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극작가를 알고 있다. 이강백 선생인데 독일에서 한 해 같이 지냈다.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이 선생이 폴란드에 갔다. 안내하던 폴란드 작가와 유대인 학살과 게토 이야기를 했다. 폴란드 작가는 말했다. 나치가 일을 벌이기 전부터 폴란드인들은 유대인을 학대했노라고.

믿을 수 없었다. 유대인 학대와 학살은 나치의 소행으로만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강대국 틈에서 고통 당했던 폴란드인조차 유대인에게 증오를 품었다는 사실을 나는 믿을 수 없었다. 나라 없이 떠돌던 유대인은 쉽게 속죄양이 됐다. 유럽 국가마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후부터 유대인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진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일찍부터 신용거래를 터득한 유대인은 돈으로 돈 버는 사업을 했다. 돈은 좋지만, 돈을 매개로 돈 버는 사람은 좋게 보이지 않는다. 유럽인들은 유대인에게 돈을 꾸면서도 그들을 천하게 여겼다. 세익스피어의 베니스 상인에 나오는 샤일록처럼 유대인이 야비하고 비도덕적이어서 사람들이 싫어했을까, 돈만 알아서 그랬을까? 그보다는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사회에 동화되지 않는다고 여겼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사는 사회에 한 무리가 들어와 오래 살면서도, 자기 언어와 자기 문화와 자기 종교를 두드러지게 지킨다면 어떤 느낌일까? 이질감을 느낄 것이고 매사를 째려 볼 것이다. 동화되지 않는 것을 사회 안정을 해치는 것으로 여길 이유는 많다. 적과 전쟁을 준비하고 있을 때가 특히 그렇다.

소련 위정자들이 연해주에 살고 있던 모든 한인을 강제로 이주시킨 이유도 유대인의 경우와 다르지 않다. 유대인들이 공산주의 혁명 때 두드러진 공을 세운 것과, 한인들이 연해주의 공산주의 확산에 막대한 공헌을 한 것도 비슷하다. 자신들의 언어와 문화와 종교를 지키려는 습관이 강한 유대인들에게 이질감을 느꼈듯이, 러시아인 사회에 동화되지 않았던 연해주 한인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연해주 한인들의 관점이 아니라 소련 위정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다음의 것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먼저 정치적 상황. 연해주가 러시아 땅이 되었는데도 러시아인의 이주는 더디고 한인들의 이주는 빠르다. 다수 세력이 되는 한인들을 귀화시키든지 추방하든지 조치해야 한다. 한반도는 이미 일본의 식민지가 됐고, 만주에 일본의 조종을 받는 국가가 섰다. 서쪽에서 독일과 전쟁을 하는 동시에 동쪽에서도 일본과 전쟁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연해주에서 활동하는 일본 스파이를 구별해 내는 것도 골치다.

경제적 상황. 국가 계획경제는 이미 실시됐다. 농민을 집단화 하고, 동조하지 않는 자들은 이주시켜야 한다. 연해주 한인들도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문화 종교적 상황. 공민증을 받은 한인은 러시아로 귀화한 것이다. 그러나 충분하지 않다. 진짜 러시아인이 되려면 러시아 정교회 신자가 되어야 한다. 한인들이 러시아 정교회 신자로 되는 비율은 현저하게 낮다.

소련 때 강제이주를 당한 민족은 유대인과 한인 말고도 더 있었다. 독일인, 리투아니아인, 타타르인, 체첸인들도 강제이주를 당했다. 그러나 유대인이나 한인을 집단 이주 시키면 기대할 것이 더 있었다. 이주 지역의 발전이다. 유대인이나 한인들은 생존력이 강했다. 근면 성실했고 노동력이 높아서 이들이 정착한 곳은 빨리 발전했다.

1928년부터 시작된 유대인의 집단 이주와 1937년에 있었던 한인의 이주가 다른 점은 무엇이었을까? 유대인의 집단이주는 한인 이주처럼 강제적이었지만, 이주자의 기대가 있었다. 프랑스, 독일, 폴란드, 리투아니아, 라트비아, 아르헨티나, 팔레스틴 유대인들이 비로비잔의 유대인 자치주에 들어올 정도였다. 당시 유럽과 소련에 유대인들이 400만 정도 살았는데, 유대인 자치지역으로 22만 명이 왔으니 5퍼센트가 이주한 셈이다.

하지만 유대인들의 기대는 충족되지 못했다. 스탈린의 반유대주의 정책은 여전했고 탄압도 계속되었다. 학교에서 히브리어로 교육을 할 수 없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 체제가 무너지자 많은 유대인들은 미국과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급격한 유대인의 감소로 앞으로는 유대인 자치주의 지위가 유지될 것 같지 않다.

1937년 한인의 강제이주는 유대인의 이주와 다르다. 그것은 3개월 동안 전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주에 앞서 한인 지도자들을 먼저 처형했으므로 공포 속에서 화물열차에 올랐다. 어디로 가는지 전혀 알 수 없었다. 기대와 희망이 어디 있었겠는가?

첫 화물열차가 서고 내린 곳은 우슈토베 벌판. 나뭇가지로 땅을 파고 나무로 거푸집을 만들어 밤을 새웠다. 이주는 그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하수 시설이 없는 곳에서 강물로 모든 것을 하다 보니 수인성 전염병이 돌았다. 엄혹한 화물열차에서도 살아남은 이들이었는데, 반이 스러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