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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도 하나님 일할 권리, 행복할 권리가 있다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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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3월 11일 (월) 03:50:25
최종편집 : 2019년 03월 23일 (토) 02:58:12 [조회수 : 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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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얼마 전 카톡으로 누군가로부터 글 하나는 받았다. 지금은 기억에 없지만 어쩌면 아는 분이었을지도 모른다. 필자가 소속되어 있는 교회의 장로님 중 한 분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명단을 확인해 보니 이름이 없다. 교회 조직표에 나와 있지 않은 은퇴 장로의 한 분인지도 모른다. 어떻든 그분은 가끔 흘러간 옛노래를 배경음악으로 깐 글을 보내 주곤 한다.

그런데 필자가 받은 그 글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그 생각이라는 것을 글로 써 보려 받은 글의 출처를 알아보려 했으나 말미에 ‘옮긴 글’이라고만 되어 있을 뿐 단서가 될 만한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아마 인터넷에서 옮겨다 놓은 것일 거라는 생각에 검색해 보니 역시 그랬다. 같은 글이 여기저기 산재해 있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제각기 행간을 띄우는 것도 그렇고 줄을 바꾸는 것도 다 달랐다. 문장부호도 조금씩 달랐다.

그런 것을 필자가 나름대로 정리하여 여기에 소개해 본다. 그러나 원본과 얼마나 비슷할지는 자신이 없다.

 

생각을 바꾸면 희망이 보인다

나는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 결과 나는 실력을 인정받았고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 덕에 65세 때 당당한 은퇴를 할 수 있었죠.

그런 내가 30년 후인 95살생일 때
얼마나 후회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내 65년의 생애는 자랑스럽고 떳떳했지만,
이후 30년의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
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습니다.

덧없고 희망이 없는 삶,
그런 삶을 무려 30년이나 살았습니다.
30년의 시간은 지금 내 나이 95세로 보면
3분의1에 해당하는 기나긴 시간입니다.

만일 내가 퇴직할 때
앞으로 30년을 더 살수 있다고 생각했다면,
난 정말 그렇게 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때 나 스스로가 늙었다고,
뭔가를 시작하기엔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이 큰 잘못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95살이지만 정신이 또렷합니다.
앞으로 10년, 20년을 더 살지 모릅니다.

이제 나는 하고 싶었던 어학공부를 시작하려 합니다.
그 이유는 단 한 가지,
10년 후 맞이하게 될 105번째 생일에
95살 때 왜
아무것도 시작하지 않았는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2015년 9월 1일에 향년 103세로 작고한 호서대학교 설립자이자 명예총장인 강석규 박사가 95세 되던 해에 쓴 글이라 하는데, 필자는 그런 사실을 알기 전에도 글을 읽고 글쓴이가 아마 대학교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대학교수의 정년이 65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글의 제목은 어느 것이나 ‘어느 95세 어른의 手記’로 되어 있었다. 아마도 글쓴이가 직접 붙인 제목은 아닐 것이다. 대개는 자기를 가리켜 ‘어른’이라고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가 본 제목들 중 단 하나가 ‘생각을 바꾸면 희망이 보인다’였다. 아마 이것이 맞을 것이라는 생각에 필자는 그에 따랐다.

사족에 불과한 말이 너무 길어졌다. 이 같은 말이나 늘어놓자고 글을 쓰고자 한 것은 물론 아니다. 전술한 대로 생각한 것이 있어 그것을 써 보고자 해서이다.

글을 읽으며 필자는 글쓴이가 자신과 참 대조적이라는 생각을 했다. ‘젊었을 때 정말 열심히 일’한 것은 필자도 같다. 그러나 필자는 그분과는 달리 ‘실력을’ 별로 ‘인정받’지 못했고, ‘존경’은 더더욱 받지 못했다. 그러니 은퇴(정년)때 일부러 저자세가 될 필요는 없다 해도 그렇게 ‘당당’해 하여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냥 나름대로 열심히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이제 자유로운 나의 세계로 들어가는 시발점에 섰다는 생각이 앞섰다.

글쓴이 그는, ‘퇴직 후 “이제 다 살았다, 남은 인생은 그냥 덤이다”라는 생각으로 그저 고통 없이 죽기만을 기다렸’기에 그 ‘삶은 부끄럽고 후회되고 비통’했다 회고하고 있는데, 그것이 무엇보다 필자와 다른 점이다.

필자는 퇴임을 새로운 삶의 출발점으로 생각했다. 언제가도 글로 쓴 적이 있는데, 필자는 회갑을 맞던 해, 그러니까 만 60세가 되던 해 심한 어지럼증으로 병원 응급실 신세를 진 적이 있다.

