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 > 최재석 칼럼
자유의지를 왜 오랫동안 보지 못했는가?
최재석  |  jschoi4111@gmail.com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입력 : 2019년 03월 02일 (토) 00:56:37
최종편집 : 2019년 03월 23일 (토) 02:58:35 [조회수 : 740]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지난번에 내가 <당당뉴스>에 올린 ‘자유의지론이 성경적인가?’라는 글을 읽고 어느 장로가 내게 전화를 했다. 성경에 자유의지에 대한 기록이 그렇게 많이 나와 있는데, 교회에서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자유의지를 보지 못했는지 궁금하다는 것이었다. 전화로 길게 말할 수가 없어서 옛날에는 그것을 볼 눈이 없어서 보지 못한 것이라고, 요즘에 와서야 자유의지에 관한 기록을 보게 되었다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예수님은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막 4:9)고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의 말씀을 같은 자리에서 들어도 그 말씀을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있었는가 하면 준비되어 있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그 말씀이 기록된 성경을 읽어도 그 말씀을 올바로 볼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있었고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있었다. 예정을 믿었던 사람들이 자유의지를 성경에서 읽지 못한 것은 그것을 볼 수 있는 눈이 준비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그런 정도의 말로는 그분이 내 말을 납득하지 못했을 것 같고, 그 장로뿐 아니라 <당당뉴스>의 독자들 가운데에도 그 이유를 궁금하게 여길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거기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설명하려고 한다.


신의 권능과 예정설

예정론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구원받을 자들을 예정하셨다는 주장이다. 예정론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아우구스티누스(354-430)였다. 그는 하나님이 구원받을 사람들만 예정하신 것이 아니라 지옥에 떨어질 사람들도 예정하셨다는 이중예정설을 주장했다.

하나님이 이렇게 인간의 운명을 예정하셨다고 주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믿기 때문이다. 그리고 절대 주권을 지니신 하나님이 세상의 모든 일을 주관하신다는 것은 인간에게는 자유롭게 선택하거나 결정할 능력이 없다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예정론은 신의 절대권을 인정하고 인간의 능력을 무시하는 신 중심적 사고에서 나온 주장이다.

교부시대에 플라톤의 이원론적 철학 사상이 기독교에 크게 영향을 미쳤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플라톤은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것과 지상에 있는 것을 구별하고, 지상에 있는 사물은 이데아의 세계에 있는 원형의 모사품이라고 주장했다. 플라톤의 이원론적 사고는 하나님과 인간, 하늘과 땅, 선과 악, 빛과 어둠 같은 대립적인 것들에서 앞에 있는 것을 가치가 있는 것으로 뒤에 있는 것을 무가치한 것으로 간주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낳았다.

이 이분법적 사고가 기독교에 적용되면서 신과 인간의 차이가 강조되었다. 신은 창조주이고 인간은 피조물이기 때문에 신은 절대적인 능력과 권위를 가지고 온 만물을 다스리시는 절대적 주권을 지닌 존재로, 인간은 창조주인 신 앞에서 아무 의지도 발휘하지 못하는 한낱 미물에 불과한 무능한 존재로 간주되었다.

여기서 예정론과 원죄론이 나왔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신이 창세전에, 그러니까 한 인간이 태어나기도 전에, 구원받을 인간과 형벌 받을 인간을 미리 정해 놓았고, 이 예정된 자의 수는 변경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일면 이렇게 신의 권위와 능력을 무한대로 높여 놓고 다른 면에서는 인간은 원죄로 인해서 태어나기 전부터 용서 받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예정론을 언급할 때 원죄론이 언급되는 것은 예정은 신의 권능을, 원죄는 인간의 타락과 무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권위는 절대군주 시대의 왕의 권위에 비유되기도 했다. 성경에서는 하나님과 예수를 왕이라고 부른다(시 145:1, 계 145:1). 왕 앞에서 감히 머리를 들 수조차 없는 백성이 왕에게 자유롭게 자신의 의견을 표명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자유의지도 허용되지 않는다고 믿었다.

