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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추석 명절 차례와 제사, 왜 간소화로 흐르는가시대적 요청 때문인가, 허례허식에 대한 자각 때문인가
임종석  |  seok9448@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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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9년 02월 02일 (토) 20:23:40
최종편집 : 2019년 03월 23일 (토) 02:57:17 [조회수 : 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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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추석 명절 차례와 제사, 왜 간소화로 흐르는가

시대적 요청 때문인가, 허례허식에 대한 자각 때문인가

 

 

제사와 차례, 왜 간소화로 흐르는가

 

옛날의 제사는 각 가문이 지켜야 할 무엇보다도 큰 가치였다. 그러니 제사와 허례허식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제사는 세상을 뜨신 부모님을 비롯한 조상님들에 대한 효성으로 정성이 그 핵심을 이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다보니 옛날에는 제사에 많은 비용을 쓰기도 하여 그로 인해 살림살이가 휘청거리는 일도 적잖았다. 삼년상을 치르고 나서야 탈복을 했으니 기둥뿌리가 다 뽑힐 지경이었다.

무슨 과장이 그리 심하냐고 하지 말기 바란다. 나이 많은 노인들에게 물어보면 금방 알 수 있는 일이다.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초상이 나면 동네사람들이 모여들어 문상을 했다. 지금처럼 잠시 들려 하는 그런 문상이 아니라, 마당에 덕석(멍석)을 깔고 체알(천막)을 쳐 온종일로도 모자라 밤까지 지새웠다. 그게 짧아야 삼일장(三日葬)이었다.

상가에서는 당연히 음식대접을 했다. 술이며 고기까지 인색치 않게 내 오는 것이 상례였다. 그러니 초상을 치르고 나면 빚을 지는 것이 예사였고, 거기에 삼년상까지 마치고 나면 그야말로 살림살이가 거덜이 나기 십상이었다.

그러던 것을 군사정권이 허례허식을 없앤다는 명분으로 삼년상을 억지로 금지시켰다. 상례(喪禮)와 제사(祭祀)가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았으니 허례허식이 거기에 전혀 편승하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을지도 모르나, 제사에서 정성이 빠진다면 그게 어떻게 효도가 되겠는가.

어떻든 그 같았던 제사도 이제 흐르는 세월과 함께 많이 간소화되었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방법으로 지내는 제사가 무슨 양반의 마지막 남은 유산이라도 된 듯 은근히 자랑하던 사람들의 자식들까지도 제 부모님의 방식대로 제사를 지내는 사람은 찾아 볼 수가 없게 되었다.

필자는 1980년대 초반 일본에서 생활했는데, 그때까지도 우리 교표 사회에서는 전통 방식에 의해 지내는 제사를 자랑하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었다. 그것이 우리민족의 순수성을 지키는 것이라 자부심을 느낀 듯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곳 일본은 우리 민족이 생존하기엔 너무도 척박한 토양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그들도 조금은 달라졌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을 말하면 제사는 우리 고유의 효도 방법이 아니다. 우리민족이 제사를 지내기 시작한 것은 고려 말에 주자학과 함께 나라에 들어온 주자가례에 의해서였는데, 주자가례는 중국 송나라의 주자가 가정에서 지켜야 할 예의범절에 관하여 쓴 책이다. 그러던 것을 조선시대에는 유교를 정식 국교로 채택하였고, 그 유교가 효를 중시했음으로 돌아가신 부모에 대한 효도라 생각한 제사 또한 인륜의 근본이라 여기에 되었다.

그러나 그러니, 우리의 고유의 것이 아니라 외래의 것이니 제사를 폄훼하자는 것이 아니다. 외래의 것이라 할지라도 좋은 것이면 받아들여 우리의 것으로 해야 하고 우리 고유의 것이라 할지라도 나쁜 것이면 고치거나 그게 안 되면 버려야 한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전통운운하며 제사를 우리의 고유의 것인 것처럼 고집하는 예에 대해 바로잡고 싶었을 뿐이다.

그건 그렇고 세월의 흐름에 따라 간소화되어 가는 제사나 차례를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 간소하게 지낸다고 해서 정성이 부족하다고는 할 수 없는 것 아니냐고 할 것인가. 이에 이미 만들어 놓은 음식을 사다가 제상에 올리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불과 몇 10년 전까지만 해도 제사 음식을 장만하는 주부들은 혹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들어갈까 조심에 조심을 거듭하며 정갈하게 하려고 신경을 쓰며 정성을 다했다.

지금은 한해에 열 번이고 스무 번이고 있는 대로 다 제사를 지내는 가정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제사를 묶어 한 번, 그리고 그 윗대의 제사를 모두 합쳐 한 번, 두 번으로 끝내는 집이 거의가 아닌가 하는데, 이것도 정성인가. 그러고도 효도인가 말이다.

