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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산등성까지 일군 충주 우림정원
노종해  |  rochai@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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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3월 08일 (금) 19:08:50
최종편집 : 2019년 03월 12일 (화) 01:56:23 [조회수 : 15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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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가 산등성까지 일군 충주 우림정원

-1897년 충주 남한강 물길따라 복음도 전해져-

노 종 해(CM리서치)

 

   
 
   
 

 

충주 남한강 목계나루 인근 3만평의 산등성에 놀라운 정원길이 정리되어 있습니다. 15년 전(2005년도) 임씨는 대전에서 직장생활을 접고, 충주 엄정면 선산을 우씨 아내를 위한 "우림정원"을 가꾸기 시작하였습니다. 필자가 보기에는 "정원"이 아니라, 규모가 놀랍게 크고 넓으며, 아기자기한 "산림공원", "예술공원"으로 느껴졌습니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없이, 나무와 꽃를 심고, 손수 산책길을 만들고 다리를 놓고, 돌들을 모아들여 탑과 길 벽을 샇았으며, 통나무 길을 조성키도 하였습니다. 솟대와 조각품과 예술품, 옛생활 용품 등을 적당한 위치에 배열하여 예술공간으로 조성하였으며, 틈틈히 운동기구와 쉴만한 장소도 마련하고 의자도 배열하였습니다.

 

   
 
   
 
   
 

 

10년을 작업하니 어느덧 정원모양이 갖추어졌으며, 그 풍치와 산 길을 오르내리며 힐링하기 좋은 데이트코스, 걷기운동코스, 명상의 산책코스로 조성되었습니다.  시작은 림씨가 아내를 위해 조성하였다지만, 곧 부부의 공동 관심 일터가 되어 일심동체로 "우림정원"을 일구어 내게 되었습니다. 이젠 남편보다 아내의 일이 더많아졌습니다. 남편의 건강이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에 쉬엄쉬엄, 그러나 부지런히 일하지만 아내의 일거리가 더 많아졌답니다.

 

   
 
   
 
   
 

 

충주시에서는 관광거리로 투어코스에 넣었고, 아름아름 알려져서 충주의 명물이 되었답니다. 남한강 목계나루터에서 맛갈스런 "건강 청국장 밥상"도 맛 보시고, 즐겨보세요.

 

   
 
   
 

 

2019년2월23일(토), 충주 남한강 소태의 한옥카페 "서유숙"을 거쳐, 목계나루에서 "건강 청국장 밥상"으로 점심을 먹고, "우림정원"을 찾았을 수 있는 하루 산책 나들이 길이기도 합니다. 한 부부가 일군 "우림정원"은 놀라웠고, 감탄이었습니다. 입구 좌측 휴식공간에서 주인 부부와 그동안 "우림정원"을 조성한 내력과 생활 이야기를 나누었으며, 멋과 맛이 어루러진 "과일과 차", 직접 담갔다는 "대왕벌주"도 한 컵 즐겼습니다.

 

   
▲ 필자부부와 우림부부
   
▲ 우림정원":충주시 엄정면 율능리583-2(삼실길42. T,043-844-8100). 입장료는 5천원이지만 과일과 차는 무료!

 

'우림정원"은 2017년에 일반인에게 개방하였으며, 입장료는 5,000원이었지만, 과일과 차는 무료이 더군요. 우아! 놀라운 경험이었으며, 방치된 선산을 부부의 힘과 노력으로 일군일에 감탄할 뿐입니다. 청소년, 청년부 수련회, 남녀선교회, 친구들과 이웃 등과 함께 힐링산책 걷기와 나들이 등으로 추천합니다.

1897년에는 "충청도 충주"에 복음이 전해졌으며, 남한강은 중부내륙지역으로 복음이 전해진 물길이기도 합니다. 목계나루에는, "목계캠핑장", 충주출신 "신경림 신인의 시비" 등과 "목계감리교회"와 "목계장로교회"가 있군요.

또한 인근 30Km 자점에 가토릭 성지인 "배론성지"와 한국인 최초 목사인 최병헌 선생의 생가가 있습니다. "배론성지"는 황사영 백서(黃嗣永帛書) 사건으로 시작 된 신유박해(辛酉迫害,1801년)를 피해 황사영(黃嗣永)이 몸을 숨긴 곳이며, 한국 최초 신학교인 "성 요셉신학교"(1855년)이 설립 된 곳이고, 두번째 사제인 "최양업"(崔良業) 신부의 묘가 있는 성지입니다. 최병헌(崔炳憲)목사는 한국인 첫 목사요(1902), 신학자였습니다. 두루 순례행진도 진행해 볼만합니다. 감사합니다.(rch;2019.3.7.)

 

   
▲ 옛 목계나루와 오늘날 목계나루
   
▲ 충주출신 신경림 시인의 "목계장터"시비와 목계캠핑장
   
▲ 목계감리교회와 목계장로교회

 

[사료]-"조선 그리스도인 회보"(1897년9월15일): 1897년도에는 "충주"에 복음이  전도 된 사실을 알려 줍니다!

 

장로회 회의한 일

지난달 이십오일부터 장로회에서 회의를 에비슨 집에서 실시하였는데...,(생략),

*이튼날 회의한 것은 여러목사들이 각각 그 전도한 곳에 형편을 말씀하는데, 세례 받은이와 입교인 수효와 연조금의 수효와 사랑하는 뜻을 낫낫치 각각 설명하는데..., 충청도에는 충주 등지이며...

 

   
▲ 감리교 발행 최초신문: 죠션 크리스도인 회보, 제1권30호, 광무원년 구월 십오일. 1897.9.15.

    충주는 삼국시대부터 삼국의 국경지역으로 고구려비, 고구려성벽, 신라성벽 등이 축성되어 있으며, 군사적으로 중요한 곳으로, 문경새재를 넘고 충주를 거쳐 한양으로 가는 과거길이요, 사절단들이 일본으로 가는 동지사길 등 한양(서울)을 지키고 요새요, 산업과 교통, 물류의 집산지였습니다.

    고구려는 이곳의 지명을 "충주"라 칭하였고, 신라는 "예성"이라 했으며, 1895년 을미관제 개혁 때까지 충주목사(忠州牧使)의 관할지역은, 충북,경기,강원 3개도에 걸친 내륙 지역으로, 이천-용인-양지, 원주-정선-평창-영월까지 20개 군으로 광활하였습니다.

    일제의 침략정책으로 1906년 행정구역이 축소정리 되었으며, 1908년에는 일제에 의해 충북관찰부가 청주로 강제 이전 되었습니다.

     충주는 동학혁명 의병투쟁 지역으로, 일제에의해 철저히 파괴 되고 축소 된 도시입니다. 그러므로 선교초기에의 충주는 "이천-용인"까지 였음을 인지하고 기독교사를 정리해야할 것입니다.(참조-노강희:한국의 지방자치, 녹원출판사 1987.pp82ff. 전홍식:일제침략과 강점시기, 충주지역사, 한국학술정보사,2010. pp27-45. 유홍준:나의 문화유산답사기(8), 남한강 편, 창비2015.)

 

   
▲ 소녀상(2019.3.1.설치)과 "조선 식산은행 충주지점과 관저"(1918년 설립)-충주는 일제에의해 철저히 수탈, 파괴 되었다
   
▲ 충주의 충청감영(忠淸監營)-충주는 조선 초에 충청도의 수부(首府)로 "관찰사"의 관청(1395년. 태조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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