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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날의 추억
홍지향  |  ghdwlgid@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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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2월 05일 (화) 00:27:10 [조회수 : 3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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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주간도 안녕하셨습니까? 명절 연휴, 오고 가는 가족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저희도 명절을 보내기 위해서 서울 시댁으로 발길을 옮깁니다. 휴게소와 식당, 번화한 도시의 상점들은 여느 때보다 더 화려하게 빛나고 아이들의 마음도 설렙니다.
 
   저는 어린 시절에 아버지와 남동생과 함께 부산에 위치한 큰집으로 명절을 보내러 갔었습니다. 큰아버지가 종손이어서 제사가 많았고 명절에는 그야말로 좁은 집이 터져나가도록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하루 일찍 큰집으로 내려가 음식을 준비하는 어머니, 아직은 어린 저와 남동생을 어르고 달래며 새벽같이 기차역에서 우동 한 그릇을 사 먹고 큰집으로 향하는 아버지, 그리고 부모님이 없는 명절의 자유를 만끽하던 큰언니와 작은언니가 추억처럼 떠오릅니다.
 
   저희 부모님은 그다지 넉넉한 형편이 아니었기에 네 명의 자식들에게 철철이 새 옷을 사서 입히지는 못했습니다. 큰집 언니가 입던 옷을 저희 집 큰언니가 입었고 작은언니, 저 순서대로 물려받아 입었습니다. 하지만 설과 추석에는 꼭 네 아이 모두 새 옷을 한 벌씩 사서 입히셨습니다. 명절 전 날 부모님이 새 옷을 사 오셔서 입어보라고 하시면 각자 입어보고 그 옷을 머리 위에 두고 잠을 잤습니다. 다음 날 아침 새 옷을 입고 세배를 할 생각을 하면 저는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그리고 명절이 지나고 한동안은 그 옷만 입고 다녔습니다.
 
   그렇게 저희들에게 새 옷을 입혀 본 후 아버지는 명절에 큰집에 모이는 친척들에게 줄 양말 개수를 헤아리셨습니다. “이건 형님꺼, 이건 성재꺼, 이건 경숙이꺼”하며 검은 포장지로 둘러싸인 얇고 넓적한 양말 선물을 차곡차곡 가방에 넣으셨습니다. 당시의 제 눈에는 해마다 똑같은 검정 양말을 선물하는 것이 상당히 재미없는 행사 같아 보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넉넉지 않은 형편이었지만 명절에 만나는 가족들과 정성을 주고받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설과 추석 중 저에게 더 인상 깊은 명절은 설입니다. 설이면 날이 춥고 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눈만 겨우 뜬 채로 새 옷을 입고 아버지의 손을 잡고 마을길을 걸어 내려가 버스를 타고 기차역으로 갔습니다. 추운 새벽은 특유의 냄새가 있었습니다. 구지 비유하자면 비릿한 쇠 냄새 같았습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차가운 공기를 들이키며 새벽을 가로질러 무사히 기차를 탄다고 해도 좌석을 잡지 못해 서서 부산까지 가야하는 일도 잦았습니다. 그럴 때면 자리에 앉은 어른들이 저와 동생을 좌석 한쪽에 앉혀주시거나 무릎위에 앉혀 주시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무사히 부산 큰집에 도착하면 이틀째 음식 준비로 분주하던 큰어머니, 작은어머니, 그리고 어머니가 저희들을 반갑게 맞아 주셨습니다. 각종 전을 부치느라 어머니의 얼굴은 땀인지 기름인지 알 수 없는 번들거림이 가득했지만 반가운 얼굴로 동그랑땡을 비롯한 몇 가지 음식과 나물밥을 담아 아버지와 저희들에게 내어 주셨습니다. 그 시간은 오전 9시 전후인데 새벽에 먹은 우동은 이미 소화된 후여서 뜨거운 나물에 비벼먹는 밥은 항상 꿀맛이었습니다.
 
   설날 밤은 자정에 할아버지 할머니 제사가 있었습니다. 제사를 준비하며 어른들이 모두 주무시지 않고 깨어 계셨고 저녁을 먹은 후 늦은 시간에 다섯 명의 고모들과 사촌들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고모들의 손을 잡고 들어서는 사촌들의 숫자는 점점 늘어났고 큰집에 들어서는 순서대로 소복이 두 방에 모여 앉아 놀았습니다. 저희들은 비디오를 빌려서 영화를 보기도 하고 만화책을 읽기도 하고 수다를 떨며 게임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가 답답하거나 심심해지면 밖으로 나가서 뛰어다녔습니다. 당시 도심 속에 위치했던 큰아버지 댁은 제법 늦은 시간에 나가도 세배 후 받은 용돈으로 마루인형의 옷을 살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큰집으로 갔다가 대구로 돌아오는 생활은 제 기억 속에서 그리 긴 시간은 아닙니다. 저도 얼마간 자란 후에는 언니들과 집에 남아 마음껏 놀다가 외가로 가서 외할머니와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면 아버지와 어머니, 남동생이 부산 큰집에 다녀온 후 외가로 와서 식사를 하고 함께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외가에서도 어머니의 5남매가 모이면 적은 숫자가 아니었기에 어디에 있거나 명절은 북적북적했습니다. 자주 만나지 못하는 친척들을 만나고 맛있는 음식을 먹고 새 옷을 입을 수 있었던 설. 분주하지만 넉넉하고 따듯한 명절은 해마다 제 기억 속에서 이렇게 되살아납니다.
 
   넉넉한 마음, 따듯한 웃음, 그리고 무엇보다 곁에 있는 사람들이 좋습니다. 설 명절, 바쁘고 분주하겠지만 마음의 여유를 잃지 않고 곁에 있는 사람들과 사랑을 나누고 작은 추억을 만들어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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