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군자 중 선비의 고고함과 절개를 상징하는 난초(蘭草)는 가까이에 화분으로는 자주 접하지만 자생지에서 만나는 경우는 드물지요. 예전에는 흔하디흔한 들꽃이었다는 이야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1990년대 들어 난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상품화가 되기 시작하니 급격히 줄어드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상황이지요. 뒤늦게 우리 꽃세계에 들어선 저는 언제 만날 수 있으려나 애가 많이 탄 녀석입니다.

봄에 피어 춘란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봄을 알리는 꽃, 보춘화(報春花)가 더 잘 어울립니다. 따듯한 남부지역과 중부는 서해를 중심으로 해안가 소나무가 많은 곳을 좋아합니다. 활엽수림 속에서도 만났으니 자생지는 넓어진 듯 보입니다. 잎은 상록다년생이니 단단하고 질깁니다. 꽃은 연한 녹색으로 줄기 끝에 하나씩 달리는데 크게 세 갈래로 갈라집니다. 입술모양 꽃부리에는 하얀색에 자주색 반점이 보이는데 독특한 매력입니다. 열매집을 같이 볼 수 있어서 한층 반가웠습니다.

제주도에서 처음 만났습니다. 그곳 분들에게 자생지를 안내받았지요. 그 다음에는 바닷가에 있는 산을 올랐다가 내려오는 길에 낙엽을 헤치고 올라와 꽃을 피운 보춘화를 만났습니다. 바로 등로 옆인데도 눈에 들어오는 아이들이 제법 있는 것이 안정적인 자생지 같아 보였습니다. 그리고 또 한 번은 필 시기가 한참 지난 때였지요. 풀이 무성한 어느 산소에서 땅비싸리와 골무꽃을 담고 나오는데 길이 굽어진 모퉁이에 경비병처럼 떡 버티고 앉아있더군요. 보고 싶어 찾아가는 발걸음도 설레이지만 예상치 못한 때와 장소에서 만나는 그 기쁨에는 비길 수가 없습니다. 올봄에도 이런 즐거움이 종종 찾아와 주길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