그해의 식목일 아침식사 후였다. 작고하신 아버님 산소에 꽃을 심을 생각으로 묘목을 사다 놓고 아들을 오라 하여 와 있었다. 식후 거실 소파에 앉아 신문을 읽다 이제 챙기고 출발할 생각으로 일어나는데 갑자기 머리가 핑 돌며 어지러워 쓰러질 것 같았다. 벽을 짚어 쓰러지는 것은 간신히 면했으나, 곧 좋아지리라는 생각대로 되어 주진 않았다. 한나절을 기다렸으나 조금도 좋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병원 응급실 신세를 지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응급실에는 필자의 증상 원인을 알 수 있는 전문의가 자리에 있지 않았다. 수술 중이라 했다. 해가 지고 밤이 되었는데도 아직 수술 중인지 어떤지 알 수 없으나 의사는 나타자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핑핑 돌고 어지러워 죽을 지경인데, 의사라는 사람은 코빼기도 안 보이니 정말 죽을 지경이었다.

이러다가는 정말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드는데도, 두렵다는 생각도 아쉽다는 생각도 그다지 들지 않았다. 그냥 담담했다. 살 만큼 살았고 누릴 만큼 누렸으니 이것으로 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그 같은 생각은 사실과 다른 것이었다. 나이 60에 살 만큼 살았다는 사람이 얼마나 될 것이며, 가진 것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주제에 누릴 만큼 누렸다니 어디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그런데 스스로 말하기는 뭐하지만 마음이 그만큼 넉넉했던 것이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몸은 어지러움으로 죽을 지경인데 감사하는 마음이었다. 죽음 앞에 초연할 수 있는 자신일 수 있어 감사했다. 나 같은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게 가능한 것은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는다는 방증이었다. 믿음이 작은 자신을 한스럽게 생각해 오던 필자로서는 그런 자신이 대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목사로서 할 수 있는 말이냐 할 사람도 있을지 모르나 그게 필자이니 변명할 생각은 없다. 그때는 목사가 되기 전이지만, 목사라고 무슨 대단한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라고는 생각지 않으니 그것도 말할 것은 없다.

또 말이 구구하게 길어졌는데, 필자가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 같은 것 또한 아니다. ‘생각한 것이 있어 그것을 써 보고자 해서’라 했는데, 그것은 죽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면서도 ‘아쉽다는 생각도 그다지 들지 않았다’는 말속에 내포되어 있다.

‘아쉽다는 생각’이 ‘그다지 들지 않았다’는 말은 ‘아쉽다는 생각이 조금은 있었다’는 의미 아닌가. 그렇다면 그게 무엇인가. 현직시절의 필자에게는 소소한 희망이 하나 있었는데, 퇴임을 하면 믿음의 글들을 쓰며 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퇴임 전에 죽게 되면 그 희망은 물거품이 되고 마는 것이 아닌가. 필자는 그게 조금은 아쉬웠던 것이다.

그런데 어지러움은 죽음에 이를 만큼 대단한 것이 되지 못했다. 자정이 넘어서야 전공의가 와서 이리저리 진찰을 하고는 이석증이라며 몸을 그대로 둔 채 모로 그리고 배를 깔며 돌아누워 보라했다. 시킨 대로 몇 번인가 했더니… ‘아니, 무슨 일이 이런!’ 뭔가에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거짓말처럼 어지럼증이 가시었다. 완전해지기까지는 두어 달이나 걸렸지만, 어떻든 지금까지 재발하는 일도 없이 잘 지내고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그리고 더 감사한 것은 그때 생각했던 대로 정년퇴임을 하자 바로 글을 쓰기 시작하여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앙이 별로인데다가 아는 것도 별로 없고 문재 또한 없으니 제대로 된 글이 나올 리 없지만, 자신은 그것을 사명이라 믿으며 쓰고 있다.

그런데 앞에 인용한 글의 글쓴이가 나이 많아 어학공부를 시작하는 것과 필자가 정년 후 글쓰기를 시작한 것은 무엇이 다른 것일까. 그게 필자가 이 글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이다. 그분은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늦은 나이지만 어학공부를 시작한다 하셨다. 그러나 필자는 정년 후 믿는 사람으로서 무슨 일을 하는 것이 좋을까를 생각한 끝에 글 쓰는 것을 택했다.

필자도 좋은 글, 많은 사람이 읽고 하나님과 더 가까이 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길 수 있는 글을 쓰고 싶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것보다도 얼마나 더 당신의 마음에 따라 글을 쓰려하는가를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을 필자는 안다. 그래서 그분의 뜻에 따라 쓰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니 행복하다.

좋은 글이 되게 하거나 그렇지 않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몫이다. 인간들도 물론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기도하며 노력을 해야 하지만, 그보다도 그분의 뜻, 그분의 방법에 따르는 것이 우선이다. 자기를 버리고 하나님을 따르는 것, 그것이 가장 자기를 위한 것이며 가장 자기다운 자기를 만드는 것이다. 그렇게 하여 얻은 열매는 사람이 보기엔 작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큰 것으로 인정해 주신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정을 받으며 사는 것보다 더 가치 있고 행복한 삶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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