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늘 성화다. 다른 때보다 내가 운전을 할 때 잔소리가 좀 많다. 갑작스런 끼어듬이나 멈춤 사건이 터질 때 내 입에서 나오는 과거의 거친 표현 때문이다. 물론 우리 어머니가 물려준 유산(?)이다.

가난한 청상과부로 거친 세월을 살아내야만 했던 어머니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지만 그걸 듣고 자란 나는 무슨 죄란 말인가. 배우려고 해서 배운 게 아닌데 아직도 무심히 튀어나오는 거친 말들. 아내는 그렇게 말해야 상대방은 듣지도 못하는데 왜 그러느냐 말한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내 어쩌다 다급할 때, 화날 때, 폭발할 때 튀어나오는 거친 말은 이성적으로 생각하기 앞서 터지는 거친 어린 날의 잔재다. 생각보다 말이 빠르니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게 나도 싫다. 이처럼 안 좋은 잔재란 참으로 거머리 같다.

다음 대화에서 일본의 잔재는 무엇일까? 한 번 찾아 보기 바란다.

"모처럼 망년회에 참가하는 데 이게 뭐야. 그리고 음식이 싱거워. 다데기 좀 줘봐."

"고참이 혼자 남아 야근하면서 노가다 뛰고 있는데 넌 퇴근하냐? 야식으로 오뎅이라도 사와."

"이 옷 땡땡이무늬 하고 줄무늬 중에 뭘 사야 할지 정말 모르겠어. 뭐가 좋을지 애매하네."

"이걸 지금 시말서라고 쓴 거야? 뻔한 변명이 이제는 식상하다."

누구나 서너 개는 찾았을 거다. 그러나 놀라지 말라. 아홉 개나 있다. 이메일을 받고 나도 여섯 개밖엔 못 찾았다. 그만큼 일본 식민지의 잔재가 아직도 우리 속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다는 증거다. 일본어의 잔재인지도 모르고 사용한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일제잔재가 깊이 생각하지 않으면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다.

정답은 이렇다.

[망년회-> 송년회, 다대기- 다진 양념, 고참- 선임, 노가다- 노동, 오뎅- 어묵, 땡땡이무늬- 물방울무늬, 애매하다- 모호하다, 시말서- 경위서, 식상하다- 싫증 나다]

와우! 이렇게나 교묘하게 우리의 언어 속에 녹아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는 일본어. 놀랍지 않은가. ‘애매하다’나 ‘식상하다’는 나도 자주 애용하는 단어들이다. 나는 우리 말속에 숨은, 여전히 널리 사용되는, 낌새조차 채지 못한 채 이용되는 ‘일본 잔재 언어’를 맞닥뜨리면서 신앙인의 잔재에 대해 생각했다.

생각이나 언어 속에 신앙인이기 전의 잔재는 얼마나 많을까. 아마도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을 게 뻔하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거의 불신앙적인 요소 속에 사는 현대 신앙인은 일재잔재의 언어 이야기를 통해서 많은 것을 배워야 한다.

과거의 잔재는 없애기 참 힘들다. 일제 잔재 언어가 그걸 가르쳐 준다. 하지만 꼭 없애야 한다. 불신의 잔재를 없애지 않고 신앙인으로 나아가긴 어렵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니기에. 새 술을 새 부대에 넣어야 하기에. 헬레니즘에 헤브라이즘을 넣어야 하기에.

▲ 김학현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