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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한 전도자가 되라
황광민  |  seokkyo@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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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4월 06일 (토) 22:52:27 [조회수 : 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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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서 3장 1-6절

성실한 전도자가 되라

 

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

2절,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 본문은 요나의 불성실한 선포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회개하여 구원을 받은 니느웨 사람들의 이야기다. 요나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타산지석의 교훈을 준다.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성실한 전도자가 되기를 요청한다. 성도는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성실한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

* 주님은 땅 끝까지 이르러 증인이 되라고 말씀하셨다(행1:8). 그런데 본문에서 니느웨는 땅끝 중의 땅끝이다. 지리적으로 먼 곳만 땅끝이 아니다. 정서적으로 먼 곳도 땅끝이다. 이스라엘을 괴롭히던 원수의 나라, 그래서 요나가 망하기를 바랬던 나라가 진정 땅끝이다. 가장 가기 싫은 곳, 가장 가기가 어려운 곳이 바로 땅끝이다. 성도는 그런 곳까지 가서 성실하게 복음을 전해야 한다.

* 전도자는 ‘우리’라는 울타리를 허물고 나가야 한다. 예루살렘에서 유다로, 유다에서 사마리아로, 그리고 땅 끝까지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만이 전도의 대상이 아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땅끝의 사람까지 전도의 대상으로 삼아야 한다.

 

나.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것이 문제다.

3절, “니느웨는 사흘 동안 걸을 만큼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더라.”

*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다. 하나님은 니느웨를 귀중하게 여기셨다. 본문에서 ‘크다’(가돌)는 ‘귀중히 여기다’(가달)에서 유래한 말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큰 성읍’이라고 한 것은 단순이 도시가 크다는 뜻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귀중히 여기셨다는 것을 보여준다.

* 하나님은 니느웨를 아끼셨으며 회개하고 구원받기를 원하셨다.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4:11).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의 뜻과 그의 마음을 무시했다. 성도들은 한 영혼을 천하보다 귀하게 보시는 주님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이 크게 보시는 것을 우리가 작게 보면 안 된다.

* 주님은 잃은 양 하나를 찾기까지 기꺼이 찾아다니는 목자와 같은 분이시다(눅15:3-7). 주님은 잃어버린 드라크마를 부지런히 찾아내는 여인과 같은 분이시다(눅15:8-10). 주님은 돌아온 탕자를 기꺼이 받아주는 아버지와 같은 분이시다(눅15:11-32). 주님의 마음을 모르면 안 된다.

 

다. 최선을 다하여 성실하게 전파하라.

4절, “요나가 그 성읍에 들어가서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 그런데 요나는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고 아주 불성실하게 외쳤다. 니느웨 성은 걷기만 해도 사흘은 걸리는 큰 성읍이었다. 사십 일 동안을 외쳐도 부족할 터인데 요나는 단 하루 동안만 다니며 외쳤다. 선거운동과 비교하면 불성실함이 확연이 드러난다. 성도는 성실하게 전도해야 한다.

* 요나가 외친 말씀도 불성실한 것이었다. 그는 단지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라고 외쳤다. 그의 외침에는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 없다. 사실 요나는 니느웨가 망하기를 바라고 있었으므로 회개를 촉구할 이유가 없다. 우리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외쳐야 한다.

* 주님은 십자가를 지기까지 간절히 외치셨다. 바울은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한다고 하였다. 바울은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의 수고를 하노니”(갈4:19)라고 하였다. 성도들도 이처럼 최선을 다해야 한다.

 

라. 하나님은 신실한 전도자를 기뻐하신다.

5절, “니느웨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 요나는 불성실한 전도자였으나 니느웨 사람들은 온전히 회개하여 구원을 받았다. 그들은 금식을 선포하고 높고 낮은 자를 막론하고 베옷을 입고 회개하였다(5절). 왕도 보좌에서 일어나 왕복을 벗고 굵은 베옷을 입고 재 위에 앉아 회개하였다(6절). 이것은 요나의 공로가 아니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고 방자히 행하다가 책망을 받았다. 하나님은 신실한 전도자를 기뻐하신다.

* 요나는 니느웨가 구원을 받는 것을 보고는 분노하며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불평하였다(4:2-3). 이에 하나님은 “네가 성내는 것이 옳으냐”(4:4)라고 책망하셨다.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니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그의 구원을 기뻐하는 사람에게 은총을 베푸신다.

* 하나님은 하나님이 아끼시는 것(니느웨)을 아끼지 않은 요나에게서 요나가 아끼는 것(박넝쿨)을 빼앗으셨다(4:6-7). 이를 두고 요나가 분노하였으나 하나님은 또 책망하셨다(4:9). 우리가 하나님이 아끼시는 것을 귀중히 여겨야 하나님도 우리가 귀중히 여기는 것을 아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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