 좀 더 나아가 급경사로에서 T자 유턴을 해야 한다.

아시다시피 트렁크에 물이 출렁출렁! 아 C! 내가 왜 이랬을까. 후회해본들 늦었다. 그래도 심기일전! 하늘이 무너져도 쏟아날 구멍이 있다했다. 일단 조그만 통으로 물을 준 후, 그 통을 비워 트렁크에 있는 대형다라에서 물을 퍼다 날랐다. 빛의 속도로 한다고 했다. 숨이 턱에까지 차올랐다.

이때였다. 아~ 역시 사람은 죽으란 법은 없었다. 아르바이트를 끝낸 아들이 버스를 타고 귀가하다가, 자신의 아빠가 들에 있는 걸 목격하고는 들로 왔다. 이게 바로 ‘천군만마’를 얻는 기분이구나.

“아들! 잘 왔다. 물 좀 같이 주자”

아들 입장에선 마른하늘에 날 벼락을 맞는 기분이다. 그냥 와 본건데, 일하자고 온 것도 아닌데, 좀 전에 아르바이트를 마쳐서 힘든데, 아빠는 눈치 없이 일하자고 하니 황당할 수밖에. 하지만 아들이 봐도 상황이 상황인지라 팔을 걷어 부친다.

아들과 나는 일단 다라에 있는 물을 퍼다 날랐다. 얼마나 수돗물을 다라에 많이 채웠는지 비우고 비워도 끝이 없는 듯했다. 물이 많이 줄었다. 아들이 말했다.

“아빠! 이제 그만하고, 다라를 들어서 일단 내려요.”

역시 아들하나는 잘 키웠다. 아들 말을 들었다. 혼자서 하면 어림없는 일이었다. 둘이서 물이 많이 줄은 다라를 들고 내렸다. 가능했다. 그 다라를 밭으로 옮겼다. 그러고 나서 물이 가득 담긴 아이스박스를 차에서 내렸다. 역시 혼자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 한눈에 봐도 나는 싱글벙글. 아들은 외면. ㅎㅎㅎㅎ

천만다행이었다. 이렇게 되도록 까지 안쪽 밭에 온 차량의 시동이 켜지지 않았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열심히 물을 주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얼마 있지 않아서 안쪽 차량이 나간다고 차를 빼달라고 했다. 기분 좋게 차를 빼줬다. 경사로까지 한달음에 내달아 T자 유턴을 해서 돌아왔다. 이렇게 그 차량을 보내고 아들과 나는 계속 물을 줬다.

얼마나 물을 많이 가지고 갔던지, 그 넓은 고랑마다 물을 다 줬는데도 물이 남았다. 거의 두세 번을 물을 줬다. 정말 흠뻑 물을 준 셈이다. 조금은 ‘오버’된 나의 행동이 만들어낸 물풍년이었다. 모종들이 낮에 지쳐서 처져 있다가 물을 흡족하게 주니 비가 온 줄 알고 고개를 쳐드는 듯했다. 이렇게 하고나서 아내에게 자랑할 걸 생각하니 모종들의 기분이나 나의 기분이나 매 한가지인 듯했다. 다만 아들의 기분만 엉망일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끝나고 정신이 들었을 땐, 밤 8시 30분. 들녘이 캄캄했다. 통을 몇 개나 가져왔는지 그제야 세어 봤다. 크고 작은 물통이 12개였다. 이런 사태를 두고 인문학적 용어로 “지랄이 풍년”이라고 한다지 아마. 하하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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