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절의 마지막 날입니다. 올 해 사순절에도 마태수난곡을 들으며 지냈습니다. 마태수난곡을 들을 때 마다 내가 이 음악을 듣고 감상하고 분석하는 것이 아니라 수난곡을 통해 나의 마음과 신앙과 삶이 십자가 앞에서 벌거벗겨지고 낱낱이 읽혀지는 경험을 합니다. 올해는 홀로 집근처 삼각산 자락 산길을 걸으며 듣곤 했었는데 진달래 만발한 길을 터벅터벅 걸으며 마태수난곡을 ‘눈으로 듣고’ ‘몸에 새기는’ 경험을 했습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눈물이 날 정도로 아름다웠던’ 순간들이었습니다.

 진달래는 멀리서는 잘 보이지 않습니다. 산으로 들어와야, 산길을 걸아 봐야 그 아름다움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온통 진달래로 뒤덮인 산도 있다고 하지만 모름지기 산속에 듬성듬성 피어있는 진달래가 가장 진달래답고 예쁜 것 같습니다. 수난곡을 들으며 산길을 계속 걷다 보니 십자가의 그 사랑이 진달래꽃처럼 느껴졌습니다. 비가 내리면 사람 없는 산길이 더 그립습니다. 어느 봄비가 내리던 날, 산길에 소복이 깔려있는 진달래 꽃길을 바라보며 기어이 울고 말았습니다.

 수난곡을 들으면서 걸으면 나도 모르게 땅을 보고 걸을 때가 많습니다. 어느 날 수난곡을 들으며 산길을 걷다가 아기 진달래를 보았습니다. 걸음을 잠시 멈추었습니다. 아기 진달래를 바라보니 저의 모습과도 같아보였습니다. 작은 교회를 지켜가며 많이 힘들었었나봅니다. 십자가를 달게 지는 비장한 마음으로 낮은 자리, 사람들이 꺼려하는 자리를 택했지만 현실은 십자가에서의 하나님의 침묵만큼이나 무겁고 냉정했습니다.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 흙 위에 위태롭게 꽂혀 있는 한 가닥 아기진달래처럼 십자가 운운하기에는 저는 너무나 연약했습니다.

 하지만 10센티도 되지 않아 보이는 그 아기 진달래는 두 개의 가지에서 세 송이 꽃을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더욱 신기한 것은 이 아기 진달래가 어른하고 똑같은 크기의 커다란 꽃을 피워 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아기 진달래는 마치 이 땅의 작은 예수들 보란 듯이 여린 가지에 힘차게 꽃을 지고 있었습니다.
 
 올 해는 마태수난곡 중에서 ‘Erbarme dich Mein Gott/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아리아가 마음에 사무쳤습니다. 위태로운 한 가닥 아기 진달래 같은 저의 노래처럼 들렸습니다. 이 곡은 예수를 부인한 후 예수의 말씀이 떠올라 심히 통곡한 베드로의 장면에 이어지는 곡입니다.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마태복음 26장 75절

 위 구절이 에반겔리스트에 의해 전달된 후 심히 통곡하고 있는 베드로의 모습이 아직 잔상으로 남아 있을 때 이 장면에 오버랩 되듯 구슬픈 바이올린 소리가 시작합니다. 이 곡을 설명하려 애 쓰다가 말이 음악을 담을 수 없다는 것을 비로소 깨닫습니다. 듣고 또 듣고, 울고 또 울라는 말 밖에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Erbarme dich Mein Gott,
um meiner Zähren willen;
Schaue hier,
Herz und Auge weint vor dir
Bitterlich.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 이렇게 눈물 흘리고 있나이다
주여, 나를 보시옵소서!
당신 앞에서 애통하게 울고 있는
나의 마음과 눈동자를 보시옵소서!

*캐슬린 페리어가 노래 하는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https://youtu.be/Sm8CY8kqkX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