전제군주 치하에 사는 사람들에게 하나님 앞에서 인간이 자유의지를 발휘할 수 없다는 것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래서 성경에 인간의 자유의지가 기록되어 있지만, 그 당시의 독자들의 눈에 그 기록은 보이지 않았고, 설사 보인다 하더라도 무시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피조물이 자유의지를 발휘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자유의지론은 이단사설로 간주되었다.

개혁주의자들의 시대는 르네상스가 꽃피는 때였기 때문에, 칼빈의 시대에 와서는 인문주의 문화가 형성되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종교적 신앙은 신념의 문제이기 때문에 문화가 바뀐다고 해서 쉽게 바뀌지 않는 법이다. 더구나 개혁자들이 가톨릭의 공덕 중시를 비판하면서 믿음을 강조하고 나섰기 때문에, 그들은 인간의 의지적인 행위를 무시하고 예정론을 강조했다.

특히 칼빈은 인간의 전적 타락을 강조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의 윈죄설과 이중예정을 지지했다. 아르미니우스가 16세기 말에 자유의지론을 주장하고 나왔지만, 칼빈주의의 세력이 깊이 뿌리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르미니우스 사후에 그의 문하생들이 다시 자유의지론을 들고 나왔지만, 아르미니우스주의는 1619년 도르트 종교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 아직 성경에 나오는 자유의지를 보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인간의 자율성과 자유의지론

아르미니우스 주의가 정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유의지론을 지지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1607년에 영국 침례교회가 시작되었다. 침례교회에는 자유의지론을 지지하는 일반침례교회와 예정론을 지지하는 특수침례교회가 있었다. 그런데 이 두 교회의 교리가 합쳐지면서 묘하게 침례교회에는 아르미니우스주의와 칼빈주의가 공존했다. 이렇게 해서 아르미니우스의 자유의지론은 침례교회 안에서 명맥을 유지했다.

아르미니우스의 자유의지론이 도르트 종교회의에서 칼빈의 예정론에 밀리기는 했지만, 17세기에 와서 그의 주장을 지지하는 침례교회가 설립된 것을 보면 당시에 그의 자유의지론에 동조하는 사람이 상당 수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 전 세기까지 고개를 들지 못하던 자유의지론이 이렇게 호응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르네상스를 거치면서 휴머니즘이 확산되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18세기에 오면 요한 웨슬리가 감리교회의 교리에 자유의지를 포함시킨다. 웨슬리는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총에서 비롯된다고 전제하면서도 그 은총을 받아들이는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과 책임을 인정했다. 이것이 소위 신인협동설이다. 장로교회측에는 감리교인을 아르미니우스주의자라고 몰아세우면서 감리교회를 인본주의적인 교파라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들은 감리교회에서 하나님의 선행은총을 중시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18세기에 와서 감리교회에서 자유의지를 인정하게 된 것은 17세기부터 시작된 계몽주의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예정론에 충실했던 당시 영국의 국교회에서는 인간의 이성을 강조하는 계몽주의적 주장을 이단으로 경계하고 있었다. 웨슬리가 메소디스트 신도회를 결성하고 1744년에 최초의 메소디스트 연회를 소집할 뿐 아니라 미국에 선교사들을 파송하면서도 생전에 국교회를 떠나지 않은 것을 보면, 그가 예정론자들을 의식해서 몹시 조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요즘 자유의지를 공개적으로 토론하고 칼빈주의자들까지 나서서 자유의지를 옹호하게 된 것은 근대 이후에 인간의 위상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성과 인류의 진보를 믿었던 계몽주의자들, 자유와 평등을 고취시킨 정치철학자들, 인식의 준거를 대상에서 주체로 전환시킨 비판철학자들, 열린사회의 문을 연 사회철학자들, 선택과 결단을 강조한 실존주의 철학자들, 그리고 인간의 능력을 실증적으로 보여준 과학자들이 합력해서 인간의 자율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19세기 초에 활동한 슐라이어마허를 현대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데, 그를 그렇게 부르는 것은 그가 인간의 선택과 결단을 중시하는 현대인의 사고에 맞는 신학을 주창했기 때문이다. 예정론을 중시하는 정통신학에서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계시를 강조하면서 인간을 외면했지만, 종교가 절대의존 감정이라고 주장한 슐라이어마허는 인간의 경험과 주관성을 강조함으로써 인간을 신앙의 주체로 삼았다. 이러한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적 주장을 신학자들은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라고 말한다. 슐라이어마허에 의해서 신학계에 패러다임의 전환이 일어난 것이다.

