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3.1운동 100주년을 맞는다. 3.1만세운동 또는 3.1 독립선언으로 불리는 이 역사적인 날에 대해 ‘운동’을 넘어 ‘혁명’이라고 불러야한다는 주장이 많다. 봉건왕조체제가 주권재민체제로 바뀐 이유가 그 주장의 배경이다. 1944년에 개정된 대한민국 ‘임시헌장’ 서문에는 3.1대혁명이라고 불렀고, 해방 후 이승만과 김구 선생도 3.1대혁명이라고 불렀다. 비록 본회의 심의에서 수정되었지만 제헌헌법 초안에는 3.1혁명이었다(이만열).
 
  무엇보다 100년 전 일어난 3.1운동은 3월 1일의 궐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독립만세운동은 3월 1일 이전에 이미 중국 상해와 길림 그리고 동경에서 독립을 선언하고, 자립을 주장하였다. 봇물처럼 터진 것은 3월 3일 고종의 장례식이 계기가 되었으나, 그보다 먼저 서울의 태화관과 파고다공원을 비롯해 전국 7곳에서 만세운동의 봉화가 피어올랐다. 조정래의 대하소설 <아리랑>은 1년 내내 전국으로 번져나간 피의 함성을 실감나게 증언하고 있다.

  한국기독교가 광복절과 함께 삼일절을 공적 기념주일로 지키는 것은 누구보다 3.1운동의 강력한 주도세력임을 자부하기 때문이다. 이만열은 “강점 후 언론, 집회, 결사의 자유가 박탈당하고 종교집회만 제한적으로 허락된 상황에서 ‘정교분리’ 정책은 역설적으로 종교인이 3.1운동의 주역이 되도록 만들었다”고 하였다. 당시 인구비례로 볼 때 지극히 소수였으나 그리스도인 대표가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지도자 중 절반을 차지한 것은 오늘 우리 시대에도 큰 귀감이다. 

  특히 감리교인의 활약은 눈부시다. 민족대표로서 서명한 일 뿐 아니라, 감리교 학교에서 신학문을 교육받은 어린 학생들은 3.1운동의 주역으로 나서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인물이 유관순(1902-1920)이다. 1916년 이화학당에 편입학한 유관순은 1919년 3월 5일 서울에서 만세시위에 참여한 뒤 고향 천안에 내려가서 교회와 학교를 중심으로 시위를 준비하고, 4월 1일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3년 형을 받은 유관순이 서대문형무소에서 숨진 때는 1920년 9월 28일이었다. 이미 부모도 죽고, 오빠도 구속되었다.

  최근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나온 <만세열전>(조한성)은 익명의 유관순들을 발굴하여 그들의 희생을 서사화하고 있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역시 배재고등보통학교 2학년 학생 김동혁이다. 그는 3월 1일에 독립선언서 6매를 배포하고 만세시위에 참여한 혐의로 체포되었다. 혐의에는 3월 2일 지하신문 ‘조선독립신문 2호’, 3월 5일 ‘조선독립신문 3호’를 배포한 일도 포함되었다. <만세열전>은 김동혁의 재판 기록을 이렇게 소개한다.

  예심판사가 “피고는 학생이면서 어째서 이번 계획에 가담했는가?”라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는 것이다. “난 조선사람으로서 반드시 해야 할 일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좋은 일도 나쁜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저 당연한 일일 뿐이었습니다.” 이런 자발성과 희생정신이 ‘당연하게’ 전국으로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일제의 통계로 3.1운동 사망자는 7,509명, 부상자는 4만 5,562명, 피검자는 4만 9,811명이었다. 재산상 피해는 말할 나위없다. 그 중에는 교회당 소실이 59채에 이른다. 전국에서 남녀노소, 장삼이사(張三李四) 수백 만 명이 참여한 가히 혁명적인 만세운동이었다.

  3.1운동의 의미는 무엇인가? 만세운동 전에는 이 나라는 공동묘지와 다름없었다. 원망과 고통을 속으로 삼켰다. 비겁한 침묵만이 지배하였다. 그런데 만세운동 후에 비로소 희망의 아우성으로 가득하게 되었다. 독립이란 새 하늘과 새 땅의 비전을 보게 되었다. “아아 신텬디가 안전에 전개되도다. 위력의 시대가 거하고 도의 시대가 래하도다”(독립선언서). 국권을 빼앗긴 아픔의 역사를 주권을 되찾으려는 피의 외침으로 바꾼 것이 출발이라면, 임시정부 수립과 이어진 항일(抗日)의 역사는 그 결과였다. 물론 해방이란 신천지로 바꾸기까지 더 많은 고난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며칠 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당시 33인 중 9명을 배출한 대표적인 민족교회로서 의욕적으로 행사를 준비하던 감리교회는 충격적인 통보를 받았다. 법원의 선고는 “기독교대한감리회가 2016년 9월 27일 실시한 제32회 감독회장 선거가 무효임을 확인한다. 피고보조참가인(전명구)의 지위는 부존재함을 확인한다”였다.

  사실 3.1정신에 따르면 선거무효에 따른 시비와 책임은 일찍이 자성하고 정리했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목숨을 걸었던 선조들 앞에 지극히 면목이 없는 일이 되었다. 벌써 선거가 2년이 지난 일이며, 연회 감독들도 한 번 교체되었다. 해결책을 구해도 진즉에 했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법원의 인정에 기댄 안일함과 당사자 간 타협 등 임시적으로 봉합해 온 결과 더 이상 구제의 희망은 사라진 듯하다. 다만 새로 선출된 연회감독들이 항소심 재판부에 탄원서를 낸다니 지켜볼 일이다. 불편한 것은 그들의 탄원서에 담긴 3.1운동 부분이다. 연회 감독이 서명할 탄원서에는 “3.1운동을 비롯하여” 그간 국가에 기여한 공로를 참작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하고 있다. 그들은 100년 전 선조들의 목숨을 건 투쟁과 오늘 우리 세대가 자행한 범죄 ‘혐의’ 사이에 공통분모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행여 3.1운동의 순교적 희생 앞에 낯을 들려거든 먼저 감리교회를 혁명적으로 새롭게 하기 위해 그들 자신부터 목숨을 걸어야 할 것이다. 바라기는 우리 모두를 수치스럽게 하는 일에 부디 대표노릇을 자처하지 말기 바란다. 괜한 오해일망정 공범의식을 거부하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어느새 맞은 3.1운동 100주년, 추락의 깊이를 모르는 우리 자신이 한없이 부끄럽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