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목일 하루 전 날인 지난 4일 밤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졸이게 만들었다. 강원도 고성에서 일어난 산불은 민가에 까지 피해를 입히고 무서운 기세로 달려들었다. 산불이 나게 된 원인은 조사 중에 있지만 무엇이든 시발점이 된 작은 불씨 하나가 봄을 시샘하는 강한 바람을 만나서 손을 쓸 새도 없이 모든 것을 태워버렸다. 순식간에 잿더미가 된 집터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 시뻘건 불길이 금방이라도 덮쳐올 것 같은 도로 위에 현장의 사진, 전쟁통에 피난 행렬을 떠올리게 하는 아파트 주민들의 대피 행렬의 사진들. 그저 사진 속의 모습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생생하고 남의 일이 아닌 것처럼 느껴졌다. 거대한 불길 앞에서 그들의 공포가 얼마나 클지 가늠할 수 있었다.

이렇게 고성에서 시작된 불은 매서운 강풍을 만나 속초 시내까지 집어 삼켰다. 그런데 고성에서 강릉까지 거리를 따져봤을 때 불씨를 옮길 가능성이 적은, 아무런 연관성이 없지만 또 다른 곳인 강릉에서 시작된 산불이 동해로 옮겨 붙는 화재가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바람을 탄 산불은 해변까지 번져나갔고 가족들과 추억을 만들기 위해 해변을 찾은 캠핑객들의 일상을 집어삼키기도 했다. 전에 어느 누군가가 말했던 물난리와 불난리 중에 불난리가 더 무섭다는 말을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어떻게 손을 쓸 수도 없이 순식간에 태워버리는 화마(火魔) 앞에서 온 국민들은 함께 떨어야 했다.

그런데 하마터면 목숨까지 잃을 수도 있는 극도의 공포 속에서도 ‘저 불길 앞에서 반드시 지켜내겠다’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있었다. 대다수가 타들어가는 가슴으로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을 때, 정신을 차리고 불 앞에 맞선 이들의 소식은 정말 놀라운 것이었다. 화재가 일어난 강릉의 한 중학교에서는 교사들이 호스 하나로 학교를 지켰다고 한다. 산에서 시작된 불이 학교 쪽으로 번지면서 화염이 거대한 파도처럼 학교를 덮치는 와중에 누군가가 다급하게 뛰어 나온 것이다. 더 이상 불길이 번져오지 못하도록 얇디얇은 고무로 된 물 호스 하나를 들고 물을 뿌리면서 더 큰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이처럼 소시민의 작은 움직임이 있었는가 하면, 전국에 있는 소방관들이 산불을 끄기 위해서 한밤중에 강원도로 향하기도 했다. 제주도를 제외한 전국 소방서에서 소방차 872대를 동원하여 불을 진화하기 위한 필사적인 사투를 벌였다. 서울-양양간 고속도로에는 역대 최대 규모의 동원으로 빨간 경광등을 울리며 소방차 행렬이 줄지어 가기도 했다. 연신 물을 뿌려댔어도 막무가내로 불이 번지면서 고군분투했지만, 이내 전국 각지에서 모인 소방관들의 힘이 더해지자 불길도 점점 힘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위험했던 가스 충전소나 가스관 폭발도 막아내면서 소방관들을 향한 응원을 멈출 수 없었다.

거대한 불길 앞에 공포를 느낄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 얇은 물 호스 하나로 맞서는 용기와 너나 할 것 없이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소방관들의 몸을 사리지 않는 그 용기가 왜 이리도 가슴 뭉클한 것일까.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라는 것이 말은 쉬울 수 있겠으나 실제로 그 상황에 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그럴 지도 모르겠다. 삶의 모든 것을 잃게 만드는 공포와 절망 가운데서도 맞서 나갈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들이 있기에 그렇게 또 어려운 한 고비를 넘길 수 있을 것이다.

목회자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 모두가 혼란스러워 하고 있을 때 영적인 소방관이 되어서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시뻘건 불길이 거대한 파도가 되어서 집어 삼킬 듯이 달려와도 뒤로 물러설 수 없다. 화염 속에 몸을 던지는 소방관들처럼 투철한 소명 의식과 굳은 의지를 가지고 맞서야 한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전국 각지에서 한밤중에라도 달려 올 소방차가 있듯이 고난과 절망의 화염 속에서 모두가 힘을 모아서 지켜내겠다는 용기를 지니고 있어야 한다. 하나가 되어서 함께 맞설 용기가 있다면 주님이 주시는 힘과 지혜로 어려운 상황을 충분히 맞서 나갈 수 있다. 우리 감리교회에 산적한 문제들이 많다. 때로는 그 문제들이 거대한 화염과도 같아서 공동체를 집어 삼키려고 하기도 한다. 그럴수록 흩어지지 말고 뭉쳐야 산다. 감리교회를 사랑하는 이들의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가 절실한 때이다. 이번 산불로 인한 큰 피해가 하루 속히 수습되고 안정을 찾을 수 있기를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