 

 

차례를 포함한 제사의 본질은 무엇인가

 

필자는 조상제사에 관한 글을 <당당뉴스>에 이미 두 번이나 써 올린 적이 있다. 그럼에도 또다시 쓰게 된 것은 그 의미의 중대성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새로운 내용이 있는 것은 아니다. 두 번에 걸쳐 올린 글에 보인 독자들의 반응을 소개함과 동시에 그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피력하고자 함이다.

먼저 이미 올린 두 편의 내용을 간략하게 옮겨 보면 이러하다.

한국 기독교에 있어서 조상제사 문제는 오랜 논란거리가 되어 왔는데, 그것은 신앙과 효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에게 있어서의 신앙은 목숨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이고, 유교적 사상이 보편화된 사회에서 태어나 성장한 사람들에게 있어서의 조상에 대한 효는 인간의 인간됨의 척도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제사를 누구나가 지켜야 할 인간됨의 정점이라 여기는 사람들은 그 제사를 어떻게 생각하는 것일까.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게 된 근본을 잊지 않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것을 가리켜 보본(報本)이라 하는데, 그들은 그 보본의 마음으로 사후에도 살아생전처럼 부모님이나 조상님들을 정성껏 섬김으로 효성을 나타내는 것이 제사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렇게 제사를 지낼 때 혼백이 오셔서 진설된 음식을 잡수시고(歆饗), 그 결과로 복을 내려 주신다(降福) 생각하는 것이 보통이다.

‘보본’과 ‘강복’이 제사의 목적이라는 말인데, 환언하면 사후의 윗대에 효도함으로 복을 받는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제사를 지내지 않은 서양 사람들은 복을 받을 수 없어야 되는데, 정말 그런가. 그들이 제사를 지내는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복을 받지 못하고 있는가. 그리고 같은 피를 이어받은 우리민족은 또 어떤가. 제사를 지내는 사람들은 복을 받아 잘 살고, 제사를 지내지 않는 기독교인들은 지지리도 못사는가.

복은 세상을 뜨신 부모님이나 조상들이 주는 것이 아니다. 생사화복은 오직 하나님만이 좌우하실 수 있는 것이다. 효도를 하여 복을 받았다면, 그것도 하나님께서 가상히 여겨 주신 것이지 조상들에 의한 것은 아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효도는 살아생전에 하는 것이어서 세상을 뜨신 후에는 할 수가 없다. 돌아가신 분들께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착하고 바르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는 것이다. 잘못 살아 저 세상에 계신 분들께 욕이 돌아가게 한다면 제사와 상관없이 불효가 되는 것이다.

효도는 기독교에서도 유교에 못지않게 소중한 가치이다. 십계명의 제오 계명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가 아닌가. 다만 방법이 믿지 않는 사람들과 다를 뿐이다. 세상을 뜬 분들에 대한 생각도 마찬가지다. 그 방법이 다를 뿐이다. 기독교에서는 제사가 아니라 추도예배라고도 하는 추모예배를 드린다. 음식도 장만하지만 제상에 올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온가족이 둘러앉아 돌아가신 분을 생각하며 단란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서이다.

사람은 한번 세상을 뜨면 그 영혼이라 할지라도 다시는 이 세상으로 올 수가 없다. 믿는 사람의 부활한 새 생명도 다르지 않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16:19-31)를 생각해 보라. 그렇지 아니한가. 그럼에도 사후의 영혼이 저승과 이승을 넘나든다고 고집할 것인가. 제사의 당위성을 고집할 것인가 말이다.

불신자들이야 성경을 믿지 않으니 거기에 뭐라 쓰여 있든 개의치 않아도 되지만, 기독인들이야 어디 그런가. 성경을 믿지 않으면 하나님도 예수님도 믿는다 할 수 없고, 성령 또한 허망한 존재가 되고 만다.

크리스천이라 자처하면서도 제사를 고집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제사를 무조건 반대한다며 비난하는 이들이 있는데, 무조건 그러는 것이 아니다. 성경을 따르다 보니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성경만이 변할 수 없는 진리이기 때문이다.

설령 사후의 영혼이 이승으로 올 수 있다 하더라도 그 영혼은 음식을 먹음으로 힘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음식은 생전의 사람들이 육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섭취하는 것이다.

 

 

제사와 차례를 내용으로 하는 글에 달린 댓글들

 

전에 <당당뉴스>에 올렸던 두 편의 글의 내용을 대충 살펴봤는데, 그 글들에 많은 분들이 댓글을 달아 의견을 피력하셨다. 여기에 그 의견들 중 몇 개를 소개함과 동시에 그에 대한 필자의 생각도 밝혀 보고자 한다.

