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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의 랜드마크
송병구  |  sbkboch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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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2월 02일 (토) 23:50:38 [조회수 : 3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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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화문 광장이 우리나라의 랜드마크가 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경복궁도, 조선총독부도, 주한미국대사관의 존재도 광화문을 랜드마크로 만들지는 못하였다. 광화문이 세상 가운데 확실한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한 것은 바로 촛불의 함성 때문이었다. 지금도 광장에 나가면 요즘 세상이 어찌 돌아가는지 알 수 있다. 광장을 새롭게 바꾸려는 의욕이 앞서는 것은 그런 상징성 때문이다.

  개신교회의 대표적인 랜드 마크도 광화문에 여럿 존재한다. 세종로와 종로의 교차로에는 감리교빌딩이 있고, 대한문 방향으로 성공회 대성당이, 그 옆 정동길로 나서면 구세군 서울제일영문과 광화문 연가로 유명한 정동제일교회가 고즈넉하다. 새문안 길에는 헐고 다시 짓는 새문안교회가 위치해 있다. 현대의 문화유산감이다.

  유감스럽게도 교회다운 정체성은 쉽게 눈에 띄지 않는다. 화려한 빌딩 숲에 가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것은 외형만이 아니다. 감리교빌딩은 동화면세점으로 더 알려져 있고, 성공회대성당은 오랫동안 서울국세청이 그 앞을 가로 막고 있었다. 새문안교회 역시 주변에 들어선 호텔 때문에 시야가 방해받을 것이 뻔하다. 문제는 이웃 건물 탓이 아니다. 우리 사회 속에서 교회다운 존재감이 없다는 현실이다.

  감리회 본부에서 기획홍보부장으로 일하던 시절, 어떻게 하면 우리 빌딩에서 교회 냄새가 나게 할까란 과제를 안고 지냈다. 빌딩 현관에 따듯한 성구를 담은 배너를 다달이 바꾸어 걸기도 하고, 희망광장이라 이름 붙인 앞마당에서 철철이 바자회와 봉사 이벤트를 열었다. 감리교본부란 네온 간판을 크게 붙이기도 했다. 빌딩 로비에 ‘십자가 전시실’을 만들자는 제안은 실현되지 못하였다. 모두 어떻게 하면 교회건물답게 느껴질까 하는 궁여지책이었지만, 좋은 결과를 얻지는 못했다.

  골목 안에 숨어있던 성공회대성당도 같은 고민을 했을 것이다. 꼭 90년 전인 1926년에 봉헌한 이래 덕수궁 돌담 곁에서 근대의 시간에 갇힌 듯 보였기 때문이다. 비로소 1987년 초여름, 대성당은 그 실체를 세상 가운데 드러냈다. 민주화의 전기를 마련한 6월 항쟁의 시발점이 되었기 때문이다. 도로변에 놓인 기념 표지석이 증명한다. 최근에는 성당 앞의 건물이 철거되어 살포시 얼굴을 내민 도심 속 경건성이 반갑다.

  단 한 번, 감리교빌딩도 세간의 주목을 받은 적이 있다. 2003년 12월, 경남 창원지역에서 일하던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 140여명이 피난처를 찾아 몰려온 것이다. 다행히 교단본부는 외국인 손님들을 위해 잠자리와 먹을 것을 마련해 주는 등 기꺼이 안방을 내 주었다. 건물 앞에서 농성 중이던 외국인노동자 두 사람이 잡혀가는 바람에 항의 차 목동 출입국관리소로, 화성 외국인보호소로 쫓아다니던 기억이 선명하다.

  흥미로운 일은 피난 온 외국인노동자들을 위해 근처 광화문 광장 구두 수선점 주인이 두 상자의 선물을 보내준 사실이다. 그 역시 무작정 상경했던 소년 시절에 옛 감리회관의 계단참 신세를 졌다고 했다. 아직 교회의 인정이 남아 있던 때라 그곳에 임시 잠자리를 얻을 수 있었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광화문 광장에 일터를 잡게 된 것이다. 그는 외국인노동자들 소식을 듣고 자신의 과거가 생각나 가족과 함께 떡과 함께 부침개를 준비했다고 하였다.
 
  비록 잠깐이었지만 불법체류 외국인노동자들 때문에 감리교빌딩은 도피성의 자격을 얻었고, 성역 같은 피난처 흉내를 낼 수 있었다. ‘불법’조차 보호하려한 선한의지 덕분에 그 시간만큼은 교회의 영역으로 존중받은 셈이다. 과연 오늘의 교회는 다시 성역의 위치를 회복할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 지금 한국교회는 자신의 안마당을 더 개방하고, 진실과 정의의 광장으로 더 나서야 한다.

  광화문만이 아니다. 우리나라 개신교회의 랜드마크는 여의도에도, 명일동에도, 강남의 중심에도 존재한다. 마치 신앙의 도심을 자부하듯 우뚝 선 십자가들은 그 규모와 위용 때문에 또 다른 의미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물론 보는 이에 따라 불편하기도 한 것은 온갖 소송과 추문에 휘몰린 욕망의 랜드마크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사실 랜드마크는 육중한 건물이나 첨탑 때문에 사람들의 눈에 주목받지 않아도 된다. 오히려 신앙의 랜드마크는 그 상징성 때문에 더 낮아지고 낮아져 세상의 아픔을 끌어안아야 한다. 이것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는(마 21:42) 참 교회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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