인간의 경험을 강조한 슐라이어마허를 현대신학의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그가 현대신학의 방향을 제시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달리 말하면, 현대 신학자들은 슐라이어마허처럼 초월적인 하나님의 계시보다 인간의 경험이나 의식을 더 중시한다는 말이다. 그래서 인간의 경험을 중시하고 인간을 신앙의 주체로 보는 소위 ‘아래로부터의 신학’이 현대신학의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인간을 신앙의 주체로 보는 현대 신학자들의 눈에 자연스럽게 인간의 자유의지에 관한 성경의 기록이 부각되어 나타났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통합적 사고의 시대에 살고 있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우리는 지금 이분법적 사고(either/or)의 틀을 벗어나서 양면을 모두 수용하기(both/and)에 이르렀다. 글로벌 시대에는 이념과 국경을 뛰어 넘어서 국가 간에 교류를 한다. 미국은 한 때 치열하게 싸우던 월남과 국교를 맺었다. 우리는 북한과 대화하려고 노력한다. 학자들은 학제 간 연구를 선호한다. 지금 우리가 진입하고 있는 4차 산업 시대에는 전공 간의 통합적 연구가 더욱 확대·심화될 것이다.

신학자들은 이 통합적 사고를 받아들여서 하나님이 초월적이면서도 내재적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근거를 성경에서 읽어낸다. 하나님은 아버지처럼 엄격한 권위자이지만, 어머니처럼 우리의 아픔을 함께 하시는 분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당신을 사랑하기를 원하시지만, 인간이 서로를 사랑하는 것도 원하신다. 또한 하나님은 당신의 능력으로 세상을 다스리지만, 우리의 협력을 구하신다. 지금 신학자들은 하나님은 예정하시면서도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허락하시는 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마치면서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사회·문화적 상황이 성경을 읽는 데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가 어느 시대에 살고 있는지 그리고 개인적으로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따라서 성경의 내용을 다르게 받아들인다. 문학비평에서는 이렇게 독자에 따라서 책의 내용에 대한 반응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중시하는 비평을 독자반응비평이라고 하는데, 신학자들도 이 비평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우리는 객관적인 눈으로 책을 읽기를 원하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가 어떤 관점을 취하는가에 따라서 책을 보는 눈이 달라진다. 더구나 시대가 변하고 상황이 바뀌면,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지고, 사물을 보는 눈이 달라지면 성경을 보는 눈도 달라진다. 성경을 보는 눈이 달라지면 교리도 달라질 수 있다.

옛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능을 강조하면서 예정론에 매몰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눈에는 성경에 기록된 자유의지가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인간의 경험과 자율성을 중시하는 현대인의 눈에는 성경에 기록된 자유의지가 분명하게 보인다. 한 마디로, 우리의 눈이 달라졌다.

최재석의 다른기사 보기  
기사를 추천하시면 "금주의 좋은 기사" 랭킹에 반영됩니다   추천수 : 22
폰트키우기 폰트줄이기 프린트하기 메일보내기 신고하기
트위터 페이스북 미투데이 네이버 구글 msn 뒤로가기 위로가기
의견나누기(0개)
0 / 최대 22400바이트 (한글 11200자)
- 금지어 사용시 댓글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 [댓글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도배성, 광고성, 허위성 댓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신문사소개기사제보광고문의불편신고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우)120-012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2가 35 기사연빌딩 401호 ☎ 02-393-4002(팩스 겸용)   |  청소년보호책임자 : 심자득
제호 : 당당뉴스  |  등록번호 : 서울아00390  |  등록연월일 : 2007.7.2  |  발행인 겸 편집인 심자득(010-5246-1339)
Copyright © 2005 당당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webmaster@dangdang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