댓글을 통해서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제사라고 하는 민감한 글임에도 공감을 표해 주셨고, 비판한 분들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 한 점은 비판한 분들 거의가 인신공격성 표현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민망할 정도의 것도 있지만 그대로 소개할까 하니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그러나 여기에서 다루는 모든 댓글 중 어법에 맞지 않은 부분은 어느 정도 바로잡을까 하는데 이해를 바란다.

 

U 님의 댓글

‘조상제사는 추모예배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제하고, 그에 대해 몇 가지 말씀하시고는 ‘조상제사에 대한 행위는 “허황된 것”이지 출20:4-5에 기록된 “우상숭배”라고 말하는 것은 성경말씀을 정확하게 적용하지 못하는 표현’이 된다고 하셨다. 이의 전자에 대해선 필자도 동감이나 후자는 생각을 달리한다.

* 출20:4-5 “너희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필자의 생각: ‘우상’이 무엇인가부터 설명하는 것이 순서일 것 같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숭배의 대상이 되는 물건이나 사람’을 말하는데,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이외에 신앙의 대상이 되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제사는 세상을 뜬 분의 혼을 대신하는 위패를 모셔 놓고 그 앞에 진설한 뒤 절을 하며 지내는데, 어떤가, 이로 설명이 되었으리라 생각하는데. 설령 위패 없는 제사라 할지라도 혼이 오셔서 받으신다는 생각으로 지내는데, 여기에서의 허상은 우상에 포함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가.

 

G 님의 댓글

‘제사상을 차려놓은 것, 막을 수 없지요.’ ‘하지만 종교적 편의를 이야기하면서 그 현장에서 따로 가족예배를 보는 방법, 그거 생각보다 잘 먹힙니다.’ ‘이도 저도 안 먹힐 때는 제사’에 참석은 하되 ‘이해를 구하고 절 안하기’. 제가 아는 어떤 사람은 ‘남들 절할 때 옆에서 큰소리로 기도한답니다.’

-필자의 생각: 신앙상의 입장을 이해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평소에 좋은 인간관계를 다져 놓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해관계가 얽힐 때면 내 쪽에서 좀 더 손해를 감수하려 노력하고, 일상의 삶을 통해 좀 더 넉넉한 마음을 가지려 애를 쓴다면 상대방도 내 쪽의 입장을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사를 지내는 옆에서 따로 예배를 드리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사에 대신하는 것으로 예배를 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우리의 올바른 일상도 예배가 되는 것이지요. I라는 분은 댓글을 통해 ‘그럴 땐 우리가족은 작은방에 모여서 간단하게 기도를 드’린다 하셨는데, 이 또한 바람직한 방법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남들 절할 때 옆에서 큰소리로 기도한’다면 상대방은 도전하는 것으로 느끼지 않을까요.

그와 같은 방법들은 상대방으로 하여금 물과 기름처럼 겉도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합니다. 제사 때 그냥 다소곳이 그 뒤나 한쪽에 서 있는 것으로 동참하는 것도 화합을 위한 한 방법이 되리라 생각하는데, 집안마다의 형편과 분위기에 따라 대응방법은 다르겠지요.

 

I 님의 댓글

‘한 가지 궁금해서 여쭤봅니다.’ 제상에 ‘올린 음식에 대해서는 먹으면 안 된다고 하는데, 왜 먹으면 안 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혹시 그 이유가 우상숭배를 하는 데 쓰인 음식이기 때문에 불결(?)한 음식이라서 안 된다는 것인지요.’

-필자의 생각: 필자는 자신의 글에 달린 댓글에 거의 묵언으로 일관해 왔으나, 이 댓글의 내용에 대해서는 평소부터 하고 싶은 말이 있어 리플을 달았는데, 여기에 그대로 옮겨 봅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제사음식이라고 가림으로 하여 먹지 않을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식물(食物)은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입니다(행10:15 참조). 그처럼 하나님께서 깨끗케 하신 것을 무엇인가의 이유로 부정하다 하여 먹지 않는 것은 신앙의 담력이 부족한 탓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고전8:7)라고 했습니다만, 이는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고전8:4)라 전제한 뒤에 말한 것입니다. 우주보다도 크신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우상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 아예 무시하고 몸에 해롭지 않은 것은 무엇이라도 드셔도 됩니다. (그렇다고 애완동물 같은 것을 잡아먹어도 된다는 것은 물론 아닙니다.)’

