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초록색 창’이라고 하면 알아듣는 포털 사이트에 실시간 검색어로 ‘당산역 취객’이 올랐다. 요즘은 하도 흉흉한 사건들이 많이 일어나는 바람에 ‘당산역에서 어느 취객이 또 사건을 일으켰군!’ 하면서 검색어를 클릭하여 기사를 열어봤다. 그런데 이게 무슨 일인가?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읽게 될 줄 알았던 기사는 얼굴에 긴장이 풀리는 동시에 얼었던 마음도 녹일 만한 내용이었다. 내가 읽은 기사의 헤드라인은 이렇게 적혀 있었다. “경찰과 싸우던 당산역 취객, 청년이 안아주자... 네티즌 반성한다.”

당산역 취객을 어느 청년이 안아줬는데 네티즌이 반성을 했다? 일단 사람을 헤치거나 하는 위험한 사건은 아니니 다행인데,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궁금증을 일으켰다. 기사를 읽어보니 작년 11월에 가장 유명한 전 세계 동영상 공유 사이트에 게재된 한 영상의 내용이 다시 사람들 사이에서 화제가 된 것이었다. 곧장 동영상 공유 사이트로 가서 그 영상을 찾아서 확인해봤다. ‘당산’이라고 큼지막하게 쓰인 역 간판 앞에서 한 취객이 출동한 경찰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취객은 이 상황을 동영상으로 찍으라며 소리치고, 경찰은 취객을 제압하느라 ‘공무집행 방해로 처벌 받는다’라며 법적인 조치까지 취하려는 참이었다.

무슨 일로 저렇게 술은 많이 마시고 공공장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경찰관을 애먹이나 하는 데, 옆에서 모든 상황을 지켜보던 한 청년이 앉았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서 취객과 경찰관을 향해 오는 것이었다. 순간 아차, 청년의 개입으로 일이 더 커지는 것은 아닌가 하던 차에, 청년의 의외의 행동으로 순간 나도 멍해지며 부끄러워졌다. 청년은 취객에게 삿대질을 하면서 물의를 일으킨 것에 대한 비난 대신에, 두 팔을 잡고 안아주는 것이었다.

마치 어린 아이를 달래듯이, 아니면 내가 당신의 모든 설움을 다 이해한다는 듯이 “그만하세요, 그만 하세요”라면서 연신 취객의 등을 두드려줬다. 몇 번을 그렇게 하자 온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서 금방이라도 밀쳐낼 것 같던 취객은 다리에 힘이 풀리는 듯 했고 청년의 어깨에 고개를 파묻었다. 얼핏 들리는 소리에는 취객이 흐느끼는 것 같았다. 청년은 한동안 취객을 안고 있었다. 그 사이 상황을 제압하려던 경찰의 모습은 왠지 멋쩍어 보였다.

그리고 모든 영상의 내용을 보고난 뒤에 나도 멋쩍어졌다. ‘당산역 취객’이라는 다섯 글자만 보고 섣부른 판단에 선입견이라는 것이 이렇게나 무서운 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나뿐만 아니라 나와 같은 생각을 했던 사람들에게서 ‘반성 한다’라는 말이 왜 나와야만 했는지, 청년이 취객을 안아주는 행동은 그만큼 큰 영향력이 있었던 것이다. 따스한 사람의 온기는 그 어떤 힘보다도 가장 강력하다. 세상에 대하여 분노하고 울부짖는 상처 난 사람들의 마음에 덮어 줄 이불은 사람의 온기뿐이다. 백 마디 말로 하는 위로는 알고 보면 별로 쓸 데가 없다. 그이를 안아줄 때의 온기는 당신의 모난 마음과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는 모든 상황이 안타깝다는 가장 큰 공감의 언어가 된다.

상대방을 안아주는 것만으로도 죽어가는 생명도 살려낸다. 해외에서는 미숙아로 태어나서 죽어가던 쌍둥이 동생을 언니가 안아줘서 호흡이 되살아난 경우도 있다. 어떤 아버지는 죽어가는 쌍둥이를 자신의 가슴위에 올려놓고 안아주고 있었더니 맥박이 돌아온 경우도 있다. 사망의 그늘에 앉아서 고통 속에서 신음하며 죽어가던 영혼을 살려내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마치 그러한 것이었으리라. 아무 소망도 없던 인생 속에 한 줄기 빛으로 오셔서 가만히 손 내미시고 안아주시던 예수님의 품에서 다시 살 힘을 얻고 새 사람으로 살아간다. 이 얼마나 가슴 벅찬 사건인가. 상처 받고 방황하는 우리의 삶의 방향을 다시 잡아주신 그리스도의 온기를 기억한다면, 말이 아니라 행위가 유효함을 잘 안다. 울부짖으며 몸부림치는 이들을 말없이 안아주고 가서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준다면 그것이 바로 한 영혼을 살리는 영향력이다.

말은 조금 줄이더라도 상대방의 감정을 공유하고 이해하며 두 팔을 벌려 누구든지 안아줄 수 있는 것만으로도 영혼을 살려낼 수 있다. 섣부르고 좁은 경험과 판단에서 나오는 말은 이제 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자꾸만 힘 빠지는 뉴스거리와 세파에 시달려서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이 많다. 그러다보면 살아야겠다는 의지를 스스로 놓아버리는 안타까운 이들도 많다. 아마도 가장 가까이에 두고도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들에게 언제든 따스한 품이 될 수 있도록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사랑을 더욱 갈망하는 목자가 되어야 한다. ‘왜 저렇게 모난 마음으로 다른 이들을 애먹이는 것일까?’ 하는 선입견을 버리는 게 시작이다. 그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들어주고 진심어린 포옹의 힘으로 낙오되는 사람 없이 함께 사는 길을 걸어가자.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