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교회 집사님이 속초의 한 병원에 입원을 하셔서 지난주 심방을 다녀왔습니다. 오가는 길에 보니 벚꽃이 한 두주 안에 만개할 듯 보였습니다. 입원하신 집사님이 퇴원하시면 교우들과 함께 속초 영랑호와 목우재로 나들이를 나갈까 합니다. 건조하고 바람이 많아 연일 산불조심 방송이 거리에 흘러나오고 있지만 봄을 맞이하는 저의 마음은 가볍기만 합니다.

고성에는 바닷가를 따라 들어선 모든 마을이 작은 어촌입니다. 최근에는 속초 인근 지역인 토성을 중심으로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과 휴가를 온 이들로 북적이기 시작하면서 고성의 몇몇 바닷가도 철책을 걷고 깔끔한 모습으로 정비를 하여 외지인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바닷가에서 오랫동안 살아오며 뱃일을 해 오신 분들은 여전히 새벽같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고, 해녀들은 물질을 하며 살아갑니다. 제가 일하는 직장에서 근무하시는 지역주민들은 가끔 항구에서 들어오는 배를 기다려 생선이며 게를 사 오셔서 반찬거리를 만드신 후에 나누어 드십니다. “특별한 비법은 없다.”며 빠른 손놀림으로 주물주물 무쳐서 끓이고 볶아 만든 싱싱한 해산물 요리는 보기만 해도 침이 넘어갑니다. 아마도 싱싱한 해산물과 함께한 주민들의 세월이 비법인가 봅니다.

저는 해녀는 제주도에만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고성에 와서 직접 물질을 하는 해녀를 보기도 하고 가족 중 해녀가 있는 사람을 만나기도 합니다. 근래에 알게 된 한 청년의 할머니도 해녀입니다. 청년의 할머니는 10대 때부터 성게와 전복을 따기 시작해 평생을 해녀로 물질을 하였다고 했습니다. 할머니는 오랜 세월 물질을 하다 보니 건강이 좋지 않고, 무엇보다 성게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손의 힘을 많이 사용해야 해서 손가락과 팔목이 많이 상했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청년은 할머니를 돕기 위해 할머니의 물질이 끝나는 시간에 항구에 나가 성게 정리를 돕는다고 하였습니다. 성게를 어떻게 정리하는지 알지 못하는 저로서는 성게 손질을 상상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저 마디마디 휘어있는 단단한 할머니의 손가락을 보며 성게 손질은 고된 노동임을 짐작합니다.

저는 성게 요리를 먹어본 기억이 없습니다. 언젠가 저도 모르게 먹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해 볼 따름입니다. 이제 막 스무 살을 넘긴 청년이 지금까지 의지하며 살아온 해녀 할머니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제가 해마다 고성에서 열리는 성게 축제에 무심했던 것이 떠오르며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고성 현내면 초도에서는 매년 5월 말에서 6월 초에 성게 축제를 엽니다. 성게 중 가장 맛이 좋은 것이 보라성게라고 하는데 초도리에서 잡는 성게가 바로 보라성게랍니다. 초도리의 성게는 초도항과 금구도라는 작은 섬 사이에서 잡히는데 해녀들이 오전 내내 바다에 떠서 물질을 해 잡는다고 합니다. 저도 올해는 성게축제에 가보아야 겠습니다.

물질을 하며 바다 속에서 성게를 따는 해녀의 삶은 인간극장이나 다큐멘터리에서 보았지만, 직접 그들과 만나고 삶을 나누어보니 모니터 속의 해녀 그 이상의 삶이 있었습니다. 실제 삶 속에는 모니터 화면으로는 맡을 수 없는 비릿함이 존재한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인지 물질하는 할머니를 보며 안타까워하는 젊은 청년의 마음 짠한 걱정소리가 바닷바람처럼 끈적하게 제 마음에도 와 닿았습니다. 저는 해녀가 하는 일을 알고 있었고 성게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알고 있었지만 일반화된 지식만 가지고 있었을 뿐 아무런 정서적인 친밀감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누군가를 알아간다는 것은 진정한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깨닫게 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아픔이 나의 아픔보다 덜 할 것이라고 추측하는 것 역시 ‘나’의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입니다. ‘너’의 세상에 사는 사람은 ‘나’의 세상이 알 수 없는 주관적인 삶의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라는 존재가 ‘너’의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를 버리고 ‘너’의 삶 속으로 녹아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타인을 대상화하지 않고 저와 연결된 이웃으로 이해하기가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얼마나 위대한 일인지를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이웃의 삶에 더 공감하고 친밀할 수 있을지 예수님을 통해 배웁니다. 오늘하루,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저의 삶을 이해하신 것처럼 저도 누군가의 삶의 자리에 서서 생각해 보는 하루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