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력을 거슬러 서 있는 우리는 아래를 낮게 보고 위를 높게 본다. 아래로 가는 것을 쉽게, 위로 가는 것을 어렵게 여긴다. 지도를 보면 그런 착각에 빠지기 십상이다. 만주와 연해주 지도를 뒤집으면 그렇지 않다. 두만강과 압록강을 넘어가기가 힘들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기온은 낮아도 큰 강들이 있고 농사지을 곳이 많다.

현재 러시아와 중국의 경계는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아무르(Amur) 강과, 남에서 북으로 흐르는 우수리(Ussuri) 강임을 알 수 있다. 아무르 강 남쪽, 우수리 강 동쪽이 바로 연해주다. 백두산에서 발원해 북으로 흐르는 강이 토문강(송화강)이다. 토문강 서쪽을 서간도, 동쪽을 북간도, 서간도와 북간도 북쪽을 만주로 부른다. 간도와 연해주는 옛날부터 한인이 삶을 일군 터전이었고 옮겨 다니기 쉬운 곳이었다. 거기는 조선왕조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었다. 경지가 협소한 함경도에 사는 한인들은 날이 풀리면 건너가 농사를 짓고, 추수한 후 귀향했다. 계절농업지였던 셈이다.

1616년 누루하치가 후금을 세우고,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다. 조선 정부는 간도 이주자를 단속하고 처벌했다. 어쩔 수 없었다. 사람들은 농사 지으러 강을 넘을 수 없었다. 1644년 만주족이 중국 본토로 옮겨가 청나라를 세우자 간도가 비었다. 실제 거주하며 다스리는 세력이 없어진 것이다. 그래도 간도는 출입이 금지됐다. 그곳은 만주족의 고향으로 그들의 성역이었고, 만약 중국 본토를 한족에게 빼앗기면 돌아올 곳이었다. 본토에서 먼 연해주는 단속이 느슨할 수 밖에 없었다. 한인들은 몰래 강을 건너가서 산삼을 캐며 살았다. 1860년 두만강 하류에 큰 재해가 났다. 이번에는 많은 한인들이 생존을 위해 두만강을 넘었는데 단속이 어려울 지경이었다. 쇠약해진 청이 마침내 봉금령을 풀자 한인들은 대거 만주와 연해주로 이주했다.

청은 그랬고 러시아는 어땠는가? 17세기 시베리아 동편에 큰 나라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때는 러시아가 모스크바 공국을 벗어나 국가체제를 갖추기 시작한 때이고, 러시아말을 하는 모피사냥꾼(코사크 또는 카자크, Cossack)들이 시베리아를 넘어 태평양 연안까지 진출한 때였다. 이들이 태평양 연안까지 진출하자 17세기 초엽에는 명하고, 중엽에는 청하고 분쟁이 일어났다. 코사크는 미국 서부개척 때 있었던 민병대 정도로 생각하면 된다. 그들은 시베리아의 교역로를 장악하고, 진출한 곳에 성채를 지었다. 러시아 황제는 이들이 보낸 모피를 받고 자치권을 주었다. 이들이 진출한 곳은 토착민의 의사와 상관없이 러시아 땅이 됐다.

러시아 모피사냥꾼들이 베링 해협을 건너 알래스카에 들어갔을 때가 1733년경이다. 러시아 황제의 연락은 1799년에야 알래스카에 닿았다. 그때부터 720만 달러 받고 미국에 소유권을 넘긴 1867년까지가 러시아 땅, 그 후는 미국 땅이란다. 시베리아에, 알래스카에, 아메리카에 사는 사람들은 전혀 아랑곳 없다.

러시아와 청은 네르친스크 조약(the treaty of Nerchinsk)을 맺고 아무르 강 북쪽 스타노보이 산맥(Stanovoy range)을 경계로 정했다.(1689년) 2차 아편 전쟁이 일어나고(1856년) 청나라가 혼란에 빠지자, 남쪽으로 진출한 러시아는  청과 아이훈 조약(the treaty of Aigun)을 체결하고 아무르 강 이북을 차지했다.(1858년) 그 지역은 한반도 면적의 세 배로 농사를 지을 수 있다. 영국과 프랑스 군대가 베이징으로 쳐들어오자 러시아가 중재한다며 끼어들었다. 그 결과, 청과 베이징 조약(the convention of Beijing)을 맺고 마침내 우수리 강 동쪽 연해주를 차지했다.(1860년) 한반도와 국경을 맞대게 된 것이다.

러시아어 ‘프리모르스키 크라이’는 ‘연안’(프리), ‘바다’(모리에), ‘주’(크라이)가 모여서 된 낱말이다. 번역하면 연해주(沿海州)가 된다. 한반도의 4분의 3 크기로 물이 풍부한 평원이다. 강력한 제국이 된 러시아는 연해주에 정착지와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이때 건설한 도시가 블라디보스톡이다.
한인들이 연해주로 이주하기가 어려웠을까? 그렇지 않다. 러시아가 연해주로 진출한 바로 그 시기에 한반도 사람들도 연해주로 모여들었다. 러시아인들의 이주는 더뎠고 한인들의 이주는 빨랐다.

2014년에 한인 러시아 이주 150주년을 기념하는 행사가 있었다. 150년 전에 한인이 처음으로 러시아로 이주했다는 것인데, 그렇게 산술하는 근거가 1864년 이주허가를 내줬다는 러시아 정부 문서 기록이다. 천백 년 전 발해 역사는 차치하고라도, 연해주는 한인들이 계속 살았던 땅이다. 그곳을 오래 전부터 러시아 땅이었다고 여기거나, 한인들이 전혀 살지 않던 땅으로 여기는 것은 옳지 않다. 그곳은 한인들이 이미 살던 땅이었고, 1860년대에 개척지와 다름없게 되면서 수백 수천 명 단위로 이주해 살던 땅이다.

조선 정부는 강을 건너는 민초들을 어떻게 다뤘는가? 러시아 보초가 월경한 한인을 추방하면 무더기로 처형했다. 그래도 이주를 막지 못했다. 연해주에 진출한 러시아 세력은 소수였지만 국가 조직과 군대를 갖추고 있었다. 러시아도 19세기에 식민지를 경영했던 여느 국가와 다르지 않았다. 한반도를 지배할 야심이 있었던 러시아는 다른 근대화 세력인 일본과 힘겨루기에 나섰다.

연해주에서 가장 많은 수를 차지했던 한인들은 졸지에 이방인이 되었고, 러시아 법과 명령에 따라 등록을 해야 했다. 한인들은 19세기에 두 근대화 세력 사이에서 고초를 겪게 되었는데, 가장 힘들게 고초를 겪은 이들이 누구였겠는가? 바로 연해주 한인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