 

K 님의 댓글

‘이런 글을 굳이 뭐 하러 쓰셨는지.’ ‘보수신앙이 흔들릴까봐?’ ‘보수신앙의 문제는 너무 맹목적입니다. 얘기 좀 해보자 토론 좀 해보자 해도 귀를 막고 도통 말을 안 듣죠.’ ‘추도예배가 제사를 대신할 수 있다고 치고 성도들에게 그렇게 가르친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제사지내는 집안의 신앙인들을 죄인으로 몰지 말고, 또한 그 조상을 기념하는 마음을 귀신 부르는 짓이라고 하진 맙시다.

한국의 보수적인 교인들은 조상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민감하게 굽니다. 그들은 믿음의 조상은 알아도 자기와 자기 부모님을 낳고 길러준 조상은 귀신 취급합니다. 어차피 천국에서 만나지도 않을 거 무슨 상관이냐는 식이죠.’

-필자의 생각: B 님의 댓글은 필자의 글에 대한 동문서답입니다. 필자는 그 같은 내용을 조금도 쓰지 않았거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댓글은 사실과 많이 다른 것이라는 걸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몇 가지를 말씀드리면 첫째, 목사들이라 해서 ‘제사지내는 집안의 신앙인들을 죄인으로 몰지’는 않습니다. 제사보다 추모예배를 드리라고 권면하는 것이 보통이지요. 둘째, ‘조상을 기념하는 마음을 귀신 부르는 짓이라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에 대해 말을 한다고 하면, 죽어 저세상에 가면 그 영혼이 다시는 이 세상에 올 수 없다고 하겠지요. 셋째, ‘한국의 보수적인 교인들은 조상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민감하게’ 군다 하셨는데, 그것도 사실과 다릅니다. 어떤 교인이 ‘보수적인 교인’인지 모르지만, 기독교인들도 조상을 생각하는 마음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습니다. 다만 방법이 다를 뿐이지요. 교인들은 ‘자기와 자기 부모님을 낳고 길러준 조상은 귀신 취급’한다고도 하셨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유교적 성향의 사람들 중에 그리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조상귀신이 와서 제사를 받는다는 것이지요.

 

B 님의 댓글

‘ 이분 목사 맞습니까? 직분 없는 성도도 이 정도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반드시 판단하실 것입니다. 어~휴~~. 추모예배&추모예식, 기독교대한감리회 예문집에는 분명히 추모예식이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명절 추도예식이라고 나옵니다. 예배와 예식을 혼동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필자의 생각: 아무리 생각해도 필자로서는 B 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드릴 말씀이 있을 수 없습니다. 이런 댓글도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 소개해 본 것일 뿐입니다.

 

S 님의 댓글

'이게 바로 울나라 목사들의 수준이다,

종석이형, 몇 가지 물어보자. 태극기 경례하는 게 우상숭배인가, 아닌가.’ ‘성경에는 생일을 저주받은 날이라고 하는데 생일 축하하는 게 과연 성경적인가. 성경에는 안식일을 지키라고 했을까, 일요일을 지키라고 했을까. 성경어디에 안식일을 없애고 일요일 날 예배드리라는 말이 있나. 이외에도 종석이 아저씨 헛소리한 거 백 개 천 개라도 깰 논리가 있지만 귀찮아서 안 적는데, 솔직히 마음 상할까 봐 안 적으려고 했는데, 수준이 너무 낮아’.

-필자의 생각: 필자는 이 댓글을 대하고 불행 중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독자들께서도 느끼셨겠지만, 이 댓글을 다신 분은 일반 교회의 교인이 아니라 이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그러니만큼 하나님의 자녀다운 인격으로 변화되어 가려 기도하며 노력해야 할 줄로 압니다. 그러는 것이 믿음을 길러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실수야 누구라도 할 수 지만, 의도적으로 남을 찌르는 가시가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그래서 이 댓글을 보고 다행이라 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단을 조심하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그들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요즘 그럴듯한 제목의 메일이 가끔 오는데, 회신을 보내면 열어보지도 않습니다. 파렴치한 일로 보나마나 이단이지요. 신천지를 보십시오. 남의 교회에 몰래 숨어들어 순진한 교인들을 꾀어내려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이단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이제 설도 며칠 남지 않았습니다. 이번 기회에 하나님 앞에서 차례와 제사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요. 설 명절 은혜롭고 단란하게 지내시기 바랍니다.

설‧추석 명절 차례와 제사, 왜 간소화로 흐르는가? 시대적 요청 때문인가, 허례허식에 대한 자각 때문인가? 어떻든 정성의 약화라는 말을 피할 수가 없지 않는가? 그렇다면 효성의 약화가 아닌가? 혹 제사의 효용성(?)에 대한 생각이 약화되어 가고 있기 때문은 아닌가?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응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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